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Jul 24. 2024

캐나다는 월세 구할 때도 '자소서'를 낸다

토론토에 살던 집을 월세 놓고 밴쿠버 쪽으로 이사간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4년 사이 세입자가 두 번 바뀌었고, 지금은 세 번째 세입자를 찾는 과정에 있다. 토론토 집을 팔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혹시라도 잘 적응하지 못할 경우 돌아올 곳이 있었으면 했다. 또는 서울에 집 한 채는 있었으면 하는 심정과 비슷하게, 토론토에 집 한 채는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처분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을 선택했다.


캐나다에서 세입자를 구하는 과정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우리 가족은 최근 한국에서 2년 가까이 월세살이를 하고 돌아왔는데, 계약당시 집주인이 나에게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직업은 뭔지, 한국에 왜 왔는지, 얼마나 있을 예정인지, 직장은 있는지, 수입은 얼마인지, 흡연은 하는지, 애완동물은 키우는지 아닌지 등 그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한국엔 캐나다에는 없는 보증금 제도가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세종시에서 월세 70만 원 아파트를 2년간 계약하는데 보증금이 3천만 원이었다. 월세를 잘 내지 못한다면 2년 치 월세보다 넉넉한 보증금이 있기 때문에 집주인 마음이 든든한 게 아닐까 싶다.


캐나다는 보증금이라는 개념이 주마다 다르다. 있다 해도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토론토가 속해있는 온타리오 주는, 보증금 대신 마지막 달 월세를 집주인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이 마지막 달 월세는 세입자가 이사 나가는 마지막 달에, 마지막 월세대신 사용하게 된다. 세입자가 집을 망가뜨렸을 경우, 마지막 달 월세에서 그 액수를 차감할 수 없고, 따로 청구를 해야 한다. 그러니 한국의 보증금 성격과는 다르다.


밴쿠버가 속한 비씨주는 조금 다르다. 한 달 치 월세의 반을 보증금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고, 세입자가 이사 나가는 마지막 달에도 월세를 받는다. 이 반달치 월세는 세입자가 집을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후, 돌려주게 된다. 까다로운 집주인인 경우, 이런저런 이유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기도 해, 세입자 입장에선 억울하다는 글을 자주 접하기도 한다.


지금 나는 토론토 집의 세입자를 구하는 중이다. 캐나다는 2023년만 해도 이민자를 50만 명 가까이 받았고, 유학생은 100만 명 넘게 받았다. 그중 대도시인 토론토로 몰리는 숫자도 꽤 클 것이다. 새로 유입되는 인구도 많은데 집값은 너무 올라, 월세 수요가 많이 늘어났다. 결국 월세시장은 과열됐고, 월세를 구하려면 회사 취업과 비슷하게 ‘자기소개서'를 포함한 월세 신청서 패키지를 제출하는 게 관행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나는 100명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내가 올린 광고에 연락을 받았다. 100명 모두와 대화를 나눈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자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 사람들 위주로 집을 보여 줬다. 그 뒤, 집을 본 사람 중 신청서를 제출하고 싶다고 하는 세 팀에게 온라인 신청서 링크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고른 세 가족으로부터 세 개의 ‘자소서'를 받았다. 캐나다에 온 지 몇 년 안 된 이민 초기 외국인 가족들이었다. 첫 번째 가족은 남동생, 누나, 여자 사촌 둘이고, 두 번째 가족은 엄마, 아빠, 아들 둘, 딸 하나, 세 번째 그룹은 여자 두 명, 남자 한 명으로 구성된 신청자이다.


세입자를 구할 때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하면 집주인이 직접 광고글을 올리고 일일이 채팅에 대응하고 모든 서류 검토를 직접 하지 않아도 되니 훨씬 수월하다. 다만 부동산 에이전트 비용이, 한 달 치 월세이다. 이 금액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도 우린 직접 세입자를 구해 보기로 했다.


캐나다에서 세입자를 구할 땐, 회사 취업 면접관과 은행의 대출 심사관 이 두 역할을 합쳐 놓은 듯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실제 월세 신청자와 대화를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Can you please tell me about yourself, 당신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이다. 캐나다는 이민자 나라이고 나도 한때 영어를 편하게 구사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이때 내가 주로 보는 건 영어 실력보다 이 사람과 내가 앞으로 일 년 이상 소통할 때 별문제 없이 소통이 가능하겠는가를 중점으로 본다.


대화가 통화는 사람, 이 말도 안 되는 주관적인 느낌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월세를 매달 밀리지 않고 낼 소득이 증명돼야 하고 (재직 증명서, 월급 명세서, 직장 상사와 통화), 전 주인과 불화도 없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고 (전 주인과 통화), 신용 체크를 통해 신용카드나 다른 회사들에 신용으로 빚을 지고 (예: 신용카드, 핸드폰 요금 청구서 등) 제때 갚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어야 한다. 추가로 비흡연자를 선호하고, 애완동물도 없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을 통과한 후, 인터뷰 때 나의 주관적인 느낌까지 통과하면 우리 집에서 살아달라고 오퍼를 준다.  


아마 캐나다도 한국처럼 2년씩 계약하고, 보증금을 2년 치 월세보다 더 많이 받는다면 집주인이 회사 면접관인지 대출 심사관인지 헷갈리는 이 역할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여러 팀에게 집을 보여줄 때부터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 하고 있다. 과연 내가 좋은 세입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 지금 사는 세입자는 문제없이 이사를 잘 나갈 것인지. 세입자를 찾는 과정 중에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모든 과정이 부담되고 긴장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시간은 찾아왔고, 어젯밤 드디어 한 이민자 가족을 우리의 새로운 세입자 가족으로 선택했다. 집 구경 할 때 엄마와 막내아들이 왔는데, 그 가족의 아빠를 만나지 못해, 화상 채팅으로 만나보지 못했던 아빠와 인사를 나눴다. 모든 가족과 화상채팅으로 인사를 나눈 후, 월세 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내줬다.


이 가족이 우리 집에서 지내며 좋은 일들만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메일을 썼다. 온 가족이 캐나다에 잘 정착하길 바라고, 그 집의 고3 막내도 본인이 원하는 미래를 잘 그려 나가길 바라고,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잘 풀리길 바란다. 더불어 우리 집도 잘 관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았다. 이렇게 또 앞으로 몇 년간 긴밀하게 연락하고 지낼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 <끝나지 않는 글쓰기> 매거진은 글 쓰는 사람들의 연대인 '글쓰기 네트워크'로 연결된 작가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하는 공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