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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Sep 21. 2023

[몰타어학연수] 너는 이승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몰타어학연수 제3장 #12 인터미디어트 수업시작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제3장 인터미디어트 몰타  

#12 인터미디어트 수업 시작, 이승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 인터미디어트로 겨우 올라왔고 드디어 인터미디어트 수업이 시작됐습니다. 어학원 인터미디어트 수업은 어땠을까요? 

2주만 함께 했던 몰타 어학원 인터미디어트 친구들


+ 몰타 어학연수 베스트 시즌은? 

몰타는 어느새 7월이 됐다. 거리마다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니 나라 전체가 활기가 넘치는 느낌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배들이 드문드문 있던 스피놀라베이가 배 주차장이 됐을 정도로 꽉 찼다. 또한 몰타 바다 어디에서건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름은 여름이다. 


뜨거운 날씨가 전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몰타지만 개인적으로는 몰타 여름은 공부하기에는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가장 문제는 더위를 타는 편이라 집중력이 너무 떨어졌다. 어딜 가나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여름이면 다양한 액티비티로 몰타 전체가 시끌벅적하니 공부할 분위기 조성이 되는 느낌이었다. 


학생들이라면 몰타 어학연수는 여름이 베스트 시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라틴아메리가 일색인 국적비율도 여름에는 유러피언의 비중이 상당히 늘어난다. 게다가 청춘들이 다 모여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여름을 보내겠는가? 어느 정도 문법과 어휘가 되어 있지만 입과 귀가 안 터진 사람이라면 몰타의 여름은 베스트다. 몰타에서 유럽에서 온 친구들과 신나게 놀면서 아무 말 대잔치만으로도 영어실력이 급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면서 영어도 늘리고'가 가능한 몰타다. 확실히 대학생들의 경우 기본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상태니 한 두 달의 어학연수만으로도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스피킹 실력이 확실히 상승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일부러 몰타의 여름에 맞춰 어학연수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뜨거운 여름을 좋아하지 않고 여름 액티비티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면 다소 자유분방하고 어수선한 몰타 여름은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름에는 어학보다 휴양에 더 치중하게 되니 제대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도 몰타에서 짧게 보내고 영국이나 다른 곳으로 연계연수를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 나는 어땠냐고?

개인적으로 몰타의 여름은 분위기보다도 너무 뜨거운 날씨에 적응이 힘들었다. 날씨가 너무 더우니 공부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 선택의 문제 이긴 하다. 대부분 몰타의 여름이 베스트 시즌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베스트 시즌인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확실히 몰타의 여름은 다른 계절에 비해 활기차고 재미있는 액티비티가 많았다. 

배가 빼곡한 스피놀라 베이, 루프트 탑 바도 오픈 


+ 몰타에서 방학사용하기 

이제 몰타에서 남은 시간은 총 3주, 수업은 2주가 남았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 고군분투하느라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시험 스트레스와 영어 슬럼프가 오면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시험이 통과하든, 통과하지 않든 머리를 좀 식혀야겠다고 생각을 했기에 일주일 방학을 신청해 둔 상태였다. 시험을 4문제나 풀지 못했지만 다행히 시험을 통과했고 부담 없이 일주일 쉴 수 있게 됐다. 일주일 동안 몰타에서 가보지 못한 곳들 위주로 여행 삼아 다녀보기로 했고 뮤지엄 30일 패스를 사용하며 알차게 돌아다녔다. 


몰타 어학연수의 방학규정은 학원마다 동일한데 12주 어학연수의 경우 2주, 24주 어학연수의 경우 4주간 방학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방학을 4주간 연달아 쓸 수는 없고 최장 2주까지는 가능하다. 24주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 달간 방학을 사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학연수 학생비자를 받은 후 학원을 나오지 않고 출국하는 사례가 종종 있어서 몇 년 전에 규정이 바뀌었다. 방학사용은 따로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학원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방학을 사용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거나 사무실에 직접 이야기하면 되니 간단했다. 


그동안 방학을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딱히 길게 여행을 가고 싶은 나라도 없기도 했고 주말을 이용해 여행을 짧게 다녀오니 굳이 방학을 쓸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계획은 7월 지베르니에 수련이 피는 시기에 맞춰 파리 미술관 투어와 지베르니 여행으로 일주일 정도의 휴가를 생각하고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갈 수가 없었다. 비자가 너무 늦게 나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런던을 생각했던 것보다 한 달 반이나 일찍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여행은 취소가 됐다. 몰타에 있는 동안 프리인터미디어트 시험 통과하고 방학 일주일을 사용했고 영국으로 출국이 목요일이었기에 그 주에 방학을 일주일을 사용했다. 

몰타에서 살았던 세인트 줄리안의 여름 



+ 2주간의 어학원 수업. 

그렇게 일주일을 푹 쉬고 어학원을 다시 가니 조금 낯선 느낌이 들었다. 새로 배정받은 인터미디어트 반은  어학원 첫날처럼 또 긴장 모드다. 레벨업 후 새로운 반에 가면 언제나 내가 영어를 제일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나 이번 반 친구들은 두 달이 넘어가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어퍼인터미디어트에 가까운 수준이라 수준 차이가 꽤 났다. 엘리멘터리에서 프리인터미디어트로 갔을 때 보다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 인터미디어트로 갔을 때가 수준차이가 더 컸다.    


인터미디어트는 본격적으로 어휘와의 전쟁이 시작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은 예습을 하지 않아도 아는 단어가 70% 이상이라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크게 지장은 없었는데 인터미디어트는 어휘가 벽을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교재에도 모르는 어휘가 상당했고 친구들의 입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어휘들이 막 쏟아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누구도 내가 하는 말이 빠르다고 지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리인터미디어트에서는 내 말의 빠르기, 종종 사용하는 어휘들을 다른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선생님께 늘 지적을 받았기에 너무 스트레스였다. 진즉에 레벨업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걸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달았다. 

생전 처음 들어본 대리모라는 영어 단어 (surrogate mother)로 갑자기 토론이. 


+ 이승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몰타에서 마지막 2주는 롭 선생님과 함께 보냈다. 롭 선생님은 영국 출신인데 (지역은 어디인지 잊어버렸다) 2주 후에 EC 런던을 간다는 나에게 부쩍 관심이 많았다. 선생님은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수업시간에 그런 주제의 콘텐츠를 많이 다루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주제여서 내용들이 좀 어렵기는 해도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다. 게다가 선생님은 내가 어휘가 약하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좀 더 고급어휘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셨다. 


그러다 하루는, 선생님이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너는 이승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네? 뭐라고요? 누구요? "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었지만 선생님의 입에서 '이승만'이라는 단어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떻게 이승만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잖아. 한국인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정말 궁금하다."라고 물었다. 


세계사를 비롯해 다양한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 팟캐스트를 듣고 있으며 한국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국 정치 팟캐스트를 찾아서 듣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나 한국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만났어도 한국 정치사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일단은 간단하게 호불호도 있는 편이고 여러 가지 논란이 좀 있는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인 데다가 정치 어휘는 기초 수준도 안 되는 실력이니 자세한 설명을 하는 건 무리였다. 대신, 선생님이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써오겠다고 하니 선생님이 기대하겠다고 했다. 


어떤 내용으로 에세이를 쓰면 좋을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선생님이 한국 정치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니 이승만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시시콜콜 논하기보다 내가 첫 해외여행에서 느꼈던 문화적 충격을 바탕으로 한국의 분단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서 쓰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동안 개인과외를 받으며 틈틈이 에세이를 쓰긴 했는데 이런 내용을 에세이로 쓰게 될 줄 몰랐기에 이참에 제대로 공부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사항이니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에세이


총 4장 분량의 에세이를 작성하기까지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한국어로 먼저 정리를 한 다음 그에 맞춰 영작을 했다. 한국어로 전체 문장을 구성한 후 직역으로 영작을 했다. 그다음에 영어식 사고로 표현을 바꾸어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아직 이런 내용으로 에세이를 쓰기에는 어휘나 문장력도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내용이 내용인지라 구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름은 고민을 정말 많이 하면서 쓴 에세이를 선생님께 보여주며 "제가 아직 이런 정도의 영작을 할 실력은 안 되기에 영작이 힘든 부분은 구글의 도움을 좀 받았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니 괜찮다고 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내가 쓴 에세이를 미동도 없이 엄청난 집중력으로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선생님이 내가 쓴 에세이를 어떻게 생각할지 정말 궁금했다. 선생님이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너무 긴장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다 읽은 후 나를 불렀다. 


"이런 에세이는 처음이다. 정말 감동적이다."며 내용이 정말 좋았다며 폭풍 칭찬을 해주셨다. 덕분에 한국을 이해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선생님은 더 궁금한 게 있는 눈치였지만 더 이상 대화는 곤란했다. 내가 어휘가 부족해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부분의 표현이 좀 이상한지 설명과 함께 첨삭을 꼼꼼하게 해 주셨다. 수정이 된 문장들은 대부분 영어식 사고가 아닌 직역으로 해석해서 옮긴 문장들이었다. 선생님이 수정한 문장을 보니 '한국식 사고로 직역을 하면 외국인들에게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날의 에세이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된 건 큰 소득이었다. 


지금 보니 다시 이 내용으로 영작을 하라면 고쳐야 할 문장이 수두룩하게 보이긴 한다. 어쨌거나 롭 선생님과 함께 한 수업 덕분에 자칫 나태해질 수 있었던 몰타의 마지막 어학원 수업을 알차게 보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롭 선생님의 에세이 첨삭


수업 준비도 제대로 없이 일방적으로 혼자만 떠드는 스타일의 수업만 받다가 수업이 리딩, 스피킹, 작문 위주로 이루어지니 지금 나의 상황으로는 롭은 최적의 선생님이었다. 


나중에 다른 학생들과 우연히 얘기하다가 자신도 롭 선생님이었는데 그 학생은 프리인터미디어트 때 내가 당한 느낌과 비슷한 일을 당했기에 트러블이 많았고 바로 반을 바꾸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나에게 보여주는 자상함은 그 학생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며 진짜 자신을 대할 때의 태도와 너무 다르다며 깜짝 놀랐다. 


외국이라고 해도 각자 다 자신과 맞는 궁합이 있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어학원에서 선생님과 안 맞다면 굳이 맞추려고 하지 말고 바로 다른 선생님으로 바꾸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어학연수에서 선생님을 잘 만다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 다음 이야기 : 몰타의 여름에만 경험할 수 있는 보트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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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1장과 2장은 브런치북에서 볼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https://brunch.co.kr/brunchbook/life-of-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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