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Mar 11. 2024

취미활동에도 영혼을 갈아 넣어야 하는 한국문화

캐나다 이민 1.5세로 해외에서 20년 넘게 살다 한국에 왔다.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었다는 건 사실이기도 하지만 살짝 핑계이기도 했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살고 싶었던 한국에 와서 지내보고 싶었다. 그동안 인터넷으로 보던 맛집도 가보고, 예능에서만 보던 국내 여행지도 가보고, 무엇보다 이것저것 배우고 싶었다. 


무엇이든 비싼 캐나다는 취미활동도 비쌌다. 인건비가 비싸고, 월세도 비싸다 보니 학원비도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에 비해 한국은 인건비도 더 싸고, 월세도 더 싸서 그런지 학원비도 훨씬 저렴했다. 

캐나다에서 취미로 배운 것이 있다면 수영인데, 한국으로 오기 몇 달 전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오전반에 다녔다. 수업은 30분이었다. 수영선생님과 학생 5명 정도의 소규모 기초 반이었다. 선생님은 대학생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연륜보단 열정이 넘치는 스타일이었다. 


5번 정도 수업을 들었는데, 난 여전히 물에서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열심히는 알려주는 것 같지만, 이런 방식으론 수영을 잘하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것이라는 걸 첫 수업에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난 속으로 ‘괜찮아. 난 몇 달 후 한국에 갈 거니까. 거기 가면 수영을 잘 가르쳐 줄 거야.’라며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기도 했다. 


드디어 한국땅을 밟았고,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역시나 내 기대는 전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한국 수영 선생님들은 캐나다 선생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베테랑 ‘수영 가르치기 선수’들이었다. 한국에서 첫 수영 수업을 듣고 집에 와 남편에게 오늘 한 달 치 수업 강습료만큼 다 배운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국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면 수영 왕 초보들에게 수영을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최고의 훈련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반면 캐나다 선생님은 각 개인 선생님 자질에 따라 수업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대신 들이는 ‘시간 대비 결과’도 복불복 일 수밖에 없었다. 


수영장 세계는 한국 특유의 ‘열심히’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했다. 샤워도 열심히, 준비운동도 열심히, 수업 시작하자마자 돌리는 자유형 수영 다섯 바퀴도 열심히, 모든지 열심히였다. 낙오자는 있을 수 없었다. 난 샤워를 대충 하다 모르는 옆 사람에게 한소리 듣기도 했고, 수업하자마자 돌리는 자유형 다섯 바퀴도 쉬엄쉬엄하다 선생님의 지적을 매번 받기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수영을 배운 것까진 좋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계속 그렇게 ‘열심히’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 힘들면 좀 쉬엄쉬엄 하면 안 될까요?’라는 말이 맨날 목구멍에 맴돌았다. 수영뿐만이 아니었다. 6개월 정도 다닌 요가도 캐나다에선 접할 수 없는 레벨의 ‘열심’이 묻어있었다. 첫 수업부터 캐나다라면 절! 대!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동작들을 아무렇지 않게 시켰다. 그리고 학생들도 아무렇지 않게 끙끙대면서 따라 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이렇게 힘든 동작들을 왜 이렇게 다들 척척 잘하는 거지?’ 캐나다인과 한국인의 ‘열심’의 수준차이를 직접 경험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결국, 생활의 활력을 얻으려 하는 취미생활에서 좌절감만 맞보게 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수영 초급을 지나 중급반으로 가며 접영이 영 안되어 고전했다. 선생님은 쉬는 날도 자유수영을 나와 연습하면 다 된다며 격려했다. 하지만 나의 수영 열정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일주일에 세 번도 힘든데 이틀을 더 나와서 연습하라니요. 이 나이에 수영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그냥 접영을 안 배우고 다른 것만 배우면 안 될까요?”라며 진지하게 질문하기도 했다. 안될 말이었다. 


힘들면 쉬어가도 되고, 천천히 하다 보면 실력도 나아질 거라 생각하는데, 문제는 짧은 시간 안에 눈에 띄는 결과물을 보여줘야 하는 압박감이었다. 돈 내고 배우는 즐거운 취미생활을 그렇게 할 순 없었다. 나는 결국 수영 배우기를 그만뒀다. 


얼마 전 브런치에 쓴 글처럼, 수영이나 요가가 즐거웠고 나랑 잘 맞았다면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몰입’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배움의 속도가 나의 속도가 아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인 듯싶다.   


나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사회 분위기가 익숙지 않았다. 결과는 나오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좋은 거 아닌가요?”라는 말이 모든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없다. 무턱대고 열심히 하다 몸이 다칠 수도 있고, 계획했던 것보다 취미활동을 오래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다면, 무조건 ‘열심히’ 보단 적당히 ‘열심히' 하며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취미생활에 나도 모르는 사이 영혼을 갈아 넣지 않게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내 영혼은 소중하니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