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은퇴작전회의만 997번째
요즘은 말다툼으로 끝나고 있다.
2월 5일 2021년
이번 주 월요일부터 2주 휴가를 냈다. 이직하고 3달 밖에 안되어 휴가를 쓰는 게 눈치 보였는데, 그냥 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2주 쉬어야겠다고 통보 이메일을 보냈다. 잘 쉬라고 했고, 별일 아니길 바란다고 답장이 왔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부터 우린 작전회의 중이다. 그리고 오늘 포함 마지막 두어 번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긴 말타툼으로 눈물과 함께 씁쓸한 엔딩을 맞보고 있다. 난 '이 이기적인 사람아!'라고 토로했고, 저쪽에서도 본인 입장에선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인간 두 명이 24시간 붙어서 은퇴 후의 라이프를 계획하려다 보니, 어디 휴양지로 휴가 계획하던 때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남편은 저번에도 말했지만, 계획 짜는걸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다. 난 그냥 하는 편이다. 하면서 바꿔나간다. 물 흐르듯이 사는 게 내 스타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기 은퇴라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엄청난 팀워크를 자랑하면서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런 우리인데, 막상 은퇴 후 뭐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안 맞는 거 투성이다. 우선 유튜브나 책을 쓰기로 했다. 둘 중 어느 것을 하던지 같이 하려다 보니 탈이 났다. 남편은 목적, 타깃 어디언스, 왜 하는지 등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들이 확실히 있었고, 난 사실 약간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그 와중에 확실한 내 입장 설명이 없는 것에 대한 질책? 이 돌아왔을 땐 난 너무 슬펐다. 아.. 이건 회사 스트레스 못지않네. 내가 정녕 이러려고 은퇴를 하는 것이란 말인가..?
아무튼, 뭐든 말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는 남편과, 그 속에서 머리 아파하고 지루해하는 나. 그리고 그걸 바라보고 속 터져하는 남편 사이에 서로를 원망하는 감정이 싹 피어났다. 다시 쓰다 보니 또 편치 않은 감정이 올라온다. 그래서 우린 따로 쓰기로 했다. 어차피 남편은 미디엄에 영어로 글을 올릴 거고, 난 이 브런치에 한국말로 글을 올릴 거니, 애초에 우리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 타깃은 다르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지금껏 잘 살와 왔는데 막상 꿈을 이루고 잘 놀아보려고 하는 이 시점에 내 마음 상태를 평온하지 못하게 괴롭히는 남편이 매우 밉다. 남편은 자기가 원하는 것들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내가 매우 밉단다. 오늘이 금요일이니 담 음주 7일 더 놀면 다시 회사에 가야 한다. (집에서 일하지만.) 그때 내가 돌아가자마자 과연 사표를 쓸 수 있을까? 지금 신청하는 은행 재융자가 잘 나오면 가능하고 아니라면 버텨야 한다. 몇 년에 걸친 작전회의가 이제 정말 거의 끝자락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표로 훈훈한 마무리가 될 건지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