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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pr 15. 2024

로마, 아는 만큼 보이고

#6 판테온, 콜로세움, 성베드로 성당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이탈리아 로마

#6. 로마,  아는 만큼 보인다.  

20년 전에 패키지로 다녀온 로마는 나에게 더 이상 로망은 아니었다. 가이드는 쉴 틈 없이 이것저것 설명을 했지만 사실 기억에 남는 것은 많지 않았음에도 책으로만 접하던 문화유적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흥분은 상당했었다. 고작 하루 반을 머물면서 수박겉핥기 식으로 본 로마였지만 얕은 감상을 끝으로 로마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고 로마를 다시 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타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정한 뒤 지중해만이라도 제대로 알아보자 싶어 본격적으로 '지중해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로마에 대해 알면 알수록 20년 전 수박겉핡기 식으로 다녀온 로마는 계속 아쉽게 느껴졌고 꼭 내 눈으로 그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20년 만에 다시 로마로 향했다. 다시 로마에 갔을 때, 아는 만큼 보였고 보이는 만큼 느꼈고, 느끼는 만큼 감동적이었다. 남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로마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으나 뒤늦게 감동받은 지극히 사적인 감상의 로마에 관한 이야기다.


+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  판테온

미켈란젤로는 말했다. '판테온은 천사가 설계했다'고. 가히 천재 예술가의 최고의 극찬을 받은 '판테온'이라 하겠다. 20년 전 로마 패키지여행에서 판테온을 안 갔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리만치 판테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판테온의 'ㅍ'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랬기에 로마를 다시 간 다면 내게 일 순위는 무조건 '판테온'이어야 했다.


판테온은 알다시피 건축학적으로 너무 중요하기에 로마에서 꼭 봐야 하는 곳 중 하나다. 판테온이 위치한 곳은 트레비 분수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라 로마 도보투어를 할 경우 이 두 곳을 거쳐 나보나 광장으로 이어진다. 트레비 분수도 그랬지만 판테온 주변도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카페와 상점들이 즐비했고 엄청난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에서 골목골목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불쑥 판테온 입구가 나타났다.

'판테온이 저렇게 생긴 곳이었구나' 싶으면서도  기억나지 않는 건 여전했다. 그리스 신전의 모양의 입구에 새겨진 문장의 의미가 궁금해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 M·AGRIPPA·L·F·COS·TERTIVM·FECIT. " "루시우스의 아들인 마르쿠스 아그리파가 세 번째 집정관 임기에 만들었다.”


에이, 설마, 우리가 미술시간에 석고상으로 그리던 그 아그리파는 아니겠지 싶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세상에나 그 아그리파가 맞았다.

석고상으로 많이 그렸던 아그리파가 판테온을 만들었다니.


판테온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지붕의 돔인 쿠폴라가 건축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데 문제는 외부에서 볼 때 이 돔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판테온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쩌면 이것일까 싶었다. 어쨌거나 생전 처음 보는 건물이 되어 버린 판테온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은은한 세피아 톤으로 가득 찬 판테온의 내부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3차원공의 공간이 평면처럼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생경하다 보니 판테온의 돔을 지칭하는 위대한 숫자들, 예를 들자면 지름과 천장 끝까지의 높이가 43.3m, 콘크리트 돔의 중량 4,535톤, 돔 중앙 지름 지름 8.9m 등 뭐 이런 것은 다음 문제였다.  

회화적인 느낌이 들던 판테온의 내부


판테온 안으로 들어서면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먼저 가 닿는 곳은 구멍이 뚫린 천장이다.  비가 오면 비가 샐 텐데도 천장에 구멍을 뚫은 이유는 고대 로마의 다신교 사회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판테온(Pantheon)은 이름에서부터 모든 신(Pan)에게 받쳐진 신전(theon)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에는 신전에서 동물을 태워 신을 숭배했는데 로마사람들은 하늘의 신에게 닿을 있는 제물을 태운 연기라고 믿었다. 그랬기에 연기가 빠져나갈 곳이 필요했고 판테온의 천장에 무려 1.2m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을 뚫은 것이었다.  

판테온 천장의 구멍은 연기가 빠져나가는 용도였다.


건축학적으로 무려 8m에 달하는 거대한 돔을 바치는 기둥이 없게 지어진 것도 대단했지만 무게 분산을 위해 홈을 파낸 단면의 패턴의 간격이 너무 정교해 아찔하다 싶을 정도였다.


가만있어 보자. 판테온이 로마 대화제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어 완성된 해가 139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885년 전의 이 건물이 지어진 것이라 생각하니 "와-  소름"이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우리나라가 삼국시대 초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도대체 로마사람들은'이라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수학적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조형적인 판테온은 이런저런 것을 다 떠나 그런 일반적인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돔과 그 돔으로 시시각각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주는 경건함이 더해지니 정말 엄청난 곳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논쟁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천장이 뚫려 있으니 비가 오면 비가 들이친다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는데 비 오는 날 찍은 영상을 보니 비가 들이치는 것 같기는 했다. 정확히 천장 아래에는 이렇게 4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빗물이 빠지는 배수구 장치였다.


로마에 비 오는 날 판테온 천장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보는 것도 아주 특별한 여행의 추억이 아닐까 싶었다. 혹 비 내리는 날 로마에 있다면 무조건 판테온 추천이다.

비가 오면 바닥의 배수구로 빗물이 빠져나간다.


돔 건축의 표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판테온은 세계 유수 건축물의 모티브가 됐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이 있다. 무려 50년간이나 지붕이 없는 채로 존재했던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의 돔을 부르넬레스키가 판테온을 본떠 완성시키게 된다. 또한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의 돔도 판테온의 돔을 모티브로 지어졌다.


판테온은 신전이었지만 로마가 망하면서 7세기 초 성당으로 개축된 후에 르네상스 시대에 무덤으로 사용됐고 현재는 가톨릭 교회의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매주 주일미사가 열리고 중요한 축제나 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사용된다고 하는데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 방문해 봐도 좋을 것 같았다.

돔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천장의 수학공식이 조형미로 표현된 듯
현재는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판테온


규모는 상당해도 굉장히 단순한 건축물인데 그 의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관람하는데 생각보다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판테온에서 꼭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무덤이 있는데 바로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건축에만 너무 꽂혀 있다 보니 한쪽 벽면에 너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그곳이 라파엘로가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왜 하필 판테온이었을까'싶었는데 판테온을 나서기 위해 밖을 내다보는 순간 왜 그토록 이곳을 원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일반인의 눈에도 이럴 진대, 미켈란젤로의 눈에, 라페엘로의 눈에, 브루넬레스키의 눈에 비친 판테온은 얼마나 영감을 주는 곳이었을지 새삼스러웠다. 미켈란젤로는 오죽하면 '천사가 설계했다고'라고 까지 말했을 정도니 말이다. 판테온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비로소 오랜 숙제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판테온 안에서  바라본 풍경


+ 두 번 놀랐던 콜로세움

워낙 바쁘게 다니는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콜로세움은 외부에서만 감상하고 내부에는 들어가지를 않았기에 콜로세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7월 로마의 성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콜로세움은 엄두를 내지 못했었고 11월에 로마를 다시 갔을 때야 콜로세움을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여행 비수기라고 해도 콜로세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콜로세움을 보기 전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타투스 개선문에 시선이 먼저 갔다. 먼저 콜로세움 옆에 서 있는 개선문은 어디선가 본 듯 익숙했는데 나폴레옹이 이 개선문에 반해 파리에 똑같은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콘스탄티누스라는 이름에서 짐작되듯 기독교를 공인하고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문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를 상대로 벌인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티투스 개선문은 포로로마노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문으로 규모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보다 작지만 로마에 남아 있는 3개의 개선문 중 가장 오래됐다.  이 개선문은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기념으로 만들어진 문인데 그런 걸 모른다고 하더라도 조금만 눈썰미가 있다면 그야말로 '개선'문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아치 양쪽으로 예루살렘의 성물을 가득 실은 모습과 네 마리의 마차에 올라탄 인물이 새겨져 있는데 누가 봐도 전쟁에 이긴 후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장면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로마에 워낙 유적이 많아서 시큰둥하게 생각했다가 뒤늦게 화들짝 놀랐던 것은 다름 아닌 티투스의 아버지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바로 콜로세움을 건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네로 다음으로 황제에 올랐던 그는 혼란했던 로마의 정국을 타계하기 위해 네로의 황금궁전의 인공호수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을 건설한다. 다만 그는 콜로세움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타계했고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됐다.


인류최대 문화유산이라고 불리는 콜로세움은 폭군이었던 네로의 기억을 지우는 작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루살렘 정복 후 각종 전리품을 가지고 개선하는 장면이 새겨진 티투스 개선문


너무 유명해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콜로세움의 내부는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했다. 현재 콜로세움은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로마 정부에 따르면 2024년까지 3차 복원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했다.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아봤을 때도 느꼈지만 외관만 보면 콜로세움이 무려 2천 년 전(정확히는 1944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로마라는 도시가 얼마나 오래된 도시인지 한 번씩 숫자를 들먹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 같다.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섰다. 총 4층에 높이 48m, 둘레 500m, 경기장 내부 길이 87m,  폭 55m, 아치형 출입구는 80개, 행사가 끝난 뒤 약 30분이면 모든 관람객이 빠져나간다는 얘기를 모든 해설사들이 앵무새처럼 읊는다.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라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콜로세움 내부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난다. 멀쩡함을 가장한 시간의 흔적은 없다는 듯 '콜로세움'이 가진 약2천 년의 시간도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모습의 콜로세움을 보고 나니 그제야 뭔가 역사적 유물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콜로세움의 복도는 곳곳은 박물관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콜로세움이 어떤 과정으로 건축이 되었는지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전시물과 모형으로 이해를 돕고 있었다.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콜로세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콜로세움 내부


콜로세움은 원형경기장으로만 생각했지 그 이후에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는 거의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콜로세움이 지금껏 원형경기장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콜로세움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적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당시 로마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동물 뼈, 가령 아프리카의 코끼리, 하마, 타조와 표범, 사자, 기린 등이 출토되는 것이야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첫 번째 코즈모폴리턴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들의 세간살이가 발굴 유적으로 전시되어 있어 깜짝 놀랐다.


콜로세움은 공식적으로 405년 오노리우스 황제가 격투기를 폐지하면서 역사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 시장이었다가 공동묘지였다가 노숙자들이 기거하는 것도 모자라 야생동물이 살기도 했었고 그러다가 또 누군가는 이곳에 농사를 짓기까지 했다. 이곳이 기독교인의 박해 장소였다니 더 놀라웠다. 1675년에 콜로세움은 가톨릭에서 공식적으로 기독교 수난 현장으로 복구되었고 1749년에는 성지로 지정됐는데 콜로세움의 역사가 이렇게까지 드라마틱할 수도 있나 싶어 혀를 내둘렀다.  

로마에서 80년과 2024년의 숫자놀음이란?  
한때 시장이기도 했었던 콜로세움
기독교 박해 현장이자 성지인 콜로세움


콜로세움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독특했다. 마치 발라놓은 생선 가시뼈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도 바닥 부분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았다. 5만을 수용한다는 경기장은 계단식 구조로 인해 눈으로 볼 때는 5만의 경기장 치고는 좀 작은 게 아닌가 싶었다. 내친김에 한 바퀴 돌아보자 싶어 걸었는데 한참이 걸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보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느낌은 더 극적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하관람은 따로 예약이 필요했다.


저곳에 물을 채우고 배까지 띄워 모의 해전을 펼쳤다 상상하니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이런 아레나 경기장에서 그런 공연이 펼쳐진다면 엄청날 텐데 이미 2천 년 전에 그런 공연이 이곳에 펼쳐졌다니 시작도 전에 뭔가 로마 사람들에게 의문의 1패를 당한 느낌이지 않은가.


걸어 다니며 경기장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자니 현대의 경기장과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조직적이었다. 그 까마득한 옛날에 날이 더우면 차양을 치고 관람객의 동선을 분산하는 기발한 생각을 해내고 실현으로 옮긴 실체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지하에 물을 채우고 배을 띄우 해전을 재현하기도 했다는데.


모든 것은 다 사라졌고 기록으로 남은 것에 의해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콜로세움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콜로세움을 나서며 문득, 전 세계 사람들이 로마를 한 번쯤 '로망'으로 삼는 건 어쩌면 이 콜로세움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었다. 성직자 베다는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서 있으리라'라고 했다는데 콜로세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로마에 대한 로망은 오늘도 누군가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현재진행형이지 않을까 싶었다.

콜로세움의 낮과 밤


+ 베르니니를 알게 해 준 성 베드로 대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 입구에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피에로 복장의 근위병을 만났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경비병들은 모두 스위스 출신들로만 구성되는데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1572년 신성로마제국이 로마를 점령 후 독일 용병들에게 돈을 주지 않자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하게 되는데 바티칸에 머물던 교황이 스위스 용병 부대의 도움을 받아 산탄젤로 성(천사의 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당시 100명이 넘는 용병이 전사했는데도 42명의 용병이 끝까지 교황을 호휘하며 비밀 통로를 이용해 교황을 피신시키게 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현재까지도 교황청을 지키는 근위병은 스위스 출신으로만 뽑고 있다.


이때의 교황은 클레멘스 7세로 메디치 가가 배출한 교황 중 한 명이다. 이 사람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교황인데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영국 왕 헨리 8세가 가톨릭으로부터 이혼을 허락받지 못하자 영국 성공회를 만들게 되는데 바로 당시의 교황이 클레멘스 7세다. 암기 위주의 역사공부를 한 세대인지라 역사적인 사건이 조각조각 별개로 존재하던 내용은 여행을 통해 이렇게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는 큰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눈길을 주지 않기가 힘들 정도로 독특한 복장을 입고 서 있는 근위병은 표정도 없고 아무런 미동도 없다. 누군가는 나처럼 피에로 복장 같다고 생각할 근위병의 제복은 무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디자인이다. 도대체 우리의 다빈치 선생님은 안 한 게 무엇인지 찾는 게 빠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또 하게 만든다.

성 베드로 성당 근위병의 제복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디자인한 옷이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건 미켈란젤로가 24살에 조각했다는 피에타 상이다. 이 작품은 하나의 대리석을 통으로 깎아 만든 작품으로 미켈란젤로가 사인을 남긴 유일한 작품이다. 자신이 만든 작품임에도 '크리스토포 솔라리'라는 작가의 작품으로 사람들이 오해하자 보란 듯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어느 날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올려다본 하늘에 수많이 별이 빛나고 있었고 미켈란젤로는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세상을 천지창조하시고도 이름을 새기지 않았는데 내가 뭐라고 이름을 새겼는가'라고. 그래서 이 피에타가 미켈란젤로가 사인을 남긴 유일한 작품으로 남았다.


작품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만 이렇게 방탄유리 너머에서만 관람이 가능했다. 자신을 재림예수라고 지칭하던 사람이 교황에게 만나줄 것을 요청했고 무시당하자 이에 대한 분풀이로 피에타 상을 망치로 15번이나 내리치면서  성모 마리아가 훼손된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방탄유리 안에 전시 중이다.   


사실 이  작품은 정면에서 보면 마리아가 너무 큰 성인을 안고 있는 모습이고 예수님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 위에서 내려다봐야 이 적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길.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익히 알고 있다고 해도 정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마리아의 어깨띠에 미켈란제로의 서명이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언제 가더라도, 몇 번을 가더라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절로 경건한 마음이 드는 곳이라 말하고 싶은데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이번 여행에서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이 있으니 바로  '발다키노(Baldacchino)'다.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제단으로 향하다 보면 중간에 눈에 띄는 것이  발다키노다. 발다키노는 고대와 중세 때 권력자와 신들의 제단, 설교단 등을 덮는 장식을 지칭한다. 성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는 높이가 무려 30m인데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 높이가 더 실감난다.  4개의 기둥에는  영혼이 하늘로 향하는 모습이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재료가 청동이고 무게만 약 37톤에 달한다는 자료를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성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는 바로크 조각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성 베드로 성당의 발다키노 이후 발다키노가 성전 건축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됐다고 한다. 발다키노에서 계단으로 아래로 이어지는데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실제 이 발다키노의 용도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 성인의 무덤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발다키노 아래에 베드로의 무덤 외에도 22명의 교황이 함께 안치되어 있지만 일반인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이 쳐져 있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발다키노
발다키노 아래로 성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사진 왼쪽=성 베드로 대성당 홈페이지)


이런 작품을 만든 '베르니니'라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베르니니는 로마가 필요하고, 로마는 베르니니가 필요하다"


미술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걸출한 예술가가 많은 이탈리아에서 솔직히 '베르니니'까지 닿지 못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름만 모를 뿐, 베르니니가 로마에 기여한 공이 워낙 크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저곳에서 베르니니의 작품을 접했다는 걸 알면 놀랄 수밖에 없다. 열쇠 모양의 성 베드로 광장, 나보나 광장의 분수, 산탄젤로 다리 등이 모두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베르니니를 확실하게 알게 된 것만 으르도 의미가 있었다.

나보나강의 분수, 산탄젤로 다리, 성 베드로 광장 등이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발다키노는 내년 2025년 희년에 맞춰 올해 연말까지 복원 공사에 착수한다는 교황청의 소식이 들려왔다. 발다키노 복원 공사는 1758년 이후로 260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발다키노에 쌓인 먼지와 얼룩을 제거해 원래의 광채를 되찾는데 중점을 둔 복원공사라고 한다.


안 그래도 청동의 변색으로 인해 기둥의 색깔이 너무 시커먼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베르니니가 20대의 청춘을 바치며 9년 동안 작업했던 발다키노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내가 여행한 이후에 바디칸에 세워진 대건 신부님의 동상도 있으니 언젠가 다시 로마를 다시 가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2025년 대 희년을 맞이해 복원 공사를 끝내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 다음이야기:  이탈리아 당일치기 남부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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