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작가 정해경 Sep 06. 2024

[몰타트레킹] 현지인도 모르는 동굴 탐험

#23 몰타 겨울,  '바람의 동굴' 탐험, 플레이모빌 구경은 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몰타, 겨울

#23. 몰타 사람도 잘 모르는 '바람의 동굴' 탐험, 플레이모빌 구경은 덤. 



+ 좀 색다른 곳은 없을까? 

다시 몰타에서 일상이 시작됐다. 제주도 1/6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인 몰타를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지간한 곳은 다 가 본 상태라 관광객들이 가는 곳들은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한국 귀국까지 남은 기간은 약 한 달여. 날짜가 길다 싶지만 주말로만 치자면 단 3번 만을 남겨두고 있다. 시간의 제약이 주어지면 사람은 특별한 걸 찾기 마련이다. 너무나 작은 나라인 몰타에서 과연 남들이 안 가본 곳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왕이면 그런 곳을 가보고 싶었다. 

바람의 동굴에서 친구와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구글지도를 열어 내가 가보지 않은 지역을 탐색하다가 우연히 동굴 사진을 하나 발견했다. 몰타의 남쪽,  비르제부가(Birżebbuġa)에 있는 가르 이르 리(Għar ir-Riħ)라는 동굴이었다. 구글에 찍힌 동굴 사진을 보자마자 '여긴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살짝은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구글 지도만 믿고 나섰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 구글 지도에 표시된 트레킹 코스의 멋진 사진에 혹해 몰타 남부 지역으로 친구들을 끌고 트레킹을 나섰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구글 지도에 표시된 트레킹 코스는 처음에는 좋았다. 얼마 걷지 않아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공장지대였고 그곳을 지나가니 농사를 짓는 사유지였다. 곧장 그 길을 따라가면 몰타 일몰 장소로 유명한 딩글리클리프로 이어지는 코스였는데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걸어서 몰타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걸어보겠다는 생각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사람이 살지 않으니 버스도 다니지 않아서 1시간 넘게 걸어간 곳을 그대로 되돌아 걸어 나와야 했던 뼈아픈 추억이 있다. 

몰타 비르제부가(Birżebbuġa) 지역의 가르 이르 리(Għar ir-Riħ)


이번에는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인근에 몰타에서 나름 유명한 테마파크인 플레이 모빌이 있었다. 플레이 모빌은 한번 가보고 싶긴 했으나 너무 멀어서 포기했던 곳이었다.  수도 발레타에서 버스로 1시간 걸리는데 몰타가 워낙 작은 나라고 익숙해지다 보니 30분만 넘어가면 멀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플레이 모빌에서 동굴까지 약 3km 정도고 중간중간 버스 정류장도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혼자였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학원에서 만나 제일 친한 사이가 된 이본이 어학연수를 끝내고도 몰타에서 취업 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트레킹을 좋아했기에  그녀 역시 신기한 동굴이라며 흔쾌히 따라나섰다. 


플레이모빌까지는 다소 외진 지역이라 집에서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몰타공항에서 다른 버스로 환승했다. 몰타 공항에서 대략 1시간 남짓 시골길을 달리고 달려서 몰타의 남쪽 끝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테마파크라고 해서 뭔가 거창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공단지역에 위치한 건물 한 동이 플레이모빌이었다. 몰타에서 공단을 와 볼일은 거의 없기에 좀 신기했다.  

플레이 모빌 입구


+ 몰타가 플레이모빌 생산국이라니!!!! 

플레이모빌은 내 취향은 아니지만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꼭 한 번은 와보고 싶었다. 멀리서 볼 때 특별할 것 없는 건물이었는데 입구에 도착하니 중세의 성처럼 꾸며져 있었다. 아이들은 입구에서부터 환호성이었다. 이제 어른들을 환호하게 만들 차례. 어른 실사 크기로 만들어진 몰타 기사단의 플레이모빌이 일렬로 서서 맞이하니 기념사진을 안 찍을 수가 없다. 


레고 종류에는 크게 흥미가 없어 잘 몰랐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몰타가 플레이모빌 주요 생산국이었다. 플레이모빌은 독일의 크레이티브사(Geobra Brandstätter GmbH & Co. KG)에서 생산하는 장난감 브랜드다. 본사인 독일 외에 몰타와 체코 공화국에서 주요 제품이 생산되는데 몰타에서는 기본 피규어부터 작은 액세서리가 대부분이 생산되는 주요 생산국이었다. 어쩐지 공단지역 한가운데 있다 싶었는데 주변 공장이 모두 피규어 생산 공장이었나 보다. 

아이들게는 돈먹는 하마인 플레이모빌 


플레이모일은 유료 입장으로 (5유로였나) 입장료까지 내가면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화장실이 테마파크 안에 있었다. 직원에게 화장실만 얼른 다녀오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해서 화장실을 가는 김에 잠깐 둘러봤다. 실내는 온통 플레이모빌 세상이다. 피규어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어 깜짝 놀랐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실내는 물론이고 야외공간까지 플레이모빌로 꾸며져 있고 게다가 사람 실물 크기의 피규어들이라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다양한 직업군의 플레이모빌은 덤이었다. 


기념품 숍에서 오직 몰타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몰타기사단의 플레이모빌을 구입했다. 몰타기사단의 플레이모빌은 이곳까지 오지 않아도 잘 찾아보면 발레타에 있는 기념숍에서도 판매를 하고 있다. 피규어의 종류도 엄청 다양해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보다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고 하니 플레이모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방문해봐도 좋겠다. 단, 생각보다 규모는 작으니 너무 큰 기대는 말고. 

플레이모빌 생산지가 몰타라니
몰타에서만 판매하는 몰타기사단 피규어를 기념으로 샀다.


+ 몰타 사람들도 잘 모르는  '바람의 동굴'

플레이모빌을 나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됐다. 몰타 남부인 비르제부가(Birżebbuġa)는 마샬셜록과 블로그라토 중간에 있는 곳으로 대부분 공장지대였다.  도로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니 몇 가구뿐이긴 해도 주택가가 있었다. 마침 동네분들이 공터에 모여 같이 음식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를 아주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매주 일요일 아침 어촌시장으로 유명한 마샬셜록과 푸른빛이 아름다운 동굴 블루그라토는 유명한 관광지라 사람들이 많이 간다. 하지만 두 지역의 중간에 있는 비르제부가는 관광지도 아니고 볼거리도 없고 게다가 몇 가구 살지 않는 아주 외진 곳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몰타 사람들도 거의 올 일 없는 동네일 텐데 낯선 외국인이, 그것도 동양인이 지나가니 그들 눈에 나는 꽤 신기했던 것 같다. 가볍게 눈인사로 어정쩡함을 대신했다. 

몰타 사람들도 잘 안가는 동네를 걷다니.


동네를 벗어나자마자 아주 한적한 시골 풍경이다. 몰타는 경작할 수 있는 땅도 작지만 굉장히 척박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농사만 가능하면 텃밭을 만들고 다양한 채소를 심은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모처럼 시골길을 걷는 데다가 머리 위로는 수시로 비행기가 지나가니 나이도 잊고 이본과 나는 깔깔거리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몰타는 꿀이 특산품인데 남쪽지역에서 꿀을 재배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에서 벌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게 양 떼를 만났다.  몰타에서 양을 키운다는 게 왠지 잘 상상이 안 될 정도로 생소한 풍경이라 친구와 나는 한참을 양 떼 구경을 했다. 

너무 한적한 시골길  
자투리 땅에 뭐라도 심는 몰타 사람들 
몰타에서 양을 만날 줄이야.
곳곳에 사유지 


구글 지도를 따라 동굴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또 일정 부분은 사유지였다. 사유지를 피해 옆으로 조금 돌아 내려가니 온통 들꽃 천지다. 여름이라면 다 메말라서 사막 같을 텐데 겨울로 접어들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우리나라 봄에 볼 수 있는 초록의 풍경이 가득이다. 지천으로 널린 들꽃까지 몰타 도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에 이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몰타는 바다와 접한 해변이 있는 지형은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고 대부분 암석이 깎아지른 듯한 지형이다. 특이하게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촛대바위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또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지라 동굴 찾는 건 잠시 잊고 촛대바위로 향했다. 바위 가까이에 도착을 하고 보니 촛대바위로 갈 수 있는 지형이 아니었다.  


바위 부분만 튀어나온 곶이어서 건너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언덕 위에는 요새가 있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벵기사 요새(Fort Bengħisa)였다. 영국이 몰타를 지배하던  당시 몰타의 최남단에 있는 마샬셜록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요새였다. 몰타 1등급 문화재라고 하는데 어쩐 일인지 이 요새는 전혀 관리가 안되고 있었다.  

몰타는 비 내리는 겨울이 돼야 들판에 풀이 자라고 꽃이 핀다.
몰타의 촛대바위라고 이름 붙이겠어.  
국가 주요 문화재라고 하는데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벵기사 요새 


이젠 진짜 동굴을 찾아야 하는데 구글 지도 표시된 곳까지 왔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동굴은 보이지 않았다.  몰타는 석회암 지형이라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풍화작용에 의해 자연스레 동굴이 만들어진 곳이 몇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고조 섬의 믹타동굴이고 또 다른 곳은 일몰로 유명한 딩글리클리프에 있는 뷰포인트다. 


두 곳 모두 입구에 동굴 안내 간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굳이 찾지 않아도 입구를 바로 알 수 있었는데 이곳은 평평한 바위만 있을 뿐. 구글 지도에는 분명히 동굴이 표시되어 있는데 지형 자체가 동굴이 있을 만한 지형이 아니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지만 동굴 입구처럼 보이는 곳은 없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오가는 사람도 없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발아래는 낭떠러지 
동굴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고조 섬 믹타동굴과 딩글리 클리프 윈도우  


이본은 곧 해가 질 시간이니 일몰이나 보자며 이내 동굴 찾기를 포기했지만 나는 도저히 포기가 되지 않았다. 결국 바위 사이를 한참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바위틈 사이로 조그만,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보였다. 설마 이런 곳이 동굴은 아니겠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입구가 너무 좁은 데다가 안쪽으로는 빛이 하나도 없어 뭐가 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철저히 안전 제일주의인 이본은 들어가지 말라고 말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코 앞에 두고 그냥 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좁은 입구를 간신히 들어서니 바닥은 크고 작은 돌들이 가득했지만 조금씩 안으로 갈수록 길이 점점 넓어지면서 꽤 긴 통로의 동굴이 펼쳐졌다. 너무 캄캄해 스마트폰의 불빛에 의지해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니 어디선가 박쥐가 푸드덕거리고 나올 것 같아 사실은 엄청 긴장했다. 그렇게 10여 미터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시야가 열리면서 바다가 보인다. 구글 지도에서 본 풍경이었다.  


와- 세상에- 좁은 바위틈 사이로 이렇게 멋진 동굴이 있다니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내가 소식이 없자 밖에서 이본이 괜찮냐며 지르는 소리가 메아리로 울린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밖으로 나가 이본과 함께 다시 동굴로 들어왔다. 이본 역시 감탄에 감탄을 하며 바위 사이에 이런 동굴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워했다. 


이곳의 이름은 몰타어로  'Għar ir-Riħ'인데 몰타어를 어떻게 읽는 줄 몰라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가르 이르 리(Għar ir-Riħ)라고 했다. (실제로 몰타 사람들이 이렇게 발음하는지는 모르겠다.) 뜻은 '바람의 동굴'이었다. 동굴 앞에 서 보니 왜  '바람의 동굴'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동굴 안에서 일몰을 보고 싶었으나 안전장치도 없어 발을 헛디디면 바로 천 길 낭떠러지의 바다로 풍덩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동굴 안이 더 컴컴해지니 밖으로 나갈 때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굴을 발견한 기념으로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고 다시 동굴 밖으로 나오니 하늘이 온통 붉은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일몰이 시작됐다.  

이 구멍 사이로 바다 앞까지 십여 미터 동굴이 만들어져 있었다.  동굴에서 바라본 일몰  
동굴을 찾아냈다고.


몰타는 정말 작은 섬이라 마음만 먹으면 바다 너머로 지는 일몰은 언제든 볼 수가 있다. 일몰은 별 거 아닌 날도 참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는 신비한 재주가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이본이 아니었다면 혼자서는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실없이 웃는 나를 이본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언제나 묵묵하게 내가 하고 싶다는 것에 의문부호를 달지 않고 늘 한없는 지지를 보내주는 이본이 새삼스레 고마웠다. 


"아마, 이 동굴을 와본 사람은 어학연수생을 통틀어 너와 나밖에 없을 거야. 함께 해줘서 고마워." 


찐친인 이본과 함께 몰타에서 이렇게 멋진 일몰을 볼 날이 몇 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갑자기 울컥해졌다. 이런 내 마음이 그녀에게 전달되기라도 한 걸까.  그녀가 갑자기 나를 와락 끌어안는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몰타의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들며 우리들만의 추억에 곱게 새겨놓았다.  


몰타에서 정말 특별했던 하루가 아주아주 천천히, 저물어 가는 중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던 몰타의 일몰 
나이와 국적이 뭣이 중한디? 
신비로운 느낌의 필플라(Filfla) 섬 



+ 다음이야기 : 몰타 현지인들과 마지막 트레킹 






+ 구독하기, 라이킷, 댓글 부탁드려요~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 알림 설정을 해두시면 가장 먼저 글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




유튜브 '별바다 TV (https://www.youtube.com/@bywaytravel)'에서 여행의 기록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시리즈

 런던 어학연수와 런던 생활에 관한 이야기


몰타 어학연수와 몰타 생활에 관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