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대학 입학

생존자라는 그 이름

by 푸른 반딧불

그녀는 대학 입학만 세 번째였다.

ㅅ 사이버대학 일본학과에서 장학생이 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예전에는 교수들조차 그런 대학이 있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공무원들도 가산점을 위해 많이 다니는 곳이 되어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그녀가 일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이십 대 초반에 다녔던 무역회사 때문이었다.

작은 오퍼상이었지만 수출입을 대행하며 일본인들을 자주 만났다.

한국에 오는 바이어들의 호텔 예약을 하거나 급할 땐 전화도 받고 텔렉스의 오타를 교정하였다. 일본인이 한국주재 사무소로 공용하기도 했다. 영어와 일본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1970년대 중반 서울의 중심, 시청역과 무교동, 명동, 회현동은 촌뜨기가 출근 전 일본어를 배우고, 사무실에서 아는 말을 사용하니 언어가 즐겁고 마냥 신기하였다.


이후 더 큰 무역회사로 옮겨 근무하다가 결혼하고 나니 그 즐거움은 멀어졌다.

재혼은 다를 거라 믿었다. 남편 송 씨를 만나면서 그녀는 사랑도, 꿈도, 공부도 모두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흔의 나이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순진했고 의욕이 앞섰다. 그게 사랑인 줄 알았던 순미는 눈이 멀어 송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안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애들과 같이 살기로 했다가 이별 한 뒤라서 허전하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 공부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 이기도 하였다.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생각하고 남편 몰래 첫 입학을 했다. 일본어 사전을 사고, 책을 사며 학생이 된 기분을 마음속으로 누렸다.

고등학교까지만 보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부모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그저 ‘공부’나 ‘입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희망을 붙잡고 싶었고 일본어를 조금 알지만 전공자는 아니기 때문에 전공을 하고 싶었다. 재미있는 삶이 펼쳐질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화를 내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책꽂이에 새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이미 일본어를 아는 것도 많은데 왜 공부하냐?"라고 물었다.

며칠 뒤, 아무렇지 않은 듯 그는 순미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였다. 시골 친적집이었다. 넓은 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와 그녀, 둘 뿐이었다.

“차에 태울 거 있으면 여기다 태워. 뒷 트렁크 한 번 열어봐.”

그는 휘발유 드럼통을 잘라 만든 통에 내 뒤 트렁크에 있던 책과 사전을 몇 번이고 찢어 넣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불길이 번지는 순간, 순미의 머릿속도 하얘졌다.


그 장면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법원에 앉아 있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바로 그 장면이다.

책이 타던 냄새. 종이가 벌겋게 불이 번져가던 모습, 구겨지던 소리.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그때의 자신.

순미는 그 순간 떠나보낸 딸아이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늘 엄마 편이던 아이들. 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다. 혼자였다.

그날 이후, 공부는 멈췄다. 그가 안 이상 계속할 수는 없었다.


두번째 입학은 대학이 아닌 방송통신대학 일본학과였다.

한 학기에 3~4일 정도만 출석하면 된다 하여 입학했다. 어디냐고 물었을 때 근처 친척집에 간다고 둘러댔지만 2학년 말경 시험준비 하느라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시간이 늘기도 하여 이상한 느낌을 들키고 말았다.


어느 날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금 집 앞이야. 그냥 내려와 봐.”

어느 날, 그의 차를 타고 집에서 입던 홈드레스를 입고 생각 없이 차를 타고 나왔던 순미에게 그는 강변 앞에 차를 대고 강가로 내려갔다.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질문하였다.


"너 왜 공부하냐? 왜 나랑 살면서 공부하냐고? 잘난 놈하고 살 때 하지" 언성을 높이며 그가 갑자기 뻗은 발길질에 그녀는 쓰러졌고, 다행히 강변에 흐르는 물 만 그 모습을 보았다. 잊히지 않는 그 폭력의 장면은 머릿속에 슬픔과 인간이하의 삶으로 각인되었다.


왜 맞아야 했는지, 지금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다.

판사는 묻는다.

“그때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순미는 잠시 입을 다문다.

강변의 바람,

발에 닿던 흙의 감촉,

넘어지던 순간의 공기까지 모두 그대로 떠오른다. 배우자 곁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역경이자 고난이었다.

학력이 낮아도 결혼생활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 믿었던 생각은 결국 잘못된 판단이었다. 사람이 자라온 환경을 무시한 무지의 대가였다. 두 번째 입학의 도전은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지금, 그와 이혼 후 홀로 되어 제일 먼저 한 일이다. 며칠 전 가스통 3만 원을 주고 배달기사에게 부탁하면서, 버려진 책상을 구해다 달래서 그녀는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세 번째 대학 입학이다. 사회복지학과였다.


순미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이건 사고에 관한 부분이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와 관련된 단어 하나에 매달려 기억이 동시에 떠올랐다.

마치 네이버 사전에 단어를 검색하면 비슷한 단어가 연이어 나오듯, 원치 않는 기억이 되살아 나왔다.

미칠 것 같았다. 사연 많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입학'이라는 단어에 과거가 버퍼링 되듯이 소환되었다.


또 하나는 신체의 변화이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반응이 남과 다르다. 교회에 처음 갔을 때였다.

환하게 웃으며 “어서 오세요” 하고 살며시 허리와 팔을 대며 빈 좌석으로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불편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말로 안내해 주지, 왜 내 몸에 손을 대며 끄는 거지?'

상대방은 여성 안내자였으며 미소도 인자하신 집사 직분을 가진 분이었다.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다르게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정폭력 피해자의 특징이었다.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니 오해를 받는다. 그리고 더 이상 섯불리 가까이 오지 않는다. 사람은 남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안다.

이 기억 들은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기까지 오기 위해, 살아남아 있기까지가 기적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지금 그녀는 이혼소송은 끝나고 다시 가정폭력 피해자로 형사소송과 폭력으로 인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그러한 소송비를 만들기 위하여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왠지 이번 입학 만은 꼭 졸업을 하리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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