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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숙 Sep 21. 2023

이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 저 길 끝에는...?

2023년 4월 26일

-세브니츠라는 마을에 와있다. 심플하고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이 보이시한 20대 여성 같은 마을이다. 천하 길치인 내가 드레스덴에 이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독일의 소도시를 찾아오게 된 건 마을 안으로 돌아 흐르는 개울이 참 예쁘더라는 데친샘의 말 때문이었다. 

데친샘의 개울 운운하는 말을 듣는 순간 크로아티아의 한 마을이 생각났다. 마을길을 따라 흐르던 개울이 마당 안으로 들어와서 뒤로 돌아나가던 집의 스무 살 어린 처녀. 어여쁜 그 여자애와 그 마을이 생각나서 얼른 가보고 싶었다. 

우리나라 안동처럼 강이 돌아나가는 마을을 체코에서는 크룸로프라고 한다. 독일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무슨 용어가 있을 것이다. 강이 아니라 개울이어서 없으려나.

세브니츠역에 11시40분에 도착해서 두 시간 남짓 마을을 돌아다녔다. 왜 책을 읽다보면 그럴 때 있잖나. 다음 장이 궁금해 마음이 급해지는 거. 오늘 이 마을을 돌면서 느낀 내 마음이 그랬다.

아, 예쁘다. 이 길 끝에는 뭐가 있을까. 저 멋진 건물 뒤에는 어떤 건물이 서있을까. 개울이 돌아나가는 저편의 숲은 어떤 모습일까. 저 언덕 위의 집들과 정원은 더 예쁘겠지. 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기똥차게 멋있겠지. 도저히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리가 뻑뻑해지도록 걷다가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나무벤치가 놓인 너른 풀밭으로 들어갔다. 뭔가 축축한 느낌에 발밑을 보니 신발 밑창이 다 젖었다. 신고식이네.

약간 흐리던 날씨가 때마침 쨍한 햇볕을 내리쬐어 주기에 신발을 벗어놓고 편하게 앉아 천도복숭아와 포도를 먹었다. 준비성 없는 내가 오늘은 배낭도 메고 먹을걸 넣어왔는데 소풍같은 느낌도 들고 좋았다.

신발도 말랐고 따뜻한 커피로 속도 데워 힘이 나기에 아랫마을로 넘어가 다시 씩씩하게 돌아다녔다. 한 시간 넘게 걸었을 것이다. 

거리는 깨끗했고, 개울 따라 난 길은 걷기 편하게 닦였고, 하교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엄친아 타입으로 보였다. 아이고 어른이고 노인처럼 천천히 걸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며 바빠보이는 건 나같이 손에 카메라폰 든 사람들뿐이고...

눈을 감고 걸어도 될 만큼 안전하고 질서 있고 깨끗한 소도시를 탐욕스럽게(?) 맛보고 나니 혹시 이런 게 바로 독일인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소도시 방문 감상을 정리할 겸 카페에 들어가 커피나 마실까 하는데 바람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바람 맞으며 십여 분 돌아다녔으나 제법 규모가 큰 이 마을에 카페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안 하면 민폐일 것 같은 레스토랑밖에 눈에 띄지 않았다. 한 군데, 마마보(MA MA B0)라는 카페 간판에 커피잔이 그려져 있기에 반가워 뛰어갔더니 문을 닫았네. 아, 진짜 데친이나 세브니치나 왜 이러니, 니들. 

역시 독일은, 아무리 소도시라도 소소한 재미에는 약해. 괜한 어깃장을 놓으며 세브니츠역으로 서둘러 갔다. 역무원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역에서 벽에 붙은 기차시간표를 훑어보니 16시 18분 출발하는 차가 있다. 아이고 잘됐네. 세찬 바람에 훌쩍이던 코를 풀고 잠시 앉아 기다리니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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