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를 하게 되면 외국인 친구들을 초대해 한식도 대접하고 반대로 다른 나라의 음식도 먹어보는 건 로망 중 하나인데요. 일본, 콜롬비아, 멕시코 친구의 초대로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일본 친구에게 초대받은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EC 어학원과 이웃사촌인 ESE
내가 살고 있는 세인트 줄리앙도 어학원 밀집 지역 중 하나로 대형 어학원들인 EF, EC, ESE가 모두 이곳에 있다. 그중에서도 ESE의 경우 한 블록밖에 안 떨어져 있어 이웃사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EC 학생과 ESE 학생이 왕래를 한다든가 그런 일이 흔치는 않다.
몰타에 온 첫 주 화요일에 잉글리시 카페(https://brunch.co.kr/@haekyoung/83)에 갔다가 J를 만났는데 일본인 친구와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하고 있기에 그녀를 일본인으로 착각했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일본과 중국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중국어와 일본어가 원어민 수준인 토종 한국인으로 ESE에 다니고 있었다. 몰타에서 가장 먼저 친해진 사람이 내가 다니고 있는 EC도 아닌 ESE 친구가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집안이 삭막한 느낌이 들 때는 가끔 꽃을 사기도 했는데 그럴 때 어학원 수업이 우리보다 15분 일찍 시작하는 그녀의 어학원에 먼저 들러 꽃 선물을 주고 가기도 했었다. 그런 그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다녀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탕을 선물로 사 오기도 했었다. 그렇게 친분이 쌓이면서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J의 플랫에 놀러를 가기도 했었다.
참고로 ESE는 유럽 비영어권 선생님들의 공식 영어연수를 담당하고 있는 어학원이기도 하다. 어학원을 선택할 때 30+가 있는 EC가 우선순위였기에 ESE는 고려하지 않았지만 ESE 어학원을 다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ESE 어학원도 괜찮은 어학원인 것 같았다.
EC와 이웃사촌인 ESE
어학원 기숙사가 궁금해!
나는 어학원 기숙사에 살지를 않아서 어학원 기숙사는 어떤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J와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I 상이 기숙사로 초대를 해주어서 가볼 기회가 있었다. 정작 다니고 있는 EC 기숙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ESE 기숙사 탐방에 한껏 고무됐다.
어학원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면 스위기라는 동네가 나오는데 몰타의 주택가지역이다. 이 지역은 어학원 기숙사들도 많고 외국인 친구들이 주로 이곳에서 집을 구해 삼삼오오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J와 I 상의 초대로 스위기라는 동네도 처음 가봤다. 실은 일전 J의 초대로 이미 ESE의 기숙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I 상과 본격적으로 안면을 트게 됐고 이후에 종종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집에도 두어 번 왔었는데 이번에는 J와 I 상이 일본 가정식 음식을 해주겠다고 초대를 했다.
ESE 기숙사
동쪽을 보고 있는 우리 집은 11시 정도면 해가 넘어가니 사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이 기숙사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에 빨래가 빠삭 마른다고 했다.
어학원 기숙사는 등급에 따라 시설에서 차이가 좀 있는데 등급의 기준은 당연히 '돈'이다. 비싼 돈을 내면 당연히 시설이 좋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 J도, I도 ESE 어학원을 선택한 건 기숙사가 결정적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고 연수를 오는 사람이라면 어학원 보다도 특히 기숙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국적물문이었다. ESE가 가지고 있는 기숙사 중 이곳이 가장 높은 등급이고 1인실이 몇 개 없어 일찍 마감되는 숙소로 인기가 많은 숙소라고 했다.
몇 개의 층이 있었는데 로비와 연결된 1층은 널찍한 공용 휴게실과 공용 주방이 있었고 각 층마다 도 로비가 있었다. 2층부터는 방이 있는 구조인데 1인실, 2인실 등이 있고 1인실의 경우 화장실이 딸린 구조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다. 어학원 기숙사를 선택하든, 따로 살 집을 직접 구하든 그건 개인의 취향이다.
각 층의 로비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휴게실이 있고 1층에는 공용주방이 있다.
침실
같이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같이 지내는 사람들끼리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 기숙사는 기숙사구나 싶었다. 외부인을 초대할 경우에는 미리 허락을 구하도록 되어 있어 이미 양해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녀들이 음식을 할 때 같이 살고 있는 외국인 어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어학원에서도 숙소에서도 영어에 계속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기숙사의 최대장점이라는 걸 실감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공동 숙소를 사용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불편함을 다 감수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주부 만렙인 그녀가 만들어 준 일본 가정식
요알못인 나로서는 내가 먹을 수 있겠다 싶은 한식 외에는 다른 음식에 도전을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식재료에는 큰 관심이 없는 편인데 그녀들이 사용하는 몇 가지 향신료에는 '우와 몰타에 이런 걸 파는구나.' 면서 연신 눈이 휘둥그레졌다. 막상은 나도 향신료 사서 이런저런 요리 한번 해 먹어봐야지 싶지만 늘 그렇듯 마음만 있을 뿐 늘 먹던 거 위주로다.
음식에 진심인 J는 모카포트에 믹서기까지 챙겨 왔길래 깜짝 놀랐다. 가끔 과일을 갈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믹서기가 좀 아쉽긴 했는데 그녀는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믹서기를 정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감자전!!!!
이 사진들은 처음 초대받았을 때 J가 해준 음식들인데 고운 감자전을 몰타에서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단 말이지. 어찌 됐건 요리에 진심인 데다가 솜씨도 좋은 그녀 덕분에 집에서는 혼자 절대 안 해 먹는 음식들도 맛볼 수 있었다.
J의 첫 초대 때 만들어준 음식들
일본인인 I 상은 손주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할머니인데 나이는 50대 중 후반.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영어를 배워서 커뮤니티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어학연수를 온 멋진 분이었다. 그런 그녀가 준비한 음식은 스키야키와 네기야키다.
몰타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낮에는 더워도 밤낮으로 쌀쌀한 편이고 가끔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5월 초순이어도 꽤 춥다는 생각이 들 정도인에 오늘이 딱 그런 날씨였다. 절로 뜨끈한 국물이 생각하는 그런 날인데 국물이 끝내주는 스키야키는 안성맞춤이었다. 몰타에서도 두부와 팽이버섯을 팔고는 있지만 가격이 상당히 비싼 편이라 거의 안 사 먹는 재료 중 하나였는데 그런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한 것이 아닌가. 그동안 교토, 오사카, 도쿄에서 숱하게 먹어본 일본 음식이었지만 I 상이 만든 음식이 최고로 맛있었다. 역시 주부의 짠밥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I 상이 정성을 다해 준비한 스키야키와 네기야키
날계란을 풀어서 재료를 다 넣어서 먹어야 한다고.
I 상이 일본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요리 만렙인 J도 뚝딱뚝딱하더니 당근을 이용한 프랑스 요리와 고조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요리라며 오이를 이용한 요리를 준비했다. 보기에도 여느 레스토랑 못지않은 비주얼에 맛은 또 얼마나 맛있던지!!
맛있는 음식 초대에 빠질 수 없는 몰타산 전통와인을 곁들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맛있는 한 끼가 차려진다. 하하하, 호호호, 약 한 달 남짓의 몰타 생활과 어학원의 생활 등 저마다 풀어놓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빠지지 않는 이야기는 어학원 앞에 일식 + 한식집 차리자는 농담 아닌 농담이 늘 오갔다.
요리에 진심인 그녀들과 나누었던 맛있는 한 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몰타 생활 한 달 여가 지나면서 처음 품었던 낯선 나라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지는 대신 한국과 다른 몰타의 생활이 주는 은근한 이질감과 공부에 대한 은근한 스트레스를 이렇게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도닥이는 시간이었다.
맛있는 한 끼에 싹트는 우리의 우정
맛있는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다니는 길이 아닌 골목길로 걸었다. 사진을 찍든지 말든지 눈길조차 주지 않는 몰타의 행복한 길고양이들은 언제나 빙그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느새 어스름해지는 시간 골목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지중해의 풍경. 이국적이다 못해 환상적인 기분마저 자아내는 몰타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