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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꽃 Apr 01. 2024

"살아보니 한국이 더 좋아요? 캐나다가 더 좋아요?"

이번 이야기가 <너무 오랜만에 다시 만난 한국> 시리즈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마지막 글인 만큼 (스스로 정한) 마감 일주일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글은 생각을 오래 하고, 글도 여러 번 고쳐야 할 것이라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지난 2년 동안 한국살이를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에 답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살아보니 한국이 더 좋아요? 캐나다가 더 좋아요?"


캐나다에 산다니 부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살기는 한국이 더 편하고 좋지 않느냐며 "캐나다 다시 가지 말고 그냥 한국에 사는 건 어때요?"라고 말했다. 모든 편의 시설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고, 새벽 총알 배송으로 온갖 먹거리들을 오전 7시 전에 집 앞으로 배달 오고, 월세도 훨씬 더 싸고, 학원 시스템도 좋고, 학교 급식도 잘 나오는 한국과 비교하면 캐나다는 단연코 이길 수 없다. 


슈퍼에서 뭐 하나 사려고 해도 차 타고 나가야 하고, 총알 배송이 되긴 하지만 신선한 음식 재료를 하루 만에 받긴 어렵고, 월세도 비교할 수 없이 더 비싸고, 학원비도 두 배 세배 더 비싸고, 학교 급식도 없어서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 보내야 하는 캐나다는 불편한 것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린 몸이 편한 한국보다 마음이 편한 캐나다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한국엔 2년만 살 계획으로 들어왔다. 그러니 몸이 편한 한국에 더 사는 건 옵션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니, 2년이 한 달이 될지 6개월 될지 아니면 3년, 5년, 또는 10년 될지 미래를 누가 알겠냐고 생각하기도 했다. 계획이 변경되더라도 순응하고 살자며, 마음의 여지를 조금은 남겨두었던 것이다. 


살아보니 한국살이는 몸이 정말 편한 생활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웬만한 먹거리는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슈퍼가 있고, 24시간 무인 문방구, 24시간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분식점, 미용실, 편의점, 은행 ATM 기계, 그리고 길 건너면 바로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있었다. 또한, 한국은 중고물품을 파는 플랫폼인 '당근'도 잘 되어있어서, 한국살이에 필요한 대부분의 살림을 편하게 '당근'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한국은 또 치안이 좋은 나라이다. 카페에서 화장실 갈 때나 주문 전 자리 맡을 때에 핸드폰이나 지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놔도 걱정이 없는 나라이다. 캐나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캐나다에서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화장실을 가더라도, 중요한 물품은 챙겨가거나 옆사람한테 꼭 부탁을 하고 가야 한다. 만약 지하철에 지갑이나 핸드폰을 두고 내렸다면 웬만하면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한 곳이다. 


이런 뛰어난 생활 인프라와 소매치기 또는 강도 걱정 없는 한국인데, 몸이 편한 반면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내가 느꼈던 이 감정은 한국에서 평생 살았더라면 몰랐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살기 편한 한국보다 캐나다가 정말 더 좋은가요?"라고 물어본다면 한마디로 쉽게 설명해 주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다.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나는 쉬도 때도 없이 오는 재난 문자에 거부감이 있었다. 여기 산지 2년이 거의 다 돼서야 정말 중요한 재난 문자 외의 다른 전체문자는 어떻게 거절하는지 우연히 핸드폰을 하다 발견했다. 남편이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는데 어디를 들어가서 찾았는지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오늘 강풍이 많이 불 예정이라던지, 밤새 비가 와 길이 살얼음이니 안전운전을 하라던지, 미세먼지가 심하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던지 하는 문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문자들이 '나'를 위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강제로 받는 재난문자는 나의 소소한 일상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었다. 잔잔한 나의 마음에 정부가 나서서 '걱정거리 돌멩이'를 하나씩 투척하는 것 같았다. 부작용으로 재난문자를 너무 자주 받게 되니, '이번에도 별로 심각하지 않는 내용의 문자겠거니' 하고 덜 신경 쓰게 되기도 했다.


한 번은 밤 8시쯤 조용했던 거실에서 난데없이 관리소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입주민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로 시작한 방송은 두 번이나 재방송을 틀어준 후에야 조용해졌다. 캐나다 아파트에 살 땐 한 번도 관리소 전체 안내방송을 들은 적이 없었다. 모든 소통은 게시판 안내문을 통하거나 이메일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가족과 대화를 하던 중, 난데없는 불청객 목소리에 깜짝 놀랐던 경험이었다. 안내 방송은 꽤 길게 느껴졌고 강제로 내가 조용히 시킬 수도 없었다. 무작정 목소리가 자기 할 말을 끝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대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는 것인지, 나만의 개인적인 소중한 공간에 살고 있는 것인지 헷갈렸다. 아마 기숙사도 그런 전체 안내 방송을 밤 8시에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이곳에 살아보니 한국 문화는 개인의 평화로운 마음의 안정을 깨부수는 경우가 있더라도, 정부나 어떤 단체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곳곳에서 느끼곤 했다. 첫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일이다. 잘 가다가 큰 싸인을 발견했다. 내용을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이 문구를 정부가 걸어도 된다고 허락했다고?', 우리의 반응은 '말도 안 돼'였다. 그건 바로 졸음운전 방지 현수막이었는데, 종류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읍소형이고, 다른 하나는 협박형이었다. 


졸리면 제발 쉬어가세요. (읍소형)

제발 좀 앞을 보세요. 한눈팔면 사고 납니다. (읍소형)

졸음운전은 살인행위입니다. (협박형)

졸음운전은 죽음을 향한 질주입니다. (협박형)

단 한 번의 졸음, 모든 것을 잃습니다. (협박형)


이런 종류의 정부 싸인을 보다니, 두 눈을 의심했다. 이런 문구가 통한다고? 이렇게 자극적인 소통을 강제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살인행위', '죽음'이란 극단적인 단어를 쓰지 않으면, 효과적인 졸음운전 방지 교육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 자극적인 소통은 현수막에만 있지 않았다. 긴 터널을 지나가던 어느 날 요란하게 울리던 싸이렌 소리를 들었다. 소방차가 오는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소방차도 경찰차도 또는 구급차도 오지 않았다. 운전하면서 보니 그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빨간, 파란 불빛을 정신없이 깜빡거리는 경찰봉 같은 장치가 내는 소리였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운전하라는 메시지를 이렇게 전달받다니.. 화들짝 놀랐던 자신이 민망해진 순간이었다. 그 뒤론 터널 속에서 싸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아, 또 가짜 장치겠거니..'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양치기 소년 같은 방법을 계속 쓰는 게 맞는 건가 싶다. 


마지막으로, 이곳엔 피곤한 사람과 화가 난 사람들이 참 많았다. 평상시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주러 갈 때나, 취미활동 하러 학원에 다닐 때는 화난 사람들을 잘 못 본다. 그러다 여행하러 집 밖을 나가면서 활동 반경이 넓어지면, 그 화들이 어디를 향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운전할 때 절대 차선 변경 하는 차를 순순히 너그럽게 받아줄 수 없는 운전자들 (천천히 가다가도 옆차가 깜빡이를 켜면 방어적으로 속도 내는 차들이 참 많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뒤늦게 달려와 타는 사람에게 무안 주는 사람들,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약자)에게 엄청난 화를 쏟아내는 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참았던 화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삐져나오는 거라 생각했다.


피곤이 겹겹이 쌓이면 작은 일에도 화를 쉽게 낼 수밖에 없다. 잠을 충분히 잘 시간도, 가족들과 여유로운 저녁을 보낼 시간도 부족한 한국은 서로 다신 볼일 없을 거라 여기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차마 아는 사람들에겐 참았던 화가, 모르는 사람들에겐 쉽게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저렇게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거나, 가족이나 친구 간의 관계로 힘들다거나 어떤 힘든 일이 있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화가 많은 개인을 만든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시스템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나는 이곳에서 시스템에 순응하거나 변화를 추구하면서 살아가기보다는, 좀 더 나에게 익숙한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모든 것이 느리고 기술적으로 한국보다 뒤처진 캐나다지만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를 챙기면서 사는 곳이, 내가 살아가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처럼, 개인의 안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는 아무래도 효율성이 조금 떨어진 체 돌아간다. 손님이 얼마나 줄을 길게 서 있든 말든, 일하는 사람은 무리한 속도를 내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분위기는, 개인은 좋지만 손님은 한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일하는 사람이 식당 직원이든, 정부 주민센터 직원이든, 선생님이든, 청소부이든지 상관없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만의 속도를 가지고 일한다. 캐나다 사람들 90%는 진심으로 기다려주고, 8%는 속으로 화를 삭이며 겉으론 침착한 척 매너를 지키고, 나머지 2%는 간혹 화를 내기도 한다 (매우 주관적인 내 상상 속 데이터이다). 그 정도로 느린걸 잘 참는다. 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누구보다 강하게 반발하는 편이다. 정부가 단체문자를 잘 못 보냈다가는, 엄청난 민원에 시달리기도 한다. 도대체 왜 새벽에 그런 알람 문자를 보냈느냐면서 말이다. 


우리 가족은 이제 전 세계 어디보다 빠르고 발전한 나라에서 거북이 같이 느린 나라로 돌아간다. 과연 돌아가서도 지금과 같은 생각일지 사람마음은 또 알 수 없겠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하는 중이다. 2년간 받았던 서비스 속도에 이제 막 적응했는데, 속도의 기대치를 한참 낮춰야 한다. 캐나다 정부와 전화 통화 한번 하려면 어쩔 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기해야 하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한국과 비교해서 세월아 네월아 속도로 계산해 주는 캐쉬어 속도에도 적응해야 할 것이고, 전방 몇 미터 앞에 속도 감지 카메라가 있다고 알려주지 않는 조용한 자동차에도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느린 나라로 돌아가는 것 중 가장 기대되는 것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가능한 마음의 평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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