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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정해경 Aug 23. 2024

겨울 몰타, 나의 베이스캠프 몰타   

#21 12월의 몰타, 세이\인트 줄리앙에서 슬리에마로 이사

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4    


몰타, 겨울

#21.  겨울 몰타, 나의 베이스캠프 몰타

초봄이던 3월 몰타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했고 7월 중순에 런던으로 연계연수를 떠났다. 10월 말까지 런던에서 보낸 뒤 11월 초에 몰타로 돌아왔다. 몰타에서 3일을 보내고 본격적인 여행을 위해 또 몰타를 떠났다. 약 한 달간 이탈리아, 튀르키예, 스페인을 여행 후 11월 말에 다시 몰타로 되돌아왔다.


몰타는 유럽 여행의 베이스 캠프였던 셈. 나의 베이스캠프 몰타, 사랑해!!

몰타 기사단 문양의 가로등, 이게 몰타지!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을 떠나 몰타로 향하는 길, 내가 가야 할 나라, '몰타'가 전광판에 뜨자 나도 모르게 '아,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라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이제 몰타는 유럽 국가 중 한 곳이 아니라 어느새 에게는 내 집 같은 나라가 됐다. 


이번 여행은 대부분 저가항공을 이용했는데 부엘링 항공도 2009년 스페인인 순례길 이후 처음이라 반가웠다. 그때는 뷰엘링을 이용할 대 예매 후 종이 탑승권을 따로 출력해 지참하지 않으면 별도의 수수료를 내야 했다. 자칫 주의사항을 놓칠 경우 이것저것 잡다한 수수료가 너무 붙어서 저가항공은 되레 '싼 게 비지떡'이라는 볼멘 후기를 유랑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다 옛말이다. 이제 저가항공도 보편화됐고 스마트폰도 일상이 됐다. 다만  다른 저가 항공과 달리 부엘링은 수하물을 직접 처리해야 됐는데 이건 영 적응이 안 된다.

수화물을 승객이 직접 처리해야했던 부엘링 
몰타가 아니라 집에 간다는 느낌이 컸던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
몰타 발코니를 연출해 놓은 바르셀로나 공항 출국장


겨울 몰타는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가장 궁금했던 건 '비'였다. 몰타는 5월부터 10월 중순까지는 거의 비가 오지 않고 겨울에 비가 집중된다. 몰타의 12월, 아니나 다를까 날씨는 비가 오락가락이다. 집중호우가 쏟아지니 낮은 도로는 완전히 침수가 됐다. 비가 내리면 배수가 잘 안 돼 도로가 잠긴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좀 생경했다. 

도로에 물이 첨벙첨벙


12월은 본격적인 우기철은 아니어서 비가 오는 날보다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다만 비가 거의 끝나가는 봄과 달리 비가 내리기 시작되는 겨울이라 그런지 봄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비가 그치고 나면 봄에는 볼 수 없었던 무지개가 자주 떴다.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뭔지 모르게 봄과 겨울의 비가 다르긴 달랐다.

모든 비는 겨울에 집중되는 몰타. 날씨에 따라 같은 곳이라도 분위기는 천차만별 


몰타는 12월인데도 체감상 우리나라 늦가을 정도 날씨였고 때때로 조금 덥게도 느껴졌다. 그런 날은 한낮에는 반팔 차림으로 다녔고 저녁에는 얇은 폴라폴리스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고 수영을 할 날씨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북유럽에서 여행 온 사람들은 12월에도 기꺼이 바다에 뛰어들고 수영복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어 신기했다. 


뒤늦게 몰타로 휴가차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몰타의 일상을 느긋하게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몰타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몰타가 나에게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일까. 고작 몇 개월 살았던 나라가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12월이라고요?


겨울철에 비가 집중도기에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몰타의 여름은 초록색을 보기 힘들다. 봄에서 늦가을까지는 모든 것이 말라 비틀어지고 사막 같은 풍경만이 전부였는데 겨울은 완전히 반전이었다. 정원마다 초록색 잎이 무성하고 곳곳에 꽃이 가득가득 피어있어 놀랐다. 잎이 하나도 없어 무슨 나무인지 짐작도 못했는데 그 나무가 '귤'이었다는 걸 겨울이 돼서야 알았다. 겨울철이 황량한 우리나라와 정반대인 나라 몰타였다.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싶다면 몰타의 겨울 여행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물론, 즐길 거리와 볼거리는 반으로 줄겠지만.

안톤가든. 비 내리는 겨울이 돼야 꽃이 피고 귤이 열매를 맺는다.


몰타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사였다. 세인트 줄리안 스피놀라베이 바로 앞에 살았는데 도심 번화가인 슬리에마로 이사를 했다. 집 테라스 바로 앞이 바다라 좋았는데 2명이 사용해야 하는 집을 혼자 같은 가격으로 살 수는 없었기에 부득이하게 이사를 해야 했다.


몰타 에이전시였던 '몰타 스토리'에서는 운영하는 기숙사가 몇 군데 있는데 그중 슬리에마에 위치한 레지던시 호텔로 옮겼다. 그래도 큰 집에 혼자 살았던 것을 배려해 주셔서 테라스가 딸린 가장 큰 방으로 배정해 주어 답답하게 지내지 않을 수 있었다. 이사라고 해봐야 큰 트렁크 2개에 자잘한 짐들,,, 이 전부라고 하기엔 누누이 말했다시피 짐이 많았다. 그나마 택시 한 번에 모든 짐을 다 실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가 한 번 뿌리고 지나간 세인트 줄리앙


러브 조형물이 있는 세인트 줄리안에서 슬리에마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약 25분 내외,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다. 슬리에마는 모든 쇼핑거리가 몰려있는 쇼핑스트리와 주택가가 골고루 섞인 지역이다. 숙소는 몰타 경찰서 바로 앞이었는데 주택가가 끝나는 지점이자 쇼핑 스트리트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집에서 바로 바다가 보이지는 않아도 날이 맑은 날 테라스에 나가면 먼발치로 바다가 조금은 보이기는 했다. 날씨가 쌀쌀한 탓도 있고 시티뷰가 취향은 아니어서 슬리에마에서 지내는 동안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 테라스를 그리 많이 이용하지는 않았다.

슬리에마 골목마다 전형적인 몰타 집들의 발코니


몰타로 돌아온 후 이사를 끝내고 나니 모든 피곤이 일시에 밀려왔다. 튀르키예를 여행할때부터 컨디션 난조로 너무 힘들었고 스페인에서 기운을 조금 회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거의 3일 동안 바깥에는 나갈 생각도 않고 내리 잠만 잤던 것 같다. 눈 뜨면 아침이고, 눈 뜨면 저녁이고 다시 눈 뜨면 아침이고, 가끔 점심이고 그러다 다시 저녁이었다.


그렇게 널브러진 데는 피곤도 피곤이었지만 이미 몰타는 알만큼 아는 곳이니 새로울 것도 없는 데다가 날씨도 한 몫했다. 세차게 비가 내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었다가 어느새 다시 비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한밤중에는 우르르 쾅쾅 번쩍번쩍 번개가 치기도 했다. 몇 달이나 몰타에 있으면서도 생전 처음이랄 정도로 변덕스러운 날씨, 몰타의 12월은 그렇게 시작됐다.

집에서 내려다본 거리,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거리 전체가 전등으로 장식   
시시각각으로 변하던 하늘


삼일 내내 집에만 있었더니 갑갑하기도 했고 내일부터는 다시 어학원 생활이 시작되니 워밍업 삼아 동네 산책을 나섰다. 슬리에마에 살지는 않았지만 몰타가 작은편이라 이미 오며 가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다 걸어본 상황이라 지도가 굳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남의 동네 구경 다니던 것과 막상 살아 보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세인트 줄리안에 살 때 주요 산책 코스는 집 앞의 발루타 베이, 힐튼 호텔 인근이었고 좀 더 시간이 되면 어학원 근처 세인트 조지 베이를 지나 더 먼바다까지 걸었다. 슬리에마의 주요 산책코스는 몰타의 수도 발레타가 정면으로 보이는 슬리에마 해변을 따라 임시다 지역이었다. 버스를 타고 수도 없이 지나다니던 곳이라 새로울 없는 풍경이지만 걸어 다니면서 만나는 풍경은 참 달랐다. 더군다나 내가 사는 동네다 싶으니 더 친근하달까. 사람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기도 하지. 


임시다에 사는 친구가 있어 봄 시즌에 아침 일출로 이 일대 해변이 발갛게 물든 환상적인 사진을 종종 보여주곤 했었기에 그런 풍경을 기대했었다. 겨울이 되니 태양의 위치와 조도가 달라져서인지 이 일대 전체가 불타는 노을 같은 일출은 거의 보지 못했다.  

슬리에마에서 보는 발레타의 낮과 밤
임지다 지역의 요트 계류장
화려한 쇼핑스트리트


슬리에마 동네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요양원이었다. 처음에는 요양원인 줄도 몰랐다. 고풍스러운 외관에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실내 인테리어의 고급스러움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고급 호텔인 줄 알았는데 간판이 따로 없어 뭐 하는 곳인지 너무 궁금했다.


어느 날 저녁 산책을 나섰다가 전시를 한다고 포스터가 붙어 있길래 용기를 내서 들어가 봤다. 슬쩍슬쩍 들여다봤던 실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풍스러웠고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다.

너무나 고풍스러웠던 요양원


일단, 핑거푸드와 함께 샴페인을 건네길래 빠르게 한 잔 마셨다. 뭔가 어색함을 푸는 데는 술이 최고다. 다시 샴페인 한 잔을 들고 천천히 그림 감상을 했다. 전문 작가의 그림도 있지만 더러는 취미 수준의 그림도 있었다.  


특이한 건 그림을 감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세 지긋한 노인들이었고 전담 서비스를 받으며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었다. 그제야 이곳이 여느 전시장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 단순히 요양원이라고 하기에는 건물의 시설도 그렇고 요양원의 가족들의 분위기도 그렇고 평범한 중산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요양원과 실버타운은 겸한 곳이라고나 할까. 


이날은 요양원에서 자선행사를 위한 전시였고 요양원에 사는 사람의 작품도 있었다. 개막 행사에 맞춰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이 속속 모이고 지역 유력 인사들을 비롯해 요양원 가족들까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니 이방인인 내가 계속 있기가 부담스러워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누구도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었다.

요양원의 그림 전시


프라이빗한 공간처럼 보이는 곳은 제외하고 1층과 지하의 공용공간을 둘러봤다. 긴 복도에 이 건물에 대한 역사에 대해 설명과 함께 다양한 사진들이 있어 살펴보니 꽤 유서 깊은 건물이었다.


나중에 홈페이지를 확인 결과 1875년에 호텔로 문을 연 이 건물은 오픈할 때부터 고급호텔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몰타를 찾는 유력인사들이 주로 이 호텔에서 머물렀던 모양인데 20세기 초에는 러시아 혁명 이후 망명한 러시아 황실 사람들이 호텔에 거주하기도 했었단다. 워낙 고풍스러운 이미지였기에 여러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는데 로저무어 주연의 '악마에게 외쳐라(Shout at the Devil)'가 이 호텔이 배경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최근 20년간은 최고급 요양시설로 변신을 했고 몰타는 물론이고 다른 유럽지역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는 또 다른 삶의 공간이었다. 전문적인 돌봄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요양원이 맞긴 하지만 최고급의 실버타운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듯했다.


내가 흥미롭게 본 건 몰타의 옛날 사진이었다. 슬리에마는 지금과 달리 많이 변했는데 이 호텔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호텔 건물 외에는 주변이 휑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수도인 발레타의 경우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도로에 차가 거의 없고 사람들의 옷차림 새만 아니라면 지금 흑백으로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처음부터 계획도시로 만들어진 수도 발레타라고 하지만 100년이 지나도 똑같다는 게 놀라웠다. 

1900년 대 초 몰타의 수도 발레타는 지금도 거의 똑같다. 


좀 더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중정의 공용 공간이 나온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작은 연못에는 희귀한 조류들도 있었다. 겨울에 비가 집중되는 몰타에서 사시사철 푸른색을 볼 수 있는 정원을 꾸미는 일은 굉장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만큼 이곳은 무조건 비싼 곳이다.


인구도 많지 않은 몰타인데 이렇게까지 고급진 요양시설이 그것도 번화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다. 몰타는 따뜻한 기후로 인해 여름 휴양지로 인기가 많지만 특히 유럽 은퇴한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나라 중 한 곳이다. 은퇴 후 남은 여행을 몰타에서 보내는 프랑스 인을 만나 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요양원 시설(실버타운)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실버타운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한국에서도 보지 못한 실버타운 겸 요양시설을 몰타에서 볼 줄 상상도 못 했다. 어쨌거나 동네 한 바퀴 덕분에 좋은 경험이었다.

호텔이 요양원겸 실버타운으로 변신 


+ 다음이야기 : 다시 어학원 학생 모드, 여전한 영어 슬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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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 어학연수는 핑계고' 시리즈

 런던 어학연수와 런던 생활에 관한 이야기


몰타 어학연수와 몰타 생활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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