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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우 Jun 07. 2023

섬과 육지

  섬 생활에 적응하랴, 날마다 새로운 듯한 일들에 익숙해지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시간들이다. 계획했던 공부는 100분의 1도 못 한 나 자신과 대비되는 주변의 소식들에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고민들이 겹쳐서 잠도 설쳐서 눈이 천근만근인 지금, 오랜만에 몇 자 적기 위해 책상에 앉았다.


베란다를 통해 볼 수 있는 섬의 안개

  거문도의 아침 안개로 글을 시작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안개는 10시나 11시가 되면서 해가 수직으로 뜨기 시작할 때쯤 깨끗이 걷혔다. 근데 여기의 안개는 해가 뜨고, 해가 질 때까지 걷히지 않는다. 심할 때는 일주일 가까이 시야가 뿌옇다. 축축한 공기, 음산한 분위기, 우울한 기분은 덤이다.

  그리고 저 때쯤 갑자기 관사 도어록 장치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새벽에 갑자기 '삐 삐 삐 삐, 띠리릭!' 소리가 계속 났다. 누군가 도어록 터치를 활성화시키고,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그 비밀번호가 틀리는 소리. 새벽 4시쯤에 깨서, 1분에 한 번씩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공포심에 소름이 돋았다. 며칠 후 알고 보니, 문을 제대로 안 닫아서 잠금장치가 체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였다(확실한 건 아니고 아마 그럴 것이다). 이후로 밤에 잠이 더 잘 깨는 것 같기도 ..


머그잔이 없던 지형이에게 준 컵

  머그잔이 없다고 해서, 몰래 컵을 하나 사서 보냈다. 내가 더 유용하게 쓰고 있는 듯한 컵이다.


  함께 가고 싶었던 호성동 스타벅스도 갔다. 초록이 예뻤던 날. 크림이 옷을 훔쳐 입은 지형이.


151빠

  오랜만에 갔던 151바도 좋았다. 마티니는 정말 신기한 게 바텐더 분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다. 만들기가 꽤 어려운 칵테일인가 보다. 잘못 만들면 상당히 매운맛이 나고, 잘 만들면 은은하게 향이 퍼진다. 제철 과일을 안주로 잔뜩 주는 귀한 칵테일 바. 안 간 지 오래돼서 종종 생각이 나는 집.


커염둥이 크림이 옷 뺏은 지형이


  신청하고 까맣게 잊고 살다가 받은 것. 교육 들으러 간 김에 수령했다. 사진 안 바꿨으면 +15kg 오진우 사진으로 나올 뻔했는데, 아찔하다.


게거품

  영찬이가 생일선물로 이걸 줬다. 이유는 내 카카오톡 찜에 있어서. 언젠가 사야지 하다가 2년째 찜 목록에 있는 거 같은데, 결국 누군가 선물을 해 주고야 말았다. 건전지를 분명히 새것으로 갈아 끼웠는데 비눗방울이 게거품처럼 나오고 노래도 점점 소리가 작아졌다. 지금은 다행히 건전지를 새로 끼워 환골탈태한 후 조카의 손아귀에 들어가 제 역할을 수행 중이다.


  일요일에 여수 배를 타기 위해 11시 40분 기차를 타면, 지형이가 배웅을 해 준다. 배웅을 해 주고 나면 본인의 스케줄 시간까지 3시간 정도가 붕 떠서 애매해지는데도 배웅을 꼭 해 준다. 고마운 사람.

  그리고 이 사진은 내가 대합실에 지갑을 둔 것을 모른 채로 찍은 사진이다.


군산

  지형이의 제2의 고향, 군산에서 시간을 보냈다. 세찬 비를 뚫고 간 군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세병회 모임

  오랜만에 '세병호나 가죠?' 모임을 했다. 분명히 돗자리들을 많이 까는 자리라고 했는데, 비가 온 직후라서 그런지 넓은 잔디에 우리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돗자리 금지가 됐나 싶을 정도로 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자리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서로의 물에 젖은 엉덩이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의 첫 마블 영화 도전기. 가오갤3를 봤다. 이날 이후 로켓 악개가 된 나 ..

  영화 보고 나와서, 터미널 갈 때마다 지나치면서 궁금했던 카페에서 맛있는 브라우니도 먹고 햇볕을 쬐며 여유를 즐겼다(사실 다음 날 아침 배로 섬에 들어가야 해서, 몇 시간 후 본가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마음이 여유롭진 않았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본 지형이를 닮은 장미.


거문해수욕장

  이곳은 거문해수욕장이다. 제주도 뺨칠 정도로 맑고 푸른 바다다. 놀랍게도 해변가 가까운 곳에서도 팔뚝만 한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저기서 스노클링도 한다고 들었다. 거문도에서 굳이 애착이 가는 장소를 고르라면, 여기를 고르고 싶다. 학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있고(걸어서 온 적은 없다), 꽤 좋은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발령 둘째 주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독한 감기(풍토병인 듯한)에 걸려서, 보건지소에서 1,000원을 내고 진료를 받고 약을 받은 날. 그 약은 심지어 잘못 포장되어 '3개, 3개, 3개, 4개, 2개' 이런 식으로 약이 나눠져 있었다. 아무튼 그 약이라도 받으려고 20분 정도 기다렸는데, 날 관용 차량으로 데려다준 시설 주무관님께서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에 음료수라도 사 드리겠다고 해서 근처 카페에 갔다. 놀랍게도 카페에는 손님만 있고 사장님이 안 계셨다. 그래서 그냥 가까운 슈퍼에 가서 3,000원을 주고 음료수 두 캔을 샀다.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 시설 주무관님께 떠밀듯이 음료수를 드렸고, 시설 주무관님께서는 바람이라도 쐬자며 저곳, 거문해수욕장으로 데리고 가 주셨다.

  거기서 나눈 이야기들은 내 거문도 생활에 참 큰 힘이 됐고, 지금도 되고 있다. 지금은 섬을 떠나 다른 일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일을 하든 열렬히 응원하고픈 내 첫 직장 상사이다.


대동제

  지형이랑 대학생인 척하며 대동제를 즐겼다. 아무도 우리가 대학생이 아닌 걸 몰랐을 것이다 ^^. 2015년에 입학한 학교인데, 아직까지도 축제를 보러 올 정도로 가까이에 두고 지내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초여름 밤을 보내기가 못내 아쉬워 들른 펍 아담스. 대놓고 맛있는 칵테일을 마신 날이다.


이태리572 담벼락에 있는 지형이를 찍는 장미

  이태리572의 뇨끼는 잊을 만하면 생각이 난다. 블루베리 소스도. 나중에 피자도 먹어봐야겠다!


비밀장소

  강아지의 비밀장소에 따라가 봤더니, 장미가 잔뜩 피어 있었다!


크림씨

  완전히 해맑게 웃는 크림씨. 문 닫고 잠깐 뭐 좀 보고 있는데, 계속 쳐다보다가 방충망을 발로 긁긁 긁었다. 아주 귀여운 내 친구.


키링 잔뜩

  지형이가 역으로 배웅을 해 줄 때마다 춘식이 키링을 사 주고 있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귀여운 애.

  결국 저 많은 키링 중 일부를 뺐다(무거워서).


맛있는 케첩존

  무안으로 교육 들으러 가기 전에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순식간에 흡입 후 지형이를 얌전히 기다렸다.

  이날 일찍 일어나서 자동차 1년 차 정기검사를 받고, 오일 교환도 하고, 돈도 잔뜩 썼다. 통장도 개설하고 카드도 만들었다.


강아지

  지형이랑 객사에서 데이트를 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6분 정도 남은 버스를 기다리다가 문득 초여름의 선선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지형이랑 더 걷고 싶어서 막무가내로 한옥마을로 향했다. 도착하니 전주야행 행사 중이었고, 야시장도 있고 여러 가지 부스도 있어서 볼 거리가 많았다. 축제 특유의 분위기, 하지만 너무 붐비지는 않고 적당히 붐비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 좋았던 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씩 들고 가는 호롱불의 출처를 물어 물어 결국 얻고야 말았다. 저렴한 가격에 DIY로 만들 수 있게 부스를 만들어 놨었다. 마감 시간을 1분 정도 남기고 가서 살 수 있었다.


  혁진이네 커플이 전주에 놀러 왔다고 해서, 보자길래 진호도 부르고 선우도 불렀다. 정주는 아쉽게도 못 왔다. 저녁 6시쯤 만나서 닭목살구이를 먹고, 노래방에 갔다가 미생맥주에서 한 잔씩 더 했다. 마지막으로 락볼링장에 갔는데, 피곤해서 안 치고 구경하다가 귀가를 했다. 피로에 찌든 인생네컷 속 내 표정.


  나름 희소식이라 찍어 뒀다. 그러나 이 계획은 취소되었다.

  이날 영어쌤을 전주역에서 만나 함께 여수까지 내려와서, 여객선 터미널 앞 파스쿠찌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맛있는 야미

  지형이랑 점심으로 야미를 시켜 먹었다. 생각보다 알밥 양이 많았고, 돈가스는 매장에서 먹는 게 더 양이 많은 것 같았다. 아닌가? 아무튼 맛있었다.


진호네 집밥

  진호 집에 가서 '서로 롤 하는 거 뒤에서 지켜보며 훈수 및 멸시하기' 콘텐츠를 했다. 저녁으로 먹으려고 만들어 놨다는 낙지제육을 먹었는데, 세상에 내가 최근에 먹은 '두족류+육류' 조합 중 최고였다. 너무 맛있게 잘 먹고, 열심히 훈수를 둘 수 있었다.


  새만금 방파제를 따라서 쭉 들어가다 보면 이런 금계국 밭이 나온다. 운이 좋게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노란 꽃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형이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 사이에 있는 지형이 꽃!


다시는 안 뽑기로 했는데 ..

  그리고 저녁으로 소고기뭇국을 먹으러 군산 시내로 들어왔다. 맛있게 먹은 후 시간의 거리를 산책하다가 발견한 문방구에서 1,000원짜리 뽑기를 했다(옛날엔 100원이었는데). 그리고 지형이가 지옥 참마도를 뽑고야 말았다. 울어라, 지옥 참마도!


20,000km

  1년 좀 넘었는데 20,000km를 탔다. 그 사이에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내와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안전하게 다녀야겠다. 먼지 청소를 좀 해야겠다.


지형이와 함께한 세차



  요새 밤에 잠을 잘 깬다. 그리고 낮에 무척 피곤하다. 예전엔 장난으로 '만성피로'라는 단어를 즐겨 썼었는데, 이번엔 진짜 같다. 근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그런가. 아무런 문제 없이 흘러가고 있고, 그럴 거니까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크림이가 그랬었다. 새겨야지.

  다음 주부터 2주 동안 신규자 교육을 받는다. 실질적인 동기들을 만나는 장이 열리는 셈이다. 그저 뭍에서 출퇴근을 한다는 게 생경한 경험일 것 같다. 교육 내용은 대충 보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실장님도 가볍게 놀다가 오라고 하셨다.

  적응 핑계를 대면서 공부를 차일피일 미루는 나 자신이 싫지만, 당장 퇴근을 하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무척 피곤해진다. 아직 적응을 덜 한 걸까라는 핑계를 또다시 대 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할 때가 되면 하는' 사람이니까, 나를 믿어야겠다. 열심히 해야지. 뭐든지. 나의 내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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