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석대의 한국영화, 그 몰락을 축하한다.

by 신지승

극장영화는 넷플릭스에 패했다.
이 패배의 원인은 예술이 아니다.
구조다.

극장은 자본과 배급,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의 주도권을 잃었다.
반면 OTT는 대중의 시간을 점령했다.
언제 보게 할지, 무엇을 보게 할지, 얼마나 오래 보게 할지를
알고리즘이 거든다.

OTT는 영화와 방송 영역을 통합한
고도 산업화된 글로벌 중심이다.
그 대가로 관객은 더 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관객은 고립되고 분해된 개인이며,
취향이 관리되는 데이터 단위가 되었다.

한국 극장영화는 오래전부터 엄석대였다.
어차피 21세기의 콜로세움이었다.
좁은 시장에서
어설픈 자본과 스타의 힘으로
가까운 관객의 감성을 지배하며
그들을 우민화해 왔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더 센 자본, 더 감각적으로 상품화된 스토리 앞에서 맥없이 관객을 빼앗겼다.

이것은 배신이 아니라 법칙화된 몰락이다.

독립영화 역시 이 구조를 이길 수 없다.
간혹 날 선 예술혼의 '주인'이 출현하지만, 그것이 구조가 되기에는 이미 늦었다.

관객은 이미 엄석대에게 너무 오래 길들여졌다.
자본에서도,
기술에서도,
확장에서도,
속도에서도,
철학에서도
패배는 확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간혹 철없는 독립영화는 OTT의 꽁무니를 혼자 꿈꾼다.

이것은 전략이 아니다.
개인적 환상이고 부끄러운 착각이다.

공동의 길이 아니라 “나만은 살아남겠다”는 결과 뻔한 주책,
‘기생충’의 변주이며 “어쩔 수 없다”의 자기 합리화다.

극장을 독점하고 OTT의 앞잡이가 되었던 이들처럼 결국 같은 자리에 서게 될 뿐이다.

돌탑영화는 플랫폼이 아니다.
반(反) 플랫폼이다.

OTT는 모든 영화를 동일한 인터페이스 위에 올린다.
장르, 지역, 언어, 역사, 노동의 조건은 모두 평준화된다.

돌탑영화는 영화를 다시 낮은 사람들, 마을로 귀속시킨다.

마을, 골목, 무명한 사람의 이름, 그 공간의 시간, 계절, 생활의 리듬이 영화의 형식이 된다.

OTT의 관객은 보고, 넘기고, 평가한다.

돌탑영화에는 관객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창작자이다.
함께 이야기를 만드는 주체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이야기를 낳는 누에가 되고, 영화를 함께 만들며, 관객의 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철학적·형이상학적 위치로 이동시킨다.

돌탑영화는 고립된 관계를 끊고 관계와 연결의 시간을 기억하고 축적한다.

돌탑영화는 자본집약에 맞서는 저밀도 전략이다.

OTT는 이미 덫에 갇혔다.
이제 거대 자본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반면 돌탑영화는 지구 어디에나 이야기가 있음을 안다.
낮은 사람이 서로의 창작자가 되고, 관객이 된다.

스크린, 벽, 사람, 이야기만 있으면 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OTT가 남긴 고립에 대한 가장 당연한 응답이다.

넷플릭스에 총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다.

돌탑영화는 글로벌이 아니라 세계적이다.

OTT는 글로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몇 개의 문화 코드만을 전 세계에 복제할 뿐이다.

돌탑영화는 각 지역, 각 마을의 고유성을 살린다.

한국의 가장 낮은 정서가 아마존의 과라니족과 연결되고,
아프리카의 마을영화가 유럽의 마을영화와 공명한다.

이것이 진짜 세계성이다.

돌탑영화는 OTT 이후의 영화를 준비한다.

OTT의 영화는 상품이며, 보고 나면 관객의 침묵만 남긴다.

돌탑영화는 끝이 아니다. 만남의 이어짐이며, 다시 만날 이유다.

어차피 자본과 스타의 힘으로 버텨온 극장의 처지였으니
더 센 자본과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

더 많은 돈에 움직이는 예술혼 없는 의리 없는 연기자에게 기대며
어설픈 엄석대식 투기자본의 마름 시대는 이제 끝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소외되고 낮은 이들의 오손도손 십시일반 인문학적 으샤 으샤 소작농들의 영화가
드디어 전 세계적으로 도래할 희망이 다가오고 있다.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이탈리아에서 네오리얼리즘이라는

사림사는 이들의 이야기와 새로운 스타일, 제작방식이 탄생했듯이.

세계에 남길 K한류의 핵심은 일찌기 없었고 어디에도 없는 무관심하고 낮은 이들의 경험과 삶과 어울리는 생횔속 창작이다 .결과물만큼 그 과정도 더욱 의미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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