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몰타로 돌아왔을 때 가장 기대한 것은 몰타 트레킹이었다. 몰타를 떠나기 전 우연한 기회에 몰타 현지인 트레킹 모임에 참여를 하게 됐고 그들과 함께 몰타의 만리장성이라고 불리는 '빅토리아 라인' 야간 트레킹을 함께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트레킹 모임을 계속하고 싶었으나 몰타의 여름은 너무 뜨거워 사실상 트레킹이 불가능했다.그게 아니어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런던으로 떠나게 되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트레킹은 고작 한 번이었고 맛보기에 그쳤다.
런던에 있으면서도 몰타 트레킹은 페이스북을 통해 계속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몰타로 돌아가서 그들과 함께 트레킹 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트레킹 리더인 그레고리가 제안하는 트레킹 코스는 늘 그렇듯 정상적인 루트의 트레킹 코스는 아닌 것 같았다. 트레킹 예상 소요시간에 따라 걸을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가늠해 그때그때 코스를 만들어 낸다고나 할까. 그러니 외국인인 내입장으로선 도저히 혼자서 가볼 수 없는 길을 걷게 되는 셈이니 '어디를 걷는지'보다는 '내가 트레킹에 참여할 시간이 되는가'가 관건이었다.
늦은 오후에 시작해 몰타 중남부 지역 약 10km를 걸었던 트레킹
이번에 걷게 될 지역은 몰타의 중남부의 칼카라(Kalkara)와 잡바르(Zabbar) 지역으로 약속 장소는 잡바르 파리쉬 처치(Żabbar Parish Church)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칼카라'라는 곳이 궁금해 이것저것 정보를 검색해 보다가 깜짝 놀랐다.'칼카라'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석회'를 뜻하는 '칼케'(Calce)가 그 어원이라고 한다. 이 지역은 로마 시대부터 석회 가마가 있었고 그래서 이름도 칼카라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석회를 부르는 또 다른 말이 있으니 바로 '라임(lime)'이다. 지질학에 도통 문외한이라 석회와 라임이 같은 단어라는 건 상상도 못 했다. '라임'이라는 단어에 왜 이리 호들갑인가 싶지만 몰타를 아는 사람들은 다 나와 같은 반응일 것이다. '라임스톤'이 바로 몰타를 나타내는 고유의 색이기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몰타를 내려다보면 도시의 색깔은 온통 라임스톤 일색이다. 몰타가 유럽에 있지만 유럽 같지 않다고 느끼는 데는 컬러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몰타 특유의 색감인 라임스톤도 한 몫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라임스톤이 도시의 이름인 칼카라라니! 트레킹 덕분에 이렇게 또 몰타에 대한 상식을 하나 얻어간다.
몰타 특유의 건물 색깔, '라임 스톤'
해 질 녘 라임스톤
오전에 계속 비가 내렸던 탓에 트레킹은 늦은 오후에 시작해 약간의 나이트 트레킹이 될 예정이었다. 트레킹 미팅 포인트였던 잡바르 파리쉬 처지에 늦은 호우에 도착했다. 트레킹이 아니었다면 한 번도 오지 않았을 곳이고 보지 못했을 성당이다. 이 성당도 마을 중심가에 있긴 했는데 마을 규모에 비해서는 상당한 규모였다.
몰타에서 처음 생활했을 때는 동네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큰 성당들이 있다는 게 신기해 무조건 들어가 보곤 했었다. 몰타 생활 6개월이 넘어가니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은 걸 보니 이젠 몰타에 적응을 한 것인가 싶은데 이제 3주 뒤면 몰타를 떠난다 생각하니 기분이 좀 묘했다.
처음 가본 잡바르 지역
몰타 현지인들 트레킹은 그때그때 모이는 인원이 들쭉날쭉하긴 해도 대략은 30여 명 정도는 항상 모이는 것 같았다. 몰티즈(몰타인)도 있지만 다른 나라 사람도 꽤 많았다. 몰타가 EU에 속한 나라라 스페인, 독일, 벨기에, 런던, 프랑스 등 국적에 상관없이 몰타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간다는 게 흔하지도, 쉬운 일도 아닌 한국 사람으로선 국경을 지방 도시처럼 넘나들며 국가의 경계가 없는 이들의 삶은 언제나 낯설다.
혹시 여름에 만났던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아는 얼굴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일행이 있는 것과 달리 여전히 나는 혼자고 동양인도 나 혼자다. 외국이 좋은 점은 동양인이 아무도 없고 내가 혼자 간다고 해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는 사람은 리더인 그레고리뿐이지만 어떠랴.
골목길을 걸어서
그레고리가 앞장을 서고 트레킹이 시작됐다. 성당을 등지고 이 골목 저 골목을 걸어 동네를 빠져나간다. 정확한 트레킹 루트를 모르니 구글 지도를 켜고 주요 건물마다 일단 체크를 해둔다. 내가 다시 이 길을 걸어보겠다는 목적보다는 어느 길로 어떻게 걸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마을 골목을 몇 번 휘돌아 나가니 이내 한적한 시골길이다. 이 일대는 쓰리시티즈의 외곽으로 시골 풍경이다. 구글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오늘 코스도 역시 그레고리가 아니었다면 혼자서는 절대로 걷지 못할 길이다.
몰타 현지인과 함께 트레킹
몰타의 겨울은 농사 시기인데 겨울철에 비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밭에 심어 놓은 작물이 듬성듬성 자라고 여름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꽃들도 피기 시작한다. 겨울이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우리와 달리 겨울에 꽃이 피고 새싹이 자라는 몰타다.
꽃이 피고 식물들이 자라나는 몰타의 겨울.
잡바라 지역을 벗어나 도로를 따라 걷다가 작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문화재 같은 것을 발견했다. 문화탐방 목적이 아니니 유적지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다. 이날 트레킹에는 몰티즈가 많지 않았고, 설령 몰티즈가 있다고 해도 중요 유적이 아닌 이상 다 알기도 힘들 것이다.
구글 지도에 'The Three Crosses'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지역은 잡바라와 마르사스칼라(Marsascala)의 경계였다. 이름을 검색을 해 보니 비문이 없어 현지인들도 이 세 개의 십자가가 누가 왜, 언제 정확하게 세워진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한 블로그에 따르면 이 십자가가 세워진 것에 3가지 버전이 있는데 터키인에게 살해되어 이곳에 묻힌 세 명의 신부라는 것과 한 남자가 전염병으로 사망해 이곳에 묻혔다는 것과 은둔해 살던 노인이 죽음에서 부활한 후 이곳에 세 번이나 묻혔다는 이야기였다. 이 중 세 번째 이야기가 가장 신빙성이 없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곁들여 놓기도 했었다.
왜 여기에 이 십자가 세워진 것은모르겠으나 대략적으로 1600년 초반 정도에이 십자가 세워진 건 확실했다.비문은 없지만 생김새만으로뭔가 굉장히 사연이 있어 보이긴 했다.
The Three Crosses
제주 올레와도 묘하게도 닮은 길로 접어들었다. 이런 곳에도 성당은 빠지지 않는다. 구글 지도에는 성 니콜라스 성당(St. Nicholas Chapel )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름 그대로 성 니콜라스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이 지역에 있는 농민들을 위해 지어진 성당인데 16세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다만, 정기적으로 사용하던 성당은 아니었기에 유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부침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보시다시피 사람이 사는 가구도 몇 가구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시골 동네이니 유지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매주 금요일 저녁에 묵주 기도나 예배를 위해 개방되고, 한 달에 한 번씩 미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고요한 들판 한가운데 조그만 성당에서 행해지는 묵주기도와 미사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들판 한가운데 있는 성 니콜라스 성당
제주 올레길과도 닮았다.
저 멀리 몰타의 수도 발레타가 어렴풋이 보인다
초록색 들판을 볼 수 있는 몰타의 겨울
들판 길을 계속 걷나 싶었는데 길은 바다로 이어진다. 나름대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가진 건물이 나타났다. 누가 봐도 이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 다들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 찍기 바쁘다. 짓다만 건물인 건지, 관리가 안 된 건물인 건지 가늠이 힘들다. 구글지도는 레오나르도 성당(St. Leonardo's Chapel)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원래는 성요한 기사단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1970년 때까지만 해도 TV 드라마 촬영장소로 쓰였을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어쩐 일이지 지금은 너무 관리가 안 돼 완전히 폐허로 방치되고 있었다. 몰타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몰타 외곽의 경우 문화재들이 방치되다시피 하는 것들을 종종 볼 수 있어 안타까웠다. 문화재 관리는 아무래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몰타의 경제력이 EU 지원 없이 독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중세에는 성요한 기사단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됐던 성 니콜라스 성당이지만 지금은 폐허가 됐다.
선인장 덤불을 헤치고 바다로 향하는 중
선인장 덤불을 헤치고 내려가니 바다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시기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차박인데 몰타 해안선 곳곳에도 차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작은 섬나라인 몰타는 캠핑장 시설이 드문 편이다. 아무래도 섬나라 특성상 전기와 상수도 시설에 제약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바닷가 인근에서 캠핑카도 봤고 차박을 하는 사람들도 보긴 했지만 인근에는 전기와 수도를 갖춘 캠핑장 시설이 따로 없으니 이들이 캠핑을 한다면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궁금하다.
바다를 따라 걸어요.
몰타 차박 풍경
계속 바닷가를 따라 걸을 줄 알았는데 1km 남짓 걷다가 다시 마을로 향했다. 걷기 앱을 확인하니. 처음 출발했던 성당에서 여기까지 대략 6.5km 이제 반은 지났다. 시계는 어느덧 오후 5시를 넘어가는 중이고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바닷길, 들판, 마을길 골고루 걷는 중
구름이 많아도 불타는 일몰
조금씩 날은 어둑해지고 칼카라(Kalkara)에 있는 왕립 해군 묘지(Royal Navy Cemetery)에 도착했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는 몰타지만 세계 1,2차 세계 대전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 묘지는 1901년부터 매장을 시작했는데 이탈리아인, 폴란드인, 프랑스인, 독일인, 일본인을 포함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묘지가 있다고 한다. 시간이 늦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고 밖에서 보기만 했다. 출입문이 작아서 규모가 작은 줄 알았는데 구글지도를 보니 규모가 꽤 컸다.
왕립해군묘지
왕립해군묘지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조용한 성당, 산타 바르바라 성당(The Church of Saint Barbara )에 도착했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주세페 발레리오 아벨라가 교회와 수녀원을 세우기 위해 칼카라 땅을 카푸친 수녀회에 기증했고 1736년에 공사를 시작해 1743년에 완공했다고 되어 있었다.
별다른 설명이 없는 데다가 저녁이라 성당 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이 성당에서 꼭 보고 가야 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성당 옆쪽의 작은 건물로 신비로운 푸른빛이 비치고 있었다. 사람들도 신기하다는 듯 일제히 사진을 찍어댔다.
안을 들여다보니 원래부터 있던 동굴 같은 것을 그대로 건물로 지은 것 같았다. 성모 마리아 상 주변으로 푸른 조명을 설치해 신비스러운 느낌이고 군데군데 묵주를 달아 매우 성스럽게 꾸며놨다. 궁금증이 폭발했다.
몰타 어디에서도 이런 걸 본 적이 없어 그레고리에게 이렇게 꾸민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이곳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굉장히 크게 하니 크리스마스 때 한번 와보라고 했다. 너무 궁금해서 구글에서 폭풍 검색을 했으나 건물이 지어진 연도 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 지금껏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다.
정말 신비한 느낌이 들었던 산타 바바라 성당
이제 날은 완전히 깜깜해졌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부지런히 움직인다. 한참 성벽을 따라 걷는다 싶었는데 갑자기 로터리에 웅장한 문이 나왔다. '노트르담 게이트(Notre Dame Gate)'였다.
몰타의 수도가 지금의 발레타가 되기 전에는 세 개의 도시가 하나의 수도였던 쓰리시티즈였다. 오스만으로부터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1675년 성요한 기사단이 쓰리시티를 둘러싼 9km의 방어선을 따라 7개의 문을 만들게 된다. 이 문은 그중 하나로 수도로 들어가는 정문 역할을했던 문이다. 현재 몰타 1등급 국가 기념물로 관리되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이 지역은 쓰리시티즈의 외곽이고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니어서 관광객도 오지 않을뿐더러 나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런데 성요한 기사단 시절에 지어진 요새와 출입문이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런던을 떠나기 전에 비토리오사 혹은 비르구(Vittorios, Birgu)를 탐방했을 때 성요한 기사단 시절 지어진 비르구의 성문을 (https://brunch.co.kr/@haekyoung/183) 봤었는데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가 쓰리 스티즈와 잡바라(Żabbar)의경계라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도랑을 파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교 방식이었고 한다. 지금은 복개가 되었는지 사람들이 문을 통과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이 문 안으로 요새가 있다. 요새 안에 있던 건물은 군 병원으로 사용됐다. 세계 1차 대전 당시 1915년 갈리폴리에서의 참패 이후 수천 명의 부상병들이 치료와 요양을 위해 몰타로 이송되었는데 그때 일부가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몰타가 지중해의 나이팅게일로 불린 이유기도 하다. 지금은 현재 St. Edward's College 대학으로 변신했다.
문의 정면 한가운데 누군가의 동상이 있어 주요한 인물인 것 같았는데 찾아보니 성요한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인 니콜라 코토네르의 청동 흉상이었다.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요새와 성문을 만들었기에 전망이 좋다고도 했고 중앙의 청동 동상에 '비브 이스-술탄', 왕의 관문이라는 글도 적혀있다는데 어두워서 뭐가 뭔지 하나도 안 보였다.
몰타 주요 국가 문화재인 노트르담 게이트
성요한 기사단 시절 수도 외곽으로 9km의 성벽을 쌓았고 그중 일부가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노트르담 게이트를 지나 약 1km 남짓 걸으니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왔고 트레킹이 끝났다. 오늘 걸은 거리는 대략 10km였고 3시간 정도가 걸렸다. 출발할 때는 몰랐는데 날이 캄캄해지고 나니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이다. 아직 크리스마스까지 3주나 남았는데도 크리스마스 한가운데 있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
몰타를 떠나기 전까지 몰티즈들과 계속 트레킹을 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이 트레킹이 마지막이었다. 원래는 트레킹을 한 번 더 할 수 있었는데 비가 와서 트레킹이 취소됐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과 연말연시에는 트레킹을 잠시 쉰다고 했기에 결국 이날의 트레킹이 현지인과 함께한 마지막 트레킹이 됐다. 몰타를 떠나기전에 그레고리에게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다시 몰타를 방문하게 되면 트레킹을 함께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보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고조섬 트레킹을 함께 해보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웠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페이스북을 통해 고조 섬 트레킹 사진이 올라오니 몰타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쉬운 것 하나 두고 왔으니 언젠가 몰타를 다시 한번 가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그레고리의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다.
아름다운 고조 섬(사진출처 : 그레고리 페이스북(@Gregory Comenzuli)
몰타 섬 종주 50km. (사진출처 : 그레고리 페이스북 @Gregory Comenzu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