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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걱정하지 마. 네가 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하는 거야

울지마, 아가. 못 해도 괜찮아. 네가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거야.


대학원 수업 학기를 모두 마쳤다. 에세이도 모두 제출했고, 최종 시험도 봤다. 썩 좋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다 최소 기준은 넘겼다. 전공수업 발표도 끝났다. 


이제 마지막 남은 절차는 논문 제출. 이를 위해 논문 학기로 마지막 학기를 보낸다. 이 시기에는 수업도 없고, 학교에 나올 필요도 없다. 도서관에 처박히든, 휴양지에 살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논문 한 편만 써낸다면 나머지는 다 상관없다.     


그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해. 나는 학기의 초입부터 끙끙대고 있었다. 


한국과 달리 내가 공부하던 학교에서는 석사 논문을 작성할 때 지도교수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딱 세 번으로 제한한다. 보통 한 번 미팅 약속을 잡으면 30분 정도 교수님을 뵙는다. 세 번, 약 1.5시간. 그게 끝이다. 따로 이메일을 보내는 것도 안 된다. 어디선가 듣기로는, 학생이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받는 것을 막고,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각으로 논문을 쓰게 하기 위해서라는데, 덕분에 나는 퍽 독립적이고 혼란스러운 논문 작성 과정을 보내야 했다.      







첫 번째 면담일. 세 번밖에 안 되는 귀한 교수 면담의 첫날이었지만, 나는 이 기회를 잘 살리지 못했다. 첫날부터 폭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완곡하게 말씀하셨지만 교수님은 내가 들고 간 논문 주제와 연구 내용이 별로라고 하셨다. 당황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지도 교수님이 별로라고 하는 주제를 일개 석사생 나부랭이가 밀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다음 미팅 때까지 새로운 주제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 짜내서 새 주제를 들고 간 두 번째 미팅. 하지만 새 주제를 본 교수님의 반응은 저번보다 더 나빴다. 저번에는 그나마 완곡하게라도 말씀해주셨는데, 이번에는 약간 과장해서 ‘지금 이딴 쓰잘데기 없는 걸 논문이랍시고 쓰겠다는 거냐?’라며 내 주제가 별로임을 강하게 표현하셨다. 


심지어 그 밀폐된 작은 교수실에서 내 면전에 전자 담배를 피워대시기도 했다. 

음...... 주제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셨나. 

그렇게 두 번째 미팅이 날아갔다.     


막막한 마음에 다른 동기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물어봤는데 다들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처럼 교수님께 주제를 반려당한 학생들이 꽤 있었다. 그중에 몇은 교수님 의견 상관없이 원래 자기가 정한 주제로 밀고 나가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 담대함이 대단해 보였지만 내가 따라 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제 남은 기회는 한 번. 


단 세 번만 가능한 교수 미팅을 두 번이나 날렸는데도 여전히 주제 하나 못 정한 상태라는 게 암담했다. 머리를 싸매고 뭐라도 생각해내려 끙끙댔다. 내가 뭘 쓸 수 있고, 그중에 무엇이 저 교수님을 통과할 수 있는가. 하도 생각을 하니 이제는 모든 주제가 다 가능할 거 같았고, 동시에 모두 다 까일 거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려 가져간 마지막 주제. 다행히 이번 시도는 성공이었다. 마지막 미팅에서 결국 교수님은 내 논문 주제에 대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여주셨다. 진짜 나쁘지 않아서였는지, 마지막 미팅이라 귀찮아서 넘기신 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주제를 정하는 것만으로 세 번의 교수 미팅을 모두 소진했다. 이는 앞으로 논문을 작성하는 동안 교수님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모르겠는데, 못 하겠는데 교수님을 뻔히 눈앞에 두고도 물어볼 수가 없다니! 논문을 쓸 때 상대적으로 지도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는 한국의 경우를 생각하던 내게는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논문을 진짜 혼자 써야 하다니! 막막하고 자신도 없는데 등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주제 하나 달랑 들고 쓰려니 막막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딱 그만큼 논문 진행 속도도 암담했다. 쓰고 갈아엎고, 또 쓰다가 던지는 일이 반복됐다. 


모니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다가 커피를 들이켜고 스크롤을 내리다가 다시 머리를 쥐어뜯는 날이 계속됐다. 그래도 논문은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과물은 안 나오고 마음은 초조한데 마감 날짜는 하루하루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던지.     


기어이 찾아오고 만 제출일. 나는 마지막 제출 시간까지 글을 붙잡고 있었다. 


몇 달 내내 끙끙거리며 조몰락거렸던 글은 안타깝게도 그냥 한 편의 누더기 같았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소식은, 그마저도 완성을 시키지 못했다는 거다. 글이 완성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쓰면 될 거 같은데, 거의 다 쓴 거 같은데. 마무리만 하면 될 거 같은데 그게 안 됐다. 그러다 결국 넘어가고 만 23시 59분. 시계는 순식간에 다음날 0시 00분을 가리켰다. 


타임 오버. 나는 논문을 제때 제출하지 못했다.     






제출 기한이 넘어가고, 나는 더 초조해졌다. 기한을 넘기면 그때부터 24시간이 지날 때마다 논문 최종 점수에서 감점이 발생한다. 나처럼 최종 점수에 자신이 없는 학생은 감점이 없도록 기일을 맞춰 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알면서도 못 내고 있으니 속이 실시간으로 까맣게 타들어 갔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문장을 억지로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도저히 뭘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끝맺지 못한 논리에 글이 얽으러져 점점 더 엉망이 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아, 나 이거 못하겠구나.      


어느 순간,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실패’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덜컥,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기회, 시간, 비용, 마음. 온갖 유무형의 것들을 쏟아부으며 달려온 지난 시간의 결과가 무로 돌아갈 것 같아 두려웠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거의 하루 종일 울먹거렸다. 


‘하나님, 제발요. 예? 제발요.’ 


정신없이, 계속 하나님을 불렀다. 그때 내 기도는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도 못했다. 기도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빌거나 조르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러다 또 하루가 지나갔다.     






제출 기일을 이틀째 넘긴 날 저녁.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있었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기한을 넘긴 지 삼 일째가 될 터였다. 방 안에서는 오래 묵은 공기 냄새와 커피 쩐 내가 났다. 하루 종일 무언가 정신없이 썼는데도 여전히 내 논문은 완성되지 않았다. 


다 된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쓰면 될 거 같은데. 다 써놓은 글인데 이상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 없었다. 문장이 얽히고 어그러지다가 종래에는 도저히 뭘 더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이대로라면 하루가 또 늦어질 거다. 이렇게 딜레이 감점이 쌓여서 논문 탈락한 멍청이가 되는 건가....... 

     

마음 한편에서 스스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음습하고 끈적한 자기혐오가 발밑에서부터 서서히 기어올랐다. 

     

봐, 이 멍청아. 결국 이럴 줄 알았지. 이렇게 부족하면서, 이렇게 못나고 느려 터졌으면서 대체 무슨 용기로 외국에서 공부할 생각을 했어? 돈 버리고, 시간 버리고 이게 웬 멍청한 짓이야? 진작 취직이나 했으면 좋았잖아! 넌 늘 그랬어. 꿈에 취해서 현실을 볼 줄 모르지. 주제 파악도 안 되고 비이성적이야. 공부는 무슨 공부야. 그런 건 너보다 훨씬 똑똑하고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동기들은 좋은 성적, 좋은 논문 척척 내는데. 봐, 너는 그렇게 아등바등했는데도 지금 겨우 불합격만 면할 선에 턱걸이하고 있잖아. 그마저도 이제 논문을 제출 못 했으니 곧 떨어지겠지만. 넌 실패했어. 망했다고.     


누구도 내게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스스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잔인하고 끔찍했다.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나는 부정도 못 하고 거멓게 말라갔다. 저 말이 다 맞는 것 같아서 도무지 기운을 낼 수 없었다.     


나는 한숨처럼, 떨림처럼 하나님을 불렀다.      


‘하나님.’     


신기하게도, 단 한 번 불렀을 뿐인데.      


‘하나님.......저 무서워요. 힘들어요.’     


왈칵, 마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조금씩 기도가 이어졌다.      


어떻게 하죠?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요. 역시 저는 이런 공부를 하기에 너무 모자란 사람인가 봐요. 생각해보면, 저 수업도 공부도 다 겨우겨우 따라갔잖아요. 여전히 모르는 것도 너무 많고, 발표 때도 엄청 허덕거렸어요. 보세요, 또 못하고 있어요. 머리가 너무 무거워요. 더는 아무 생각도 안 나요. 결국 저는 논문을 완성할 수 없나 봐요. 정말 많이 도와주셨는데도 이만큼밖에 못 했어요. 하나님, 죄송해요.     


주섬주섬, 작아지고 헤진 마음을 하나님 앞에 꺼내 놓았다. 


타자치는 소리는 멈춘 지 오래다.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았지만, 도무지 움직일 줄 몰랐다.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며칠째 잠을 못 잔 머리가 몽롱했다. 어두운 방, 모니터 불빛이 뿌옇게 번져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손가락이 타자를 치고 있었다. 마치 실이 매달린 것처럼, 마리오네트가 움직이듯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이게....... 이게 지금 무슨 일이지?     


무슨 단어, 무슨 문장을 써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데 손가락은 막힘없이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치고 있었다. 모니터 위로 연신 글줄이 생기고 또 생겼다. 고민하는 기색도 없고, 잘 못 쓴 걸 고치지도 않고. 손이 끊임없이 글을 쳐댔다.     


연신 뭔가 써지는데, 그게 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며칠간 잠을 못 잔 상태로 모니터만 바라봤더니 눈에 초점이 안 맞아 시야가 뿌옇게 번졌다. 겨우 눈이 뭔가 읽어내려도 머리가 이해를 못 했다. 머리가 너무 멍했다. 뭘 쓰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손이 무언가 계속 써 내려가고 있었다. 


기이. 정말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서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았다. 


‘아, 이거 내가 하는 게 아니야. 하나님이야!’ 


확신 같은 문장이 온 마음과 생각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체감하기에는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던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느끼기에는 몇 분 안 되는 시간 같았는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그 순간 내 눈이 보던 장면, 손이 들려 움직이던 이상한 감각, 하나님이 뭔가 하고 계시다는 확신 정도만 단편적으로 떠오른다. 정신 차려보니 글이 막혀 지나가지 못하던 부분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그날, 기한 초과 이틀째였던 저녁. 나는 드디어 논문을 제출했다. 삼 일차가 되기 세 시간 전이었다. 


모니터에 뜬 제출 완료 표시를 확인한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의자 위에 대자로 널브러졌다. 탈력감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그 상태로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진짜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한동안 그렇게 감사하다 중얼거렸다. 






그날 나는 논문을 썼다기보다 엄밀히 말해서 ‘글씨’를 썼다. 내 손가락은 타이핑만 했다. 결국 내 논문은 내가 쓴 게 아니라 하나님이 쓰신 거다. 그러니 내 학위도, 졸업도 다 하나님 거다.     


어쩌면 누군가는, 그날 일이 내 착각이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몇 달 동안 읽어대고 써 온 게 있으니 그게 무의식중에 어찌어찌 발휘됐을 거라고. 너무 몽롱하고 반쯤 정신 나간 상태라 착각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그날 밤 나를 도와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확신한다. 손이 움직이던 그 순간, 모든 게 흐릿한 상황에서도 유독 또렷했던 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거, 내가 아니야. 내가 쓰는 게 아니야.’ 


그때 떠올렸던 저 문장이 여전히 선명하다. 


내가 움직이지 않은 손이 움직이고 있었고, 마리오네트처럼 손이 들려 움직인다고 느꼈다. 대단히 이질적이고 기이했던 느낌을 기억한다. 그날 나 대신 글을 써주신 건 하나님이었다. 혼자 해낼 힘도 없고, 계속 울어대고, 갈수록 상태는 엉망이던 나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두려움은 단순히 성적이나 졸업에 대한 걱정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공포의 크기가 비이성적으로 컸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 내 안의 깊고 오래된 어떤 두려움과 연결된 감정이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렇게 적나라하게 보이는 내 모자람과 부족함,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고, 좌절했으며, 나를 상처 입히고 비웃었다. 날카롭고 악의 가득하던 비난의 목소리가 뾰족하게 날 찔러오고,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에 지쳐서 도무지 힘을 낼 수 없었을 때. 하나님은 힘없이 늘어져 있던 내 손 위에 두 손을 올려주셨고, 그 모든 두려움과 좌절을 완전히 바꿔주셨다. 놀라움, 기쁨, 감사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참 변하질 않아서, 그때마다 또 무섭고, 실망하고, 낙담했다. 그래도 경험으로 내 안에 쌓여온 하나님 덕분일까, 엉엉 울다가도 조금 지나면 다시 하나님을 향해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마음이 힘들고 문득 불안이 치밀어 오를 때,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찬송을 연주한다. 한 음, 한 음. 손가락을 눌러가면서 마음속으로 가사를 따라 부른다. 그렇게 조용히 찬송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모른다. 문득 마음이 벅차오른다. 아래 가사를 지나갈 때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서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이 부분을 부를 때면 매번 울컥 치솟는 울음을 참기 힘들다. 하나님이 정말 그러셨으니까. 정말로, 내 작고 보잘것없는 신음에 응답하셨으니까. 


그날, 작은 골방에서 절망과 피로에 온몸이 절어서, 작게, 떨며 불렀던 하나님. 그 약한 소리, 작은 신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따뜻하게 답하셨던가. 내게만 중요하고, 나에게만 의미 있는 사소하고 별거 아닌 일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놀랍게 역사하셨던가. 겪으면 겪을수록 하나님은 참 상냥하시다.

     

부끄럽지만, 나는 못 하는 게 참 많다. 종종,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는 것도 벅차다고 느낀다. 성실히 하루를 살아내는 일에 자주 실패한다. 부족함을 어떻게든 노력으로 극복해보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힘만 들고 내 못난 점이나 다시 확인할 뿐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찌어찌 삶을 꾸려올 수 있었던 건, 그 논문 쓰던 날을 포함한 모든 삶의 순간마다 내게 귀를 기울이시고 도우셨던 하나님 덕분이다.    

  

눈앞의 문제에 낙담하고, 자신의 부족함에 절망할 때마다. 하나님은 내게 와 말씀하신다.  

    

“얘야, 괜찮아. 걱정하지 마. 못 해도 괜찮아. 네가 하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거란다.”  

    

그렇게 또 삶에 기적이 일어나고, 나와 하나님만 아는 멋진 추억이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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