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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매일성장통 Sep 22. 2017

결혼을 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

-결혼, 해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는(1)-

두렵고 무서웠다. 결혼을 결심한다는 건.

그렇지만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때나, 단순히 나이에 의한 결혼적령기라거나

그런건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tv토크쇼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얘기처럼

보자마자 '저 사람이랑 결혼해야겠어'라는

확신따위는 더더욱 없었다.


다만, 내가 '때가 되었다'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누구를 만나든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났으면'

이라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따위 없을 자신이 있었다는 거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사람이든

맞는 면이 있으면 안 맞는 면이 있고,

좋은 점이 있으면 싫은 점이 있다는 걸

단순히 머리가 아닌, 뼈속 깊이 깨달았던 때였다.


'남자는 다 거기서 거기야'

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건만

나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얘기를 내뱉으면서도


누군가를 만나는 첫 자리에서

너무 많은 것들을 맞추어보고 싶어했다.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주말에는 무엇을 하는지.

술 취향은 어떤지,

음식 취향은 어떤지,

직장에 대해 얼마만큼의 의미부여를 하는지.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정의내리는지


티 나지 않게 툭툭 던지는 질문 안에서

그 사람의 말투, 표정, 손짓 까지도

캐치해보려 애썼다.


어쩌면 그날 그 사람의 우연히 나왔을지도 모르는

우연한 리액션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나혼자 그렇게 탐정놀이 하듯

일련의 단편적인 특징들을 꿰어

한 사람의 스토리를 완성하려 했다.




두려움 때문이었을것이다.

전혀 모르는 남녀가 만나

일년 남짓을 만나도

싸우고 헤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가슴이 너덜해지는 기분이,

텅 비어버린 '함께'라는 시간에

무언갈 꾸역꾸역 채워넣으려 애쓰는 내 자신이

너무나 두려워서


더 많은 것들이 엮이고, 더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되는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될 때,

혹여 만약

헤어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면

그 상처가 평생 아물수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으로

옴짝달짝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그래 뭐 별거 있겠어'

라며 호기롭게 시작한 결혼 앞에서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었다.


'결단코 많은 의미를 결혼에 부여하지 않으리라.

나의 모든 것을 채워줄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 옆에 있겠지만,

그 사람에게 내 체중을 다 실어서

혼자 서는 법을 잊어버리는 일 따위

만들지 않으리라.


무엇보다 막연히 느껴지는 외로움이나 공허함이

상대방에 의한 것이라 여기며

힘들게 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




그렇게 참 묘하다 할 수 있는 결혼에 대한 준비를 마치고

결혼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1년이 조금 더 지났다.


행복하다면 행복할 수 있는 나날이었다.

어쩌면 다른 생각 따위는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지

곧 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와 정신없이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다 보니

어쩌면 결혼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미처 곱씹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시간이 없고, 정신이 없고,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나이가 먹고,

그렇게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이어지는 것인가 보다 했다.


이래서 싱글이던 시절,

집에 돌아오는 길 유난히 외로움이 파고들어

이리저리 전화기 통화목록을 뒤지다

오랜만에 생각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에휴 왜 이리 외롭니. 결혼해도 외롭다던데 너는 괜찮니?"


라고 묻는 나에게 그 친구는 


"글쎄.. 외로울 시간조차 없는 것 같아"


라는 말을 했나보다

다시금 그 입장이 되어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냥 평범한 날이었다.


다행히 아기는 9시가 조금 넘을 무렵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짜증을 부리며 잠투정을 하다

잠이 들었고,


모처럼 티비 앞에서 여유를 부리며

바닥과 밀착된 채 뒹굴거리고 있었다.


11시가 다 되어 퇴근한 그이지만

집과 회사의 거리가 먼 탓에

이제는 그러려니가 되어버린 퇴근시간이었다.


그렇게 별다를 것 없이 tv앞에서

다른 사람 인생을 멍하니 엿보고 있을 때,


문득 텔레비젼에 부산이 나왔고,

같이 무언갈 보고 있다는 걸

슬쩍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아무 의미없이 불쑥 그가 말했다.


"우리도 부산 갔었는데, 근데 그때 우리 엄청 싸웠었어"

"그런데 그 때 우리 왜 싸웠지? 난 왜 전혀 기억이 없지?"




문득, 그 때 그 날이 선명히 그려졌다.


왜 싸웠는지 그 이유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유였는데.


그 날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부산을 찾았다.

이리저리 무얼 할까 머리를 굴리고 굴리던 나는

밤에 버스로 부산을 이동해

크리스마스 마켓만 둘러보고 오는

무박 2일이라는

체력만빵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걸

제안했고,


무언갈 하고 싶은 열의가 넘치는 나를

묵묵히 용인하던 그는

별 생각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밤,

좁은 의자에 앉아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가는 그 길이

피곤과 짜증을 가득 그에게 실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도착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발견한

반짝거리는 조명과 바다가 있는 멋진 까페에서

열의 넘치는 나는

와인을 마시자며 제안했고,

또 그는 묵묵히 용인했다.


그렇게 와인 두잔을 들고

이리저리 자리를 살폈지만,


추위는 아랑곳없이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끼고자 온

젊은 남녀들은

이미 그 까페를 가득 메웠고

마땅한 자리를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추위에 바들바들 떨어야 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오로지 따뜻한 자리에 가고 싶은 나는

저 멀리

자리가 비기가 무섭게

와인잔을 들고 그쪽으로 가자고 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 많은 곳에서

와인잔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싫다고

그는 거절했다.


물론 사람들 시선따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나이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라는 생각에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되냐'고 되물었고

묵묵히 나의 제안을 용인해왔던 그는


'나는 사람들 시선 많이 신경쓰는 사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었다.

사람들 시선 신경쓰느라

자신의 실속 따위 챙기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나

관습, 허세, 주위 평판 따위에 민감한 사람이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자리를 옮기는 것 따위게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될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 보려 해도

와닿지가 않았다.

답답했다. 뭔가 명쾌한게 필요했다.


묻고 또 물었다.

"왜, 왜 그게 문제가 되냐고?"




그리고 어쩌다 보니 

명쾌하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저냥 덮어두고 넘어가게 되었고


그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해가 두번 넘어갔지만


문득 던진 그 한마디에

그 때 덮어두었던,

아니 그 뒤에도

몇 번이고 덮어두었던


명쾌하지 못한 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덮어두고 덮어두었던

감정들이 한번에 터져나왔다.


함께 한 시간이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없지만

몇 번의 경험들을 통해 느꼈던 문제는

사실 의외의 곳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고, 허세와 가식이 가득하고

사실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어느 순간

어떻게 내가 이유라 생각할 수도 없는 포인트에서

화가 터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말인

 '욱한다'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에게 '화가 난다'라는 것이

'나의 감정이 너로 인해 상했어',

'우리 이 문제를 좀 짚고 넘어가봐야 할 거 같아'

 라는 걸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그에게 '화가 난다'라는 건

어떤 이유가 아닌

복합적이고 감정적인 문제였고,

'너로 인해'가 아닌 '자신으로 인한'도 포함하는 문제였다.


어쨌든 '기분이 몹시 나쁜'상태였고,

그 상태는 누가 풀어주지 않아도 그냥 지나가는 상태이며,

지나가고 나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고 싶고,

다시 그 감정을 꺼내서

굳이 이유를 부여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의 '화가 나는 상태'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란 좀처럼 불가능한 일이었고,


왜 화가 났는지, 어떤 입장이었는지,

그리고 향후에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렇게 딱 끝맺음을 깔끔하게 하고 싶은 내가


끝없이 캐묻는 '왜'리는 질문은

그를 힘들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결국 늘 뭔가 찝찝한 채로 지나가야 했고,

그렇게 지나가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내 감정들은

낙엽처럼 저 바닥에 한없이 늘어붙어져 있다가

한번 휩쓴 비질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만 것이다.




결국 과거일을 들추며

피곤하게 하는 구질구질함을

감수하며 나는 또

'그 때 도대체 왜 그랬는지' 물어야 했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 욱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며'

다짐을 받고 싶어했다.


그리고 결국, 피곤과 멋쩍음이 가득한 그의 모습에

감정의 찌꺼기까지 다 보이고 만 기분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대체 다짐을 받으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왜 그랬는지 물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면서도


문득 결혼 전 이리저리 남자탐구시간을 가지던 때

'화가 나면 어떻게 하는지'라는 질문에

꽤 심취했던 기억이 났다.


어차피 싸우지 않을 커플은 없다는 걸 알기에

잘 화해하고 마무리 하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라 생각했다.


잠수를 탄다거나, 연락을 끊는다거나

말을 하는 도중 

등을 보이고 가버리는 행동 따위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 때 역시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았다.

끝까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어떤 오해든, 어떤 입장이든

그 날로 다 정리하고 끝내기.


그게 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어쩌면 이런 내가

그에게는 무서움으로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얘기 좀 하자'는 말이

'서로의 발전적인 관계를 위한 대화'라는 나의 의도와 달리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그에게 향한 끝없는 나의 추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든건 우연히 들은 한 얘기에서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중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우는

친구는 그런 말을 했다.


"아들을 키우니까 남자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거 같아"

 

그러면서 꺼낸 그 친구의 얘기는 이랬다.


아이들이 조금만 커도

딸과 아들이 얼마나 다른지 깨닫게 된다고.

엄마가 뭔가 슬픈 일이 있거나 

혹은 눈물을 아이들 앞에서 보이게 되면


딸은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라며

걱정어린 눈으로 쳐다보는데,

아들은 순간 얼어버린다고 한다.

자기가 어떻게 그 순간을 넘어가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당황하기만 할 뿐이라고 한다.


내가 '우리 관계의 발전을 위해 시도한 대화'에

그가 보인 행동은

그 아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글쎄..

어쩌면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 딱 맞는 위로를 바라고

내가 다짐이 필요할 때, 딱 맞게 다짐을 해주는

그런 사람을 은연 중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화가 나는 내감정을 그가 풀어줘야 하고

답답한 내 감정을 그가 풀어줘야 한다고

은연 중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실 연애나 결혼이나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감정이

누군가에 의해 쉽사리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비질에

어지럽혀진 감정의 조각들이라 할지라도

결국 다시 차곡차곡 잠재우는 것은

본인 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거 같다.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답답함, 불안함, 외로움, 슬픔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 떄가 있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뚜렷한 이유를 대기도 힘든..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은 필요한 일일지 몰라도

그 감정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까지

브리핑 하길 바라는 것은

결혼한 사이에서도

무리일지 모른다. 


어물쩍

농담같지도 않은 농담을 던지며

멋쩍은듯

헛웃음을 짓는다면


그냥 그렇게

내 감정이 전달되었고,

표현하지 못할 뿐

그에게

잔잔한 파장이 되었으리라

믿으며


스스로의 감정은

내 안에서 추스리는 것이

필요할 거 같다.

연애에서나, 결혼에서나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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