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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17. 2023

말러의 뜨거움과 문화적 허영으로 헬렐레...

2023년 4월 20일

아침시간을 느긋하게 보내고 열 시가 넘어 알프스 산기슭의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종교화를 그린 루카스 크라니흐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 크라니흐는 오버프랑켄의 크로나흐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출생지 이름이랑 성이 헷갈린다.

작품의 전반적 성향은 후기 고딕양식에 르네상스적인 요소를 가미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런가보다 하고 그림을 보았다.

아, 종교개혁가 루터의 친구라고 설명이 돼 있더니 루터의 초상이 있었다. 1500년초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의 궁정화가로 있다가 1505년부터 비텐베르크로 옮겼는데 1537부터 7년간 그곳의 시장으로 일했다고 한다.

만년에 이곳 바이마르로 와서 제작활동을 하다가 죽었으니 객사가 되나. 지금이야 고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으니 어디서 죽든 상관이 없겠으나 예전엔 고향 아닌 타향에서의 죽음을 뭔가 인생의 오점 비슷하게 여긴 듯하니 애석함이 살짝 일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책형(磔刑)'이 엄청 유명하고,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라는 재밌는 제목의 신박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아, 에로티즘이 엿보인다는 비너스상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유럽에 오려거들랑 그림공부 좀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 진지하게 반성했다.

거기서 나와 간 곳은 아말리아 대공妃 도서관. 바이마르라는 도시를 유럽에서 알아주는 문화도시로 손꼽게 하고 도시에 흐르는 강의 이름을 따서 '일름강의 아테네'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한 주역, 아나 아말리아 대공妃를 기념하는 도서관이다. 직접 본 도서관은 한마디로 명불허전!

16세 어린 나이에 결혼해 18세 때 대공이 죽어 10대 나이로 섭정을 하게 된 그녀가 아들(카를 아우구스트 대공. 평생 괴테와 친했고 문화 정치 경제 분야에 괴테의 조력을 받았다고)이 훌륭한 대공이 되도록 여러 석학을 초빙했는데 그중 갑이 괴테였고 나중에 실러까지 왔다는 것.

괴테는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의 관장직까지 맡아 고전 장서를 들이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였고 아말리아도 도서관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짐작된다). 

도서관에서 나와 일름강이 흐르는 이쁜 공원을 거닐었는데 공원의 이름도 바이마르궁전 공원이다. 공원에서 산책하며 풍경으로 눈을 씻고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 바이마르궁이 사진 찍기 딱 좋은 위치에 서 있었다.    

-우리 일행은 지금 차를 타고 라이프치히로 가는 중인데, 잠시 휴게소에 들렀다.

호텔 조식 때 커피를 담아오긴 했는데 맛이 없어 휴게소에서 커피 빅사이즈를 샀는데 4.9유로. 지금 환율(1570)로 7693원이다.     

-라이프치히 숙소 가는 도중에 독일 전투기념비가 선 곳에 잠깐 내렸다. 역사적 맥락과 상관없이 신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기념비는 멋졌다. 그앞에 펼쳐진 호수도 볼만했고.     

-이제 숙소가 있는 라이프치히 시내 중심지로 간다. 짐을 풀고 쉬다가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과 함께하는 말러6번 공연을 보러간다     

-라히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말러6번 공연 직관했다.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 클래식 음악에 무지하지만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엄청 정열적인 지휘자로 관객석을 뜨겁게 달구는 지휘자라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가슴이 부풀고 마음이 막 웅장해졌다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를 여행하며 보았던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차를 타고 가며 보았던 한없이 고요한 푸름이 열리고 깊디깊은 허공이 나를 감싸는  느낌에 빠지기도 했다. 한 시간 반을 꽉 채워 연주했는데 10분가량은 언제 끝나나 했지만, 막상 음악이 느려지다가 점점 나지막해지면서 끝을 예고하는 침묵이 찾아드는 순간, 아 이제 이 멋진 소리의 향연이 끝나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찾아들었다.

게반트하우스에서 나와 4월 어느날 찾아온 말러의 뜨거움과 문화적 허영을 만족시킨 흐뭇함을 안고서 괴테의 단골집이었다는 라히프치히 술집 메피스토로 갔다. 잠시 입에 올리던 말러는 보내고, 우리들의 이야기로 넘쳤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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