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개인적으로는 길에 대한 로망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문장이다.로마를 몇 번 갔지만 아피아가도는 생각만 할 뿐 가보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피아가도는 로마의 관광지와는 꽤 거리가 있는 편이라 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가는 시간 포함하면 최소 반나절 이상은 소요되는데 볼거리 많은 로마에서 정말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아피아가도'는 여행자들이 찾는 여행지는 아니다. 나 역시 세 번째로 로마를 찾았을 때야 비로소 아피아가도를 가 볼 수 있었다.
한가로웠던 로마 11월의 아침
숙소였던 테르미니 역 근처에서 아피아가도까지는 6km 정도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다. 관광지와는 다른 방향이라 버스를 타러 가면서 로마 현지인들의 느긋한 일상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로마 시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6차선의 대로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아피아가도라고 하기엔 아스팔트가 너무 매끈했다. 그렇지! 이런 곳이 2천 년 전 도로일 수는 없지 않은가. 구글 지도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대로변을 건너니 아피아가도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였다.
로마의 인상적인 가로수
공원도 아니고 숲도 아닌 곳으로 길이 나 있어 반신반의했는데 오솔길 끝 즈음에 비로소 로마 옛길, 아피아 가도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인다. 와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via franciena Roma(로마로 가는 길) 표지판이 눈에 더 들어왔다.
'via franciena'는 까미노데산티아고처럼 순례길인데 영국 캔터베리에서 프랑스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는 길이다.이 길은 10세기말, 캔터베리 대주교 시게리크( Sigeric the Serious)가 교황 축성식을 위해 로마를 향했던 길을 고증해 만들어진 길이라 통상 도시를 연결하는 순례길이 아닌 수도원을 연결하는 길이다.
via franciena는 토스카나에서 로마로 이어지는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길로 알려져 있어 언젠가 한 번은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게다가 '까미노 데 산티아고'처럼 로마까지 100km를 걸으면 인증서도 받을 수 있는 길이다. 막연히 '언젠가'였는데 그 길이 아피아가도와 일부 연결되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피아가도는 로마로 가는 길( via francigena Roma) 중 일부다
아피아 가도를 설명하는 표지판이 있어 이곳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끝 혹은 시작점이라거나 어느 길이 아피아가도인지 다른 안내판은 아예 없어 좀 난감했다. 아피아가도를 찾아온 외국인도 몇몇 있었는데 다들 이구동성으로 '그래서 아피아가도는?'이라는 표정으로 서로 길을 묻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어찌어찌 수소문하고 구글지도를 몇 번 파먹은 끝에 바로 근처 삼거리에 있는 성당과 카타콤베 사이로 직선으로 난 길이 로마 남쪽으로 이어지는 아피아가도였다. 카타콤베 입구에 규모가 작은 성당이 있어 그냥 지나치려다가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갔는데 범상치 않은 곳이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바닥에 누군가의 발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기독교 박해를 피해 도망을 치던 베드로가 환생하신 예수님을 만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물었던 질문'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는 영화 '쿼바디스'에서 'Quo Vadis Domine?'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그 장소에 성당이 세워졌다. 성당 안의 발자국은 환생하신 예수님의 발자국이고 사본인데 (이 발자국에 대해서는 좀 논란이 있는 것 같긴 하다) 원본은 인근의 성 세바티아노 성당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성당 안에 흉상이 있어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소설 '쿼바디스'로 190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소설가 '시엔키에비치'였다. 이 성당을 방문한 뒤 영감을 얻어 소설로 집필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예수님과 성베드로의 전설이 내려오는 성당으로 기독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장소를 우연처럼 만나게 된 건 뜻밖의 소득이었다.
쿼바디스의 역사적 장소
성당을 나서 밟는 이 길이 진짜 아피아 가도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묘했다. 2천 년에 만들어진 길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걸어보니 책으로, 영상을으로 보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길이 다 거기서 거리라지만 수천 년 전의 만들어진 길은 지금도 그대 로고 그런 시간을 밟는 기분은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었다.
사실상 이곳이 아피아가도의 시작 혹은 끝이니 일단 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군인들과 군수물자를 수송했던 길은 자동차 두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인도가 거의 없어 차가 오니 조금 위험했다. 일부는 보수공사를 위해 시멘트로 다시 포장된 길들이 계속 이어진다. 아피아가도의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곳까지는 적5km 이상을 걸어가야하는 것 같았고 문제는 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 난감했다.
2천 년 전 길은 지금도 여전하다.
대신 공원화되어 있는 카타콤베를 둘러보기로 했다. 카타콤베는 지하무덤으로 로마에는 40여 개가 넘는 카타콤베가 있는데 그중 이곳 카타콤베가 가장 유명하다고 했다. 로마에서는 네로황제를 시작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약 250년간 엄청난 기독교 박해가 이어졌는데 당시 죽은 사람만 6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지하무덤에는 기독교 박해 당시 순교한 수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고 초기 교황들도 안치되어 있어 성지로 관리되고 있다.
나처럼 아피아가도를 찾아왔다가 카타콤베를 찾는다기보다 성지인 카타콤베를 찾는 사람이 대다수일 정도였다. 카타콤베는 유료고 입장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이미 몰타에서 여러 곳의 카타콤베를 봤기에 딱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곳은 성지로 공원화된 드넓은 부지에 카타콤베 외에도 수도원, 박물관 등 다양한 종교적 시설물이 있었다.
아피아 가도 옆으로 카타콤베는 엄청난 부지에 다양한 시설물이 있다.
카타콤베를 따라 직선으로 난 아피아가도가 대략 1.6km니 규모가 꽤 클 것이라고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넓었다. 인상적인 건 공원 안에도 직선으로 길을 냈다. 그 길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약 1km나 이어지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로마에도 다양한 현지인 투어가 있는데 아피아가도를 따라 달리는 자전거 투어를 하는 사람들을 이곳에서 대거 만났다. 물론 성지순례를 위해 걷는 사람도 있었고.
공원 안으로 쭉쭉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1km 정도 늘어서 있다.
11월의 로마는 참 포근했다. 로마 외곽이라 찾는 사람도 많이 없고 드넓은 공간에는 간간히 로마인들이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전부였다. 간혹 떨어진 올리브 열매를 주우러 오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올리브가 이탈리아에서 감나무 혹은 밤나무 열매로 취급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걷거나 달리거나 올리브 열매를 줍거나... 우리와는 너무 다른 모습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적당한 곳에 아무렇게 앉았다. 시위가 너무 조용하니 혼자만 세상에서 뚝 떨어진 느낌인데 싫지 않았다. 부지가 넓기도 했지만 성지라 그런지 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로마에서 조금 한갓진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먹을거리와 간식을 사가지고 반나절 소풍을 즐겨도 좋겠고 뭔가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참 좋은 곳이었다.
마음이 절로 고요하고 차분해지던 카타콤베 공원
이럴 줄 알았으며 차라리 로마수도교로 갔다가 그곳에서 아피아가도를 따라 거꾸로 올라오는 게 더 나을 뻔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여행이 아니던가.
이번에는 반나절 계획이라 이 정도로 만족하자 싶었다. 다음에 다시 로마를 오게 되면 그때는 하루를 할애해 로마수도교도 보고 거기서부터 아피아가도를 걸어 아우렐리아누스 방벽을 지나 카스칼라 욕장까지 걸어보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