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몰타 겨울, 다시 학생 모드
몰타로 돌아왔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원래는 런던 어학연수로 모든 어학연수가 끝났어야 하는데 몰타에서 런던으로 가면서 몰타 어학원의 행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몰타에서 6개월(24주) 연수를 모두 마친 후 런던으로 넘어가 3개월(12주) 연수 연계로 계획을 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몰타에서 3개월이 넘어갈 즈음 프리인터미디어트의 선생님과 심한 갈등이 시작됐고 기다렸다는 듯 영어 슬럼프가 시작됐다. 설상가상 몰타의 너무 뜨거운 여름 날씨는 도저히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몰타 수업을 다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6주를 앞당겨 런던으로 떠났다.
어학연수 전에 미리 전 일정 수업에 대해 수업료를 납부했는데 중간에 그만둘 경우 페널티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같은 계열인 EC로 옮겨가니 몰타에서 런던으로 전학의 개념이라 페널티 없이 몰타에서 남은 수업 주차만큼 파운드 화로 환산해 모자라는 금액만큼만 추가로 학비를 납부했다.
에이전시도, 몰타 EC도 알아서 계산을 했겠거니 싶어 신경도 쓰지 않았다. 런던에서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야 몰타 EC에서 일주일치 계산이 누락됐다고 뒤늦게 연락이 왔다. 런던 어학연수를 마치고 나면 다시 몰타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이었기에 일주일 치 수업료 환불을 받는 대신 몰타에서 일주일 수업을 더 받기로 결정을 했다.
고작 일주일간의 영어 수업이지만 떠나기 전 몰타와 또 어떤 점이 다를지 궁금했다.
EC 몰타는 외관은 바뀐 것은 없는데 실내는 인테리어가 좀 바뀌어 있었다. 몰타에 있는 내내 공사로 계속 소음이 많았었다. 가장 크게 바뀐 건 2층에 작지만 도서관이 있었는데 30세 전용 라운지로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탑층이 공사를 끝내고 학생들 휴게실로 탈바꿈을 했다. 월드컵 때는 이곳에서 학생들이 어울려 TV를 보며 응원을 하기도 했다. 휴게실이 있긴 하지만 모든 층이 다 나누어져 있기에 일부러 탑층을 올라오지 않는 이상 이용하는 사람만 이용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
새로 수업 시작하는 어학원 첫날, 이미 익숙한 곳인데도 몇 달 만에 다시 오니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액티비티를 담당하는 스텝인 알렌이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너 진짜 해보고 싶다던 바다 다이빙 못하고 갔었잖아. 그런데 겨울에는 다이빙 액티비티가 없는데 괜찮겠어?"라고 묻는다. 완전 깜짝 놀랐다.
"와, 어떻게 그걸 기억하지? 너 진짜 기억력 좋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몰타에서 꼭 해보고 싶던 것이 바다 다이빙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런던으로 떠나게 되면서 급하게 신청해 놓은 바다 다이빙을 못하고 간 건 지금도 두고두고 아까운 액티비티다.
어학원을 들고 나는 학생이 족히 수백 명이 되고도 남을 텐데 나의 마지막 액티비티를 기억하고 있는 알렌에 혀를 내둘렀다. 액티비티 담당인 알렌은 오며 가며 자주 보게 됐는데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액티비티의 특성상 어학원이 끝난 뒤 진행되는 활동들이 많고 심지어는 휴일에도 액티비티 진행이 되는 경우가 많아 소위 야근을 밥 먹듯 하기 일쑤다.
자신의 업무 시간은 무조건 칼같이 지키고 업무에서도 형식적으로 임하는 직원들이 허다했지만 몇 개월 지켜본 알렌은 다른 이들과 좀 달랐다. 물론 자신의 일이니 당연히 해야겠지만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싫은 내색 없이 늘 미소와 넘치는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와 몇 마디 주고받는 대화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중에 좀 길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궁금한 걸 물었다. 아무리 액티비티 담당이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늦게까지 소위 학생들 치다꺼리하는 게 힘들지 않냐고, 어쩜 그럼 매번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냐고.
알렌은 쿨하게 대답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나는 이 일이 너무 즐거워. " 즐기는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몰타 EC 어학연수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은 건 그의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도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가 드라마틱하게 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나로서는 몰타에서 일주일 수업에 크게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기는 했다. EC 몰타에서는 초, 중급 수업이 대부분이었고 EC 런던은 중급, 고급 수업을 들어 두 학원의 객관적 비교는 무리였다. 일주일이긴 해도 몰타와 런던에서 같은 과정인 어퍼인터미디어트 수업이니 두 어학원이 어떤 차이가 있을지 궁금했다.
영국 남자 크리스 선생님 반에 배정됐다. 오늘 나를 포함해 새로운 학생이 3명인데 전자 칠판에 이름을 미리 적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칠판에 이름 적는 건 런던 문화라고 생각했는데 영국 문화인가. 국적비율은 몰타를 떠날 때처럼 대다수가 남미대륙이었지만 다른 점이라면 콜롬비아 인이 대다수였던 여름과 달리 브라질리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런던에서도 그랬지만 30+ 반에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별 기대가 없었던 몰타였는데 크리스 선생님과의 일주일은 그야말로 퍼펙트였다. 1
개인적으로는 런던의 수업이 여러 면에서 좋다고 느꼈기에 사실 몰타의 수업에 대해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런던과 몰타가 'EC'라는 같은 어학원이지만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다. 월, 수, 금은 교과서 위주의 수업이고 화, 목은 교과서가 아닌 자율 수업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몰타의 경우 화, 목에도 같은 선생님이지만 런던의 경우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맡아서 진행한다. 즉, 런던은 일주일에 2명의 선생님과 수업하고 몰타의 경우는 한 선생님과만 수업을 한다.
런던에서는 인텐시브 수업(보충 수업)도 함께 들었기에 나의 경우는 일주일에 총 4명의 선생님과 만났다. 한 사람과 수업하다가 4명의 선생님과 수업하려니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각각 다른 발음에 수업 스타일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런던 시스템에 적응을 하고 나니 일주일에 4명의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다만, 어퍼 인터미디어터의 경우 교과서의 내용이 지문도 길고 고급 문법, 어휘(구동사 필수), 이디엄까지 있어 일주일에 교과서 한 챕터를 배우기에 3일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 주에 배워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것 위주로 압축 요약해서 3일 만에 완벽하게 정리해서 수업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앞에서 순서대로 나가다가 중요한 뒷부분은 아예 진도도 못 나가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선생님도 있었다. 선생님에 따라 문법, 어휘 등 자신이 잘 가르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인데 문법을 잘 가리키는 선생님이 확실히 교과서 진도를 수행하는 데는 탁월했다.
그런 런던과 달리 몰타는 한 명의 선생님이 일주일 내내 모든 수업을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니 어쩌면 런던보다 선생님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교과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화, 목의 수업의 경우 선생님이 얼마나 수업을 잘 준비하느냐에 따라 수업의 질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런던에서 수업을 해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프리 인터미디어 수업 때 수업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 선생님의 말로만 때우는 수업을 경험했었기에 런던의 쫀쫀한 수업 방식이 더 좋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크리스는 어떤 스타일로 수업을 진행할지 너무 궁금했다.
나의 경우 기본 실력도 부족하고 절대적으로 어휘가 모자라다 보니 교과서 내용을 수업 전에 미리 예습을 다 한 후 수업에 적어도 20~30분 이상은 먼저 도착해 그날 배울 내용을 미리 복습을 해야 그나마 수업을 좀 따라갈 수 있었다. 첫 날도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미리 공부를 좀 하려고 했는데 크리스가 먼저 와 있었다.
전 어학연수 기간을 통해 선생님이 학생보다 일찍 오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주에 배워할 교과서 내용을 전부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든 PPT 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진행했다. 일주일 내내 교과서에 나온 내용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렇다고 교과서 내용만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기본으로 하되 학생들이 그 표현을 실생활에서도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구동사, 이디엄, 광고 자료, 영상 자료 등등등 정말 다양한 자료를 준비했다. 수업자료도 충실했지만 매 수업 시작 전 지난 시간에 익혔던 어휘, 이디엄, 구동사 등을 점검하는 시간도 필수였다. 짝활동, 단체 게임, 토론 등 지루할 틈도 없고 매시간 긴장감도 놓칠 수 없는 수업으로 진행됐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날 배운 표현을 활용한 영작 숙제를 내주기도 하고 단체 톡방인 구글 클래스에 갑자기 토론 주제를 올리고 모든 학생이 코멘트를 달고 토론 배틀을 유도하기도 했다.
화, 목 수업 때는 고급으로 갈수록 사회적인 것, 화용적인 부분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 이런 부분도 따로 자료 준비를 해왔다. 가장 인상에 남는 내용은 'Joke'였다.
'Did it hurt when u fell from heaven?' (I like cheesy stuff like that.) 영어권 남자들이 여자를 꼬실 때 쓰는 상투적인 말에 누구는 진부하게 느끼지만 누구는 그 진부하고 유치함이 좋다는 'Cheesy'를 활용한 화용적 표현. 고급과정에서는 이런 영어를 배운다. 인터미디어트까지는 한국에서 공부해도 되지만 실제적인 맥락이나 화용적 표현은 한국에서 배우기는 힘들다. 이러니 무조건 빨리 최대한 고급과정인 어퍼 미디어트 이상으로 올라와야 하는 이유다. 이걸 어학연수 2/3 정도가 지나고 너무 늦게 깨달아서 후회를 엄청했었다.
별 기대 없이 시작했던 어학원 일주일의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갔다. 크리스가 지극정성으로 만든 PPT 파일은 한 주 동안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다시 업데이트가 됐다. 금요일 모든 수업이 끝난 후 업데이트가 포함된 PPT자료는 구글 클래스 단톡방에 학생들이 공부하라고 공유를 해주었다. 자료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크리스와 함께 하지 못한 수업의 자료들까지 모두 다운로드할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자료를 다운로드하다가 안 사실은 매번 업데이트를 한다는 점이었다. 통상 교과서 하나당 12주의 수업이 끝나면 같은 교과서로 다시 똑같은 수업이 진행된다. 이때 자신이 만든 자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수업마다 기존 자료에 최신의 내용을 추가한 자료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러니 매일 나보다 항상 먼저 와서 늘 수업준비를 하고 있던 크리스였다.
결국 일주일만 듣겠다던 수업을 일주일 더 연장해 2주 동안 크리스와 수업을 함께 했다.
크리스의 수업을 들어 보니 단순히 몰타가 좋다, 런던이 좋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런던의 경우 중급인 인터미디어트까지는 여러 명의 선생님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고급으로 올라가니 교과서 내용을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이라 다른 선생님 수업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기본 어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로서는 선생님마다 다른 수업 자료로 진행되니 고급과정의 경우 너무 많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조금은 버거웠다.
몰타 크리스 선생님의 경우 교과서에 충실하면서도 화, 목에는 교과서와 연계한 다양한 표현들을 꼼꼼하게 준비를 했고 그 주에 익혀야 할 내용들을 확실하면서도 제대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고급과정의 수업은 런던보다는 몰타의 크리스 수업 방식이 내게 더 유익했다.
결국 런던이냐 몰타냐 보다 선생님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자신의 공부 스타일과 선생님의 스타일과의 조화다. 아무리 잘 가르치는 선생님도 나와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를 몰타에서도 런던에서도 자주 경험했다.)
그럼에도 런던과 몰타의 차이점을 굳이 말하라면 런던은 학구적인 분위기고 몰타는 그에 비해 좀 느슨한 편이라고나 할까. 그건 런던과 몰타라는 지역적 차이도 존재한다. 런던은 취미나 단순히 영어 잘하고 싶다가 아니라 대학 진학이나 구체적인 목적 있는 사람들이 오는 데다가 물가도 엄청 비싸기 때문에 공부만으로도 일분일초가 아까운 곳이다. 이에 반해 몰타는 여행도 하고 영어도 하고 겸사겸사의 비중이 아무래도 많다 보니 친구들과의 함께하는 분위기는 몰타가 압도적으로 좋다. (물론 어떤 친구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것도 다르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학구적인 분위기가 좋은 건 아니다. 스피킹의 경우 어학원 수업 시간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레 스피킹 실력이 늘게 된다. 실지로 수업보다 친구들과 놀다 보니 영어가 늘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것이다.
이런 점에서 몰타는 정말 탁월한 곳이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집으로 곧장 가는 사람은 잘 없다. 꼭 카페나 바가 아니어도 5~10분이면 바다라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바다에 앉아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나절이 돼서 헤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몰타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게 아니면 뜨거운 낮에는 집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만나서 수다 떠는 등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지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라가 작다는 도 장점이라 친구들 집까지 대략 걸어서 10~20분일 정도로 가까워서 각자의 집도 오가며 자주 만났다. 그러니 스피킹이 안 늘면 그게 이상하다.
하지만, 런던은 몰타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 파워 E성향인 나도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다. 몰타에 비해 30+ 인원수가 작기도 하지만 런던의 경우 30+의 경우 장기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대체로 1~2주 길어도 4주를 넘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유럽권 나라라 주말에는 지인이나 친구들이 런던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서 어학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현지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쉬운 것도 아니다. 친구들과 친해진다고 하더라도 매일 외식을 해도 부담이 없던 몰타와 달리 물가가 너무 비싼 곳이라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최선이었다. (대학생들의 경우 30+보다는 상대적으로 친구들과 함께 자주 많이 어울리는 것 같기는 했다.) 따라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스피킹을 늘린다는 점에서는 몰타가 훨씬 좋은 환경이었다. 특히 30+라면 더욱 더.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두 나라를 다 경험해 보니 런던은 런던 대로, 몰타는 몰타 대로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어학연수를 어느 나라로 선택할 것인지는 영어를 배우는 목적, 자신의 성격(성향), 소요 예산 등을 고려해 결정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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