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나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통을 잡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종교적인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요즘 멍 때릴 때 불교 명언 오디오북을 듣는데 좋은 말이 많아서 가져와 본다.
2022년 마지막 날, 얼마 전 찾은 맛있는 국밥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는 길에 찍은 마지막 해넘이. 여전히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서 문제지만, 참 생각이 많았던 2022년이었다.
해를 그냥 보내기가 못내 아쉬워서 친구와 함께 해돋이를 보러 갔다. 몇 년 만에 보는 해돋이인지 몰랐다. 새벽 늦게까지 놀다가 아침 5시에 일어나야 한다며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아서 나만 밤을 새우고 갔다.
비록 구름에 가려서 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대로 좋았다. 소박하지만 큰 소원을 빌고 비응항을 떠났다.
여느 때처럼 지루하게 시간을 때우던 중, 옆집에 사는 친구가 케이크를 먹으라고 갖다 줬다. 신년 파티를 하고 있었는데,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다가 연락이 뜸해져 얼굴을 안 본 지가 7년이 돼 가는 친구와 케이크를 갖다 주자고 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했다. 애꿎은 술잔만 연거푸 비우다가, 셋이서 <연애의 온도>를 봤다. 허무맹랑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에 웃었다. 그날을 기념하는 일기를 각자 기록해서 남겼다. 감사한 날이었다.
약 한 달이 지나면, 대학 생활에 있어서의 마지막 원룸 계약이 끝난다. 원룸을 구할 때면 매번 하루를 잡고 발품을 팔았다. 가장 중요하게 보았던 건 방음이었다. 그렇게 3차례 발품을 팔고 이사를 다녀 보니 알게 되었다. 방음이 완벽한 방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튼튼하게 지어졌다 해도 이웃을 잘못 만나면 말짱 꽝이라는 것도. 그런 점을 감안해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최고였다. 채광이 조금 아쉽지만 다른 점은 완벽했다. 아마 내가 전주에 계속 있었다면, 계속 살고 싶은 집이다. 새해라고 덕담을 해 주시는 사장님의 문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20년이 넘게 사귄 친구가 광주에 이자카야를 차렸다고 한 지가 꽤 오래됐는데, 이제야 갔다. 대학 동기와 내 친구를 서로 소개해 주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미 내가 서로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해서 내적 친밀감은 거의 단짝 수준이었기에 어색하지 않고 재밌었다. 그러다 대학 동기가 자기 동네 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불러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차를 가져와서 술을 마시지 않았던 나를 위해 딸기에몽을 사 온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노래방도 갔는데, 재밌었다. 내가 마시던 물에 누가 술을 탄 것처럼 취한 듯이 놀았다.
심심해서 만났는데 할 게 없는 '만성 콘텐츠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즉흥적으로 한 챌린지. 결과는 둘 다 성공했다.
대운동장 흔들의자에 앉아서 1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 얼마 전 비가 내리더니 기온이 14도까지 올라서, 봄이 온 듯 따뜻한 날씨였다. 비 덕분에 미세먼지도 가라앉아서 공기도 참 좋았다. 나가길 잘했다고, 안 나가면 손해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던 밤. 저기에 앉아 있으면 20살 때부터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재생된다.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지나가는 말로 '이 그림 네가 그린 거야? 멋있다.'라고 했었는데, 직접 그림을 그려 선물로 주는 친구. 6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안 온다고 농담 삼아 지각비를 걷자고 스톱워치를 켜고 있었는데 우리의 선물을 들고 31분에 등장한 친구.
첫 달의 절반이 지나고 있다. 제2의 고향에서 떠나려 하니,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 많이 생긴다. 어떤 것이든 마지막엔 여운과 함께 아쉬움으로 끝이 나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를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