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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08. 2023

[몰타여행] 세인트피터스 풀, 지중해로 풍덩!

몰타 어학연수 제2장 #15 몰타의 핫한 여름은 여기!, 세인트피터스 풀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2장 프리인터미디어트 몰타  

#15 지중해로 풍덩! 몰타의 핫한 여름은 여기! 세인트피터스 풀(St. peter's Pool) 


날씨가 너무 더우니 절로 바다에 뛰어들고 싶어 지는데요.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타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바다만 보면 다들 풍덩! 뛰어들더라고요. 몰타에서 지중해 천연 풀장이 몇 군데 있는데요.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세인트피터스 풀입니다. 


몰타에 여름이 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세인트피터스 풀(St. Peter's Pool)로 독특하게 생긴 지형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만으로도 여긴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이다. 나 역시 몰타에 가면 여긴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곳이었다. 

갖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지중해로 뛰어들고 있는 사람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둔 어느 날 세인트피터스 풀을 가볼 기회가 갑자기 찾아왔다. 근처에 있는 델리마라 요새(Fort Delimara)가 1년에 여름 시즌에만 개방을 하는데 그곳을 가는 김에 겸사겸사 세인트피터풀까지 보고 오면 되겠다 싶었다. 델리마라 요새와 세인트피터풀이 있는 지역은 몰타의 남동쪽 해안에 있다. 이곳에는 일요일 수산시장으로 유명한 마샬셜록(Marsaxlokk)이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가까워 보이지만 걸어가기에는 다소 먼 거리고 버스는 마샬셜록 근처의 정류장이 전부라 걸어서 간다고 해도 약 30분 정도는 걸린다. 나는 델리마라 요새를 먼저 가야 하는 상황이라 마샬셜록까지 버스를 타고 간 다음 그곳에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구글 지도상 자가용으로는 1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언제나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발레타에서 마샬셜록으로 향하는 버스 배차 간격이 구글과 달랐고 마샬셜록에 도착해 볼트로 택시를 불렀는데 생각보다 너무 외진 곳이라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았다. 30분가량 볼트와 실랑이를 하다가 겨우 택시를 잡을 수 있었고 델리마라 요새에 도착하니 대략 2시간 30분이나 더 걸렸다.  


세인트피터스  풀은 워낙 외진 곳이라 친구들과 함께 모여 택시를 타는 것이 효율적이다. 성수기에는 관광객들이 꼭 세인트피터 풀을 방문하기 때문에 세인트 줄리안에서 세인트피터스 풀까지 유람선 비슷한 배가 운행하기도 한다. 마샬셜록에서도 배가 운행하는데 체류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주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몰타 남동부에 있는 세인트 피터 풀과 델리마 요새 


어학연수생들이 세인트피터스 풀은 가더라도 델리마라 요새를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곳은 몰타 현지인들도 거기가 어디냐고 나에게 물을 정도로 많이 안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름기간에만 특별 개방하기 때문에 미리 예매를 해야 하고 탐방 시간에 맞춰서 요새를 들어가 볼 수 있다.  

델리마라 요새 예약 티켓 

이런 곳을 굳이 찾아간 이유는 몰타에서 여행 방송에 출연할 뻔했기 때문이다. 몰타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긴 했지만 방송이 아니었다면 굳이 이곳까지 가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 방송에 출연했을 때 알게 된 작가로부터 방송 출연 요청이 있었는데 말하자면 JTBC '톡파원 25시' 같은 콘셉트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다. 마침 내가 몰타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으니 몰타를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몰타에서 랜선으로 방송하는 경험도 재미있을 것 같았고 또, 남다른 추억이 될 것 같아서 해보겠다고 했다. 이렇게 된 것 이왕이면 남들 다 아는 몰타 외에도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잘 안 알려진 곳을 찾다가 눈에 띈 곳이 '델리마라 요새'였다. 방송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영어 공부는 대신 몰타 공부를 해야 했고 몰타의 주요 관광지들을 땀나게 돌아다니면서 방송에 내보낼 영상을 찍고 취재하느라 거의 한 달간을 꽤 바쁘게 보냈다. 하지만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점점 나아지면서 당장이라도 방송을 할 것처럼 서두르던 방송국에서 편성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급기야는 유야무야가 됐다. 그렇다고 이미 예약을 해둔 델리마라 요새를 취소하자니 좀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다. 


델리마라 요새는 마샬셜록(marsaxlokk)에서 보이는 언덕 너머에 있다. 마샬셜록을 처음 갔을 때는 한가로운 어촌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건너편으로 굴뚝이랑 공장시설들이 있어서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그랬는데 델리마라 요새에 오니 마샬셜록에서 보이던 시설이 정체를 드러낸다. 몰타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 델리마라 발전소(Delimara Power Station)였다. 이 발전소에는 기름과 가스를 연료로 사용해 전기를 생산한다고 한다. 제주도보다 작은 나라에서 전기는 어떻게 생산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몰타에도 발전소가 있긴 있었네. 

델리마라 요새에서 보면 델리마라 발전소가 바로 앞에 있고 그 너머에 마샬셜록이 있다. 



델리마라 요새는 밖에서 볼 때는 규모가 꽤 크다 싶었다. 요새의 크기에 비해 출입문은 상당히 작았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군대 연병장 같은 넓은 운동장이 갑자기 나타났다. 건물은 어디에 있나 싶어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딱히 건물이라고 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망루가 있는 곳 아래에 유난히 성벽이 두꺼워 보이다 싶었는데 그곳이 건물이었다. 밖에서 보면 망루밖에 보이지 않는 구조니 해안 방어에 최적화된 요새라고 봐도 좋을 듯했다. 


델리마라 요새는 영국군이 주둔하던 1881년에서 1888년 사이에 몰타의 남동부 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졌다. 짧게 몰타의 역사를 훑어보자면 몰타는 1530년에 성요한 기사단이 스페인 국왕에게 매년 매 2마리를 바치는 조건으로 성요한 기사단의 나라가 됐다.  이후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에서 몰타 공방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지중해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성요한 기사단은 200년이 넘게 몰타를 통치했다. 성요한 기사단은 나폴레옹이 몰타를 점령하면서 추방됐고 1800년에 영국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를 쫗아내면서 사실상 영국 식민지에 들어가게 된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어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몰타는 영국의 중요한 해군 기지가 되었고 자연스레 세계 1,2차 대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영국군의 해군기지로 사용됐던 델리마라 요새의 전경


성벽 안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어떤 모습일지 잘 상상이 안 됐다. 가이드와 함께 내부로 들어서니 지형이 아래로 향하게 만들어진 공간은 상당한 규모였다. 외부에서 노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하의 공간을 만든 것 같았다. 내부에는 병사들의 생활공간도 있고 대비를 위해 사용했던 엘리베이터라든지 다양한 공간들이 미로처럼 다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다. 해설사는 이곳이 어떤 곳이었고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이 됐는지 꽤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충분히 둘러볼 시간을 주었다. 


몰타는 전략적 요충지로 늘 열강들에 의해 주요 전쟁터가 됐는데 세계 1, 2차 대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속국이었던 몰타는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으로부터 무자비한 폭격을 당하기도 했다. 델리마라 요새 주변 지역도 공격을 받았는데 델리마라 요새는 세계 대전 기간 중에 몰타 섬을 방어하기 위해 당시에 사용했던 대포와 폭탄이 그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었다. 문만 열면 바로 포를 쏠 수 있는 구조였다. 실제로 바다에서 보면 절벽에서 대포가 쑥 나오는 구조니 섬을 방어하는데 이 요새는 굉장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세계 대전 때 사용했던 포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다에서 보면 대포가 설치된 곳을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구글지도)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난 뒤 더 이상 요새는 사용하고 있지 않아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서 관리는 생각보다 잘 되고 있는 것 같았고 여름 시즌에 한해 특별히 개방을 하고 있었다. 총탄이 박힌 벽을 비롯해 전쟁의 흔적은 요새 곳곳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의 폭격으로 수도인 발레타를 비롯해 몰타의 상당 부분이 파손됐지만 현재는 몰타에서 전쟁의 상흔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지중해 문명이 탄생하던 순간부터 가장 최근인 제2차 세계대전까지 몰타를 뺏고 뺏었던 수천 년의 시간들은 몰타 어딘가에는 그대로 남아있다. 유럽 사람들이 몰타를 여행하는 동안 일부러 몰타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2차 대전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델리마라 요새 


델리마라 요새에서 세인트피터스 풀까지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으니 걸어가는 수밖에 없다.  5월이지만 앞으로 10월까지 비가 오지 않는 몰타이기에 농사는 대부분 추수가 끝난 빈 들판이다. 날씨가 좋으니 걷는 발걸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10분 남짓 걸었을까 세인트 피터스 풀이 있는 바다가 바로 나타났다. 

5월인데 대부분 수확이 끝난 들판. 


내가 살고 있는 몰타 중앙부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참 작은 나라인데도 동서남북이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는 몰타다. 바닷가를 따라 길이 나있는데 바닥도 평평한 곳이 계속 이어지니 트래킹 코스로 걸어도 좋겠다 싶었다. 


몰타는 석회암 지형이 대부분인데 오랜 시간 침식과 지질활동으로 인해 몰타 특유의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 냈다. 특히 이 지역은 유난히 암석이 갈라진 곳이 많은데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자연이 아름답게 빚어 놓은 천연 수영장은 보는 것만으로도 환상적이었다. 다만, 가까이 가보니 물이 상당히 깊고 파도가 너무 세고 거친 곳이라 바다에서 수영은 조금 위험해 보였다. 

원시의 느낌을 받는 몰타의 해안선. 


세인트피터풀을 가기 위해 암석 위를 걷다가 소금을 생산했던 흔적을 발견했다. 몰타를 다니면서 보니 현재 소금이 생산되고 있는 고조가 아니어도 다른 지역에서도 일정 부분 소금을 생산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볼 수 있었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섬이니 어쩌면 소금은 동네마다 생산하는 자급자족 시스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금을 생산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닷가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나왔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세인트피터스 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풍덩풍덩 경쟁하듯 바다에 뛰어든다. 멀리서 볼 때는 나도 한번 뛰어볼까 싶었는데 막상 가까이에 다가가서 보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아까본 그곳과는 높이도 깊이도 확연히 다르다. 

지중해 바다로 풍덩


전문 다이버로 보이는 사람들이 묘기에 가까운 기술로 다이빙을 선보이고 있었다. 올림픽 다이빙 대회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찔한데 거의 30분이 넘도록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묘기 대행진을 펼치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구경 삼매경이다. 

다이빙 묘기대행진




홀린 듯이 쳐다보고 있으니 나 보고도 한번 뛰어보라고 옆에서 부추긴다. 몰타에서 바다 수영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어찌어찌 수영을 배우기는 했지만 물 공포증은 다이빙까지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족히 7m 이상이나 되어 보이는 높이에서 뛰어내리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이빙을 하는 사람과 1열에서 다이빙을 직관하는 사람 


이처럼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세인트피터스 풀은 한여름에는 너도나도 자시의 담력을 실험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로 빼곡해진다니 믿거나 말거나다. 다시 마샬셜록으로 돌아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니 세인트피터 폴이 더 신비롭게 느껴진다.  


대중교통이 없으니 꼼짝없이 마샬셜록까지 약 1시간 정도는 걸어야 하지만 색다른 몰타를 만나고 나니 그리 힘든 줄 모르겠다. 저 멀리 발레타의 랜드마크 성당이 손톱만큼 보이는 풍경도 색다르다.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인적도 드물고 한적한 편이라서 모토 바이크와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도 보인다. 물론 드라이브를 즐기는 연인들도 빠지면 섭섭하다. 워낙 외진 곳이라 온종일을 투자해야 했지만 나름 보람 있고 알찬 하루였다고 일기장에 적었다. 


 + 다음 이야기 : 발레타의 심장, 성요한 대성당.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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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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