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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떠남, 그리고 새로운 여행

순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형통하니까요.

   

회사에 다니면서 힘들다는 생각이야 자주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었다. 나는 매우 안전지향적인 사람이고, 감정 때문에 회사를 그만뒀다간 후회하게 될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들 회사 생활은 원래 그런 거라고도 했고, 나도 그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해있던 곳이 최고의 회사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최악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냥 평범한, 모든 직장이 가지는 보편적 특성을 가지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감정도 평범한 직장인의 그것이라고 생각했고, 딱히 특별히 나만 더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매우 힘들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또한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직장생활 아닌가.

     

그런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조금 터무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하나님이 그만두게 하셨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주로 일이 많이 힘드니 문제 상황을 해결해주시길 간구하는 기도와 마음의 괴로움을 토로하고 위로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일을 그만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니 일을 그만두게 해 달라거나 새로운 직장을 찾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자꾸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몰려갔다. 그러니까, 그만두는 쪽으로 말이다.      

   

“너무 힘들어요,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버틸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같은 기도를 거의 매일 했는데도 상황은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힘들다고 기도하고 출근했는데, 회사에 도착하면 그런 나를 비웃듯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이 연달아 터지곤 했다. 나는 풍랑 속 작은 배처럼 흔들렸다. 견디고 버티는 일이 점점 힘에 부쳤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이어졌다. 몰리고 몰리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져서 ‘정말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곧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닌가?


뭔가 얼떨떨했지만 어쨌든 일이 잘 풀렸으니 당연히 마음도 풀리고, 상황이 좋아졌으니 다시 회사를 열심히 다니자고 다짐한다. 


‘그만두긴 뭘 그만둬. 열심히 다녀야지.’ 


그러면 마치 그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전보다 더 큰 위기가 무섭게 들이닥쳤다. 그래도 계속 회사에 다니기로 마음먹은 상태이니 최선을 다해 상황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위기가 더 커졌다. 어느새 사태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커지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우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펑펑 울면서 ‘이게 뭐야. 진짜 그만둬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마치 듣고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문제가 사라졌다. 이런 일이 퇴사 전까지 거의 반년 동안 반복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내내 기도하고 있었다. 


매일 죽을 거 같아서 매일 기도했다. 당연히 인도하심이나 도우심을 기대했기에 혹시 하나님이 사인을 주시거나 일을 해결해주실 때 알아보고 싶어서 하나님을 향해 촉을 세우고 살았다. 그런데도 사태가 그 모양이었다.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터졌고, 그만두겠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끝났다.       

    

처음엔 설마 했다. 이런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냥 공교로운 우연이거나 내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냥 문제가 해결될 때가 돼서 해결됐다고도 생각해봤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바로 다시 일이 터졌다. 마치 ‘아니야’라고 대답하듯이. 그런 일을 한참 반복하고 나서야 나는 몇 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쥐가 나오던 캐나다 하숙집을 떠날 때도 이랬다.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지만 나는 그 집을 떠날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온갖 사건 사고가 몰아치며 나를 두들겨댔다. 처음엔 사소하게 불편한 일이 생기더니 점점 짜증스러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곧 주인집 사람들과도 관계 문제가 생겼다. 물론 그때의 나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매우 안전지향적이었고 엉덩이가 무거웠으며, ‘다른 데도 다 이래. 어디 가 봐야 뭐 특별히 더 나은 것도 없어’라고, 지금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의 양상도 비슷했다. 온갖 불편한 일이 이어지던 집에서는 결국 살인 미수 사건이 벌어졌고, 나를 제외한 다른 하숙생들은 다 짐을 싸서 떠났다. 그때도 나는 남았다. 집에 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울면서 버텼다. 쥐가 방에도 들어왔다. 점점 한계에 몰렸지만 온 힘을 다해 버텼다. 쥐가 온갖 서랍을 휘젓고 다녔고, 방에서는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한밤중에 내 책상 위를 돌아다니던 쥐를 발견하고서야 나는 항복 선언을 했다. 그 집을 나왔다.      


그 사건을 떠올리고 이번 사건에 대입해봤다. 매우 비슷했다. 심지어 회사에서 사람이 하나둘 떠나고 있는 상황까지 비슷했다. 


캐나다 하숙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나는 그 문제들을 두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왜 해결해주지 않으시냐고, 왜 상황이 계속 힘들게만 변하냐고 많이 울기도 했다. 그 집을 나오고 나서야 하나님이 날 그 집에서 끄집어내셨다는 걸 알았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자연스레 생각이 하나의 결론에 가 닿았다.   

  

세상에. 하나님, 제가 회사 그만두길 원하세요? 아니, 왜요?     


회사에 불만이야 있었지만, 그거야 대부분 직장인의 공통 사항이고. 퇴사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이직 준비를 하고 있지도 않았고, 어디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도 없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너무 믿기지 않아서 ‘에이, 설마. 착각이겠지.’ 같은 생각으로 안일하게 상황에 대처하려 했지만, 결국 두어 번 더 두들겨 맞았다. 그러고서야 겨우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다. 


“하나님. 알겠어요. 그만두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나가기 전까지 만이라도 별일 없이 있다 가게 해주세요.”         

아직도 이게 진짠가 싶지만, 정말로 저 기도 이후 내 회사 생활은 놀랍도록 평탄해졌다. 아무 갈등도, 문제도 생기지 않았고 업무 진행도 수월했다. 당장 죽을 것처럼 널뛰던 감정도 수그러들었다. 너무 평온했다. 


‘이런 평탄함이라면 대체 내가 왜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거지? 이 정도면 그냥 계속 다니면 안 되나?’ 

......라는 생각을 했다가 화들짝 놀라서 ‘아니에요! 그래도 그만둘게요. 그러니까 문제는 더 필요 없어요!’라고 기도하게 될 만큼.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회사’를 그만두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 회사에서는 떠나지만 다른 회사, 그러니까 동종업계 어딘가로 바로 이직해서 하던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내 계획대로 안 됐다. 


우선 퇴직 후 한동안 엄청 아팠다. 멋지게 퇴사 여행을 가겠다며 잡아놓은 여행에서는 일정 내내 호텔에서 끙끙 앓았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몸을 추슬러야 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쉬어가자. 나는 그동안 관심은 있지만 바빠서 배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번역과 글쓰기였다. 


그런데 처음엔 호기심에, 그다음부터는 재미로 배우던 것이 점점 더 규모가 커져가더니, 어느새 나는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었다. 퇴사 전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다. 


이런 걸 계획했던 건 아니었는데. 꿈꿨던 모습과 너무 많이 달랐다. 사실, 상상도 못 해봤다. 하나님, 대체 절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예요?     






어릴 땐 꿈을 이루지 못하면 아주 슬플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막상 바라보던 자리에 섰을 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삶의 완성도와 충실함은 내 계획의 달성 여부나 선호도에 달려있는 게 아니었다. 그건 하나님이 온전히 책임지시는 영역이다.


오히려 어린 시절 내내 소위 ‘꿈’ 이라고 부르던 장래 희망 직업을 얻은 뒤 나는 더 슬펐다. 꿈꿔오던 것이 사실 전혀 찬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불합리의 톱니바퀴 속에서 부속품이 되어 가는 날 바라보면서 서러웠던 거 같다. 그렇게 체념하고 시들어가던, 그런 와중에도 엉덩이는 대단히 무겁던 나를 하나님은 끄집어내셨다.      






예전에, 교회에서 들었던 말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기도하는 중에 벌어진 일은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오히려 기도도 안 했는데 일이 잘 풀릴 경우가 더 위험한 거야.”      


계속 기도해도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흘렀고, 나는 마치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내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에 묘한 기대감과 안도감이 있었던 건,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저 말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덕분이다.     


나는 딱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거나 꿈으로 계시를 받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알며, 하나님이 내 삶에 섭리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1. 하나님은 내 삶에 섭리하시고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2. 나는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들으셨다.

3. 고로, 당연히 내 삶은 괜찮다.         

 

나는 이런 단순 논리 체계 위에서 살고 생각한다. 


물론 ‘고로, 당연히 내 삶은 괜찮다’는 말이 삶에 아무 고난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일은 여전히 어렵고 인간관계도 쉽지 않다. 종종 ‘아이고 죽겠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만한 문제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닥친 문제나 상황이 너무 어렵고 암담해서 숨이 턱턱 막힐 때도 있었다. 돈은 너무 자주 통장을 스쳐 가기만 하고, 건강 문제도 늘 따라다닌다. 크고 작은 문제들은 정말 늘 있다. 그래도 저 대전제가 있어서 오늘도 나는 삶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다. 든든한 기초, 디딜 반석이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이렇게 퇴사한 후에는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쥐 나오던 하숙집에서 뛰쳐나왔을 때처럼 좋은 일만 펼쳐졌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진 않았다. 솔직히 살짝 그런 걸 기대하긴 했는데, 이번에는 딱히 삶에 꽃길이 펼쳐지진 않더라.      


여행책 쓰려고 했더니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고, 몇 달 동안 부지런히 취재하며 썼던 원고료는 몇백만 원씩 떼이기도 했다. 전화로 사정하고 울고 내용증명도 보내 봤지만 결국 못 받았다. 몇 년 동안 끙끙대며 써간 원고를 채 펴 보이지도 못한 채 ‘이런 신앙 글 쓸 시간에 정신 차리고 가서 다른 일 하라’는 소리도 듣고, ‘다섯 살 자기 딸도 자기 앞가림을 하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살면 안 된다’는 충고도 들었다.

 

그럴 때면 가슴에 칼을 맞은 거 같아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하고 하나님만 겨우 불렀다. 열심히 이것저것 한 거 같은데, 눈에 띄는 결실로 이어지지 않은 것들이 참 많았다. 이렇게 보면 뭐 특별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이럴 거면 굳이 왜 그만두게 하신 거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라는 책을 읽게 된 건 그렇게 조금은 평범하고 미지근한 일상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신기했다. 직장생활 할 때의 내 얘기가 거기 다 들어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내가 그때 우울증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실시간으로 속에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 차오르던 사람 같았다. 일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모니터에 욕을 읊조리고 있을 때가 있었고,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자주 났다. 회사 파티션 안에서 업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고 있을 때도 많았다.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일을 겨우겨우 쳐냈다.  

     

그 당시 나타났던 여러 이상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외모 관리에 말도 못 하게 무신경해졌던 나 자신이었다. 단순히 ‘잘 꾸미지 않았다’ 이런 정도가 아니고, 정말 씻지도 않았다. 일주일, 열흘씩 머리를 감지 않고 드라이 샴푸만 겨우 하고 출근할 때도 있었다. 그저께 드라이 샴푸 뿌렸던 머리에 어제 또 뿌리고, 오늘 또 뿌리고 하면서. 그것도 겨우겨우. 옷도 신경 쓰지 못했다. 같은 옷을 며칠씩 입고 출근했다. 


당연히 화장도 제대로 못 했다. 예전에는 여러 기능성 제품도 사용하고 온몸에 꼼꼼히 로션을 발랐는데 그때는 얼굴에 로션 하나 찍어 바르는 것도 끔찍하게 힘들었다. 퇴근 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누워있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켜 놓고 시간을 보냈다. 보통 막차를 타고 집에 왔고, 자정에 들어오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살이 계속 쪘다. 혈압 수치가 조금씩 상승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막차 시간이 다 돼서 버스를 탔다. 버스가 정류장에서 조금 멀리 섰는데, 뛰기가 싫어서 천천히 걸어가 차를 탔다. 그런데 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가는 내 뒤로 “쯧”하고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걸어왔다고 기사님이 못마땅해 그러시는 줄 알고 바로 뒤로 돌아 항의했다. 


“기사님 왜 혀를 차세요?” 


기사님은 그런 적 없다고 했다. 


“방금 저한테 혀 차셨잖아요!” 


기사님은 계속 그런 적 없다고 하셨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몇 앉아있었지만 늦은 시간 버스 안은 조용했다. 내가 따지는 소리와 기사님의 그런 적 없다는 답변 소리만 울렸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도 아까 일이 생각나 계속 기분이 나빴다. 아니 혀를 차 놓고 자꾸 아니라고만 하고 말이야. 나는 들었는데, 기사님은 계속 아니라고....... 순간 소름이 끼쳤다. 


만약 정말 버스 기사님이 그런 적이 없으면? 나 혼자 이상한 소릴 듣고 괜히 기사님께 따져댄 거면? 


그리고 설혹 기사님이 진짜 혀를 차셨다고 해도, 나는 원래 낯선 사람에게 그런 걸 따지고 드는 성격도 아니었다. 혼자 속으로 못마땅해할지언정 낯선 사람에게 그렇게 바로 화를 내지는 않았다. 버스처럼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를 낸 적도 없었다. 방금 그건 누구지? 정말 내가 그랬단 말이야? 눈물이 핑 돌았다. 괜히 늦은 시간 힘들게 일하는 기사님한테 몹쓸 짓을 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해. 나 정말 뭔가 이상한데...... 뭔가 위험한 거 같아.     


다음 날 여기저기 상담을 알아봤다. 너무 무서워서 상담받고 싶었는데, 기본 상담비가 시간당 10만 원이었다. 게다가 한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니고 몇 주씩 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면 추가 비용이 더 든다는 말도 들었다. 가만히 비용을 계산해 봤다. 한 달 월급을 다 쏟아부어야 할 거 같았다. 결국 상담은 포기했다.          

줄곧 그런 상태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씻기도 옷을 갈아입기도 힘들고, 귀찮고, 모니터를 보고 욕을 하다가 혼자 파티션 안에 숨어 울고,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업무 역량과 의지를 꾸역꾸역 끌며 야근을 이어가는 삶. 욕을 쏟아부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다니는 게 회사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다가, 어쩌면 이래서 하나님이 나를 끄집어내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확실히 퇴사 후 태도도 몸 상태도 많이 변했다. 살도 빠졌고, 무기력증도 사라졌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했으니,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단순한 이유 하나, 하나를 다 모은 것보다 더 큰 뜻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그동안의 익숙한 길을 떠났다. 그리고 그동안 했던 여행이나 도전들과도 조금 결이 달라 보이는 낯설고, 잘 모르는 세상으로 발을 들였다. 조금 막막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견디지 못할 만큼 두렵다거나 낙담에 마음이 잡아먹힐 것 같지 않은 건, 역시 내가 하나님 손을 붙잡고 있다는 확신 덕분일 거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과 나의 첫 여행이 시작할 때도 이랬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그저 바쁘고, 힘들고, 정신없었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던 나를 하나님은 그 버거운 환경에서 거짓말처럼 쏙 끄집어내셨다. 그리고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여행길로 데려가셨다. 그 뒤로는 앞에 쭉 써온 것처럼, 내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겪고, 느끼고, 배웠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키셨다. 훨씬 더 많이 웃게 하셨고, 행복하다고 고백하게 하셨고,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하셨다.      


하나님, 지금 우리 모습이 그때랑 아주 비슷한 거 같은데. 이번에는 우리, 어디로 가나요?     


그렇게 또다시 새롭고 낯선 세상으로. 나는 하나님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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