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지숙 Sep 20. 2023

데친은 보헤미안 지역으로 집시가 살았던 곳이라는데

2023년 4월 24일

-다시 드레스덴으로 가야지. 어제는 드레스덴중앙역에서 트램을 탔는데 오늘은 걸어서 떼아뜨르플릿츠로~ 차를 타고 15분 거리가 알고보니 도보 20분 거리였다. 트램으로는 13분이라고 구글이 알려주네.

장비(라야 여권과 휴대폰) 챙기고 무장하여 마당으로 내려가니 비가 퍼붓고 있다. 커튼을 닫아놓고 있어 날씨 확인을 못했다. 마이 미스테이크. '다시 드레스덴으로'는 내일로 미루자.      

-이왕 차려입고 나온 거, 역에 가서 엘베라베 티켓 타임테이블을 달라고 했다. 어제 끊은 건 직행으로 가는 편도 티켓이고, 엘베강을 끼고 달리는 엘베라베 노선 티켓은 바드샨다우에서 드레스덴행으로 갈아타야 되는 왕복 기차표다. 바드샨다우에서 환승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4분. 플랫폼 전광판으로 달려가서 확인하고 계단 오르내려 드레스덴 기차에 올라타는 데 4분은 무리데스. 놓치면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대신 차비가 왕복 합해서 500코루나쯤 저렴하다. 참고로 500코루나는 우리 돈으로 3만 원 정도 된다. 드레스덴 직행이 그만큼 비싸다는 말이다.

오늘 가려면 12시 41분 차를 타야 하는데 환승만 제대로 하면 우산 챙겨서 갈 만한데 놓치는 경우를 생각해서 포기한다. 척추협착증이라는 게 정상인처럼 괜찮다가도 한번씩 발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픈데, 대체로 몸에 무리를 주었을 때 증상이 나타난다. 조심해서 몸을 다뤄야지. 그래서 요즘 이 숙소 안에서 늘 와인이 넘쳐나지만 나는 입에도.... 입에만 대는 정도로 절제하고 있다. 나라고 좋은 와인 주는데 안 마시고 싶겠는가(라고 큰소리 뻥치고 싶지만 사실 나는 술맛을 잘 모른다. 이 부분 내게 콤플렉스다. 이 나이 되도록 술맛을 모르다니. 내가 인생을 뭘 알겠는가 흑)     

-오후 세 시 반, 해가 쨍하게 난 걸 확인하고 숙소를 나섰다. 습관적으로 엘베강 건너편을 향해 내디뎌지는 발걸음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사람이 안 하던 짓도 좀 하고, 안 가던 데도 좀 가보고 해야지. 의식적으로라도 그러는 게 맞지, 그러면서.

잘한 선택이었다. 사실 이곳 데친은 구시대 보헤미안 지역으로 집시가 몰려 살았던 전통 때문인지 거친 생활을 하는 듯 야인의 느낌을 풍기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데친 성과 구시가지, 자전거 산책길과 별장 같은 집들이 늘어선 엘베강 저쪽보다는 숙소가 있는 쪽의 외진 길과 소공원, 큰 상점 앞에 모여있다. 지나칠 때 냄새가 좀 나고 때에 전 옷과 제때 깎아주지 못한 수염 때문에 내가 그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달 가까이 지내면서 한번도 눈짓이나 제스처, 욕설 같은 위협을 당한 적은 없었다. 

오늘 내가 걷기로 마음먹고 발길을 돌린 게 종종 그들을 마주치던 쪽 길이었다. 그 길을 지나 쭉 내려가면 어디로 이어질지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 결과 18시 15분 현재 피보바(Pivovar) 쇼핑몰 내 피보바르스키 레스토랑 카피탄(엉터리 발음일 것임)에 앉은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아무것도 없다. 

오늘 내가 걸은 경로를 되짚자면, 숙소에서 나온 뒤 한 시간 반 정도 길을 따라 죽 걸어갔다가 되돌아와서는 이쪽 동네를 슬렁슬렁 걸었다. 걷다가 보니 다다른, 숙소 옆 빌라 마켓보다 훨씬 큰 대형상점 알버트에서 빵과 청포도를 사서 너른 공원에 잠시 앉아있었다. 빵을 조금 뜯어 먹고,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나무에서 떨어진 것들이 옷에 묻고, 산책 나온 개들은 자꾸 내게로 오려고 발버둥치고, 개주인은 화들짝 놀라 줄을 당기고, 그냥 놔둘 것이지. 나도 개 좋아하는데... 중얼거리다가 공원을 나왔다.

어쩔까.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이다(아참, 혹시나 하고 들고나온 우산을 공원벤치에 두고왔네) 도로를 따라 안 가본 오르막길을 올랐다. 불에 탄 듯한 폐가를 보고 조금 놀라면서 어떤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니 횡단보도 건너편 언덕에 피보바쇼핑몰 건물이 서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계단을 올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신축건물의 외양에서 짐작한 대로 건물 안에는 틀어박혀 개길 만한 카페가 있다. 식사, 술, 커피, 칵테일 주스 등등 오만가지 다 파는 레스토랑 카페였다. 저녁 여섯 시만 돼도 문 연 가게가 별로 없는 이 시골구석에 이런 게 있었다니. 아싸~~ 했지만 이곳 데친에 머물 날이 며칠 남지 않았네. 너무 늦은 만남, 뭐 그런 거?

기분 같아서는 맥주500CC 시키고 싶지만 몸속에 한기가 조금 도는 듯해 카푸치노만 한 잔.


이전 24화 관광 명품이 된 드레스덴 역사와 시민정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