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투자자의 뒤늦은 후회와 고백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다음 날은 회사 체육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으레 분위기상 이러한 이벤트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들뜨게 한다. 직원들은 들뜬 마음으로 일이 손에 안 잡혔겠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밤새 고민을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아득바득 모은 돈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 마저 잃는다면 더 큰 난관에 봉착할 터였다. 일단 나는 여자친구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같은 회사의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내커플이었고, 그녀는 정규장 동안 일그러지는 나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기도 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미안함’이었다. 나의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여유자금을 만들어 결혼하고 싶은 목적이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시장은 나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니 시장 탓을 한 것이 아니라, 결국 이 사달을 낸 장본인은 나였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반응을 할지, 이대로 결혼을 감행해도 되는 것인지, 판단력이 흐려졌다. 결국 이러한 사실에 대해 입을 열게 된 건 패배감에 기운 없이 있는 나를 보고 그녀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고 나서였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모은 돈의 절반을 주식투자로 잃었다 정도로만 그녀에게 얘기했다. 여자친구 또한 걱정스러웠을 테지만, 의외로 ‘빚진 거만 아니면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다. 그런 나를 그녀는 안아주었다. 만약 내가 여자친구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중요한 이벤트를 앞둔 상황에 남자친구가 주식으로 돈을 잃고, 점점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래도 결혼을 감행했을까.
30년을 살면서 ‘돈’이란 것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왔었다. 왜 저렇게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는지, 왜 ‘돈’으로 인해 사람들이 파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돈 앞에 무릎을 꿇는 상황이오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마주할 때 돈은 중요한 수단이 된다.
굳은 의지를 보이며, 괜찮다고 해주는 여자친구를 보며 나는 다시 힘을 내보기로 하지만, 주식시장에서 잃는 것보다 버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은 후였기 때문에 과연 시장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만 갔다.
그저 하루빨리 주식시장을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이미 두 가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