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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21. 2023

[몰타어학연수] 칠레친구 집들이 춤으로 대동단결!

몰타 어학연수 제2장 #21 어학원 칠레 친구 집들이, 춤으로 대동단결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2장 프리인터미디어트 몰타  

#21 어학원  칠레 친구 집들이, 춤으로 대동단결


어학연수는 어학원에서 영어 공부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 나라의 음식, 문화, 생활습관 등을 경험해 보는 또 하나의 문화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칠레에서 온 친구에게 강제로 춤을 배우게 됐습니다. 어학연수가 이런 것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 칠레 친구의 집들이 초대


우리 반 아이들 모두 클럽을 다녀오고 나니 대면대면하던 친구들 사이가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번 필을 받고 나니 갑자기 반애들과 모일 기회가 많아졌다. 기회가 많아졌다기보다는 일부러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다 같이 모일 기회를 만드는 느낌이었다.


▶ 나이 50세 몰타 클럽을 가게 될 줄이야. (https://brunch.co.kr/@haekyoung/142)


칠레에서 온 에스테반은 2주 전에 우리 반에 왔는데 첫날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파트너가 됐다. 그러다가 별 이야기 없이 며칠 학원을 나오지 않아서 다른 반으로 옮겨간 건가, 여행을 간 건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사를 간 것이었다.  여러 명 사는 숙소가 너무 불편해서 계속 집을 알아보았고 마침 적당한 집이 나와서 이사를 했다고 했다. 어쩐지 나에게 집을 어떻게 구했고 누구랑 같이 사느냐고 물었는데 통상 묻는 질문과 달리 굉장히 세세한 것까지 묻는 게 이상하더라니.


나이가 들어서 어학연수를 오게 되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숙소를 다들 좀 불편해하는 것은 외국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 에이전시를 통해 어학연수를 온 다는 점도 대부분 비슷했다. 대학생들이나 젊은 학생들의 경우 직접 어학원으로 메일을 보내 혼자 수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30+ 이상은 한국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대부분 에이전시를 통해 어학연수를 오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숙소의 경우도  처음에는 어학원 숙소를 신청했다고 하더라도 얼마가지 않아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처음부터 에이전시가 구해주는 숙소에서 같은 국적의 사람들과 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나중에 서로 집 렌트비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가 유학원 차리자'는 이야기로 귀결.


"도와줄 수도 있는데 왜 이사한다고 말을 하지 않았어?"라고 했더니 여행용 가방만 옮기면 되니까 다른 이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고 했다.  내친김에 "이사했는데 언제 초대할 거냐?"라고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고작 얼굴 본 게 일주일 정도 됐을까. 집들이를 하라고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흔쾌히 "좋아, 바비큐 해줄 테니 놀러 와"라고 하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나하고 이본 이랑 두어 명 정도만 가는 거로 얘기가 됐다. 그러다가 금요일에 반 애들 전체가 클럽을 함께 가게 되면서 에스테반이 토요일에 반 애들을 전부 초대하는 모양새가 됐다. 자연스레 금요일에 이어 토요일에도 반 애들 전부가 집들이를 겸해 에스테반 집에서 모이게 됐다.


슬리에마 중심가 골목 안쪽에 있는 에스테반의 집은 주택가에 다. 침실, 개인 욕실, 거실 겸 주방, 테라스가 있는 구조인데 혼자여도 좋고 조금 좁기는 하겠지만  두 명이 지내기에도 충분한 공간이었다.  일몰이 되니 침실 창으로는 발레타가 붉게 물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발레타가 조그맣게 보인다.


에스테반이 오라고 했던 시간에 정확하게 온 사람은 달랑 나와 데니스뿐. 남미 친구들은 코리안 타임 10분은 양반이고 1시간씩 늦는 건 다반사다. 언제나 늦는 애들이 꼭 늦기 마련인지라 나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호스트인 에스테반도 준비가 안 되어 있기는 매 한 가지였고. 데니스가 열심히 꼬치를 만들고 있어서 도와준다고 했더니 극구 괜찮다며 혼자 한다고 했다.


테라스에 그릴이 있어서 옵션인 줄 알았는데  그릴을 이용하는 것을 좋아해서 본인이 구입했단다. 어학연수를 하다 보면 한국에서 가져간 물품들 외에도 아쉬운 품목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자칫하면 전부 짐이 되기 십상이다. 가급적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나와 달리 그는 집안에 필요한 물건들을 죄다 구비해놓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어학연수가 끝나고도 몰타에서 살 생각이었던 것. 어학연수 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당연한 우리와 달리 남미 친구들은 자국의 경제사정이 안 좋다 보니 몰타나 다른 유럽에서 살고 싶어 했다. 몰타에서 어학연수는 영어도 영어지만 몰타에서 살거나 아니면 다른 유럽에서 살아갈 방편의 일환이었다. 아무리 경제사정이 좋지 않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취직하거나 산다는 게 아주 특별한 일인 것과 달리 우리와는 완전히 생각이 다른 점도 문화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어학원 친구들의 초대를 가끔 받기는 했지만 남자가 초대하는 건 처음이었는데 여자친구들이 초대할 때와 확실히 달랐다. 무엇보다 음식이 굉장히 단출했다. 감자샐러드처럼 보이는 음식은 칠레 전통 음식이라고 했고 우리에게 흔한 꼬치도 칠레에서 자주 해 먹는 음식이라고 했다.  에스테반이 몇 가지 칠레 음식을 만들었는데 남미 친구들은 그 음식에 대해서 하나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칠레음식이라고 해도 자신들의 나라에서도 똑같이 먹는 음식들이라고 했다. 남미의 경우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다가 독립한 나라들이 대부분이라 음식문화도 비슷한 것 같았다.

여자 애들은 아무도 안 오고 남자들만 제시간에.
전기 그릴에서 꼬치가 구워지고 있는 중.


+ 칠레 전통 춤을 배워 봅시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제야 여자 애들이 한 명 두 명 오기 시작했다. 한 명만 빼고 전체 학생이 에스테반 집에 모였다. 출석체크 아닌 출석체크에 수업 시간이냐고 하면서 다들 한바탕 웃었다. 같은 반에서 두 달 남짓 함께 보냈는데 이본, 디아나와 에스테반을 제외하면 다른 친구들과는 눈인사 혹은 간단한 안부인사 정도나 했을까 정작 대화다운 대화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어떤 선생님들은 일주일마다 강제로 자리를 바꾸게 해서 전체 학생들이 고루고루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 선생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자신과 친한 한 두 사람하고만 계속 파트너였고 두 달이나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얼굴만 알 뿐 서로를 잘 몰랐다.


분위기기가 이렇다 보니 서로 각자의 이름과 국적을 맞추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됐는데 언제나 구멍은 나다. 내 이름 발음이 너무 어려우니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끝까지 제대로 된 발음을 해보겠다며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했다.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등등 두 달을 함께 지내면서도 전혀 몰랐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새삼스러웠다. 두 달의 시간 공백을 메우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 호스트인 에스테반은 엔지니어인데 문화센터에서 자원봉사로 라틴댄스(정확하게는 무슨 춤이라고 했는데 라틴댄스 비슷한 춤인 것 같아 나는 그냥 라틴댄스라고 불렀다)를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수업 시간에 한 적이 있었다. 그는 몰타에서도 종종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춤을 춘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몇몇 친구들이 배워보고 싶다고 했고 에스테반은 흔쾌히 초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4박자 스텝을 이용한 칠레 춤을 선보였다. 몇 사람이 돌아가면서 에스테반이 알려준 스텝을 배우며 따라서 춤을 추는데 곧잘 춘다.


 친구들이 추는 춤을 재밌어하며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나에게 "너는 왜 가만히 있는 거냐?"라고 한다.

"어, 나 괜찮아."  

"아니야, 너도 배워봐."

"정말 괜찮아."


극구 사양하는데도 이본이 등을 떠미니 더 이상 거절하기도 애매해져서 싫든 좋든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내게 에스테반이 "내가 오늘 너의 그 뻣뻣한 몸을 그루브 하게 만들어 놓고 말겠다"며 계속 재촉한다. 결국 이본이 배웠던 4박자 스텝을 배워보기로 했다. 방구석에서도 한 번도 안 춰본 춤을, 수십 년 만에 춤신춤왕의 DNA가 내재된 친구들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것도 에스테반 손을 잡고 추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내 안에 흥이 다른 사람보다 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대학교 다닐 때 라틴댄스를 배운 적이 있고 학점도 A+이라 나름 춤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몰타에서 와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을 만나고 난 뒤부터 그런 생각은 완전히 접었다. 그들의 흥과 타고난 그르부 감은 넘사벽이었고 그건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 쉬워 보이던 이본과 달리 뻣뻣해도 너무 뻣뻣한 나의 정박자 스텝에 애들이 배꼽을 쥐고 웃는다.  그래, 너희들이 즐거우면 그것으로 됐다.

4박 스텝의 칠레 춤을 배우고 있는 이본


+ K-pop 댄스라도 배워 올 걸 그랬나


한바탕 웃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이야기는 자연스레 어제 다녀온 클럽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환장이었던 어제의 분위기 재연에 또 한 번 배꼽을 쥐었다. 그러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각자 자기 나라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뜨악했다. "뭔 춤이야!!" 나는 꽥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버튼도 누르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남미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춤판이 벌어졌고 브라질 출신은 삼바를, 콜롬비아는 살사를.... 뭐 이렇게 돌아가면서 각자의 필사기 춤을 선보였다.


다시 구경모드가 된 내게 한국 춤을 보여 달라며 친구들의 시선이 또 일제히 내게 꽂혔다. 부채춤이나 살풀이를 출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K-POP 댄스 중 뭐라도 하나 배워 올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를 했다.  


"한국은 '칼군무'를 추는데 나는 혼자라서 춤을 출 수가 없다."라고 하니 아예 이해를 못 한다. 뭘 하나 보여주면 이해가 될까 싶어 BTS가 부른 다이너마이트를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여줬다. 그랬더니 '와-, 한국에서는 이런 춤을 추는 거야'라고 한다. 내친김에 BTS에 대해서 설명하며 전 세계 투어를 하고 있고 10분 만에 스타디움 공연은 매진이라고 하니 못 믿겠다는 분위기다. BTS 해외공연 실황에서 외국애들 반응 보여주니 다들 뜨악하며 BTS가 이 정도 인기냐고 한다. 전 세계에 K-pop 열풍이고 남미도 K-pop 열풍이 엄청나다는데 30~40대인 이들에겐 아직 한국의 대중문화는 미지의 세계인 듯했다. (다들 나이를 묻지 않기에 누가 몇 살인지 서로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내 느낌상 대략은 30~40대인 것 같았다.)


몰타에서 만나는 남미 애들이 이런 분위기라 아직은 K-pop이 10대의 전유물인가 생각을 했는데 런던에 가보니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내게 다가와 한국말로 말을 걸기도 했고 한국에서 왔다는 것만으로 나를 연예인 대하듯 했다. 중년의 아주머니는 한국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고도 했다. 그러면 그렇지. 아직 남미는 조금 더딘 거로.  

각 나라의 문화를 익히며 친구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무르익어 간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다 보니 문득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면대면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이렇게 친밀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구나 싶어 새삼스러웠다.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가리키고 있고 신데렐라 타임이 끝났으니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 다 같이 모이는 것에 재미를 붙인 친구들은 일요일 점심때 또 다 같이 모여 세인트 피터풀로 다이빙하러 가자고 얘기가 모아졌다. 나는 다이빙은 무서워서 엄두가 안 나는데라 이미 가본 곳이어서 빠지겠다고 했다. 월요일 학교에 가니 몇몇은 녹초가 된 상태였다. 누가 다이빙을 갔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이날 이후 반 전체 학생이 서로 개인 SNS를 팔로우했고 함께 보낸 몰타를 추억하며 지금도 현재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 영어를 배우는 게 목적인 어학연수지만 어학원에서 배우는 영어만이 전부는 아니다. 외국에서 한 달 살기도 좋지만 꼭 어학연수를 해보라고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다음 이야기 :  몰타 최고의 트래킹 코스,  빅토리아 라인을 찾아서.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은 매거진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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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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