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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20. 2023

관광 명품이 된 드레스덴 역사와 시민정신

2023년 4월 23일

드레스덴을 다녀왔다. 알다시피 드레스덴은 2차세계대전 때 연합군으로부터 어마무시한 폭격을 당해 건물이 죄 파괴됐으며(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명피해도 봤고),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45년간 방치되는 바람에 도시 자체가 파괴됐다는 말이 나왔던 곳이다. 그런 도시를 몇십 년간의 노력으로 재건한 사람은 다름 아닌 드레스덴 시민이었다. 역사적 상흔과 재건의 역사, 수많은 바로크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나는 드레스덴 시민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드레스덴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노이 마르크트 광장에 내린 나는 프라우엔 교회부터 갔다. 보는 것마다 멋진데 어딜 먼저 가봐야 할지 몰라 어리벙벙해 하고 있는데 교회 문 앞에 선 수위(?) 느낌의 정정한 노인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했다. 

일단 사진과 실물을 머릿속으로 비교해봐도 이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물론 느낌적 느낌으로 종교시설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여긴 뭐하는 데냐, 물었다. 프라우엔켜서라고 했다. '켜서'가 무슨 뜻인지 몰라도 '처치' 같은 느낌적 느낌에 아, 교회가 맞구나 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부가 너무나 화려했다. 아니 화려하다기보다 환했다. 환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하는 색감과 장식물로 들어선 사람들을 환영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교회에 들어왔으니 잠시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나를 위한 기도는 아니었다. 한때의 전쟁으로 엄청 두들겨맞아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드레스덴에 주님의 눈길이 한번 더 주어지기를 기도했다. (내가 상처입은 도시를 위해 기도하고 그러는 사람 아닌데 여긴 이야기 들어보니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게 폭격을 가했더만) 

그러고 바로 휴대폰을 켜서 교회 내부를 동영상으로 담았다. 한 바퀴 돌며 사방을 담는데 문득 천장이 궁금해 렌즈를 위로 향했다. 오 마이... 새나오는 감탄을 삼켰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4층 높이는 됨직한 돔이, 돔을 받치는 기둥 같은 거 하나 없이 너른 내부 위로 솟아있었다. 저거 저러다 무너지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몇백 년 되는 건물이 동네방네 다 있는 유럽이니 알아서 잘 지었을 것이다. 

교회 의자에 앉아 인터넷을 뒤져보니 프라우엔 교회 역시 2차 대전 때 폭격을 맞아 파손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던 건 당시 드레스덴 시민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시민들은 폭격 후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에 무너진 교회의 돌들을 모아서는 어느 자리, 어느 모퉁이에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번호를 매겨 보관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언제 재건축이 이루어질지 알 수도 없는 날들을 기다렸다가 자신들이 보관해 두었던 돌을 바로 그 자리에 놓았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이 거대한 교회를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봐야 옛 건물, 뭘 또 그렇게까지나, 하는 마음이 살짝 드는 한편으로 돌을 하나하나 모아 번호를 매겼던 그 마음이 감동으로 전해져오기도 했다.  내가 들어와 있는 이 교회가, 종교를 떠나서도 단순한 교회, 단순한 건물이 아니구나. 수천, 수만 개의 번호가 매겨진 돌의 수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 소망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마음이 저미는 듯했는데 그건 슬픔이나 아픔 같은 건 아니었다. 마음이 웅장해지면서 그들 속에 잠시 들어와 함께했다는 감격의 저림 같은 거였다.      

프라우엔 교회를 나와 발 닿는대로 드레스덴 중심가(라고 철도역 관광정보 사무실에서 얻은 종이 지도에 둥근 선이 그어진 곳. 중심가라는 개념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음)를 돌아다녔다. 한 시간 반 정도 돌아다니며 멋진 건물 사진 찍기를 하다보니 꽃밭이 가운데 있는 너른 공원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벤치에 앉은 노부부에게 여기가 어디냐 물으니 뭐라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 지도를 내밀고 짚어달라고 하자 Bruhlscher Garten이라 적힌 곳을 가리켰다. 브루쳐공원? 공원이 꽤 높은 지대에 조성되었는데 한쪽으로 엘베강이 내려다보이는 뷰가 너무너무너무 멋졌다. Bruhlscher Garten을 검색해 엘베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를 '브릴의 테라스'라고 하는 걸 찾아냈다. 공원에 오르기 전, 애들이 물방울풍선을 따라 뛰어다니던 거리가 엘베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라서 한참 머물렀는데, 브릴의 테라스 뷰가 훨씬 더 멋졌다. 

공원 벤치가 비기를 기다리며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그러다 공원 한쪽에 누군가를 추모하는 빈소가 마련된 걸 보았다. 며칠 전 스물다섯 나이로 별이 된 문빈을 기리는 꽃빈소였다. 마음이 울컥해서 그 자리에 앉아 빈소를 한참 바라보았다. 스물다섯... 어린 사람의 죽음은 모르는 남이라도 왜 이렇게 안 됐고 짠한지... 명복을 빌었다. 

마침 강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자리가 나서 가방을 내려놓고 앉았다. 클로즈백이라 일단 바깥에 들고 나오면 한번도 풀어놓지 않는데 이제 안에 든 돈도 거의 다썼고, 지내다보니 그렇게 조심하라는 소매치기가 있건말건 좀 해이해지자 싶었다. 잃어봤자, 하는 마음이 여행에선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가방안에 든 걸 다 써버려서겠지 ㅎㅎ

한 시간 가까이 공원에 있다보니 화장실에 가야 하지 않나 싶었다. 요의가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마땅한 장소가 있어 쌀 수 있을 때 싸는 게 좋았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든 강박증 같은 버릇이었다.  

결론적으로 드레스덴에서 나는 공공화장실을 찾지 못했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가, 물으니 공공화장실을 찾아가라는 듯 가리키는 손끝이 멀고도 아득했다. 광장을 차지한 야외테이블에 앉은 저 많은 사람들은 맥주를 저렇게 들이켜면서도 요의를 느끼지 않는 건가? 어쩌면 저렇게 해맑고 평화롭고 주름 하나하나에 즐거움이 새겨져있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안은 채 나는 트램을 타고 드레스덴 중앙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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