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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Mar 18. 2024

초3 딸아이 학교결석 후, 보고서를 쓰라고요?

캐나다에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결석할 때, 절차가 매우 간단했다. 학교 사무실 직원에게 이메일 두줄이면 됐다. '좋은 아침입니다. 몇 학년 몇 반에 다니는, 우리 딸 E가 오늘 상태가 좋지 않아 집에서 쉴 예정입니다. 하루 결석하고 내일 상태 봐서 보내겠습니다. 엄마 A가 보냄. 전화번호'면 충분했다. 또는 여행 시 '언제부터 언제까지 여행 계획이라 결석합니다.'라고 보내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와서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주중에 가족 여행을 떠나는데, 아이가 학교에서 관련 얘기를 했나 보다. 그날 담임에게 카톡 문자가 왔다. "어머니, E가 내일 여행 가서 학교 못 온다고 하더라고요. 사실인가요? 만약 여행 가시면 '가정 체험학습 신청서'를 미리 주셔야 했는데, 우선 다녀오셔서 보내주시고요. 신청서와 보고서를 함께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서류 중, 해당되는 서류 작성해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서류를 프린트하고, 뭘 적어내고 하는 것이 번거롭다 느껴졌다. 며칠 결석인데 출석으로 인정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생각되기도 했다. 그래서 선생님께, "그냥 결석 처리해 주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냥'은 없었다. 이유가 있어야 했는데, 가족 여행 때문이라면 관련 상황을 대비한 서류가 있으니 작성해 주셔야 한다고 했다. 흠.. 귀찮지만 선생님이 곤란하시면 안 되니,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비슷한 서류를 숙제처럼 내었다. 사실 신청서 까진 그렇다 쳐도, 보고서를 내야 하는 건 시간이 좀 드는 일이다.


어디 어디를 다녀왔다. 무엇을 느꼈다. 등등을 적어 내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 하는 거지만 부모 숙제나 다름없어 보였다. 우리 아이 학교는 그나마 양반이라고 했다. 다른 도시에 사는 언니 조카의 학교는 여행 때 갔던 곳의 입장권, 사진, 브로셔 등도 첨부해야 한다고 했다.


왜 이런 서류가 생겨 났을까를 생각해 봤다. 체험학습을 해야 하니 결석한다고 해 놓고는 사실 아동 학대로 인한 결석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실제 뉴스에 나왔던 이야기 이기도 하다. 장기 결석을 할 땐 담임이 아이의 안전을 확인해야 하는 책임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5일 이상 결석 시 담임과 아이가 통화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학교 출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 교육 문화도 한몫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 하는 문화가 강한 나라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개근상'이 매우 자랑스러운 상이 었던 시절도 있었다. 학교는 못 갔지만, '가정 학습'으로 인정받으면 '결석'이 아닌 '출석'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서류 제출의 과정이 생겨났을 것 같다.


결석을 너무 많이 해서 유급될 정도의 결석수가 아니라면 (찾아보니 1/3 이상 결석하면 유급된다고 한다), 체험학습 신청서와 보고서를 굳이 열심히 적어서 학교에 가지 않고도 '결석'이 아니라 '출석'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인터넷에 아무리 열심히 찾아봐도, 신청서와 보고서 잘 쓰는 법이나, 선생님이 원하는 보고서 쓰는 법 등만 가득하고 '왜!'이 걸 써야 하는 건지에 대한 설명은 찾기 힘들었다. 어느 개인이 '현장학습 날이 노는 날이 아니라 교육의 장이라는 인식을 학생에게 심어주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한걸 얼핏 본 게 다이다. 교육부의 설득력 있는 설명을 찾기 힘든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데, 올 해부턴 이 가정학습 신청서와 보고서가 유치원에 까지 새롭게 생겨 버렸다(어이쿠야!). 큰애는 한국말을 잘 못할 때라 작년엔 내가 보고서 작성을 많이 도와줬는데, 유치원 아이 보고서는 아이 그림일기로 대신해도 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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