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살림 장만
여성 부랑인 시설, 일명 여성홈리스 라고 하는 불교재단이 운영을 보조해 주는 곳이었다. 30년 전 일이었다. 이곳은 어찌 보면 자립할 여력이 없는 여성이 약 2년을 있을 수가 있었다. 결혼생활 3개월 하다가 이혼당한 뒤에 정신적 쇼크로 친정아버지가 맡겼다는 젊은 전직 간호사 출신 여성도 있었다. 순미는 너무나 그들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사실 순미도 그들 중 하나이긴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만 약 3개월을 지냈다. 낮에는 주로 자격증과정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저녁 무렵 그곳으로 돌아온다. 1방에 4명이 사는데 그곳에서도 교수집에 밥 해주러 가는 가정부도 있고, 부동산 사무실에 일을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병이 있는 여성들도 있고, 결혼초에 이혼하여 자립이 어려워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또한 국제고아 같은 중년의 여성도 있었다. 일본 여성이었는데 일본에 가면 한국사람 같고, 한국에서 볼 땐 일본여성이다. 그녀는 매일 벽을 보고 아주 엄숙하게 기도를 드리는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온 정신은 아닌 듯하였다.
또 순미의 바로 옆자리에 자는 여자는 종일 쓰레기통을 뒤져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팔기도 하고 그곳으로 가지고 와서 장롱 위에 모아 두며 필요한 것을 그렇게 장만하였다. 그녀는 엄청나게 냄새가 났다. 원래 먼저 들어온 사람은 끝에서 자고 가운데는 신입이 자는 것이 룰이었다.
비가 아침부터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장롱 위에 있는 접는 우산이 보였다. 그녀는 정신없이 도망 나오는라 가진 게 몸뚱이 하나였다. 우산을 3~4개 주워와서 장롱 위에 보이게 얹혀 있었다. 우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우산 나 하나 주면 안 돼요?"하고 물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일해서 돈 생기면 줄 테니 빌려줄 순 없어요?"하고 물었다. 여자는 대뜸
"미친년! 돈 주고 사야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주은 건데... 종일 돌아다니며 노동했는데 그냥 달라고? 하는 눈빛이었다.
그 여자의 눈에는 순미가 '미친년'이었던 것이다. 충격이었다.
'아!'아무 말도 더 이상 말을 이어서 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고생해서 주워온 것을 그냥 달랬으니 망치로 맞은 듯했다. 순미는 병원도 다녀야 되고 차비도 필요하고 밥은 굶을 수도 있지만, 하루빨리 취업하기 위해 금천구 YWCA에 있는 직업훈련소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순미는 일생일대 처음 들어보는 여자가 여자에게 '미친년'이라는 말을 대놓고 들었으니... 잠시 뒤 그 말을 버리지도 못하고 가슴속 깊이 넣어 두었다. 뒷 담화도 아닌 그 말...
'물론 그 여자는 부랑인이다.
아니 맞다. 나도 부랑인이야. 그리고 나는 그 보다도 더 못한 미친년이야...'
잠시 순미는 크게 숨을 들이켜 쉬었다.
'노숙자 시설에서 나왔지? 맞아. 나는 지금 홀로 나온 거야!' 현실과 노숙자 시설에서의 삶이 자신도 모르게 교차되었다.
맨 먼저 어떤 살림살이를 장만해야 할지 고민했다. 병원 입원 치료가 어느 정도 끝나고 친구 집에서 나왔던 것이다. 새벽 5시, 눈이 떠지고 깼다. '이제 나는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이혼이 되었으니 홀로서기만 하면 된다.' 자꾸 되뇌였다.
교차로를 주어다 취직할 곳을 찾아보았다.
'여직원 구함. 급여 50만 원'이었다.
전화를 해보니 내일 면접보러 나오라고 했다. 사장님 점심해 주고 전화받으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출근을 하기로 했다. 그녀의 첫 살림 장만도 교차로를 보았다.
'가스통 3만 원 (무료배달)'이라고 써었다. 전화를 걸었다. 신속하게 받는다.
"사장님 가스통 배달하실 때 혹시 책상 쓰다 버린 거 있으시면 그거 보시고 제게 배달해 주실 수 있나요?"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알았어요. 안 좋아도 되죠?"
그녀의 첫 살림은 가스통과 책상을 시작으로 대학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졸로는 못 살아.
이제는 나 혼자 내가 벌어서 공부할 거야. 남편의 도움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
새로운 인생의 4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첫 인생 1막은, 부모와의 삶
두 번째 인생 2막은, 첫 결혼과 아이들
세 번째 인생 3막은, 두 번째 남자와 재혼
이제 내 인생 4막은, 나 혼자 산다"라고
내일은 누구나 모르는 일이고 다만, 그녀가 배운 것은
인연의 끈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눈물 나게 했던 것도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푸른 반딧불의 첫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