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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더하기 Feb 12. 2022

놀라운 사람

나의 요정

코로나 19로 인해 생각지 못한 수확이 있다.

바로 딸과의 정서적 거리가 한 층 가까워졌다는 것.

집에서 둘이 복닥거리는 동안

친구처럼 연인처럼 알콩달콩 애틋하다.


코로나 19가 익숙해질수록

외부 일정이 잦아지고 딸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

딸은 아쉬움을 예쁘게 표현한다.

나갈 준비로 분주히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주방에서 복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서면 손에 쇼핑백을 들려준다.

쇼핑백 안에는 과일을 넣은 도시락과

얼음을 가득 채운 커피가 담겨있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하고 헐레벌떡 주차장으로 향한다.

차를 끌고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올 때면

언제 나왔는지 정문 앞에서 강아지를 안고 손을 흔든다.



 

딸은 언제부턴가 밤마다 A4용지에

엄마에 대한 사랑을 가득 편지로 적어 준다.

보관하기에는 불편하고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고민하다 교환 일기장을 만들었다.

아낀다며 쓰지 못한 수첩 중 가장 깔끔한 것을 골랐다.

이제 이곳에 서로 편지를 쓰자고 하며 꾸미기 스티커도 넣어두었다.


딸은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더니 그날로 편지를 쓴다.

잠들기 전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방에 들어와 교환 일기장을 놓고 간다.

자신이 잠들면 읽으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새벽 3시 즈음 눈이 감기고 졸음이 몰려와 버틸 수 없을 때

박카스 한 병을 따듯 편지를 읽는다.





배시시 웃으며 답장을 쓰고 딸이 잠든 방으로 가

침대 맡에 큰 곰돌이 인형의 엉덩이 밑에 넣어둔다.


딸은 교환일기에 가끔 시를 쓴다.

제목은 대부분 ‘엄마’라는 말이 들어간다.

나는 읽고 또 읽는 것을 반복한다.

금세 펴보지 않아도 읊을 수 있게 된다.

윤동주의 ‘서시’처럼.


그런 나에게 딸은 새로운 시를 써주었다.

누구에겐 흔한 표현일지 몰라도 나에겐 소중하고 반짝인다.

어디선가 본 듯한 시일지라도 나는 볼 때마다 새롭다.           


<나의 요정>      

나에겐 언제나 휴식처 같은 요정님이 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날 좋아해주는 요정님
어떨 땐 유쾌하고
어떨 땐 신중하는
나의 요정님
  
눈에는 안보이지만
나에게는 보인다
아름다운 날개가     

어여쁘고 고운 마음씨를 가진 요정님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요정님
나의 엄마                       



내일은 마음먹고 앉아 답가를 써야겠다.


삶의 고단함과 인생의 억울함을 한방에 초기화하는 

놀라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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