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
데친 중앙역에서 북서쪽으로 달리는 고속철을 타면 바로 다음역이 독일 땅인 '바드 샨도우'다. 그 다음 역이 드레스덴이고. 가격대가 낮은 열차는 바드샨도우까지 정차하는 역이 서너 개 됐던 것 같다.
오늘 잘츠부르크와 비엔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S, H와 함께 바드 샨도우에 다녀왔다. 이미 한번 갔다온 H가 안내를 맡아 앞장을 섰다. 나는 전망 좋은 카페에서 맛난 커피 한 잔을 샀고.
우리는 바드샨도우역에서 내려 강변도로를 걷다가 엘베강 푯말이 세워진 다리를 건넜다. 엘베와 라베를 섞어 쓰고 있지만, 체코 북쪽에서 이 강을 일컫는 정식 명칭은 라베강(체코 중부 프라하에서는 블타바강이다. 너무 헷갈린다). 독일은 엘베강이다. 이 다리에 엘베강 푯말이 서 있는 건 아마 체코와 독일의 접경지대라 여기가 체코인지 독일인지 헷갈리는 관광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었다.
다리를 건너서는 다시 우리가 걸어온 방향으로 걸었는데 전망대가 데친 방향으로 도보 20분쯤 되는 산 중턱에 있었다. 15분쯤 걸어가다 보니 카페가 보였고 우리는 다리 쉼을 하려고 바깥 식탁을 차지하고 앉았다. 나는 유럽에서 팔지 않는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 까다롭게 커피를 주문했는데 공동 주인인지 직원인지 모를 두 처녀가 어찌나 친절하고 상냥하고 순박하게 굴며 커피와 뜨거운 물을 내주던지... 독일 처자들이 원래 다 저렇지는 않을 거고(라이프치히 등 도시에서 만난 2, 30대 젊은 여자들은 건실하고 지적이고 다소 무심한 인상이 강했다) 시골이라 그런가 했다.
바드 샨도우는 전형적인 시골 강변마을로, 오늘따라 유난히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참으로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강가 초록풀이 부드럽게 깔린 들에서 아이들과 개가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한발 물러나 아이들이 다치지 않는지 지켜보며 자기들끼리 한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은 참 느리게 흐를 것만 같았다.
햇볕을 머리에 받으며 걷느라 피곤했던 몸에 커피와 맥주를 흘려넣은 뒤 우리는 일어나 전망대로 향했다.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올 수도 땡볕이 좀 셌다. 전망대 꼭대기까지 운행하는 엘리베이트 티켓을 2.8유로에 사서 40미터쯤 되지 싶은 꼭대기로 올라갔다. 30초 걸렸으려나. 마을은 평화롭고 아득한데 장삿속은 땐땐했다.
전망대에서 내리자 기대했던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졌는데도 와- 소리가 나왔다. 야트막한 언덕산을 끼고 활짝 트인 들판을 몸통 굵은 강줄기가 흘러가고, 강변 양쪽으로는 밝고 산뜻한 지붕을 인 작은 집들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게 불규칙적인 질서 속에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머물렀다 갈 테지만 저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집앞을 흐르는 엘베강을 365일 바라보며 살아가겠지. 가끔 애들을 데리고 강가 풀밭으로 산책도 나가고, 편의점이나 마켓이 없고 도서관과 병원과 술집이 없는 마을에서 사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평화로운 낮과 밤을 흐뭇이 누릴 테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벤치에 앉아 나는 또 헛된 공상을 하다가 전망대 내리는 곳 가까이 있는 카페로 갔다. 이번에는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이랑 큰 컵 운운하지 않고 깔끔하게 카푸치노를 시켜 마셨다.
-S, H는 데친역에서 20시 01분 유로시티 열차를 타고 파리로 떠났다. 아마 내일 새벽 오펜부르그에 떨어졌다가 파리행 열차로 갈아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남은 8일간의 데친 생활을 한달살기 여행자답게 하게 될 것이다. 내일은 드레스덴이다.
아참, 바드샨도우에는 온천이 있다. 처음 다리쉼 한 카페 뒤로 돌아가니 큰 야외식당이 있었는데(주로 피자를 먹더만) 건물 안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와서는 그렇게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쉬는 거였다. 언젠가 데친샘이 지나가는 말로 숙소 근처에 온천하는 데가 있다고 했는데 그게 바드샨도우였던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