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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교회로 돌아가는 길

얘야, 영상 통화도 좋지만 직접 얼굴 좀 보자. 

    

타지로 여행 갔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현지에서 예배드리기가 참 힘들었다. 타지에 나가서 출석할 교회를 잘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게는 ‘다른 교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온갖 이단이 넘치는 시기에 혹시 잘못된 신앙을 배우게 될까 무서웠다. 교회에서 이단 특강을 들으면 두려움은 더 커졌다. 어릴 때부터 오래 다녔던 ‘우리 교회’ 말고는 모든 교회가 경계의 대상이었다.

      

한국이라면 교단 명칭을 확인하거나, 목회자에게 전화해서 안전한 교회인지 확인해볼 수라도 있지, 외국에서는 그러기도 어려웠다. 한국 교회를 통해 해외 현지의 한인 교회를 소개받기도 했지만 모두 내가 머물던 장소에서 너무 멀었다. 


이렇다 보니 나는 해외 체류 기간 대부분을 혼자 예배드리며 보냈다. 온라인 다시보기로 설교 말씀을 듣고, 성가대 찬양 녹음본을 들으며 혼자 기도하는 것. 그게 내 주일 예배였다. 그때는 예배 실황 중계 같은 게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돌아온 한국에서, 슬프게도 교회는 내게 더 이상 친근한 곳이 아니었다. 하나님과는 많이 친한 것 같고, 하나님은 참 좋은데, 이상하게 교회는 불편했다. 마침 어릴 때부터 함께 교회에서 자란 친구들도 이사나 결혼 등으로 교회를 떠난 뒤라 더욱 그랬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어색했다. 혼자 모니터로만 듣던 설교를 대강당에서 들으려니 괜히 집중도 잘 안되고, 주변 사람이 신경 쓰였다. 예배 시간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예배 후 교회 안마당에서 서로 인사하는 것도 불편해서 축도가 끝나면 최대한 빨리 도망쳐 나왔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모든 모임이 중단되고 예배는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전염병이 창궐한 사태는 두렵고 신경 쓰였지만, 솔직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누구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온전히 예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안 그래도 졸린 주일 아침에 억지로 꾸밀 필요도 없었다. 하나님은 내가 화장을 안 해도, 예쁘게 옷을 차려입지 않아도 여전히 나를 좋아하실 테니까. 사정 모르는 불편한 소리도 없고, 듣기 싫어도 듣게 되는 누가 누구랑 뭘 했다더라, 누군 어떻게 살고 누군 뭘하고....... 이런 소리도 일절 없었다. 


낯설고 불편한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눌 필요도 없고, 온전히 나와 하나님만 있는 상태. 

평화롭고 완벽했다.

      

헌금도 온라인 송금으로 드릴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평소 현금을 전혀 안 쓰는데 헌금을 위해 일부러 현금을 뽑는 게 영 어색했기 때문이다. 특히 수입이 여러 번 나뉘어 들어오거나 자잘한 공돈이 생겼을 때, 나중에 현금으로 내려다 계산을 까먹거나 십일조를 했나 안 했나 헷갈려서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그때 바로 이체하면 되니까. 이체할 때마다 간단하게나마 기도하고 송금하니 하나님과 자주 수다를 떨게 되는 부가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렇게 몇 년간 아주 만족하며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때부터 교회에서는 현장 예배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과 너무 잘 지내고 있는데, 왜 굳이 그 불편한 자리에 나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거야? 막상 가면 하나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신경 쓰이는걸.      


그러던 중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유명인의 간증을 보게 됐다. 여러 내용이 있었는데 그 중 ‘해외 일정이 있을 때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내용이 유독 인상 깊었다.


 저 바쁘고 유명한 사람도 어떻게든 사수하려 노력한다는 현장 예배. 그리고 나보다 신앙생활을 하셔도 수십 년은 더하셨을 교회 어른들과 목회자들이 권하고 또 권하는 현장 예배. 


그게 대체 온라인 예배와 뭐가 다르기에 다들 저러는 걸까? 나는 그저 불편하기만 했는데,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나? 코로나 사태가 끝나갈 무렵부터 교회에서 현장 예배를 권장하는 광고가 계속됐다. 교회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몇 번 나가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온라인 예배가 더 편했다.    

  

또 한 번의 해외 출국을 하게 된 게 그즈음이었다. 행선지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늘 예배드리기 불편했던 해외 체류였지만 이번에는 걱정 없었다. 유튜브만 틀면 예배 실황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아뿔싸, 한국과 아르헨티나 간 시차 때문에 예배를 드리려면 밤 11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한국이었으면 밤 11시 예배가 뭐 어려웠겠느냐마는, 이곳은 한국과 12시간의 시차가 나는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밤 11시 예배를 드리려면, 한국 기준으로 밤을 꼴딱 새운 뒤 오전 11시까지 버텨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돼서 도저히 그 시간까지 깨어있을 수 없었다. 한번은 어떻게든 밤 11시까지 버텨봤지만, 예배 중에 결국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교회는 예배 전체 녹화본을 올려주지도 않으니 예배 시간이 지나면 예배드릴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두 번의 주일이 지나갔다. 경각심이 들었다. 이렇게 계속 예배를 못 드릴 수는 없어! 제대로 예배드리지 못할 때 영적 상태가 얼마나 엉망이 되는지는 이미 이전 해외 체류 때 충분히 경험했다. 다시 그런 기분 나쁜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예배를 드려야 했다. 하지만 자정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건 못하겠으니,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낮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현지 교회를 찾아가는 것. 인터넷을 통해 한인 교회를 하나 찾았다. 홈페이지를 정독하고 교단을 확인한 뒤, 가 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주일. 지인에게 운전을 부탁해서 그 한인 교회를 찾아갔다.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교회 모습은 내가 다니던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내하는 집사님들, 처음 온 사람을 환영하는 말들, 한쪽에 앉아있는 성가대원들, 예배 순서와 이런저런 교회 소식이 적힌 주보, 기도와 설교, 그리고 찬양. 


예배를 드리는 데 이상하게 자꾸 울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전혀 슬프지 않은데, 이 격한 감정을 뭐란 말인가? 대표기도를 듣는 동안, 성가대가 찬양하는 동안, 설교를 듣는 동안. 겨우겨우 참은 눈물이 막을 새도 없이 터져 나온 건 설교 후 <행복>이라는 찬양을 함께 부를 때였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눈물 날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세상은 알 수 없는 하나님 선물.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사의 절반만큼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살 때 하나님이 선물처럼 주시는 행복을 왠지 알 것 같았다. 모든 성도가 함께 이 가사를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이 중 누군가는 정말 저 노랫말처럼 살려 노력하고 있을 거고, 누군가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속 갈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들 같이, 한 자리에서, 같은 고백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살겠다고, 이렇게 살고 싶다고, 혹은 그렇게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알기 때문에, 기대하기 때문에. 그 공명과 공감이 너무 강렬하게 감정을 흔들었다. 예배를 드리며 그렇게 운 건 오랜만이었다.      






예배 후 교회 식당에서 소고기 듬뿍 넣은 미역국과 갈비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다음 주에 또 뵈면 좋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그렇게 인사하며 배웅해주시는 교회 분께 얼마나 밝게 웃으며 그러겠다고 인사했는지 모른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러고 보니, 예배 끝나고 누군가와 이렇게 반갑게 인사한 게 몇 년 만인지 모른다. 교회에서 식사를 한 건 거의 10년 만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여기서는 이렇게 쉬운 게 오래 다닌 내 교회에서는 그렇게 어렵고 불편했을까? 알 수 없었다.     


그다음 주에 또 교회에 가려고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가지 못했다. 교회에 가려면 차를 얻어 타야 하는데, 저번에 태워다줬던 지인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사실 그 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치안이 좋지 않아서, 종종 무장 강도에게 해코지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거리였다. 그러니 그 지인도 어떻게 한 번이야 태워다 주었지만 매주 가겠다고 하니 난색을 보인 것이다. 다행히 그즈음에는 시차 적응이 어느 정도 되어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조금 아쉬웠다. 교회를 안전하게,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나는 케냐 나이로비에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현장 예배의 감격을 한 번 경험해보니 케냐에서는 최대한 현장 예배를 드리고 싶었다. 지인을 통해 나이로비의 한 국제교회를 소개받았고, 주일에 함께 교회를 찾았다. 


도착해보니 예배당 곳곳에서 성찬식 집기들이 보였다. 마침 성찬식 날에 찾아온 것이다. 성찬식이 있으리란 걸 알게 되자 더 신이 났다. 세상에, 이게 얼마만의 성찬식이란 말인가!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예배당 안에는 인종도 국적도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예배는 찬양으로 시작했는데, 찬양이 30분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30분 내내 울었다. 당황스러웠다. 의자에 앉아 첫 찬양을 부를 때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성찬식이 시작됐다. 성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둘 앞으로 나와 성찬을 받아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다 받을 때까지 각자 편한 자리에서 이를 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자꾸 울컥울컥 터지는 울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시선이 닿는 곳에서 가족으로 보이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동그랗게 모여 기도한 뒤 성찬을 먹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결국 또 울어버렸다.      


설교 후에는 여느 교회처럼 교회 소식이 이어졌는데 갓 태어난 아이를 교회 앞에 소개하고 축복 기도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 모습도 참 아름다웠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참 보기 좋았다. 예배 후 뜰에서 쿠키와 커피를 나누며 교제하는 성도들이 모습과, 햇살 아래 교회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모든 모습이 그저 아름다웠다. 


문득, 또 같은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교회 오는 게 이렇게 좋은데 왜 한국에서는 교회 현장 예배를 드리고 싶지 않았을까?     


여전히 답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 교회가 너무 좋으니 다음 주일에도 꼭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 결심은 지켜지지 않았다. 주중에 갑자기 테러 경보가 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무장단체 요원이 나이로비에 유입됐다는 걸 확인한 관계 당국이 테러 위험을 경고했다.


나이로비에는 몇 년 전에도 소말리아 무장단체의 테러로 큰 인명피해가 난 사건이 있었다. 미 대사관, 국제기구, 케냐 정부 등 온갖 기관이 일제히 심각한 어조로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 교회 등에 모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내가 갔던 교회는 여러 국제기구 한복판에 위치한, 외국인들이 가득한 교회였다. 결국 나는 현장 예배를 포기하고 다시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이상하게 조금 풀이 죽었다.  





   

그 뒤 런던에서 다시 한번 현지 교회에 갈 기회가 생겼다.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인 교회였다. 이곳도 예배 시작 후 찬양 시간이 30분 정도 되었는데, 대부분 찬송이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처음 듣는 찬송을 들으며 정말 펑펑 울었다. 특히 <나의 하나님>을 부를 때는 정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울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 교회, 나이로비 국제 교회, 그리고 런던 한인 교회까지. 여러 나라에서 현장 예배를 드릴 때마다 마음에 특별한 감동이 있었다. 그건 분명 기쁨이었다. 나는 그 모든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며 순수하게 기뻤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 돌아오면 온라인 예배를 드렸다. 내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이 반복될수록, 언제부터인가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왜 요즘 현장 예배만 드리면 그렇게 울어댔을까? 

나는 왜 온라인 예배드리는 걸 현장 예배보다 더 선호하는 걸까? 

이대로 계속 온라인 예배를 드려도 괜찮은 걸까?     


하나님께서 나를 교회로 인도하실 때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끼는 큰 기쁨을 느낄 때마다. 왜 나는 한국에서는 현장 예배를 드리러 가지 않을까 고민했다. 


여전히 온라인 예배와 현장 예배 간에 어떤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드렸던 현장 예배 때 확실히 마음이 더 뜨거워졌고, 감동이 밀려왔다. 


한국에 가면 현장 예배에 가볼까? 슬쩍 그런 생각도 들었다. 물론 곧, ‘그래도 불편해’ 하는 마음이 떠오르긴 했지만. 어느 순간, 또 생각이 같은 곳으로 돌아갔다. ‘왜 나는 한국에서는 현장예배 드리는 게 불편할까?’ 고민이 계속 이어졌다.     






현장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는 좋았다. 여러 교회를 다니며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만 유독 현장 예배 가는 게 불편할까. 나는 결국 마음 깊은 곳에서 솔직한 답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교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도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났다. 기억도 없는 아기 때부터 다녔던 교회였는데, 친구, 선생님, 언니, 오빠, 목사님, 장로님까지 모두 아는 사람으로 가득하던 교회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 명 두 명 사라지더니 이제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과 새로운 관계를 쌓아야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 났고, 그래서 멀거니 서 있으려니 그 사람들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렇게 '사람'이 불편해서,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서 나는 교회를 꺼렸다.

그제야 알았다. 아, 나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봤구나. 






내 생각은 ‘나의 불편’에서 어느새 ‘교회’로 옮겨갔다. 


교회란 어떤 곳일까. 


교회(敎會), 교인들의 모임. 말 그대로 공통의 신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단순히 말하면 교회는 신앙 하나만 같고 그 외 거의 모든 부분이 다른 온갖 군상이 모인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그 가운데서 다름이나 낯섦을 느끼는 것도, 나아가 무언가 불편한 것도 사실 자연스럽다. 같은 의미로, 다름과 낯섦에서 발생하는 갈등, 평가, 비난, 비교, 불평불만 등 온갖 문제가 교회에 상주하는 것도 인간적으로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도 '교회'는 모인다.  더 나아가 그 불편함을 감내하다 못해 사랑하라고 까지 한다. 세상에!


이 모든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 모두 안다. 

온 교회가 안다. 그게 얼마나 끔찍히 어려운 건지. 


그리고 나도 아는 이 사실을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다. 그런데도 모이라고 하셨다. 이 ‘공통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빼고는 거의 모든 게 다 다르고, 그래서 불편할 게 당연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왜 굳이 모아 놓으시는 걸까?


그래야 크기 때문이다.


그 불편을 마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보려고 발버둥 치고, 결국 또 실패하고, 

우리의 본질적 한계와 하나님의 은혜를 실감하고, 겸손을 얻고,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못되 처먹었는지 깨닫고,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나은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절절히 느낀 뒤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인내할 때.


그 안에 필연적으로 성숙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씩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멋진 자녀의 모습으로 자라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키우신다. 우리가 마냥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로 있길 원하지 않으신다. 자라고, 성숙해서 더 넓은 시야와 더 큰 기쁨으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지혜가 늘고, 우리 삶 곳곳에 두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충만하다 못해 고상하기까지 한 삶을 기대하신다.     


집에서 온라인 예배만 드릴 때. 하나님과 나만 있는 그 상태를, 그렇게 드리는 예배를 나는 ‘평화롭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 관계에는 ‘나’를 제외한 어떠한 변수도 없었다. 하나님은 한결같으시니 나는 그 앞에서 언제나 내 고민, 내 문제, 내 상황을 가장 먼저 아뢸 수 있었다. 거기에는 갈등이 없었다. 불편도,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였다. 어떠한 변수도 없고, 문제도 없고, 불편한 외부 소음도 없어서. 나는 '평화롭게' 멈춰 있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 오셨다고 했다. 


그럼 그 머리께서 어디로 오셨는가? 고요한 산속이나 인적 드문 사막에서 세상 더러운 꼴 안 보고 우아하게 활동하시다 가셨나? 그래서 나중에 그 기록을 발견한 사람들이 ‘오오~ 진리!’ 하며 믿게 된 건가? 


우리 모두 안다.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속, 엉망진창 그 자체인 삶의 북새통 한가운데로 오셨다. 그리고 못된 놈, 못 알아듣는 놈, 알아들어 놓고도 모르는 척하는 놈, 멍청한 놈, 불쌍한 놈, 예수님을 이용해서 한밑천 잡아보고 싶어 하는 놈, 세상을 원망하는 놈, 세상을 뒤집어엎으려고 하는 놈 등등 지지고 볶고 울고 웃는 모든 사람 사이에 사셨다.

      

거기서 인생이 망가진 사람, 다른 사람 등쳐먹으며 살던 사람, 자신이 가장 똑똑한 줄 알던 사람, 몹시 아픈 사람, 편협한 사람, 팍팍한 밥벌이에 지친 사람, 죽어가던 사람들을 부르셔서 이름을 부르고, 씻기고, 함께 밥을 먹고, 삶을 듣고,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더니 기어이 그 모든 삶을 바꿔버리셨다. 죽어가던 그들을 살리셨다. 그렇게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하나님은 그들을 ‘교회’로 부르셨다. 함께 모이라고. 그렇게 하나가 되어서, 결국 나와 하나가 되자고.      


그러니 교회라는 이름하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르고 불편한 건 크게 이상할 일이 아니다. 원래 서로 이해 안 되고 불편할 사람들이 모인 거다. 아니, 평생 보고 산 가족도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허다한데, 완전 다른 환경에서 살던 다른 생명체가 더욱 그러한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불편함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원래 모르는 걸 처음 배울 때, 그리고 그게 어려울 수록 불편한 거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을 하나님께서 결국 안 당연하게 만드신다는 게 오히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가르치시고, 사랑하심으로써 이를 만들어 가신다.       






나도 결국 그 과정 중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친한 친구들이 모두 사라진 교회는 더 이상 편하지 않다고 고집부리며, 그렇게 불퉁하게 몇 년을 보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얘기를 한다고 날 혼내지 않으셨다. 철없는 소리, 못 된 소리, 덜 배운 소리를 해대도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혼내시기는커녕 나를 더 보듬고, 껴안고, 얼마나 부드럽게 대해주셨나 모른다. 내가 모른다는 걸, 아직 미성숙하다는 걸 아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가 성장하게 될 거란 걸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녔다. 그리고 거기서 여러 교회를 만났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을 느꼈고, 그다음으로 찬양의 감동이 이어지더니, 어느새 내 상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방향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배워나갔다.     


평소 고민도 하지 않았던 문제를 다시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러다 잊을만하면 또 다른 교회로 인도하시고, 생각이 멈출 즈음 또 다른 예배 장소로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은 나 스스로 옳은 답을 고를 수 있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다. 그렇게 꾸준히 내게 말을 걸고, 부드럽게 부르셨다. 교회로 돌아오라고. 


놀랍게도, 거기에는 어떠한 강압도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나를 윽박지르거나 위협하시지 않았다. 대신 내게 생각하고, 기억하고, 고민할 충분한 시간을 주셨다. 그건 대단히 부드러운 권유였다. 그것이 권유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할 만큼 포근하고 애정 가득한 이끎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결국 알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불편하다고 느껴도, 같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참고, 찬양하고, 이해해보려 애쓰며, 기도하고, 삶을 나누는 것이 내게 필요한 일이라는 걸. 하나님께서 내가 그렇게 하길 기다리고 계시다는 걸.     


여전히 나는 현장 예배보다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이 훨씬 편하다. 갑자기 현장 예배에 가고 싶어서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르지도 않았다.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고, 당장 교회의 모두를 사랑할 자신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내가 뜨거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걸 여러 나라의 교회를 다니며 확인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교회 현장으로 돌아가길 원하신다는 것도 이제 안다. 이 이유만으로 사실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현장 예배로 돌아가려 한다. 이 최고로 멋지고, 선하고, 상냥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시니까. 지금이야 별로 내키지 않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언제 잘못된 적이 있던가.     


하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제 발걸음을 인도해주세요.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나님을 따라 성장할 저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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