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쓰고 나니 더 실감 난다. 몇 시간 전 점심식사를 할 땐, 자각하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 할머니와 마지막 식사를 했던 것이다. 내일 새벽이면 인천공항으로 출발할 테고, 집에선 보통 할머니는 할머니 방에 있는 작은 식탁에서 엄마 아빠와 식사하시니, 좀 전에 먹은 능이 백숙이 우리의 마지막 식사이다.
가족 8명이 출동한 능이 백숙집에 할머니와 난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백숙은 할머니가 좋아하는 메뉴라 했다. 한 번씩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치매로 인해 기력이 많이 쇠한 할머니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걸까. 이 식사가 우리 아이들과 그리고 나와하는 마지막 식사가 될 것이란 것을 말이다.
이제 캐나다로 출국하면 아마 당분간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테고, 할아버지 때도 그랬듯이 할머니가 떠나셔도 나는 아마 멀리 캐나다에서 마음으로 할머니를 배웅할 것이다. 2년 전 한국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이미 치매셨다. 그래도 체력은 좋았었는데, 지난 2년 사이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혼자 걷는 것도 힘들어져 버렸다.
어렸을 때 기억 속 할머니는 둥글둥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마음씨 푸근한 할머니는 아니었다. 어딘가 마음이 예민한 편이었고, 특히나 엄마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나의 어릴 적 기억 속 할머니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남아있다. 그랬던 할머니가 내가 해외생활을 오래 하는 동안 기력이 많이 쇠해져 버려 이제 우리 엄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지낸다.
며칠 전 사촌 언니와 (고모 딸) 함께 할머니 방에 가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먼저 “할머니~ 저 이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요~”라고 하니, 정신이 없으신 와중에도 “그래~ 가서 돈 많이 벌고~ 잘 살아.” 하신다. 옆에서 듣고 있는 사촌언니가 한다미 했다. “할머니~ 얘 벌써 부자예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도 많이 해주신 덕분에 캐나다에서 아주 잘 산데요~” 한다. 할머니 덕분이라는 소리를 나 대신해준 언니가 고마웠다. 할머니 기도 덕분이라니 할머니 얼굴에 잠시 뿌듯함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어릴 땐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젠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잘 되라고 진심으로 빌어주는 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말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그럼 바람과 기도들 덕분이라는 걸 한국을 떠나기 전 다시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캐나다로 돌아가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에 할머니의 때가 찾아온다면, 본인이 그토록 원했던 그곳으로 편안하게 가시길 진심으로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