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기 있어! 계속 보고 있을 테니 걱정말고 놀아!
2015년 여름, 입사 후 한 달 만에 나는 아프리카로 향했다.
인생 첫 해외 출장이었고, 혼자 떠나는 첫 출장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탄자니아와 말라위에서 2주씩 진행하는 일정으로, 먼저 탄자니아에서 일을 보고 말라위로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4주 치 예산과 조금은 버겁고 낯선 임무들, 1인용 모기장, 말라리아 약 한 봉지와 각종 비상식량을 이고 지고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공항에 내렸다.
이어지는 일정은 빡빡했다. 하루 종일 회의와 인터뷰, 조사를 반복했고, 한국에 보고 메일을 보내고 새로운 지시 사항을 받느라 숙소에 돌아와서도 새벽까지 일했다. 시차 적응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머리만 대면 정신없이 곯아떨어졌으니까.
이제 막 한 달 차가 된 따끈따끈한 초보 직원은 아는 것도 없고 경험도 없는 탓에, 바짝 졸아서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죄다 낯설고 어려워서 몸에서 긴장이 풀릴 새가 없었다. 총을 들고 경비를 서는 마사이족들 사이를 지나갈 때도 가슴이 벌렁벌렁 댔고, 숙소나 큰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경비원들이 차 아래를 폭발물 탐지기로 훑을 때도 괜히 긴장됐다. 출장비 환전을 위해 복잡한 시장 한복판 사설 환전소를 찾아갈 때도 신경이 곤두섰다. 심지어 모기도 무서웠다. 혹여나 말라리아에 걸릴까 봐 수시로 온몸에 모기약을 뿌려댔다. 동료 출장자가 코를 막으며 “너한테서 이상한 냄새 나”라고 할 정도로.
설상가상 출장 첫 2주 동안은 외부 기관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외부 인사들에게 실수할까 봐 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잔뜩 긴장해서 작은 일에도 혼자 깜짝깜짝 놀랐다. 출장 경비가 든 가방을 품고 다니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출장비를 모두 현금으로 들고 있었는데, 달러에 현지 화폐까지 섞여서 부피가 상당했다. 괜히 범죄의 타깃이 될까 봐 옷도 애써 허름하게 입고, 가방을 내 몸과 하나인 것처럼 소중히 모시고 다녔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정신 차려보니 탄자니아 출장이 끝나 있었다. 어느새 2주가 지났더라. 나는 다시 공항에 서 있었다. 말라위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커다란 산을 하나 넘은 기분이었다. 이제 비행기만 잘 타면 된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 말라위 릴롱궤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기분 좋게 수속 카운터에 다가가 예약 프린트와 여권을 내밀었다. 그러나 뿌듯하고, 기분 좋던 마음은 표를 확인하던 항공사 직원의 말에 와장창 무너졌다.
“말라위 가는 비행기가 6시간 지연됐어요.”
그때는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붕 떠 있던 기분이 확 현실로 꿀려 왔다. 아프리카에 출장 와 놓고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냐고 누군가 얄밉게 비웃는 거 같았다.
6시간을 어디서 기다리지? 수속을 못 했으니 공항 안으로는 못 들어가고, 공항 간이 의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를 공항까지 태워다 줬던 현지 직원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시 차로 돌아가 거기서 여섯 시간을 버텼다. 머리를 유리창에 기대어도 보고 몸을 뒤척거려도 봤지만, 무슨 짓을 해도 불편했다.
‘하나님, 너무 졸려요. 불편해요. 추워요. 배도 고픈 거 같아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졸다 깨다 하며 아주 긴 여섯 시간을 보냈다. 마침에 그 시간을 다 버티고 차에서 내릴 땐 온몸이 덜걱거렸다. 함께 그 춥고 불편한 여섯 시간을 보내 준 현지 직원이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준 덕분에 배를 좀 채우고, 다시 수속 카운터로 향했다. 설마 또 지연되진 않겠지? 다행히 또 지연됐다는 얘기는 없었다. 대신 직항 표가 경유 표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 내 일정은 새벽 6시쯤 직항 비행기를 타고, 약 30분에서 한 시간 후 말라위 릴롱궤에 내리는 거였다. 그리고 오전에 좀 쉬고 오후부터 업무를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6시간이 늦어졌으니 이미 휴식 시간이 통으로 다 날아간 셈이다. 경유 비행기를 타면 오후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이게 오늘 말라위로 넘어가는 유일한 표라니 별수 없었다.
항공사 직원이 건네는 표를 받았다. 음? 그런데 받고 보니 표가 이상하다. 아무리 경유라고 해도 표가 너무 여러 장이다. 내 손에는 무려 네 장의 비행기 표가 쥐어져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대체 환승을 몇 번이나 하란 소리야?
김포에서 제주도 가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던 일정은 어느새 몇 번의 환승과 대기시간을 포함해 거의 12시간 가까이 걸리는 무시무시한 모험이 되어있었다. 새벽 3시에 공항에 왔고, 이미 6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이대로 릴롱궤에 도착하면 또 한밤중이다. 밖에서 거의 만 하루를 꼬박 보내는 셈이다.
이럴 거면 탄자니아 말라위 국경을 육로로 넘는 버스가 훨씬 빨랐겠다. 짐이 많아서 좀 편하게 가려고 비행기를 선택했는데, 이거 뭔가 심히 망했다.
그런데 안내하는 항공사 직원의 얼굴이 너무 해맑다. 한 시간짜리 일정이 6시간 지연 뒤 3회 환승 표로 바뀌었다는 무시무시한 소식을 전하면서도 그저 태연했다. 심지어 중간에 몇 장은 탑승 게이트가 안 나와서 해당 공항에 도착해서 직접 찾아야 하는 표였다. 드문 일은 아니지만 역시 좀 귀찮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주 밝은 얼굴로 해당 내용을 안내했다.
여기선 이런 일이 흔한가?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없는데 앞에 앉은 직원 얼굴은 너무 해맑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나님, 이게 뭔가요. 허허.’
계속 이러고 있더라.
‘그래, 뭐. 여기 시스템은 우리나라랑 좀 다른가 보지. 이 직원 잘못도 아니고, 화내서 뭐 해.’
신기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일정이 좀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출장비는 안전했고, 2주간 죽어라 조사한 결과물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으며, 어디 다친 것도 아니었다. 증빙 영수증은 모두 무사했고, 올 때 타온 말라리아 약을 먹을 일도 없었다. 나는 사지 멀쩡하게 2주간의 출장을 잘 끝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어이쿠, 이거 오히려 감사기도를 해도 모자라다. 게다가 비행기가 안 뜬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늦게 도착한다는 것뿐이지 않은가. 좋아, 이 정도야 뭐. 자꾸 헛웃음이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마음은 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이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건가요, 하나님?’
속으로 하나님께 이런저런 말을 톡톡 건네며, 나는 팔락팔락 탑승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그렇게 환승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그렇게 자다 깨다 했을까, 기장의 안내 방송이 들렸다.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산맥이 킬리만자로입니다.”
절로 눈이 턱 떠졌다. 탄자니아까지 와 놓고 그 유명한 킬리만자로를 못 본다는 게 아쉬웠는데 하늘에서나마 볼 수 있다니! 비행기 창문에 얼굴을 잔뜩 갖다 붙였다. 사실 비몽사몽간에 내려다보느라 어디가 어딘지 잘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아쉬움은 좀 가셨다.
내가 킬리만자로를 봤어!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봤으니 됐어!
......그러다 다시 까무룩 잠들었다.
중간에 몇 번 비행기가 어딘가에 들러 손님들을 추가로 더 태웠다. 비행기가 계속 서고 손님이 타고 내리는 게 마치 버스 정류장 같았다. 나는 계속 앉아있는데, 사람들은 쉴 새 없이 타고 내렸다. 나중에는 비행기가 어디에 내렸는지도 잘 몰랐다. 분명한 건 내가 가지고 있는 비행기 표보다 훨씬 많은 공항에 비행기가 내렸다 떴다는 거다.
직접 내려서 환승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렇게 비행기만 내렸다 떴다 했던 걸 포함하면 최소한 대여섯 개 나라를 거쳐서 말라위에 들어간 것 같다. 중간중간 비행기 멀미로 정신없이 곯아떨어졌던 걸 감안하면, 어쩌면 그 이상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날 나는 대체 몇 개의 국가를 들렀던 걸까? 그런 비행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 황당한데, 그래서 동시에 재밌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케냐 나이로비 공항이었다. 나는 다음 환승 게이트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내 탑승 게이트를 찾을 수 없었다. 이 직원, 저 직원 붙잡고 비행기 표를 들이밀었다.
“어디로 가야 해요?”
대부분 대답은 잘해줬다.
“이쪽으로 가세요.”
“저리로 가세요.”
문제는 그 대답이 다 틀렸다는 것. 수없이 ‘이쪽’과 ‘저쪽’을 돌아다녀도 내 환승 게이트는 당최 나타나질 않았다.
그렇게 헤매다 겨우 도착한 한 카운터에는 딱 봐도 나처럼 게이트를 못 찾고 있는 여행객들이 모여 있었다. 다행히 잘 찾아왔나 보다, 이제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내가 탈 비행기가 떠났단다.
아니, 내가 타지 않은, 이륙 시간이 한참 남은 비행기가 왜 떠나요?
내 어이가 있든 말든, 항공사는 담담했다. 그저 다음 비행기 표를 구해줄 테니 대기 시간 동안 케냐 시내에 있는 호텔에서 쉬고 오라고 했다.
짧은 직항 표를 여러 장의 환승 표로 만들어서 온 나라에 내리게 만들더니, 이제는 강제로 비행기 하나를 놓치게 해서 뜬금없이 케냐에 입국하고 호텔에서 쉬다 가란다.
알고 보니 카운터 앞에 모여 있던 여행객들도 나처럼 강제로 비행기 놓침을 ‘당한’ 사람들이었다. 내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들을 보니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피곤하고 어이없는 얼굴이다.
그러나 역시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따진다고 이미 떠버린 비행기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도 졸리고 힘든데 화내봐야 더 피곤해지기만 한다. 그래요, 호텔에나 얼른 보내주세요. 들어가서 좀 자게.
나는 항공사 직원이 쥐여준 종이를 들고 털레털레 입국 심사대를 찾았다. 호텔을 이용하려면 우선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고 공항 밖으로 나가야 한다. 또 한 바탕 ‘이리 가라, 저리 가라’를 따라다니다가 겨우 입국 심사대에 도착했다. 호텔 방을 내어준다고 하니 얼른 가서 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여행은 끝까지 절대 쉬운 게 없다. 이번엔 입국 심사도 말썽이다. 여권에 환승 비자 스티커를 붙여주려던 심사관이 갑자기 돈을 요구한 것이다.
“환승 비자 돈 내야 해.”
하하. 그럴 리가. 아까 항공사 직원이 분명히 비자 비는 무료랬다.
“아니야, 나한테 설명해준 직원이 무료랬어.”
침착하게 항변했지만, 입국 심사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걔가 잘못 안 거야, 돈 내야 해”
아니, 누가 항공사 과실로 호텔 제공받으면서 비자 비용을 내나요. 나는 다시 한번 설명했다.
“나는 케냐에 입국하려는 게 아니고, 환승객이야. 항공사 과실로 환승하게 된 거고, 그마저도 환승할 비행기가 갑자기 혼자 튀어버려서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호텔에 있다가 다시 오려는 거니까 입국 비자 비용을 안 내는 거야”
몇 번의 “내야 돼” “아니야” 실랑이가 오가고 난 뒤에도, 내가 계속 “아니야”를 반복하니 입국 심사관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러면 기다려” 하더니 다른 일을 보기 시작했을 뿐.
‘예, 예, 기다리는 거라면 어제부터 지금까지 내내 하고 있지요.’
나는 그 직원 말대로 그냥 그 앞에서 멍하니 기다렸다. 입국심사장은 텅 비어 있었지만, 기다리라니 기다려야지 뭐 어쩌겠나. 이미 망한 일정이 조금 더 망한다는 것 말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기다리길 한참, 드디어 직원이 날 불렀다. 그 사이에 항공사 측과 얘기가 된 건지 그냥 마음이 바뀐 건지 뭔지. 어쨌든 입국 비자를 찍어줬다. 더는 돈 얘기도 없었다.
신기하게도 공항을 ‘이리로, 저리로’ 뱅글뱅글 돌 때도, 입국 비자 비용이 왜 무료인지 이해 못 하던(또는 안 하던) 입국 심사관을 상대할 때도, 그 앞에서 기약 없이 내내 기다려도 화가 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애초에 일이 꼬이기 시작하던 탄자니아 공항에서부터 그랬다. 오히려 계속 ‘괜찮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중요한 것들-출장비, 증빙, 연구 자료, 내 몸뚱이-은 다 멀쩡했고, 이미 일어난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여긴 내가 살던 나라에서 열 몇 시간을 내리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대륙이고, 문화도 인종도 역사도 경제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내가 살던 세상의 상식을 따져서 뭐 하는가. 위만 쓰리지.
오히려 이렇게 낯선 땅에서도 무사하고 안온하다는 것에 감사하는 게 맞았다. 나는 말 그대로 안온함을 느끼고 있었다. 황당하고,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인데도 그 속에서 나는 분명 평안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임재가 뜨겁게 느껴진다거나, 마음에 감동이 가득 차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다거나, ‘내가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 말라’같은 목소리가 들렸던 건 아니다. 그냥 평범했다. 내가 한 거라고는 그저 평소처럼 하나님께 별거 아닌 말-배고파요, 졸려요, 킬리만자로 봤어요, 피곤해요, 저 사람 표정 진짜 밝네요, 허허-을 하거나, 징징거린 게 다였지만 그래도 그냥 알았다. 하나님께서 이를 다 듣고 계신다는 걸. 참, 신기하기도 하지. 하나님은 그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안을 주신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비자를 받았고, 고맙다고 말한 뒤 공항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엔 입국심사관한테 싱긋 웃어도 줬다. 혼자 덜렁덜렁 출국 게이트를 나서는 나를 현지인들이 뚫어져라 쳐다볼 때도, 호텔로 간다던 버스가 또 뭐 때문인지 출발을 안 해서 1시간 넘게 멍하니 서 있었을 때도.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다 괜찮았다.
중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탓에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다음 비행기 시간까지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저녁 시간인지 호텔 식당으로 보이는 곳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해가 지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두어 시간 뒤면 다시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다. 음, 이럴 거면 그냥 공항에 있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는데?
방을 잡자마자 우선 인터넷을 연결해서 서울 사무실에 내가 왜 말라위가 아니라 케냐에 떨어져 있는지 자세한 소식을 전했다. 몇 시간 만에 제대로 식사도 했다. 나른한 몸을 침대에 누였다.
낮아진 시야 한 편, 얇게 벌어진 커튼 사이로 선명히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그래서였다. 창가로 다가갔던 건. 무심히 커튼을 열었다.
그리고 곧, 얼굴 가득, 주황색이 덮쳐왔다.
넓고 거친 땅 위로 진하고 강렬한 노을이 퍼지고 있었다. 광활한 평야 위로 저녁노을이 길게, 길게 늘어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 종일 한 고생이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고. 그건 내 모든 시간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노을이었다. 문득. 하나님께서 이걸 보여주고 싶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 위로 키 작은 덤불들이 듬성듬성 모여 있었다. 주홍빛이 이렇게나 강렬한데 덤불 아래는 아주 어두웠다. 그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 색 대비가 아프리카 같다고 느꼈다. 아주 진하고, 노골적이며, 강렬했다. 그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 뒤로도 출장은 아주 스펙터클하게 덜컹거렸다. 나이로비 공항 출국 심사 때는 줄이 너무 길어서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도저히 줄이 줄지 않았다. 또 비행기를 놓치는 줄 알고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출발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비행기가 떠나지 않고 못 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이 동네는 어떤 기준으로 비행기가 출발하는 건지 궁금해졌지만, 뭐 이런 것도 이 지역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하자며 쓱 웃었다. 나는 결국 말라위로 넘어가는 데에 성공했고, 남은 2주간의 출장도 잘 마쳤다.
모든 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이었다. 갑작스러운 비행기 지연, 줄줄이 환승 표가 된 직항 비행기 표, 날 버리고 떠난 비행기,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던 외국 공항들, 버스처럼 비행기를 타고 내리던 사람들, 그래서 결국 버스보다 늦게 날 도착지에 내려줬던 비행기까지.
이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나쁘지 않았다. 볼 수 있으리라 기대도 안 했던 킬리만자로도 봤고, 기억에 깊이 남을 강렬한 노을도 만났다. 일부러 짠 것처럼 몰아닥치던 해프닝들은 이제는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여행에선 돌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익히 알던 상식에 맞지 않는 상황도 왕왕 벌어진다. 여행 자체가 일종의 ‘예측할 수 없음’ 패키지 같다. 그리고 그건 삶도 비슷하다. 갑자기 계획이 어그러졌는가?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는가?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하나님을 부르라. 하나님께 말을 걸고, 하나님을 인지하라. 그리고 상황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자. 의외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가? 평안하라. 그리고 오늘의 엉망진창을 기꺼이 즐겨라. 어쩌면 상상도 못 할 멋진 순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귀한 추억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라는 뜰 안에서 우리의 좌충우돌은 한없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