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어학연수 제2장 #22 몰타트레킹(6) 빅토리아 라인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22 몰타트레킹(6) 몰타 최고의 트레킹 코스, '빅토리아 라인'의 만리장성 영국 통치시절 만든 성곽이 몰타 최고 트래킹 코스로 영국 통치시절 만든 성곽이 몰타 최고 트래킹 코스로
지중해로 둘러싸인 몰타는 바다와 관련된 액티비티가 주를 이루고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몰타를 걷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는데요. 몰타에서 트레일 코스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곳은 '빅토리아 라인'입니다. 빅토리아 라인을 걷다 보면 '몰타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라게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 함께 확인해 보겠습니다.
+ If you haven't walked the Victoria Lines then you have not seen Malta - BBC
몰타는 와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의외로 다양한 트레일 코스가 있었다. 그중 가장 '빅토리아 라인(Victoria Line)'은 영국이 몰타를 통치하던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만들었다. 이 코스는 몰타의 동쪽과 북서쪽을 연결하는 코스인데 원래는 군사방어선이었다. 몰타는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고대부터 몰타를 차지하는 나라가 지중해 패권을 차지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19세기라고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몰타 사람들이 몰타 남쪽에 살고 있기에 영국 해국은 남쪽이라고 할 수 있는 발레타 그랜드 하버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또한 남부 해안은 델리마라 요새(https://brunch.co.kr/@haekyoung/137)가 있지만 몰타의 북쪽의 경우 상대적으로 방어에 취약했다. 몰타 북부로 상륙을 시도하는 침략군에 대비하기 위해 영국군은 성벽을 건설하게 됐고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대희년에 개통을 하게 된다.
이렇게 건설된 빅토리아 라인은 1907년까지 실제로 사용됐지만 이후에는 군사적 기능을 상실하고 수십 년간 방치되면서 잊혔다. 그러다가 2019년에 영국 BBC를 통해 수십 년간 잊힌 빅토리아 라인이 알려졌는데 비교적 성벽이 잘 남아 있는 구간을 특정해 '몰타의 만리장성(The ‘Great Wall’ of Malta)'이라고 소개를 했다. 당시 BBC 여행 관련 기사에는 빅토리아 라인을 두고 '빅토리아 라인을 걷지 않았다면 몰타를 보지 않은 것이다( If you haven't walked the Victoria Lines then you have not seen Malta)'고 적었을 정도로 독특한 성벽, 멋진 경관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몰타 정부에서도 2019년에 이 길을 트레일 코스로 재정비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빅토리아 라인은 총길이는 약 12km 정도로 동쪽의 'Fort madlienna'와 서쪽의 'Fomm-Ir-Redoubt'를 잇는다. 이중 가장 인기가 많은 코스는 '만리장성'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드웨즈라(Dwejra Lines)다.
이렇게 멋진 트레킹 코스인 빅토리아 라인을 알게 된 건 ESE를 다니고 있는 J를 통해서다. J가 학교에서 선생님께 멋진 트레일 코스를 추천받았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빅토리아 라인이었다. 그녀와 함께 처음으로 빅토리아 라인을 걸었다. (사진의 노란색 경로)
두 번째 빅토리아 라인 트레일은 현지인들과 함께 걸었다. (사진의 빨간색 경로)
세 번째는 런던에서 몰타로 돌아왔을 때 친구인 이본이 빅토리아 라인을 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빅토리아 라인을 한번 더 걸었다.
몰타는 5월 중순이 되니 갑자기 더워졌고 오전 7시인데도 한낮의 태양처럼 이글거리니 오전 6시부터 J와 함께 길을 나섰다. 나도 J도 빅토리아 라인은 처음이었기에 코스 검색은 그녀가 맡았고 중간지점인 모스타 옆 마을인 나시사르에서 걷기를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골목길로 접어드니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거의 끝에 다다르니 성벽이 보였다. 성벽의 입구에 오니 '빅토리아 라인 트레일' 손표지판이 있었다. 길을 제대로 찾았구나 싶었다.
성벽의 경우 몰타의 가장 높은 곳에 쌓았는데 대략은 약 150m~200m 정도의 높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랄 것이 모든 곳이 조망 포인트였다. 구글 지도를 보면 조망이 특별히 좋은 곳은 따로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은 '탑 오브 더 월드(Top of the world)'였다. 절로 고개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니 동쪽부터 서북쪽의 고조섬까지 몰타의 풍경이 파노라마 뷰로 한눈에 담긴다. '와 - 이렇게 멋질 수가!'에 이어 '몰타 진짜 작구나!'가 절로 나온다. 나라가 얼마나 작으면 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다 보인다 말인가 싶었다.
빅토리아 라인 트레일 표지판을 찾은 것도 잠시 맨 꼭대기로 올라오니 표지판이 사라지고 없다. 어차피 서쪽으로 가야 하니 동네 골목길을 따라 모스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마차 금지' 교통 표지판이 있어 신기했고 어느 골목길을 지날 때는 음식물 쓰레기를 벽에 매달아 놓은 것도 독특했다. 주택가 골목 안쪽이었는데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문을 연 골동품 가게가 있었다. 아저씨가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라고 해서 따라 들어가니 만물상점이었다. 주방기구가 눈에 띄어 인테리어로 좋을 것 같아 충동구매를 했는데 나중에는 거의 애물단지였고 한국으로 들고 왔지만 서랍 속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다.
어학원 학생들의 경우 대부분 세인트 줄리안이나 슬리에마, 스위기 등에 거주를 하고 있고 발레타, 임디나 등 주요 관광지 외에는 가는 곳이 거의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6개월이나 몰타에 살아도 반은 관광객 모드라 경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나마 걸어보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몰타의 속살이었다.
골목길을 벗어나니 계속 큰 대로다. 이러다가 버스 노선을 걸어서 모스타까지 갈 듯했다. 구글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던 J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을 했고 다시 걸을 수 있는 곳까지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드웨자(Dwejra)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트레일 표지판이 있어 길은 잘 찾은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지역은 전부 농사를 짓는 지역인데 지대가 꽤 높았다. 얼마쯤 오르막을 따라 걸으니 딸기밭이 있었다. 아침도 거른 채 집을 나섰고 시계는 어느덧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슬슬 배도 고프고 당도 떨어지니 딸기가 먹고 싶었다. 아저씨에게 다가가 딸기를 좀 팔라고 했더니 딸기가 어차피 끝물이니 그냥 딸기를 따 먹으라고 한다. 돈을 내겠다고 하는데도 계속 괜찮다면서 먹고 싶은 만큼 딸기를 따 먹으라며 우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본인 하던 일을 계속한다. 몰타의 딸기는 4월 중순 이후부터 가장 맛있을 때라서 딸기축제도 그즈음에 열린다. 5월 중순이 넘어가면 이미 딸기는 끝물이다. 노지에서 바로 따서 먹는 딸기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이 키워내는 딸기는 하우스에서 자란 딸기와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 몰타 딸기 축제 : https://brunch.co.kr/@haekyoung/98
가장 끝부분까지 올라오니 숲이 무성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숲길이 계속 이어지고 어떤 사람은 차박을 하고 있고 또 어떤 이는 캠핑을 하고 있었다. 구글 지도상으로는 빅토리아 트레일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드웨이자 라인(Dwejra lines)에 도착한 듯했지만 성벽은 보이지 않았다. 성벽이나 외곽이 보여야 하는데 길은 계속 오솔길로만 이어지고 거친 나무로 경계가 되어 있어 길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한참을 편안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몰타의 만리장성'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누가 봐도 '어, 저건 만리장성이잖아'라는 소리가 바로 나올 정도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몰타의 서쪽 바다와 고조 섬까지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구글에서 '몰타 빅토리아 트레일'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사진이 다 이곳을 찍은 사진이었다. 성벽을 따라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빅토리아 라인은 생각보다 길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장 하이라이트인 '만리장성'을 봤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였다.
두 번째 빅토리아 라인 트레일을 걷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빅토리아 라인 트레일인지 모르고 갔다가 뒤늦게 빅토리아 라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내 말이.
몰타에 있는 동안에 몰타 트레킹 모임에 가입해 종종 현지인들과 트레킹을 다니기도 했다. 7월 어느 토요일 저녁 '임자르 대성당에서 출발하는 트레킹'이라는 공지가 떴다. 마침 시간이 괜찮기도 했고 일몰도 보고 달도 볼 수 있다는 설명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모이는 장소가 '임자르 대성당'이라는 것 외에 어느 코스로 걷게 되는지 등에 관해 아무런 정보 없이 현지인을 따라 길을 나섰다.
임자르 대성당은 4월에 딸기축제로 와 본 곳이어서 그런지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임자르 대성당에서 언덕이 보이는 풍경도 당연히 낯설지 않았고... 걷기 전에는 저곳이 빅토리아 라인 트레일 코스인 줄 전혀 몰랐다.
이런 트레킹 모임에 몇 명이나 올까 싶었는데 족히 백여 명 남짓 되는 인원이 모인 것이 아닌가. 몰타 현지인들도 있었고 몰타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도 있었고 몰타로 여행을 온 사람도 있었다. 아시안은 물론 나 혼자였기에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말을 걸어왔고 나도 흔쾌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걷다 보니 트레일 코스는 임자르 대성당에서 정면으로 보았던 언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대가 높으니 중간 즈음에서 뒤를 돌아보니 몰타 고조섬이 보였다.
언덕 중간 즈음에 약간 경사가 있는 들판에 도착했다. 어느새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멋진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날씨가 조금 흐린 것이 아쉽다 싶지만 이렇게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못했기에 기분이 남달랐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바로 어둑해질 것이라 일몰 사진을 찍자마자 사람들은 오래 지체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은 길이라서 그런지 숲은 무성했다. 자연적으로 생긴 길은 아닌 것 같고 이런 높이에 담을 쌓은 것이 신기했다. 걷다 보니 담을 쌓은 돌이 무너진 곳도 있었고 어느 구간에서는 덤불을 헤치고도 걸어야 했다. 무엇보다 길을 안내하고 있는 표지판이 아예 없다.
지대가 높아 몰타의 풍경이 한눈에 다 들어오고 주변으로 건물이 하나도 없으니 탁 트인 풍경은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산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몰타에서 현지인들은 빅토리아 라인을 등산 코스로 생각하고 있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현지인들과 함께 오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찾아오지 못할 길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길을 어떻게 알고 트레일을 하는 건가 궁금한 찰나.. 어,, 뭐지,, 여기 나 아는 곳이잖아.!!!!!!!
여기 빅토리아 라인이잖아!!!! 그렇게 찾고
족히 2m가 넘는 넓이로 약 3m 정도의 깊이로 땅을 파고 이중 성벽을 세웠는데 넓이도 깊이도 상당하니 성벽을 그냥 넘어가기는 불가능했다. 영국군이 만들었다는 빅토리아 방어선은 이런 곳이었다. 숲이 무성했던 곳 안쪽이 지난번에 J와 함께 걸었던 오솔길이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됐다. 일부러 나무를 촘촘하게 심고 옆으로 가시가 많은 덤불을 무성하게 심어 혹시 모를 침략에 대비한 것이니 오솔길에서 외곽의 성곽길로 연결이 안 되는 것은 당연했다는 걸 여기서 보니 알겠다.
빅토리아 라인 트레일이 영국군이 만들어 놓은 성벽을 따라 걷는 길이라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전체 길이 12km가 과연 온전히 이어지고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제주 올레길처럼 관리가 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적어도 표지판도 잘 되어 있고 길이 온전히 이어지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러나 기회가 된다면 전체 길을 한번 다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 허물어져 가는 성곽에 앉아 누군가가 일몰을 바라보고 풍경이 몹시 처연하게 느껴졌다. 이제 완전히 해는 넘어갔고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이 성곽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현지인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전에는 그냥 보고 지나쳤는데 벽으로 낸 구멍 사이로 대포와 총을 쏘는 용도로 사용했단다. 우리나라 성벽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용도와 쓰임새다. 몰타 정부에서 조금만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한다면 기꺼이 전구간을 걷겠다고 할 관광객도 많을 텐데 너무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웠다. 새삼 우리나라 '한양도성 순성길'이 상당히 관리가 잘 되고 있구나 싶었다.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외국인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날이 완전히 캄캄해지고 난 뒤에야 출발점이었던 임디나 대성당으로 되돌아왔다.
런던에서 몰타로 다시 돌아왔을 때 어학연수가 끝난 이본은 몰타에서 일을 구했기에 몰타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직 빅토리아 라인을 가보지 못했다 그녀와 함께 가장 하이라이트 구간인 '만리장성 구간'을 다시 찾았다. 하이라이트 구간만 보고 싶다면 구글지도에서 '빙겜마(Binġemma Gap)' 이나 '호데게트리아 성모 예배당(Our Lady of Hodegetria Chapel)'을 찾으면 된다.
여러 번 가다 보니 기존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됐다. 성벽으로 구멍들이 꽤 나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이 밑쪽 성벽을 꼼꼼히 둘러보는 사람이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이 로마시대에는 카타콤베(지하무덤)로 사용이 됐다고 하던데 일부러 그런 흔적들만 둘러보고 확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같은 자리에 서니 비로소 풍경 하나하나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하나둘 불이 켜지는 임자르 대성당 너머로 보이는 고조섬이 신비롭다. 늘 고조섬만 바라보았는데 문득 반대편은 어떤 모습일지 뒤를 돌아보니 고대 성곽도시 임디나가 지척이다. 그동안은 이곳을 걷느라 놓친 풍경이다.
어느덧 시간은 겨울이 됐고 똑같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풍경이지만 늦봄, 여름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위쪽에 있던 태양은 어느새 한참 아래로 내려와 언덕이 태양을 가린다. 계절이 저곳에서 이곳으로 움직였다. 태양빛은 더 붉었고 온통 초록으로 뒤덮였다. 보고 있는데도 그리운 풍경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몰타의 신비로운 매력에 취한다. 적어도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만나는 풍경을 모두 경험해 보지 않고선 제대로 안 다고 말할 수 없는 몰타의 시간이었다.
+ 다음 이야기 : 갑자기 이탈리아 볼로냐, 거기가 어디예요?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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