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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탐 May 22. 2023

혼자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시간

배은망덕한 자식놈이 하나님을 늘 뒤로 미뤄도 버선발로 달려나오는 하나님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참 여러 나라를 다녔다. 


그 동안 하나님과 유독 가까워졌다고 느낀 건 단순히 느낌만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이 확실히 늘었다. 기도 시간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길어진 덕분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위로가 필요한 일도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더 자주, 오래, 그리고 깊이 교제하게 됐다.

     

낯선 땅에서 나는 주로 밤에 기도했다. 하루가 마무리된 밤에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가 좋았다. 불 꺼진 방, 침대에 앉아 조용히 하나님과 시간을 보냈다. 사소한 하루 일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무서운 것, 기대, 내일 할 일, 오늘 만난 사람들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조잘대었다.     


때론 왈칵 울음이 터질 때도 있었다. 대부분 딱히 울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던 일도 하나님께 말할 때는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편하게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게 말로 다 할 수 없이 편안하고 안심이 되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밤 이어지는 하나님과의 대화는 버거운 외국 생활을 버티는 힘이 되어 주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게 하셨고, 그다음 날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셨다. 밤마다 내 수다를 들어주시던 하나님은 정말 상냥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직장인이 됐다. 삶은 또 다른 모양으로 바쁘고 정신없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하나님과 함께였지만, 점점 하나님이 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날이 많아졌다. 따로 시간을 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줄어들고, 그나마 하는 기도는 몸도 정신도 반쯤 정상이 아닌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나 이뤄졌다. 그마저도 필요한 것을 구하거나 도와달라는 말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밤마다 하나님과 보내던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은 이제 침대에서 기절하기 직전 겨우 중얼거리는 약식의 감사기도 정도가 되어 있었다. 


“하나님, 오늘도 돌봐주시고 보호해주셔서 감ㅅ.......” 


이마저도 채 못 마치고 잠들어버릴 때가 더 많았지만.      


그런데도 어쨌든 삶은 흘러가는 것 같았다. 기도 시간이 줄고, 말씀 한 장도 제대로 못 읽는 날이 많아지고, 예배를 드리다가 종종 딴생각에 정신이 팔리고, 하나님과의 시간을 자꾸 다른 일 뒤로 미루며 하나님을 서운하게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날 돌보고 입히고 먹이셨다. 


그렇다 보니 겉으로 봤을 때는 뭔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요즘 계속 하나님과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주일에 예배드리고, 여전히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니까. 괜찮겠지.’ 말씀은 일이 좀 줄면 읽자.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기도는 다음에 하자. 그렇게 나는 무감하게 하나님을 뒤로 밀었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 결국 몸에 문제를 일으키듯, 하나님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내 상태도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런 변화를 내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거다. 화와 울음이 쌓이고 정신은 점점 탁해져 힘을 잃어갔지만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나는 여전히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점점 모든 문제가 감당할 수 없게 변해갔다. 모든 게 버겁고, 너무 많은 게 불합리하다고 느껴졌으며, 나는 무력했고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염세적이고 무기력하며, 우울한 사람이 되어갔다. 삶을 버텨낼 힘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니, 결국 일종의 영적 체력이 방전되어 버리는 상태로 치달아 간 것이다.


화가 나고, 우울하고, 억울하고, 무섭고, 벅차고, 힘들었다. 나 자신이 한심하고 보잘것없이 느껴졌고, 아무리 머리로 부정해 봐도 마음은 계속 내 발버둥이 의미 없다고 외쳤다. 나는 계속 나를 비난했다. 


‘넌 참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와, 이렇게 사는 거 진짜 별로다.’ 


그리고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어서 또 낙담했다. 멀쩡히 앉아서 일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고, 일이 어그러지거나 의도치 않게 복잡해지면 나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다 다시 울고 낙담하길 반복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렇게는 안 된다.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경고음이 울렸다.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하나님이, 하나님과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걸 쏟아 내고, 이 속을 다 말해야 했다. 더는 내 안에 혼자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 가야 했다. 


하지만 일상은 여전히 정신없고, 도무지 혼자가 될 틈이 없었다. 정확히는,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도 다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 분주해서, 몸이 피곤해서, 모든 게 너무 모자라고 급해서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상태가 될 수 없었다.      


정말로 여행이 간절했다. 정확히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가 되어 온전히 하나님을 부를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나님과 보냈던 과거의 여행들이 그리웠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곳이 대부분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어디에 묶인 사람처럼 도무지 가야 할 곳으로 갈 줄을 몰랐다. 마음은 갈급한데 몸도 정신도 도저히 틈을 만들지 못했다.      






그즈음 나는 여러 고민으로 버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힘겹고 설명하기 어려운 온갖 감정들이 내 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다. 그 누구도,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내 마음을, 하나님만 아시길 원하는 내 속 이야기를 하나님 앞에 마음껏 쏟아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기회가 왔다. 출장이 잡힌 것이다. 출장 일정 중 하루를 혼자 숙박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알게 된 뒤부터 출장을 준비하는 내내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업무가 끝나자마자 바로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겠다고. 출장이 그렇게 기다려졌던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 밤을 정말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갈급하다’라는 단어를 평소에 잘 쓰지 않는데, 그날을 기다리는 내 심정은 정말 갈급함 그 자체였다. 어서 빨리 시간이 가서, 일이 끝나서,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만나길 바랐다.      


드디어 그날이 됐다. 출장지에서의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햄버거 하나와 생수 1.5L, 여행용 티슈 하나를 샀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다시 생각하니 조금 우습지만, 그때는 나름 꽤 진지하게 고민해서 준비물을 마련했다. 앞으로 몇 시간 내내 기도할 거니까 고칼로리 음식으로 든든히 먹어두고, 많이 울 수 있으니 마실 물과 휴지도 준비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드디어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혼자가 되어 어둡고 조용한 방 안에 혼자 남았다. 


일도, 일정도, 크고 작은 삶의 문제들도 그 순간만큼은 나를 따라올 수 없었다. 마침내 하나님과 나만 남았다. 나는 베개 하나를 끌어안고 웅얼거리듯 작게 “하나님” 하고 불렀다. 그저 불렀을 뿐인데, 순간 속에서 무언가 터지듯 올라왔다. 


“하나님, 저랑 이야기해요.” 


목소리가 이미 울렁거렸다. 그날, 나는 하나님 앞에 모든 걸 쏟아내며 진이 빠지도록 울었다. 그동안 눌러 담아놨던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꺼내며 온몸으로 버둥거렸다.      






‘하나님, 저 너무 힘들어요.’ 

‘그 사람에게 너무 서운해요.’ 

‘길을 잃은 것 같아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자꾸 신경이 날카로워져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내 삶이, 그동안 해온 내 노력이 다 의미 없고 쓸데없는 것 같아요.’

‘모든 게 귀찮아요.’

‘그리고 이런 내가 싫어요.’

‘하나님, 죄송해요.’     


천천히 넘어가던 여름 해가 다 지고 방이 깊은 어둠에 잠길 때까지, 달이 산을 훌쩍 넘어가 숙소 방 창문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하나님 앞에 내 속을 쏟고 또 쏟았다. 눈물도, 소리도, 감정도 너무 터져 나와 몸이 힘들 지경이었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며 기도하다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을 바라보거나 조용히 찬송을 읊조리고, 다시 하나님께 말을 걸길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 차려보니 이미 새벽이었다. 


방 안 풍경이 청회색으로 고요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제야, 살 것 같았다.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속이 너무 가벼워서 이유 없이 자꾸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비로소 내 영이 그동안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지? 영적인 상태가 아주 엉망진창이었구나.      


그날 하나님은 날 위로하셨고, 많은 걸 기억하게 하셨으며, 결심하게 하셨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들의 결괏값이 모여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왔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몇 번이나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어릴 때는 그래야 하는 이유를 그냥 ‘하나님이 그러라고 하시니까’, ‘하나님이 그게 좋다시니까’ 정도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아간다. 


단순히 ‘하나님이 좋아하시니까’ 정도가 아니라, 이게 사람에게, 내게 좋기 때문에 하라고 하시는 거다. 아니, 단순히 좋다는 말로는 표현이 충분치 못하다. 솔직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람에게 훨씬 더 절박한 효용을 가진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사람의 생존과 내면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우선 나는 확실히 그랬다. 


살기 위해서라도 하나님께 찰싹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그날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행히 하나님도 그게 좋으시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음껏 치대도 거절당할 걱정 없이 함뿍 하나님을 누릴 수 있다. 언제나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시는 하나님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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