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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하나님 품에 안겨서 한 완주

부모가 자기 아이를 안는 것 같이

  

석사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꽤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성적으로 과정을 잘 마치고, 학교생활도 잘 해내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술회나 세미나도 열심히 다닐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공부를 마친 뒤 박사 공부를 하는 것도 생각했다. 나름 자신도 있었다. 캐나다에서 몇 년 지내는 동안 외국에서 생활하고, 공부하고, 어울리는 경험을 한 덕분이기도 했다. 대학원이라고 뭐 별거겠어? 가서도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준비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몇 달 동안 학문적 글쓰기 수업을 듣고, 관련 워크북을 사서 연습했다. 일부러 빅토리아 대학의 학기 전 수업도 들었고, 영국에서도 석사 수업 전에 프리세셔널 과정을 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힘껏 준비했다. 언어 장벽이 없을 순 없으니 대단히 우수한 학생이 되긴 어렵더라도, 성실히 따라가면 나쁘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학기가 시작되니 처음의 당찬 포부는 조금씩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수업 10분 만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몇몇 교수님들의 영어가 내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들었던 소리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당황하고 또 당황하다가 그렇게 첫 수업이 끝났다.     

 

큰일 났다. 이대로는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수업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녹음한 걸 집에 와서 들어도 여전히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는 수업이 있었다. 속절없이 녹음 파일만 쌓여갔다. 결국 필수 과목이 아닌 수업 중에서, 가장 알아듣기 어려웠던 한 수업의 수강을 포기했다.     


수업 포기를 시작으로, 학기는 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가장 놀라웠던 건 생각보다 엄청 허덕거리는 나 자신이었다. 나는 말 그대로 허덕거렸다. 수업 전에 읽어야 하는 아티클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도 힘들었다. 남들은 펍에 가서 신나게 놀아도 다음 날 귀신같이 아티클을 다 읽고 수업에 들어오는데 나는 제대로 놀지도 못하면서 수업 때도 늘 쩔쩔맸다. 


그런 상태로 강의를 듣고 토론 수업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몇 주가 금세 지나가 있었다. 그러면 또 에세이 써야 할 시기다. 아니면 시험을 봐야 하거나. 외부 세미나나 학술회 참석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부족함을 메우기 위한 방법은 별것 없었다. 덜 자고, 더 스트레스받고, 더 끙끙거리며 버둥거리는 것뿐. 썩 좋은 방법이라 할 수는 없지만 당시 내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무리할 때가 많았고 결국 건강에 이상 신호가 왔다.


갑자기 온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온 방을 청소하고 음식과 물을 가려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한 달 가까이 계속되던 두드러기는 급기야 눈 안쪽으로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NHS(National Healthcare System. 영국의 의료 시스템. 유학생도 무료로 진료받을 수 있다)를 통해 진료 예약을 하려 했지만 그러려면 한 달 이상 기다려야 했다. 


마냥 기다리기에는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약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핸드폰으로 단어 뜻을 찾아가며 내 상태에 맞는 약을 찾아 진열대를 뒤졌다. 약의 성분과 효과를 찾아 읽어봤지만 처음 보는 단어가 너무 많아서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약을 샀다. 부디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며 복용했고 얼마 뒤 심한 졸음이 밀려왔다. 


정신 차려보니 거의 만 하루가 지나있었다. 다행히 점점 두드러기가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약만 먹으면 세상모르고 잠들어 버려서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이 더 모자라 고생했다. 

    

그 뒤로도 몸은 종종 삐그덕거렸다. 


열은 안 떨어지고, 몸 상태가 안 좋으니 제대로 밥 먹기도 힘들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며칠째 못 자며 과제와 씨름하던 어느 밤, 나는 이 부족한 머리로 유학을 오겠다고 결정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울었다. 


그딴 거 왜 가냐고 하던 선배들 말을 들을걸. 그냥 취직해서 돈이나 벌 걸. 교수님이 힘들 거라고 경고하실 때 흘려듣지 말걸. 유학을 떠나기 전, 학부 교수님께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은 순간을 세 번 정도 지나면 졸업할 수 있을 거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땐 웃어넘겼는데, 이제 보니 그게 농담이 아니라 경험담이었다. 

하지만 그걸 이제 알아봐야 늦어도 한참 늦었지....... 






내 목표는 점점 낮아졌다. 뭐든 다 멋지게 해내겠다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이제 내가 바라는 건 아주 소소했다. 완주하는 것. 더는 거창한 목표나 계획도 없었다. 다 필요 없으니 그저 무사히, 살아서, 어떻게든 과정만 다 마치자고, 중간에 그만두지만 말자고 되뇌었다.     


그리고 거기가 끝인 줄 알았다. 그 정도는 내가 정말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아니, 좋은 성적을 내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를 잘 다니라는 것뿐이니까. 학교 다니는 건 평생 해 온 능숙하고 익숙한 일이니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과제, 에세이, 발표, 시험, 논문. 그 모든 과정에서 내 역량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족했다. 


나는 학교의 버거운 요구와 깜짝 놀랄 만큼 부족한 내 역량 사이에서 쩔쩔맸다. 에세이 한 편을 쓸 때마다,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죽을 둥 살 둥 난리를 쳐 놓고도 겨우 누더기 같은 논문을 만들어내면서. 나는 매번 과거의 내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교만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쯤 되어서야 나는 겨우 현실을 인지했다. 


해외에서 석사 공부를 한다는 건, 그리고 그 과정을 무사히 통과한다는 건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우선 나한테는 결코 쉬운 목표가 아니었다. 내게는 ‘상당한 부담을 감수하고 지속적으로 무리해야 가능할까 말까 한 일’이었다. 단순히 열심히 하는 정도로는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졸업은커녕 이러다간 곧 몸 어디 한 군데가 확실히 고장 날 거 같았다.     


실제로 주변에서는 슬슬 무서운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다가 얼굴 반쪽에 마비가 왔다는 A는 멀리 떨어진 한인마을까지 가서 침을 놔줄 한의원을 찾아야 했다. C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결국 학위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S는 아침마다 코피를 쏟았고, J는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너무 많이 마셔서 심장 문제로 911을 불렀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당장 나도 일주일 가까이 열이 안 떨어지는 바람에 목이 너무 부어서, 작은 소리 하나 낼 수 없었다. 밥은 못 먹겠고, 빈속에 약을 때려 넣어도 열이 잘 내리지 않아서 그냥 몽롱한 상태로 읽고 쓰고 수업을 들었다. 소리를 못 내니 전화를 받을 수도 걸 수도 없어서 문자로만 의사소통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맞이한 논문 제출 마지막 날. 나는 그날에서야 그동안 내가 하나님께 일을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도와달라고 했으면서, 하나님께서 내 어려움을 다 달라고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정작 나는 ‘그래도 이만큼은 제가 할게요, 하나님은 저기 나머지 좀 맡아주세요’하며 붙잡은 것을 놓지 않았다. 


말은 늘 ‘저는 못 하니 하나님께서 해주세요’라고 했으면서, 정말로 내가 못 한다는 걸 깨닫자 덜컥 두려움이 몰려왔다. 마주한 현실이 무서웠다. 단순히 힘들다, 어렵다 하던 것과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었다. 그건 ‘정말로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진짜 실패하기 직전이었다. 


그제야 나는 완전히 두 손을 들었다. 항복. 이건 못한다. 마음속으로 어디다 대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는 항복 선언을 뱉고는 진짜 죽어라 하나님께 매달렸다. 제발 나 좀 도와달라고 펑펑 울며 빌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하나님과 이인삼각 경주를 뛰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니 나도 하나님과 발맞춰 열심히 뛰어서 결승선까지 잘 달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옆에 같이 뛰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속도를 맞춰서 나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애당초 나는 이 경기를 뛸 체급이 되지 않았고, 결승선까지 뛰어갈 체력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같은 팀이 되어주신 덕분에 트랙에라도 올라올 수 있었던 건데, 나는 내가 자격이 있어서 경기에 참가한 선수처럼 굴었다. 혼자서는 결승선까지 뛰어갈 능력도 없었던 주제에.  

    

처음부터 내가 결승선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안고 결승선을 넘어주시는 거였다.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경기는 ‘안아 들고 뛰기’였다. 물론 내가 담당하는 포지션은 주자에게 안겨있는 거였고. 


그렇게 안아 들고 뛰기 경기에 참여해놓고 혼자 이인삼각 경기를 한다며 온갖 똥 폼을 잡고 있는 나를 하나님은 강제로 끌고 가지 않으셨다. 내가 어떻게든 뛰어 보겠다고 끙끙대도 하나님은 그저 끝까지 기다리셨다. 다만 중간에 넘어져서 다치지 않게 붙잡아 주고, 탈진해서 울 때 물을 먹이며, 하나님 품을 떠나 혼자 뛰어가지 않도록 안고 계셨을 뿐이다. 


그러다 결국 경기 시간이 모두 끝나고, 내가 이대로는 절대로 결승선 근처에도 가지 못할 거라는 걸 깨닫고 하나님 품에 답싹 안겼을 때. 하나님은 한걸음에 나를 안고 결승선을 넘어버렸다. 심지어 늦었는데도! 그런데도 나는 결과적으로 결승선을 넘은 것으로 인정받았다.    





 

런던에서 보냈던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밤 하나님과 시간을 보냈다. 


잠들기 전, 어둠 속에 앉아서 계속 하나님께 말을 걸었다. 빌고 떼를 쓰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 울었다. 못 하겠다고 울고, 어렵다고 울고, 무섭다고 울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있는 상상을 했다. 큰 품에 파묻혀서 어깨에 얼굴을 묻고 온갖 한심한 소리를 다 토해내며 징징거리는 나와, 그런 내 등을 내내 토닥여주는 하나님 말이다. 매일 밤 그렇게 울어도, 늘 똑같은 소릴 해도 하나님은 날 귀찮아하지 않았다. 


늘 내 위로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 답싹답싹 안길 수 있는 하나님이 좋았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나갔다. 쓰다가 울고, 열심히 하다가도 또 나가떨어지길 반복했지만 나는 분명히 느리게나마, 부족하나마 결과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논문 점수와 졸업 여부에 대한 결과 통보 메일을 받던 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메일을 읽다가 결국 통과했다는, 졸업했다는 걸 확인받았던 그 순간. 나는 온 방 안을 뛰어다니며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정인지 에너지인지 모를 것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확 퍼져나갔다. ‘뛸 듯이 기쁘다’는 말은 그냥 비유법이 아니었다. 그날 나는 사람이 너무 기쁘면 정말 뛴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렇게 하나의 여정을 마쳤고,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결과에 닿았다. 


좋은 성적, 풍성한 성과, 탄탄한 미래 같은, 공부를 시작하며 얻고자 했던 건 사실 제대로 얻지 못했다. 입학 전에 가졌던 거창한 포부에 비해 손에 쥔 결과는 한참 부족했다. 많은 것을 향유할 것이라 기대했던 학위 기간 동안 나는 그저 구르고, 실패하고, 모자라고, 울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원래의 목표와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저 기뻤다. 남들에겐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내가 받은 결과가 아주 값지고 귀했다.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해주셨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 품에 안겨서 경기를 완주했다. 하나님과 함께 나눌 둘만의 추억과 비밀이 생겼고, 날 도우시는 하나님을 또 한 번 경험했으며 우리는 더 친근해졌다.     


석사 과정을 지나면서, 나는 그게 뭐든 하나님이랑 하는 게 가장 좋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받았다. 그래야 가장 안전하고 결과도 효과적이며, 무엇보다 나에게도 가장 기쁘고 즐겁다. 


하나님 없이 일이 잘 풀리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엉킨 실타래를 들고 우는 게 백배 낮다. 하나님은 진짜 온전히 날 위해 행동하시기 때문이다. 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타이르고 가르치시고, 결국 내 능력으로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하신 뒤에 직접 그 결과물들을 내 손에 쥐여주셨다. 


그러니 내 학위는 사실 내 것이라 말할 수 없다. 물론 난 최선을 다했고, 죽을 둥 살 둥 굴렀다. 내가 열심히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 능력이 이 성과를 내기에 부족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턱없는 부족함을 메운 건 내 열심히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결국 내 논문도, 졸업도 다 하나님 것이다. 그저 하나님께서 그걸 내 손에 쥐여주셨을 뿐이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신 1:3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고 네가 이 큰 광야에 두루 다님을 알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 하시기로” (신: 2:7)    

 

성경 말씀이 정말 맞다. 

하나님은 정말 이런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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