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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May 09. 2024

140년간 돔이 없었던 피렌체 대성당

 #9. 피렌체 대성당 그리고 조토의 종탑,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이탈리아 피렌체 

#9. 140년간 돔이 없었던 피렌체 대성당 


 '르네상스가 시작된 도시', '천재들의 도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곳' 등등 엄청난 타이틀을 가진 피렌체는 여전히 세계사에서 존재감이 확실한 도시다. 타이틀이 많은 도시답게 단테, 메디치 가, 르네상스의 예술작품, 천재 화가들의 발자취 등 도시 곳곳에서 마주치는 이야기들은 무궁무진했고 그런 이야기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여행자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새로운 시대는 필연적으로 지나간 시대가 됐지만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새로운 피렌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피렌체 여행 동선 

+ 피렌체의 꽃, 피렌체 대성당 

피렌체는 걷기 좋은 도시다. 피렌체 기차역에서 출발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계획하지 않아도 피렌체에서 꼭 봐야 할 랜드마크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그중 가장 일 순위는 피렌체의 꽃이랄 수 있는 피렌체 대성당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피렌체 기차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피렌체 대성당의 정식이름은 '카테드랄 디 산타 마리아델 피오레(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꽃의 성모 마리아 대주교 성당'이다. 정식명칭 대신 성당이라는 뜻을 가진 '두오모(duomo)'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한 피렌체 대성당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저 '아름답다'. 다는 단어 외 다른 단어는 생각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건 흰색, 녹색, 분홍색의 천연 대리석이었다. 대리석은 늘 차갑다고만 생가한 나의 고정관념을 일시에 허물었다.  

세례당, 성당, 종탑이 어우러지는 피렌체 대성당 


피렌체에서 태어난 신생아 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산 조반니 세례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테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유독 세례당 앞 하나의 문에 사람들이 몰리는데 한 번쯤은 들어봤을 '천국의 문'이다. 세례당에는 동쪽, 남쪽, 북쪽 세 곳에 출입문이 있는데 이중 가장 유명한 문은 동쪽문이다. 남쪽문은 안드레아 피사노가 제작했고 동문과 북문 두 곳을 기베르티(Ghiberti)가 맡아서 제작했다.  


동쪽문은 '천국의 문'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이 문이 완성됐을 당시 미켈란젤로가 '천국에 문이 있다면 동쪽문과 같을 것'이라고 극찬한 데서 비롯됐다. 두 개의 대문을 5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10개 속에 구약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성경의 내용이 어찌나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지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원래 이 문은 북쪽문으로 제작이 됐는데 너무 아름다워 이미 제작했던 동쪽문과 바꾸어 달았단다. 세례를 받은 후 출구인 동쪽문을 나서면 동선은 자연스레 대성당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하느님의 세상인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상징을 담아 이미 있던 동쪽문과 북쪽문을 바꿔 달게 된 것이라고 한다. 


'천국의 문'은 의미도 의미지만 이 두 개의 문에 기베리티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먼저 제작한 북쪽 문은 21년이, 이후 남쪽문은 27년이 걸렸다. 두 개의 문 제작에만 도합 50년이 걸린 셈이다. 물론 기베르티가 온전히 이 작업에만 시간을 할애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단순히 미적인 아름다움 너머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어서인 내게는 더 경이롭게 다가왔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기베리티는 예술사에서 그의 이름이 길이 남았다. 북쪽문과 동쪽문 중간 즈음에 기베르티 자신의 얼굴을 부조로 만들어 넣은 걸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늙어버린 동쪽문의 기베르티 얼굴에 세월이 오롯이 남아 있어 울컥했다. 

기베리티가 만든 동쪽문(천국의 문)과 북쪽문
북쪽문의 기베리티와 동쪽문의 기베리티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


세례를 마친 사람들의 발길이 성당으로 향하듯 나의 시선도 자연스레 성당과 마주한다. 피렌체 대성당에 얽힌 이야기도 어마하게 많은데 1296년 최초 설계 후 완전히 완공되기까지 591년이나 걸린 성당은 140년간이나 돔이 없는 채로 있었다는 것은 유명하다. 당시 각 지방의 도시들은 경쟁관계에 있었고 얼마나 큰 성당을 가지고 있느냐는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피렌체 역시 기존에 있던 성당 대신 새로운 성당을 건축했고 피렌체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성당을 크게 지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커도 너무  크게 지은 나머지 로마의 판테온보다 큰 성당의 돔을 만들 기술이 없어 지붕 없는 채로 수백 년 동안 그대로 남겨 둘 수밖에 없었던 피렌체 대성당이었다. 이 시기 피렌체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성당의 돔이 없는 채로 하늘이 뻥 뚫린 희한한 모양의 성당만을 보다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미사를 보는 중에 비가 오면 비를 피해야 하는 그야말로 지붕 없는 성당의 문제를 해결한 건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였다

피렌체 대성당의 정면 파사드,  기념사진은 필수


근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세례당의 문을 기베리티가 아닌 브루넬레스키가 만들 뻔했다는 사실이다. 1401년 세례당의 문 설계 공모에서 기베리티와 브루넬레스키 두 사람이 올랐지만 최종적으로 기베리티의 디자인이 채택됐다. 이에 실망한 부르넬레스키는 로마로 떠나게 된다. 이후 부르넬레스키는 친구였던 도나텔로와 함께 로마에 거주하면서 절치부심하며 로마 건축인 판테온을 비롯해 다양한 건축물을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1419년 피렌체 돔을 위한 공모전에서 다시 기베리티와 경합을 벌인 끝에 이번에는 브루넬레스키가 돔 의뢰를 맡게 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브루넬레스키가 세례당 공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더 오랜 기간 동안 지붕이 없는 채로 있었을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지금의 모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브루넬레스키는 16년간의 공사 끝에 돔의 높이 114.5m, 길이 153m, 지름 42m, 무게 약 75만 톤에 달하는 약 400만 장의 벽돌을 지지대 없이 계란 모양으로 둥글게 쌓아 올린 돔을 완성시켰다. 돔이 완성된 후 브루넬레스키를 두고 '피렌체 성당을 위해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라는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고 하니 그는 피렌체 사람들의 한을 풀어준 구원자인 셈이겠다. 

지붕이 없는 상태로 140년이나 있었던 피렌체 대성당 (이미지 출처=구글검색) 

 성당을 위해 하늘이 보낸 선물성당을 위해 하늘이 보낸 선물이 보낸 

피렌체 대성당의 돔인 쿠폴라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보기 위해서는 돔인 쿠폴라를 직접 올라보는 게 정상이겠지만 쿠폴라 자체만을 느끼고 싶다면 '조토의 종탑'을 올라야 한다. 쿠폴라를 오르면 피렌체 시가지는 볼 수 있어도 돔 자체는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쿠폴라는 시간당 올라갈 수 있는 인원수도 정해져 있어 몇 주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입장이 힘든 상황이었다. 이건 아마도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 주인공이 10년 뒤에 쿠폴라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별도의 예약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 오를 수 있는 조토의 종탑을 오르기 위해 티켓부스를 찾아가니 티켓을 사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티켓 부스 양쪽으로 두 사람의 조각상이 있는데 한 사람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을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조각상의 시선을 다르게 만든 건 다 이유가 있다. 이 두 사람 중 왼쪽에 있는 사람은 피렌체 대성당을 최초로 설계하고 공사를 시작했던 '아르놀포 디 캄비오'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짐작했겠지만 피렌체 돔을 만든 브루넬레스키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시선은 그가 살아생전 성당의 공사를 했던 부분까지, 고개를 치켜든 브로넬레스키의 시선은 당연히 쿠폴라를 향하고 있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활동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피치 미술관 회랑에 있는 것과 달리 이 두 사람만은 피렌체 성당을 바라보도록 했고 그들이 남긴 업적을 시선을 통해 누구라도 알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피렌체의 스토리텔링에 혀를 내둘렀다. 자세히 보면 브루넬리스키의 손에는 컴퍼스가 들려 있는데 수학자였던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는 꼼꼼함마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피렌체 대성당을 완성시킨 두 인물이 나란히 자신의 시점으로 피렌체 대성당을 바라보고 있다. 


통상적으로 종탑의 경우 성당의 부속건물로 연결되어 있지만 피렌체 종탑은 독립된 건축물이다. 그래서인지 설계자인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이름을 붙여 특별히 '조토의 종탑'이라는 이름이 별도로 존재한다. 쿠폴라가 오르기에 굉장히 가파르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는데 '조토의 종탑'이라고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조토의 종탑은 약 85m로 쿠폴라보다 높지는 않지만 아파트 23층 높이에 해당하는 정도니 엘리베이터 없이 23층 건물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셈이다. 하루에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은 둘 다 오르는 건 무리지 싶다. 


총 41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중간중간 창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쿠폴라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일정 부분 쉴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나름은 괜찮았다. 숨이 좀 차기는 해도 잔뜩 기대를 품고 종탑의 맨꼭대기에 도착하는 순간,,, 맙소사. 내가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철조망이 있긴 했지만 안전을 위한 것이라 여겼고 정상에 올라가면 쿠폴라를 볼 수 있도록 시야가 어느 정도는 확보될 줄 알았다. 사실 그 기대 하나로 종탑을 열심히 올랐다.

아파트 23층 높이에 달하는 조토의 종탑 외관은 인간의 구원을 주제로 한 내용들로 장식이 되어 있다.  
쿠폴라와 조토의 종탑 수치 비교 


하지만 종탑의 꼭대기에는 이렇게 촘촘하게 완전히 철조망으로 가려져 있었다. 안전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철조망 너머로 바라보는 쿠폴라는 한 겹의 장막이 쳐진 느낌이라 감흥이 훨씬 반감됐다. 그래도 땀을 흘리고 올라온 터라 11월에도 땀이 쏟아지는데 종탑 꼭대기에서 부는 바람은 정말 시원했다. 비록 철조망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 쿠폴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서 좋았다. 원래는 일주일이나 피렌체 머물게 되니 기회가 되면 쿠폴라도 올라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조토의 종탑을 올라가 보고 나니 희한하게도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어차피 예약이 다 찬 상태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긴 했다. 

철조망 사이로 바라본 쿠폴라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본 베키오 궁전 일대 


+ 피렌체 추천 영화 

메디치 : 마스터즈 오브 플로렌스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를 빼고선 논할 수 없다. 이 에피소드를 다 보고 나면 방대한 메디치 가에 얽힌 이야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다. 영화지만 거의 사실에 기초한 내용들로 피렌체 대성당의 지붕이 없는 채로 있었던 것까지 재현되고 있다. 강추하는 영화다. 


영화 '보티첼리, 피렌체와 메디치' 

현재 아트센트 모모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로 보티첼리의 작품을 통해 피렌체의 시대상을 조명한다.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보티첼리의 위대함과 함께 피렌체 홍보 영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렌체 곳곳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있다. 추가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5월에는 라파엘로, 6월에는 피렌체와 우피치 미술관이 상영될 예정이다. 


+ 다음이야기 :   피렌체 여행의 하이라이트, 피렌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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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시리즈

 런던 어학연수와 런던 생활에 관한 이야기


몰타 어학연수와 몰타 생활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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