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처럼 보이는 것’과 진짜의 거리
홍상수 감독의 신작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는 뉴스를 본다.
그의 영화는 선승의 시간만큼 영감을 주는 귀한 영화이긴 하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는 종종 ‘진짜처럼 보여지는 영화’로 불린다. 즉흥적인 대사, 어색한 침묵, 일상적인 술자리와 관계의 반복. 그러나 그 '진짜 같음'은 어디까지나 '연출된 진짜'에 가깝다. 직업 연기자를 통해 일상의 표정을 재현하고, 우연처럼 보이도록 계산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흉내 낸다. 그것은 '공동의 기록'이라기보다 개인 감독에 의해 설계되고 연출된 자연스러움이다.
내가 보기에 홍상수 영화가 찍고 있는 것은 당연히 '진짜'가 아니라, 진짜처럼' 보이도록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다 .이걸 가짜라고 하는 건 영화라는 걸 부정하는 짓이다 .
연기자는 아무리 자신을 비우려 해도 결국 연기자이며, 그들의 일상은 이미 역할과 기술로 분리되어 있다. 삶을 살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재현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감각은 필연적으로 관념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내가 선택해 온 영화의 방식은 그와는 다르다. 나의 경우는 실제 당사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늙은 사람 , 변방에 사는 자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다른 상황을 연기하게 하거나, 혹은 직접 그 당사자가 된다. 여기에 가상의 이야기를 서로 직조하여 얹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관계가 어떻게 상상되는 가다. 참여자들은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 서로를 다시 바라보고, 그 과정에서 현실과 상상은 분리되기도 하고 엮이기도 하면서 서로 엉켜 들어간다. 영화는 한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그 순간 형성된 관계의 결과물이 되고 공동의 기록이 된다.
이 지점에서 개인 엘리트 창작 중심의 영화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감독의 세계관이 중심에 놓이고, 연기자는 그것을 구현하는 매개로 기능하는 구조는 여전히 내 눈에는 봉건적이다. 특히 상업영화가 아니라 리얼리즘 영화같은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
이 체계 안에서 현실은 자유롭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감독의 미학에 맞게 선별되고 정제된다. 홍상수 미학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 안에서 완벽하게 왜곡된다. 상업영화가 가하는 왜곡과는 또 다른 차원의 왜곡이 개입한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홍상수 영화는 반복적으로 "영화란 무엇인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메타적 성찰. 그러나 이러한 질문 자체가 어느 누구에게는 이미 관념적이고 형식적인 과정이 아닌가. 실제 많은 이들은 가난, 고통, 우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월세 걱정하며 알바를 뛰는 청년에게, 해고 위기의 노동자에게, 돌봄 노동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것은 영화인가 현실인가"라는 질문은 사치스러운 지적 유희처럼 들린다.
홍상수 영화 속 인물들을 본다면 . 중산층 이상의 브로조아 지식인들이 술 마시며 관계를 고민하고, 우연과 필연을 논하며, 영화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영화가 대중적으로 소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형이상학 그 자체가 누구에게는 지극히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추상적 사유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터전과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는다는 것. 형식 탐구가 실제 삶의 문제와 1인치 무관하다는 것.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묻는 것 자체가 이미 여유가 있는 자의 질문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미학적 철학적으로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진짜처럼 '을 통해 '진짜'를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진짜처럼 보이도록 잘 연출된 장면을 소비하고 있는 정도인가. 감각적으로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영화일수록, 오히려 삶의 거칠고 예측 불가능한 당사자의 결은 지워진다. 그것은 흙 묻은 감자가 아니라, 이미 세척되고 포장된 감자에 가깝다.
영화가 다시 현실에 닿으려면, 이제 기술 이전에 관계가 필요하다. 연기 이전에 낮은 당사자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작이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지는 사건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진짜는 '진짜 처럼'으로 재현되는데 한계가 있다 . 진짜는 그 자리, 그 시간에서,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제 홍상수 영화와 AI 영화의 구별이 무엇인지 더 깊게 이해해야 한다. 둘 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일 뿐이다. 그리고 지구의 마을 곳곳에서 창작적 자아들이 뭉쳐 그들의 삶을 존엄하게 만들어야 하고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에너지를 축적하기 으ㅟ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철학적 질문 이전에, 삶의 구체적 조건과 고통에 직접 닿는 영화. 형식 실험 이전에, 당사자들의 존엄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영화. 또 다른 영화적 형식적 접근도 필요한 것이다. 너무 뻔한 시간들과 사건,뉴스들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