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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Nov 02. 2023

런던에서 집 구하기. [런던어학연수]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3 런던 숙소구하다 인종차별주의자라니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런던   


#2 숙소 구하다가 차별주의자가 될 줄이야.

+ 런던은 'Zon'e이라는 게 있다.

진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국으로 갈 날짜는 다가오는데 숙소가 정해지지 않으니 입이 다 바짝바짝 마를 지경이었다. 어학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와 홈스테이를 선택하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어학원까지의 거리, 비용, 한식 등을 이유로 집을 따로 구하려니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기다리고 있던 학교 기숙사, 한인 민박까지 전부 거절을 당하고 하니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런던이니 어느 지역에 숙소를 구하느냐도 문제였다. 어디가 어디인지 지역에 대한 감도 없는 데다가 생전보도 듣지도 못한 존(zone)으로 구획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Zone'은 뭐고 왜 만든 건가 싶었다. 정말 작은 나라인 몰타의 면적이 316 km²인데  런던의 면적이 1,572 km²이니 몰타보다 약 5배나 큰 도시 런던은 한눈에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마치 소인국에서 대인국으로 갑자기 뚝 떨어진 느낌이랄까. 런던이라는 '대도시'가 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20대 중반 혈혈단신 연고하나 없는 서울로 와서 혼자 집을 구할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여행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러 나라를, 여러 도시를 드나들고 처음 가는 도시도 수두룩했지만 두려운 느낌은 없었는데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런던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가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몰타에 이어 런던을 간다고 계획은 잡았지만 몰타보다도 런던은 더 공부를 안 한 상태였다. 매번 새로운 도시를 가기도 전에 이미 다녀온 것 마냥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떠나는 여행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기 때문에 몰타도 런던도 날 것 상태의 그대로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두 곳 모두 공부를 하지 않았다. 다만 몰타의 경우 우리나라에 거의 안 알려져 있는 나라이기에 여행작가로서 약간의 의무감이 있어 몰타에 있는 동안 몰타를 알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최대한 많은 곳을 가보고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런던은 전혀 아니었다. 이미 런던은 조금만 검색해도 정보가 차고 넘치는 데다가  런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으니 굳이 나까지 보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숙소를 구하려고 보니 런던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도 너무 없는 게 아닌가. 이러니 더욱 두렵고 불안할 수밖에. 숙소를 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만 급하게 공부했다.  


런던의 경우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교통 시스템인 존(zone)은 말하자면 교통요금 부과를 위한 지리적인 구역 시스템이다. 런던의 가장 중심부가 1 존이고 숫자가 커질수록 중심에서 멀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런던의 관광명소는 대부분 1 존에 위치한다. 그 말은 1 존은 숙소 가격은 어마무시하게 비싸다는 의미다. 내가 다닐 어학원인 EC 런던도 1 존(Zone)이었다. 방 하나 가격이 다들 입이라도 맞춘 듯 3백만 원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이다.  


런던의 경우 유학생들이 많아서 학기 시작인 9월 말을 기준으로 대부분 방 계약이 이루어지는데 보통은 6개월~1년 계약이 대부분이다. 내 생각과 달리 어학연수 3개월은 단기계약인 데다가 7월 초도 아닌 7월 중간에 어학연수를 시작하니 너무 애매한 시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런던도 7월과 8월은 여행 초성수기라 안 그래도 비싼 물가가 치솟는다는 걸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2 존을 넘기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숙소가 1 존에 있다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거리가 다소 먼 4 존이라고 다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학원까지 튜브로 30분 이내의 거리라면 존에 상관없이 숙소를 정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런던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여 남짓. 이곳저곳 찔러볼 여유가 없어 에어비앤비와 영국사랑 두 곳에 집중하기로 했다. 몰타에서 어학원 수업 마치고 대충 숙제를 끝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매일같이 숙소 검색하느라 새벽 3시를 넘기기 일수였다.


이러다가 정마로 런던 어학연수 숙소 비용으로 3개월에 천만 원을 써야 하나 싶어 마음은 초조해졌고 하루하루 속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런던은 존(Zone)이라는 것이 있다.
눈이 빙빙 돌아가던 지하철, 국철 노선도


+ (인종) 차별하는 거니?

영국사랑의 경우 어학연수 기간이 애매하니 몇 개월씩 지낼 수 있는 숙소는 아예 없었다. 간혹 여름 방학기간 동안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는 학생의 경우가 있어 방을 재임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미 그런 곳은 다 예약이 된 상태였다. 간혹 일주일 혹은 보름 정도 자신의 방을 저렴한 가격에 임대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너무 기간이 짧으니 매번 이사를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몇 날 며칠 에어비앤비와 영국 사랑 둘 다 아무리 검색을 해도 초성수기 기간에 걸쳐 있는 7월 중순에서 10월까지 내가 머무는 전체 기간 동안 집을 구하는 건 무리였다. 고심 끝에 이사를 한번 할 생각을 하고 기간을 나누어 검색을 하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동네에서 살기보다 런던에서 이사를 한 번하면서 다른 동네까지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에어비앤비에서 한 달 혹은 한 달 보름 정도의 기간에 몇 군데 가능한 집이 있기는 했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예약을 완료하기 전에는 정확한 주소가 안내되지 않기에 해당숙소에서 EC런던으로 가는 방법과 소요시간 등 궁금한 내용을 묻는 메시지를 먼저 보냈다. 총 4곳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세 곳은 질문에 답을 하기는 했는데 느낌이 좀 쎄했다. 문자이긴 하지만 뭔가 떨떠름한 느낌이랄까. 내가 너무 직접적인 질문을 하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던 찰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다.


맨 마지막 숙소에서 답신이 오기를 내가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어비앤비 예약전 궁금한 사항에 대한 질문과 답.


아무리 내가 사정이 급하기로서니 에어비앤비의 특성상 아무 집이나 들어갈 수는 없었다. 여기서 '아무 집이나'의 의미는 가령, 남자 혼자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곳은 피하기로 했다. 런던의 경우 주택임대비용이 워낙 비싸다 보니 방이 2개 이상인 경우 하나는 자신이 쓰고 나머지는 재임대가 아주 흔한 경우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을 모르는 외국인 남자와 단 둘이 혹은 남자들만 있는 집에 같이 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적응도 안 될뿐더러 좀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추가로 질문을 덧붙였다.


"혹시 호스트가 남자인가 여자인가? 게스트는 나 혼자인가? 혹시 또 다른 게스트가 있는 경우라면 그들의 성별을 알고 싶다."  

 

내 질문에 "자신은 남자이며 내가 머무는 기간 동안 여자 게스트도 예약을 했다. 게스트 방은 총 2개다. 자신은 예약을 받을 때 게스트의 성별, 나이, 인종 등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으며 물어서도 안 된다"는 취지의 답신이 왔다. 내용은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느낌이었는데 문장 중에 '차별금지(Nondiscrimination Policy)'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엥? 차별 금지? 도대체 어떤 포인트가 '차별'이라는 것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야 할 집에 남자 혼자가 살고 있고 방이 하나뿐이라면 피하고 싶은 건 한국인의 정서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정서인가 갑자기 헷갈렸다. 사전에 그런 정보를 묻는다는 게 (인종) 차별이 될 수 있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와도 너무 다른 문화적 차이로 인해 자칫하다간 본의 아니게 (인종) 차별주의자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 그래서 앞서 세 군데의 답신 메일이 좀 싸한 느낌이었구나 싶어 머리가 띵했다. 즉각 답신으로 '네가 충분히 오해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다. 한국에서는 남자 혼자 있는 집에 여자가 혼자 숙박을 하는 건 흔한 일은 아니어서 물어본 것일 뿐 (인종) 차별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아 정중하게 메일을 다시 보냈다. 결국 처음 서치했던 네 곳은 가격, 거리 등이 애매해 계약하지 않았다.



+ 에어비앤비로 숙소 구하기

모든 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한 달씩 조회해 보니 많지는 않아도 영 집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위의 해프닝을 겪은 다음부터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아주 구체적으로 질문이 바뀌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인종) 차별주의자가 될 수 없으니 질문을 아주 구체적으로.


검색, 검색, 검색,, 밤낮 가리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에어비앤비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이젠 걸어 다니면서도 에어비앤비 마크가 공중에 둥둥 떠다닐 지경이 됐다. 그러다 8월 말까지 검색을 했을 때 핀즈베리 파크 근처의 숙소에 한 달에 800파운드라는 놀라운 가격의 숙소를 발견했다. 핀즈베리파크는 빅토리아라인으로 어학원까지 3 정거장이니 집에서 넉넉잡고 20분 거리이니 내가 원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다른 곳과 비교해서 터무니없이 싼 편이니 오히려 의심됐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장문의 질문지를 보냈다.


나보다 더 장문의 답장이 왔다. 한 집에 8명이 살고 있고 19~28세의 젊은이들이고 바빠서 그들을 자주 보지 못할 것이고 등등.. 내 질문이 아주 흥미로웠다는 그녀의 답장이었는데 나 역시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는 사람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숙소 가격이 다른 곳이 비해 너무 저렴한 건 특별한 상황으로 숙소 주인인  L은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녀는 온라인 영어 선생님인데 여름 기간에 펼쳐지는 에든버러 연극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한 달 남짓 집을 비울 예정이라고 했다. 자신의 집을 주인 몰래 재임대를 하는 상황이었기에 혹시 주인과 마주치게 될 경우 내가 자신의 친구라고 할 것과 자신의 짐 일부를 내가 보관을 해주는 조건이었다. 방 하나에 한 달에 삼백 만원을 써야 할 상황이었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에어비엔비를 이용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수수료까지 더하니 40일 숙박에 약 1,100파운드에 결제를 했다.


거의 한 달여 만에 적당한 거리와 합리적인 예산 모두 충족하는 첫 번째 숙소를 찾았다. 

이렇게도 친절한 답장이라니


+ '영국사랑'에서 숙소 구하기

이젠 두 번째 숙소 구하기가 시작됐다. 두 번째 숙소는 '영국사랑'을 집중공략했다. 유학, 워홀, 어학연수 등으로 런던에서 숙소가 필요하다면 '영국사랑'은 필수다. 한국의 네이버 카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첫 번째 집이 템즈강 북쪽이니 두 번째 숙소는 템즈강 남쪽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눈이 벌게지도록 영국사랑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기를 몇 날 며칠. 새벽녘에 방 하나에 월 900파운드가 새 게시물로 등록됐다. 에어비앤비도 그렇고 영국 사랑도 그렇고 검색을 많이 하다 보니 대략적인 위치만 봐도 어떤 곳인지 감이 왔다. 집구 하다가 런던 지리를 다 익힌 셈이 됐다.


워털루역 보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간 엘리펀트 캐슬역 근처로 어학원까지 노던라인(검은색) 직통으로 30분 정도였다. 게다가 1.5 존이라 데이트모턴, 세인트조지 대성당까지 버스로 10분 이내 슬슬 걸어도 30분 정도고 런던아이, 웨스트민스터 사원 방면 역시 비슷한 거리였다. 걷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주 최적인 지역이었다. 바로 메시지를 넣었고 궁금한 것 이것저것 물어보고 확인하고 계약을 완료했다. 정식 계약서 작성이 되는 곳이었기에 런던 입국 심사할 때 집 계약서로도 문제가 없었다. 다만, 통상 집을 먼저 보고 계약을 하는 뷰잉이 가능했는데 나 같은 경우는 몰타에 있는 관계로 뷰잉 없이 사진 하나만 믿고 계약을 진행해야 했기에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내 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숙소비용으로 3개월에 천만 원을 써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성수기 포함하고도 이 정도 가격이면 나름 선방한 셈이었다. 하지만, 사람마음이라는 게 집을 구하고 나니 두 군데 모두 뷰잉 없이 숙소를 결정한지라 내심 숙소 컨디션이 어떨지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런던 네이버 카페 같은 영국사랑


+ 핀즈베리파크

. 4층 건물에 8명이 함께 살게 되는 집은 어떤 집일지 너무 궁금했다. 외국인과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나이 50에 참 별 걸 다 경험하는구나 싶어 설렘 반, 걱정 반이었다. 런던이 처음이라는 내가 길을 헤매지 않도록 공항에서부터 숙소까지 어떻게 찾아올 수 있는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펜즈베리파크 역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숙소에 들어와서도 거의 1시간이 넘게 이곳저곳 설명해 주고 내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나 필요한 정보들들 꼼꼼하고 세심하게 알려준다. 내가 런던에서 추가적으로 필요한 정보에 동네 맛집, 카페까지, 주말에 공부하기 적당한 카페와 산책로 등등 그녀 덕분에 모든 것이 처음인 런던과 퀸즈베리 동네가 살았던 곳처럼 편안해졌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녀가 직접 그린 그림 세 점이 걸려있고 방 안에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가 있는 작은 방은 8월 말까지 내가 지내게 될 나의 숙소였다. 지중해 바닷가 뷰를 자랑하던 몰타의 숙소과 비할 바는 안 되지만 이만하면 방도 좁지 않고 창문도 크니 혼자 지내기에는 괜찮았다.

첫번째 숙소였던 핀즈베리파크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자세한 사용설명서를 남겨주었다.


거실과 주방, 화장실을 공유하기에 20대 중반까지 8명이 살고 있어 행여나 번잡하지는 않을까 염려했는데 기우였다. 각자 들고나는 시간이 모두 달라서 지내는 동안 한 두 명 외에는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다. 내가 온 첫 주 금요일에 거실에서 4명 정도가 한 잔 하면서 스몰토크를 나누고 있기에 인사를 했고 그들의 모임에 같이 하게 됐다. 집이 런던이거나 영국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학생은 아무도 없고 다 나름대로 직업이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한꺼번에 물으니 자연스레 어학원 가기도 전에 스피킹 테스트였고 30분 정도까지는 괜찮았다. 20~30분이 넘어가니 처음에는 나를 배려해 말을 천천히 하던 것이 원래의 속도대로 말을 하는 데다가 일상을 벗어난 주제가 이어지니 하나도 못 알아들을 지경이 됐다. 얼추 이런저런 얘기도 끝나고 카드 게임을 시작하는데 게임이라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더 이상 함께 하기에는 내가 너무 피곤했다. 그중 한 명은 뮤지션인데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며 초대를 받았지만 아쉽게도 콜드플레이 공연과 딱 겹치는 바람에 가 보지를 못한 건 상당히 아쉬웠다.  


애들이 다 인상이 좋은 것과 달리 공동생활이라 욕실과 주방이 상당히 지저분한 편이었는데 영국 20대들의 지저분함은 상상초월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사람이 온다고 했지만 쓰레기통 비워주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결국 지저분함을 견디지 못한 내가 욕실과 주방청소를 하는 수밖에. 그런 것도 다 괜찮았는데 이 집에서 가장 적응이 힘든 건 카펫 문화였다. 국물이나 흘릴 경우 카펫을 오염시킬 수 있는 반찬이 많은 한식의 특성상 행여나 카펫에 흘릴까 봐 밥 먹을 때마다 긴장모드였다. 주방에도 카펫이 깔려 있는데 조심성 없는 애들이 치즈 등 음식찌꺼기를 흘리고 청소를 제대로 안 하는 바람에 구더기가 생겨서 난리가 난 뒤로 주방 카펫은 제거를 했는데 어찌나 개운하던지.


어학원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고 동네에 어마무시하게 큰 공원이 있는 데다가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경기장까지 걸어가면 1시간 남짓이었다. 큰 공원을 가로질러가면 토트넘 경기장까지 30분 정도니 걷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없이 좋았던 핀즈페리파크였다.

욕실청소와 주방청소는 내 몫
영국 20대의 카드게임.


+엘리펀트 앤드 캐슬

동네 이름이 코끼리 성이라니 너무 희한했다. 처음에 내가 이곳에 숙소를 구했다고 하니 지인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곳은 히스패닉과 흑인들의 노동자 계급이 많이 살고 있는 우범지대라고 했다. 숙소를 구할 때 재개발이 된 지역이라고 되어 있어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인에게 그 말을 듣고 나니 걱정이 돼 미리 집을 보러 갔었다. 첫날 엘리펀트 앤드 캐슬 지역을 와보고 '숙소 잘 못 구했구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원래 주거지이고 반대편이 전부 재계발이 되긴 했으나 와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우범지역은 전혀 아니었다. 규모가 큰 연립주택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단지는 앞에서는 이렇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내 방의 큰 창으로 보이는 정원뷰도 좋았고 매일 아침 청설모가 오래된 나무 위로 오르내리는 풍경은 일상이었다. 동네에서 청설모를 마주치는 건 길고양이보다 더 흔한 일이었다. 운이 좋으면 청설모가 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마치 내가 자신을 보듯 나를 구경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도심의 풍경이라곤 믿기지 않았던 런던이었다.

두 번째 숙소였던 앨리펀드 앤드 캐슬의 내 방


매일 아침마다 다람쥐 구경


숙소를 엘리펀트 앤드 캐슬로 옮기자마자 EC 런던이 유스턴에서 엔젤로 이사를 했는데 노든 라인이어서 어학원까지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 정말 좋았다. 갈색의 베이컬루 선(Bakerloo Line)이 함께 운행되고 있으니 웨스트민스트까지도 10분이고 시내까지도 한번에 갈 수 있어 교통도 정말 좋았다.


특히 이 지역은 재개발이 된 지역으로 나중에 따로 하나의 포스팅으로 작성하겠지만 굉장히 감동적인 공간이었다. 어학원에서 이 지역에 관해 발표를 했는데 선생님도 나도 모르는 내용이었다며 깜짝 놀랐다. 지역의 역사도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도서관'이 지역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4계절마다 동네 축제도 있고 무슨 날인지는 모르겠으나 남미에서 온 사람들이 축제를 열기도 했고 동네에서 굉장히 다양한 행사가 많았다. 커뮤니티에 가입하니 각종 행사 정보를 알려주는 메일을 여전히 받아 보고 있는데 흥미로운 행사가 참 많았다.

재개발 지역이었던 엘리펀트 앤드 캐슬은 곳곳에 코끼리 조형물이 있다.
 도서관 가는 길은 언제나 흥미로움 그 자체.
재개발이 된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서관은 나의 공부방.  


채 4개월이 되지 않는 기간을 보낸 런던이지만 두 지역에 너무 정이 들었다. 다음에 런던을 다시 간다면 관광지가 아니라 이곳을 꼭 다시 가보고 싶다.


+ 다음 이야기 : EC 런던의 첫날, EC 몰타와 너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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