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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Mar 07. 2024

로마 현지인과 함께한 로마 반나절

#3 몰타 어학연수에서 만난 로마인 친구 집 방문기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이탈리아 로마

#3. 몰타 어학연수에서 만난 로마인 친구 집 방문기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한 가지 상상한 것이 있었다.  어학연수에서 만난 친구의 나라로 여행을 가보는 것.  과연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싶었다. 그랬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런던에 있을 때 갑자기 그녀에게 문자 왔다.

"로마로 언제 놀러 올 거야?"

"정말 가도 돼? 그럼 11월에 갈게."


7월에 로마를 갔다 왔는데 11월에 다시 로마를 가게 된 건 순전히 로마인 친구 '마리아'때문이었다.

버스에서 본 조국의 제단


그녀가 보내준 집주소는 로마에서 꼭 가야 하는 나보나 광장 골목에 있었다.

나보나 광장은 테르미니역에서 3km 정도인데 심리적으로는 꽤 멀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는데 막상 버스를 타고 오니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나보나 광장으로 걷는다.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곳이라 이런 곳에 광장이 있나 싶지만 건물 사이로 들어가면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광장이 나타났다. 이탈리아 로마를 몇 달 만에 두 번이나 가게 된 셈인데 두 번째로 로마를 가니 로마가 굉장히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리아와는 몰타 어학연수 때 처음  수업을 들었던 엘리멘트리에서 만났던 친구다. 평소에 수업 시간 외 따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지는 않았는데 그러다 대화를 해보게 된 건  내 생일이 계기가 됐다. 


몰타에서 생일, 인기폭발한 김밥(https://brunch.co.kr/@haekyoung/93)  


생일 초대 이후 얼마 있지 않아 마리아는 어학연수가 끝났고 로마로 돌아갔다. 몰타와 로마는 가깝기 때문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를 비롯한 친구들 몇 명이 로마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고, 그녀가 선뜻 미리 날짜를 정해주면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로마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다.  


그때만 해도 나와 친구들은 5월 적당한 날에 로마 여행을 가자고 했으나 한 달 정도 지나고 다들 레벨이 업그레이드되면서 반도 바뀌고 새로운 친구들도 생기고 여차저차하다 보니 로마여행은 흐지부지됐다. 그러다 7월에 갑자기 로마여행을 하긴 했지만 그녀에게 연락은 하지 않았다. 로마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3월 초반에 2주 정도 같이 있었던 나를 기억한다고 해도 생일 때 외에는 별다른 대화를 해보지 않았기에 연락을 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그랬는데 런던에 있을 때 마리아로부터 갑자기 문자가 왔다. 5월에 로마에 온다고 했는데 로마는 왔다 갔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7월에 로마를 가기는 했는데 일정이 빠듯해서 연락을 못했다고 하니 그럼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묻는다.


그래서 예정에도 없이 '로마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버전으로 마리아의 집을 찾아가게 됐다.  

내 생일에 함께 했던 마리아


마리아가 사는 로마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테르미니역에서 다소 먼 거리인 나보나 광장 근처는 숙소를 선호하지 않는다.  막상 와 보니 외국 여행자들은 이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이 거리의 이름은 Via dei Coronari로 공예품, 골동품, 그림 등 작은 상점들이 많아 로마 골목 특유의 분위기기가 참 좋았다. 오래된 골목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투어가이드를 따라 로마의 화려하고 유명한 볼거리를 찾아가는 골목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나보나 광장의 뜨내기 관광객들이 가는 곳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골목 안쪽으로 이런 곳에 호텔이 있을까 싶었는데 은근히 크고 작은 호텔도 많고 에어비앤비도 꽤 있었다. 이곳에서 판테온까지 걸어서 4분 거리고 트레비 분수까지도 10분 정도면 걸어서 갈 수 있다. 반대쪽에 위치한 성천사의 성을 지나 바티칸까지도 2km 남짓이니 이쪽저쪽 정중앙이라 위치로는 최상이다. 마리아도 자기 집을 찾는 사람들이 연중 내내 있다고 했는데  로마에서 좀 길게 머물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왜 이 지역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리아의 집이 아니었다면 나보나 광장만 보고 돌아섰을 텐데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 덕분에 찐 로마의 분위기를 만끽했다.


나보나 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인데도 관광객 없이 조용하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볼 일 보고 들어오는 중이라는 마리아는 집 앞에서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녀의 집은 바로 옆에 작은 레스토랑이 있는데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인아저씨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다.


드디어 마리아가 왔다. 비밀번호를 누르니 육중한 문이 열렸다. 100년도 넘은 로마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했지만 대놓고 이곳저곳 사진을 찍기가 좀 그래서 사진은 찍지 않았다.  


마리아의 집은 3층인데 1층은 건물의 현관 역할을 하는 듯 아무것도 없이 휑했고 한쪽에 분리수거 쓰레기 통이 놓여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했으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독특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걸). 백 년도 넘는 건물이라고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마리아의 집

덜커덩 덜커덩 느리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리니 바로 현관문이다. 놀랜 건 와- 진짜-,,, 현관 열쇠 하나도 아니고 열쇠 꾸러미를 한 다발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그중에 하나 찾아 현관문에 꽂으니 또 한 번의 육중한 문이 열렸고 드디어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내겐 너무 신기한 광경이라 폭소가 터졌다. 입구에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길래 옛 건물에 현대식 시스템이다 했더니 어쩐지... 그게 전부일 줄이야.


방은 총 3개로 하나는 그녀가 쓰고 나머지 2개는 에이비앤비 손님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구조가 좀 특이했다. 방은 크고 거실과 부엌이 생각보다 작은 느낌이었다.  백 년 넘는 건물치곤 꽤 준수했다.  

로마의 백 년된 집의 풍경
마리아 짐에서 내려다본 골목, 이 골목을 따라 나가가면 바로 나보나 광장이다.


어학연수 때도 단 둘이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기에 7개월 만에 만나면 좀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숙소 예약하지 말고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는데 굳이 숙소 예약을 한 나를 서운해했다. 다음 날 피렌체로 가는 새벽 기차를 타야 하니 테르미니 역 근처가 편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터라 괜스레 폐가 될 것 같았다. 그녀가 몹시 서운해하길래 다음에 로마에 오게 되면 그땐 그녀의 집에 머물겠다 약속했다.


한숨 돌리고 난 뒤 7개월 전에 궁금했던 얘기를 비로소 물었다.

"너는 어학연수를 왜 온 거야? 엘리멘트리 수업 때 네가 스피킹을 너무 잘해서 초급반에 있는 게 의외였거든."


마리아는 에어비앤비를 하고 있으니 계속 외국인들을 만나게 되고 영어를 좀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에어비앤비의 특성상 숙소예약이 언제 올지 몰라 집을 비우기 힘든 데다가 그녀의 집은 계속 예약이 되는 관계로 자신도 시간을 어렵게 냈다고 했다. 자신이 어학연수하는 동안은 동생이 맡아서 운영을 했다고.


우리의 밀린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함께 어학연수를 했던 친구들, 선생님, 몰타에서 생활 등등.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몰타 어학연수를 처음 시작했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녀는 몰랐겠지만 반 친구들 사이에서 가끔 그녀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당시 우리 선생님이 누가 봐도 그녀를 좋아하는 티를 그렇게 내는데 그녀는 콧대 높게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듯하다가도 또 쿨 하게 받아주고 해서 교실에선 그게 늘 화제였다. 밀당의 귀재라고나 할까. 뒤늦게 그 얘기를 전해주니 그녀가 숨이 넘어가도록 웃어댄다.


솔직하고 깔끔한 성격에 이지적이고 자기 관리 끝판왕인 전형적인 로마 여자인 마리아의 매력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몰타에서 좀 더 함께한 시간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생각이 드는 찰나, 우리는 각자의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른다. 서로가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도 몰랐고 그렇다고 연락을 꾸준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무려 7개월이나 지난 시점에 그녀의 집에서 허물없이 그녀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고작 2주 동안 어학연수 같이 한 게 전부였고 내 생일 때 같이 김밥 만들고 먹어 본 게 전부였는데 사람과의 거리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싶어 신기했다.


이후 로마 여행을 함께하자고 말했던 친구들에게 로마에서 마리아를 만났다고 하니 다들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언젠가 그들을 어느 시점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로마를 왔으니 근처를 한번 둘러봐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그녀와 함께 동네 탐방을 나섰다. 로마인인 그녀에겐 동네 탐방 정도지만 나에겐 로마 유명한 관광명소 탐방인 셈이다. 마리아 집 골목에서 곧장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여름에 로마를 왔을 때 야경을 보러 왔던 곳이라서 그런지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나보나 광장은 주변으로 건물들이 죽 둘러싸고 있지만 로마시절에는 이곳이 복합경기장이었던 곳이겠다 충분히 짐작이 되는 곳이었다.


로마의 유명한 광장답게 주변으로 카페가 즐비하고 광장에선 거리 예술가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나보나 광장은 로마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는데 로마 야경투어에서도 빠지지 않는 곳이다. 밤의 나보나도 좋고 낮의 나보나도 좋았다. 나보나 광장에 하루 종일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광장에 빠지지 않는 예술가들


나보나 광장은 세 개의 분수로 유명한데 그중 광장의 가운데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는 콰트로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가 가장 눈에 띈다. 처음 봤을 때도 인물들의 극적인 동작 표현이 인상적이었는데 낮에 봐도 역시 그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


런던 환경단체들이 내셔널 갤러리 명화에 페인트를 뿌리는 것으로 화제가 됐는데 로마의 경우 그 대상이 바로 이 피우미 분수다.  가끔 외신을 통해 피우미 분수에 환경단체가 먹물을 뿌렸다는 뉴스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어떤 이유로도 그런 식의 테러는 용납되서는 안 된다.

나보나 광장의 피오미 분수


나보나 광장에서 이어지는 또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브라만테 회랑(Chiostro del Bramante)이라는 곳이 있었다. 미술을 좋아한다는 나의 취향을 고려해 보여주고 싶다고 데려간 곳이었다. 르네상스 건물은 로마에서 워낙 흔한지라 밖에서 볼 때는 크지도 않고 특별한 것도 없었는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중정의 건물에 이런 현대적인 전시를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불투명한 플라스틱의 재질을 중정을 덮었고 아래는 깨진 거울을 설치해 깨진 거울에 반사되는 풍경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탁월했다. 알프레도 피리(Alfredo Pirri)라는 사람의 작품이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2003년에 이런 형식의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고 적혀 있었다. 꽤 젊은 사람인가 싶었는데 1957년 생, 우리나라로 치면 67세인데 엄청난 감각의 소유자구나 싶었다.



회랑사이로 사람이 보여 다가가보니 작품이었다. 마치 바닥에 깨진 파편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어 연극적이다 싶었다. 나중에 이 작가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오랜 시간 세트디자이너로 일한 사람이었다.  독특한 감각을 가진 작가의 작품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이 축적되어 작품으로 표현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런데 가만있어보자, 이곳의 이름인 브라만테가 설마 내가 아는 브라만테는 아니겠지 싶었는데 웬걸. 그 브라만테가 맞았다. 미켈란젤로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도나토 브라만테(1444-1515)가 지은 이 건물은 라파엘로의 유명한 그림 시빌(Sibyl)이 걸려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파체 성당(Church of Santa Maria della Pace)의 일부라고 한다.


멋진 르네상스 건물에서 현대적인 전시가 이루어지는 게 너무 신기했는데 브라만테 회랑은 현재 무료 전시장으로 운영 중이었다. 놀라운 점은 전문 비디오 그래퍼, 작곡가, 사진가, 화가, 일러스트레이트 등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형 전시를 주로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고풍스러운 르네상스 건물을 캔버스 삼아 초현대적인 감각을 선보이는 예술가들의 놀이터가 로마 한복판에 있는 셈이었다..


슬슬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보나 광장의 젤라또는 비싸다며 그녀의 집 골목에 있는 젤라또 가게( Guinto gelateria)로 나를 데려갔다. 관광객도 관광객이지만 현지 주민들이 아는 맛집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인데 젤라또도 입에서 살살 녹았다. 피자가게(BONA) 역시 맛집이라고 했다.

나보나 광장 안쪽의 현지인 맛집 젤라또 가게


슬슬 판테온까지 산책하러 가는 길에 마침 문이 열려 있어 산 루이제 데이 프란체시  성당(San Luigi dei Francesi)도 들어갔다. 산 루이제 데이 프란체시 성당은 7차 십자군 원정을 주도했던 프랑스 왕 루이 9세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성당인데 지금은 카라바조가 그린 마태오 3연작으로 유명하다. 평소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는데 저녁 어스름할 때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후벼 파는 느낌인데 자연광에서 보면 인물들이 하나하나 살아서 그림에서 튀어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저녁이라 조명이 켜진 탓에 조금 아쉽긴 했지만 뜻하지 않은 순간에 카라바조의 그림을 만날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까라바조 마태오 3 연작 메인 제단의 그림은 '성 마태오와 천사'다.
밤의 판테온


낮만큼은 아니었지만 저녁이 돼도 판테온은 여전했다. 마리아도 딱히 계획은 없었기에 둘이서 그냥 발걸음 내키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 건물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뭔가 싶었는데 어느 건물을 배경으로 미디어 파사드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건물이 너무 특이했다. 누가 봐도 정말 오래된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서 있는 건물인데 안으로는 리모델링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옛 건물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조화로운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하도 건물이 고상해 찾아보니 맙소사 서기 145년에 지어진 로마 하드리안 신전(Il Tempio di Adriano)이었다.


이 건물은 현재는 증권거래소로 사용하고 있는데 실내도 관람이 가능하다고 했다. 서기 145년에 지어진..... 1900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 눈앞에 있다니- 콜로세움이 감상용이었던 것과 달리 현재도 사용하는 건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런 곳이 로마였다.

서기 145년에 지어진 하드리안 신전


대략 10여분 정도의 미디어 파사드는 로마의 역사를 시대순으로 보여주는 내용으로 로마의 자부심을 한껏 담은 내용이었다. 한때는 로마사가 세계사였다는 걸 감안하면 로마인의 부심이 어느 정도였을지 로마땅에서 만나는 로마역사는 꽤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도 외국인이 많이 방문하는 시기에 한반도 5천 년의 역사를 정리한 미디어 작품을 서울 광화문 어디에선가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로마의 역사를 보여주는 미디어 파사드


갑자기 마리아에게 급한 일이 생겨 같이 먹기로 했던 저녁은 '다음에 로마에 오게 되면'으로 미뤄졌다. 미안했던 그녀는 굳이 괜찮다는 나를 테르미니 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그녀의 차를 타고 로마 시내를 또 한 바퀴 돌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라보는 천사의 성도 역시 아름다웠다.  

야경이 아름다운 천사의 성


그러다 우리 앞에 몰타가 랩핑 된 버스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녀와 나는 이게 웬일이냐며 소리를 질렀다.


몰타에서 어학연수가 뭐 별거나 싶지만 '몰타'라는 글만 보여도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마법 같은 곳이 우리에겐 몰타였다.  

몰타다!!!

이렇게 갑자기 약속이 생길 줄 알았으면 오후에 만날 게 아니라 일찍 만나 점심을 먹을 걸 그랬다고 그녀는 내내 너무 아쉬워했다. '로마로 놀러 가고 싶다'는 농담반이 섞인 말이었음에도 잊지 않고 연락해 준 그녀가 고마웠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할 것 같아 지레 소극적인 마음이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녀가 언제가 한국을 오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내가 로마를 다시 가는 게 빠를 수도 있겠다) 언젠가 마리아와는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을 안고 그녀와는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로마 현지인과 함께한 로마의 반나절은 내겐 몰타 어학연수가 선물해 준 '로마의 휴일'이었다.


+ 다음이야기:  로마 아피아가도 그리고 몰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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