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작가 정해경 Apr 26. 2024

피렌체, 냉정과 열정사이 그 어디쯤

걷기 좋은 도시, 피렌체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이탈리아 피렌체 

#8. 피렌체, 냉정과 열정사이 그 어디쯤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향했다. 로마에서 피렌체까지는 고속열차로 1시간 30분 정도로 생각보다 먼 거리는 아니었다. 성수기가 아니어서 굳이 기차표를 예매하지 않았고 키오스크에서 표를 구입하려는데 뭔가 이상하게 자꾸 에러가 난다. 혼자 낑낑대고 있는데 담배를 문 아저씨가 내 옆 키오스크에서 착착착 표를 구입하고선 곁눈질로 쓱 본다. 


"도와줄까?"  "아, 예.."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매의 눈으로 아저씨의 손놀림과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몇 번 터치를 하더니 "이제 신용카드 결제해야 되니 카드 여기다 넣어."라고 했다. 내가 했던 순서와 다른 게 없는데 내가 할 때는 계속 에러가 나더니 순식간에 발권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아까 나도 아저씨랑 똑같이 했는데 왜 나는 표가 안 나오고 아저씨가 하니까 표가 나오냐"라고 볼멘소리를 하니 사람 좋은 웃음의 아저씨가 "가끔 내가 해도 안 될 때가 있어." 별 일 아니란 듯 쿨하게 말한다.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커 피나 한잔 할까 싶었다. 마침 아저씨가 손에 커피를 들고 계셔서 근처에 자판기가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내가 커피 뽑아줄게." 한다. 괜찮다고 해도 굳이 커피까지 한 잔 뽑아주고선 여행 잘하라며 손 흔들고 사라졌다. 


여전히 입에 담배는 문 채로 말이다. 


테르미니 역은 관광객, 자국민 할 것 없이 엄청난 사람로 붐비는 곳이다. 다들 정신없이 어디론가 종종 거리며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아무리 여행이 익숙하다고 해도 절로 긴장하게 된다. 홀연히 나타난 아저씨 덕분에 나 역시 절로 긴장하고 있던 마음에 비로소 조금의  여유가 스며든다.  혹시 내가 기차를 잘 못 탈까 봐 플랫폼 위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신 아저씨 덕분에 크게 헤매지 않고 바로 플랫폼으로 직행, 


피렌체행 기차에 올랐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피렌체로  


로마와 달리 피렌체는 처음이었다. 피렌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내게는 아련함이었다. 그건 순전히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경이었던 피렌체는 낭만 그 자체였고 영화의 내용 때문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는 아련함이 배어 있었다.  


플랫폼을 나서 일단 숙소로 향해 가는 길, 조용하게 트램이 지나간다. 중세도시에 트램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고정관념일까. 

피렌체 기차역과 트램 


피렌체는 총 6박 7일의 일정이었기에 한인민박으로 결정했다. 일정이 길어 체험상 중간에 숙소를 한번 옮길까 생각도 했지만 짐을 옮기는 게 귀찮아서 그냥 한 곳으로만 모두 예약을 했다. 피렌체에서 일주일이나 머문다는 내게 숙소주인인 그녀는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피렌체에 일주일을 할애한 것은 피렌체 자체가 볼거리가 많기도 했고 근교 여행까지 고려한 일정이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타이트하게 잡은 일정이었는데 숙소주인이 왜 그런 표정을 한 것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하루가 지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여행자에게 피렌체는 대체로 1박 2일 정도 짧게 머물며 숙제하듯 핵심적인 것만 보고 가는 그런 도시였다. 머문다고 해도 2박을 넘기는 사람은 없었다.  


피렌체를 오기는 왔지만 몰타 + 런던 어학연수가 막 끝난 시점이라 너무 지친 상태였기에 피렌체에 대한 여행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두오모, 미켈란젤로 언덕, 우피치 미술관 정도가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라고나 할까. 이럴 때 한인민박은 살아 있는 여행가이드북이나 다름없다. 피렌체에 대한 별 정보가 없다는 내게 그녀는 피렌체 지도를 펼치더니 약 30분간 어디를 가야 하고 뭘 봐야 하는지를 꼼꼼히 알려준다. 그녀 입에서 나오는 관광지들은 그나마 처음 듣는 지명이 아니란 점이 다행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 소가죽으로 유명한 피렌체에서 가죽 제품을 만들고 남는 다양한 소의 부산물로 만드는 음식 중에서 단연코 1등은 티본스테이크다.  피렌체에서 첫 끼는 피렌체에서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티본스케이크 맛집 달로떼로 향했다. 이탈리아 사람은 몰라도 한국사람은 다 아는 알베르토 씨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걸 보니 이곳에 한국사람들이 정말 많이 오긴 오는 곳이구나 싶었다. 


티본스테이크가 유명하다지만 1kg가 넘는 티본스테이크를 혼자 먹을 자신이 없어 안심 부위의 발사믹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이럴 때 혼자 여행은 참 난감하다. 혼행객이 늘어나면서 혼밥이 싫거나 혹은 지금처럼 양이 많은 음식을 혼자 먹을 수 없을 때 유럽여행 네이버 카페 '유랑'에서 여행지 밥 친구 구한다는 글은 이제 1인 자유여행의 문화가 된 듯하다. 


이날도 내 건너 옆자리에 누가 봐도 한 끼 식사를 위해 급만남이구나 싶은 일행들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티본스테이크를 먹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가금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만나서 함께 다니다가 밥을 먹으러 가긴 해도 단지 밥 한 끼 먹기 위해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게 외국인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궁금해졌다. 

알베로가 여기서 왜 나와


티본스테이크 대신 주문한 발사믹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양이 작은 게 아닌 게 싶었다. 고기를 즐기는 않는 체질이라 레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너무나도 선명하다 못해 투명하기까지 한 분홍빛의 고기는 부담스러웠다. 조심스레 칼질 슥슥-. 스테이크 한 조각이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와- 고기가 이렇게 부드럽다니!!!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황홀한 맛이었다. 다소 양이 작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 먹고 나니 배부르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사진에는 없지만 식전 빵도 제공됐다) 발사믹 스테이크가 이 정도이니 티본스테이크는 안 먹어도 얼마나 맛있을지 짐작이 됐다. 이러니 달로떼는 한국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맛집이라는 이야기가 괜한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발사믹 스테이크(안심)


거하게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피렌체 탐방이 이어졌다. 피렌체는 주요 관광지는 걸어서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거리기는 하지만 미켈란젤로 언덕까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었다. 딱히 어디를 갈지 계획이 없는 상태였기에 그냥 발길 닿는 대로 피렌체를 느껴보고 싶어 이곳저곳 맘 내키는 대로 걸었다. 피렌체에서 특별한 계획이 없었기에 피렌체에 머무는 내내 무작정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 


피렌체 역을 등지고 정면으로 계속 내려가면 피렌체를 가보지 않아도 너나없이 다 알고 있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우리가 흔히 말하는 '두오모'가 나온다. 피렌체에 일주일이나 있을 예정이니 다른 길로 가보자 싶어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왼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북적북적 뭔가 요란하다. 길가는 온통 가죽을 파는 노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아, 여기가 가죽시장이구나' 


딱히 살 게 없으니 그냥 가볍게 스치며 구경하며 걷는다. 걷는 중간에 중앙시장도 있고 곱창버거가 맛있다는 집도 있었는데 크게 구미에 당기지 않아서 그냥 지나쳤다. 중앙시장과 가죽시장은 첫날 가볍게 걸어 본 것 외에는 내 흥미를 끌지 못했기에 더 이상은 가지 않았다. 

가죽시장 


가죽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니  엄청 큰 건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 로렌초 성당이었다. 피렌체에 대해 이것저것 자세하게 알아보고 간 것이 아니었기에 산 로렌초 성당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꼭 가는 필수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뒤늦게 산로렌초 성당을 가지 않았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 


산로렌초 성당은 메디치가의 주요 인사들이 묻혀 있는 곳인데 피렌체의 두오모를 지은 부르넬레스키가 다시 지은 건물로 피렌체 최초의 르네상스 양식 성당이다. 성당 안에는 도나텔로의 작품인 설교단, 미켈란젤로가 만든 라울렌치아나 도서관 등 엄청난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게다가 바로 옆에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곳은 메디치 궁전이었다. 제대로 좀 공부를 하고 갈 걸 뒤늦게 이불킥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갔을 때에는 성당 외벽에 엄청난 크기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로마 태생의 에마누엘레 지아넬리(Emanuele Giannelli)의 작품 '미스터 아비트리움(Mr. Arbitrium)'이다. 약 5.5m 높이의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아비트리움 씨가 산 로렌초 성당의 벽을 밀고 있는  장면은 꽤나 흥미로웠다. 피렌체에 오기 전에 이탈리아 주요 도시의 건축물을 순회하고 있는 작품이라 도시마다 화제성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중세 건물을 사력을 다해 힘껏 밀고 있는 미스터 아비트리움 씨를 보고 있자니 마치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봐,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힘껏 밀어보라고.'  힘겨운 오늘을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우리에게 건네는 작가의 작은 위로 같아 마음이 뜨거워졌다. 


작품이 정말 인상적이었기에 몇몇 기사를 찾아보니 웃긴 댓글이 눈에 띄었다.  '힘껏 미는 것까지는 좋은데 제발 방귀만은 뀌지 말아 줘. 질식사로 병원 가야 할지도 몰라.' 역시 이탈리아 식 유머답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미스터 아비트리움 씨가 사력을 다해 벽을 밀고 있다. 


피렌체의 영어명은 플로렌스(Florence)인데 절로 '꽃'이 연상된다.  '꽃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는 이유기도 하다. 피렌체를 와보기 전에는 도시 곳곳에 진짜로 꽃이 많은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고 피렌체에서 꽃구경 따윈 없었다. 피렌체 반나절, 어쩌면 '꽃'을 찾아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기념엽서를 파는 곳에서야 내가 생각했던 '꽃의 도시 피렌체'를 발견했다.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꽃 그림 
피렌체 흔한 골목길 풍경 


어디를 얼마나 어떻게 걸었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 피렌체의 상징인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툭 튀어나왔다. TV 화면이나 각종 자료로 숱하게 본 성당인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되는 느낌은 어마어마했다. 어쩌면 이 성당이 피렌체의 진짜 '꽃'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피렌체에 '꽃'이 없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여러 곳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봤지만 외관만 놓고 볼 때 내가 건축물 중에서는 피렌체 대성당이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흰색, 녹색, 분홍색 대리석의 색조합에 눈을 뗄 수 없었다. 


피렌체에서 머무는 내내 매일 성당 앞을 지나다녔다. 본당, 세례당, 종탑은 '따로 또 같이'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언제 보더라도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곳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따로 있었다. 해가 지고 난 다음 매직 아워를 막 넘겨 날이 컴컴해질 때 가장 아름다웠다. 마치, 한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무슨 말인고 하니 매직아워를 지나 어두컴컴해지면 하루종일 햇살을 머금고 있던 대리석이 하얗게 빛을 반사시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조명을 켠 듯 환했다. 성당 외벽 어디에도 조명시설이 따로 없는데도 말이다. 낮과는 또 다른 밤의 얼굴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전기 시설이 없던 중세의 칠흑 같이 어두운 밤, 이 도시를 환하게 비추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은 사람들에게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움의 대상이지 않았을까.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성당의 지붕인 쿠폴라를 부르는 '두오모'로 더 많이 알려진 이곳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소개하겠다. 

낮과 밤 분위기가 달라요. 
성당 쳐다보느라 정신이 팔려 싸구려 그림을 밟는 순간 50유로 내라고 악착 같이 달려들 것이다. 


천천히 걸으며 피렌체 구석구석을 다니는 건 피렌체를 떠나는 날까지 이어졌다.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은 회전목마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그것보다는 수시로 거리공연이 열리는 곳이라 좋았다. 골목을 내 맘대로 걷다가 음악 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걸으면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레푸블리카 광장이었다. 거리 공연은 다른 도시에서도 많은데 이곳이 유독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피렌체의 매력이 아닐까 싶었다. 거리 악사들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은 어느새 '낭만'이 차오르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이 멋진 낭만을 함께 즐길 사람이 없다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콘트라, 베이스, 섹소폰 3악기의 앙상블이 끝내주던 거리 악사들 


레플리카 광장에 있는 백화점 맨꼭대기에는 두오모가 보이는 루프트탑 카페(La Terrazza)가 있다. 피렌체에는 두오모가 보이는 루프트탑 카페가 몇 군데 있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다. 듣기로는 늘 긴 줄이 있어서 1시간씩 기다리기 일쑤라고 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피렌체 떠나기 전날 밀린 숙제 하듯 다녀왔다. 


카페 오픈 시간이 오전 9시여서 30분 전에 갔는데도 이미 사람들의 대기줄이 상당했다. 다행히 나까지 차례가 돌아왔고 두오모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백화점 루프트탑이라기보다 그냥 평범한 옥상 분위기였지만 그게 뭐 대수랴. 아침부터 현지인과 여행객들 사이에 둘러싸여 에스프레소 홀짝이는 '여행의 맛'이 꽤 좋았다. 드보다 더 뿌듯했던 건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내려가니 세상에 줄이 어마무시하게 길더란 말이지. 

피렌체의 낭만 


루푸트 탑 카페 외에도 광장 모퉁이에 있는 카페 질리(Gilli)는 피렌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줘야 하는 카페다. 1733년에 오픈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한데 실내 인테리어만으로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커피 맛도 좋고 특히 티라미수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 바에서 서서 마시면 에스페레스 한잔이 1.2유로였나 암튼 가격도 착해 이른 아침에 가도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1733년 오픈... 이라고요? 


날이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아르노 강으로 산책을 나갔다.  피렌체의 11월은 비가 오는 날도 있었지만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내린 날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정말 환상적인 하늘이 펼쳐졌다. 그야말로 열일하는 하늘이었다. 바람이 없는 아르노강은 맑간 거울 같았고 반영마저도 아름다웠다. 

피렌체의 낭만 


온 하늘이 선홍빛으로 물드는 끝내주는 일몰이 찾아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아르노 강을 걷고 있었다. 매일 같은 장소를 걷는데도 날씨가 어떠냐에 따라, 어느 시간에 걷느냐에 따라 풍경은 하나 같이 전부 달랐다.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나중에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니 거의 비슷한 자리에서 비슷한 구도로 찍은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희한하게도 같은 장소에서 발걸음을 멈췄다는 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피린체의 불타는 하늘 


피렌체의 저녁이면 관광객들은 다 이곳에 모인다. 바로 미켈란젤로 광장이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계단은 기가 막히게도 일몰 방향이라 다들 계단에 앉아 맥주든 와인이든 취향껏 홀짝 거리며 붉은 태양과 짧은 이별을 나눈다. 매일 지는 해이건만 피렌체라 더욱 특별한 일몰이다. 피렌체를 돌아다니며 하루 종일 뜨거웠던 마음을 이곳에 모두 내려놓았다. 

낮은 낮이라서, 밤은 밤이라서 두오모는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일주일이나 피렌체에서 지내게 되니 과일을 사기 위해 슈퍼에 들렀다. 

"와- 감이다." 한국을 떠난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감'이다. 몰타와 영국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감'이었는데 '홍시'까지 있으니 덥석 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외로 '감'이 귀한 과일일 줄은 몰랐다. 


피렌체에서 한인마트는 따로 보지는 못했고 이 골목 저 골목 아시안마트였나 중국마트였나 여하튼 눈에 띄어 들어가는 곳마다 라면에 짜장면까지 있었다. 문제는 사악해도 너무 사악한 가격. 봉지라면 하나 1.5유로(대략 2,400원) 컵라면은 2.9유로(대략 4,600원)였다. 평소에는 잘 먹지도 않는 라면인데 이상하게 여행 중에는 한 번씩 라면이 당기니 그 참 신기한 일이다. 

사악한 라면 가격 


피렌체에 일주일이나 머물렀음에도 내가 본 것은 1박 2일 정도로 짧게 머무는 사람들이 핵심만 골라 보는 것 외에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했던 도시들 중 가장 아쉬운 도시가 피렌체였을 만큼 봐야 할 것을 놓치고 온 것이 꽤 많았다. 


거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피렌체에 대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기에 남들 보는 정도에만 그쳤다. 또 하나는 어학연수가 끝나고 막상 여행이 시작되니 그동안 공부한다고 너무 지쳐버린 뇌는 여전히 포화상태라 새로운 걸 받아들일 공간이 없었다. 더군다나 몰타와 런던에서 지냈던 시간이 9개월이 넘어가면서 육체적인 피곤까지 겹쳐 있어 생각만큼 여행의 에너지가 충만하지 못했다. 피렌체 일정 다음이 터키였는데 결국 터키에서 심하게 아파서 이틀 내내 꼼짝도 못 하고 앓아누워야만 했다. 


피렌체에 있는 동안은 냉정과 열정 그 어디쯤을 헤매며 어정쩡한 상태로 보냈다. 여행이 끝난 뒤에 늦게 피레체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뒤늦게 피렌체에 대한 열정이 타올랐다고나 할까. 여전히 내 가슴 한편엔 준세이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이 고이 잠들어 있으니 언젠가 그 열정을 다시 깨우기 위해 피렌체행 기차에 올라탈지도 모르겠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대성당 안에 최초의 원근법이 적용된 성삼이 일체가 있을 줄이야.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 서 있는 동상이 단테였어!!


+ 다음이야기 :  스토리텔링 가득한 피렌체 





+ 구독하기, 라이킷, 댓글 부탁드려요~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 알림 설정을 해두시면 가장 먼저 글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




유튜브 '소소한 여행자 (https://www.youtube.com/@bywaytravel)'에서 여행의 기록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시리즈

 런던 어학연수와 런던 생활에 관한 이야기


몰타 어학연수와 몰타 생활에 관한 이야기





이전 07화 이탈리아 당일치기 남부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