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v.daum.net/v/20260206000152815
인도 세 자매의 뉴스를 보고, 작년 부산 브니엘예술고 세 여학생의 투신 사건이 거의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사건의 장소도 달랐고, 언어와 문화, 제도도 달랐지만 와닿은 감각은 비슷했다.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동일한 고층 아파트 투신이라는 방식으로 삶을 닫았다는 사실, 그들이 이미 우리 시대의 어떤 결론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 결론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가르쳤는지, 신문은 말해주지 못하지만 나는 그 지점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부산 여학생들의 투신은 강사와의 불화, 학업 스트레스, 예술고라는 특수한 환경, 입시와 진학, 그리고 그 배후에 놓인 사교육 카르텔로 설명된다. 모두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원인들은 늘 사건의 주변을 맴돌 뿐,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 채 정리된 느낌을 준다. 그들이 왜 그 순간을 ‘종착’으로 인식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고민하기보다 시간이 지나면 다음 뉴스로 넘어간다.
인도 세 자매의 사건은 한국 게임, 한국 문화, 부모와의 갈등으로 요약된다. 낯선 나라의 비극은 쉽게 문화적 해프닝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이 사건이 불편했던 이유는, 그 소녀들이 동경한 것이 단순한 한국산 연애 게임이나 연예 산업이 아니라, 현재 유통되고 있는 한국의 지배적인 소비문화의 이미지와 알맹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이미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 성공과 인정, 실패와 좌절의 한국 현실서사이기도 하다.
나는 이 두 사건을 구조적으로 나란히 놓아보게 된다. 한국의 소녀들은 그 이미지의 내부에서 경쟁했고, 인도의 소녀들은 그 이미지를 외부에서 욕망했다. 위치는 달랐지만, 학습된 결론은 비슷했을지 모른다. 노력과 재능, 인내와 열정이 끝내 도달하지 못할 때, 삶은 더 이상 이어질 필요가 없다는 판단. 이 판단은 개인의 충동이라기보다, 반복적으로 전달된 한국의 문화적·사회적 메시지에 가깝다.
오늘날의 소비문화 산업은 꿈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꿈 외의 대다수 삶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의 부재라기보다 무관심과 무시, 때로는 조롱에 가깝다. 서열은 명확하고, 탈락 이후의 삶은 구체적이지 않으며 지나치게 흐릿하다. 특히 한국의 문화콘텐츠에서는 더욱 그렇다. 실패는 과정이 아니라 낙인으로 남고, 잠시 멈추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 구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운다. 이 세계에서는 끝까지 가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을. 그것이 선택처럼 보이도록 은연중에 가르치는 수많은 영화와 웹툰들 또한 너무 넘치도록 제공된다.
선택은 다양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선택지는 점점 제거된 상태로 보인다. 그것은 한국 문화콘텐츠의 생산자들 역시 대부분 젊은 성공 지향적 기질의 소유자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학교, 문화 산업과 플랫폼, 국경을 넘는 이미지 유통, 그리고 불균등한 경제 조건이 함께 작동하며 아이들에게 하나의 결론을 반복해서 암기시켰다. 너의 가치는 증명되어야 하고, 증명되지 못하면 유지될 이유가 없다는 결론 말이다.
그래서 이 사건들은 각기 다른 비극이면서도, 하나의 학습 결과처럼 보인다.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답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생산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제한된 세계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정답처럼 내세워온 문장을 조용히 따라 적은 결과에 가깝다. 성공한 콘텐츠를 반복 복제하는 방식 속에서, 경험의 부족과 상상의 빈곤이 그대로 전승된 셈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꿈과 성공의 이미지를 끝없이 소비시키는 사회에서, 대다수의 실패 이후의 삶들, 그들의 다양한 열정과 일상의 지속, 성공의 헛됨과 허무, 그리고 진정으로 성공한 이들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상상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K-컬처는 분명 강력한 장점을 가진다. 개인의 재능을 빠르게 가시화하고, 주변부의 감각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국적과 계급을 넘어 욕망을 공유하게 만든다. 하지만 경제적 격차는 교육의 서열을 만들고, 교육의 서열은 문화적 가치의 서열을 더욱 정교하게 강화한다.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극히 소수의 성공만을 반복 재생함으로써 다수의 좌절을 극도의 공포로 전환시키는, 진짜 삶의 상상력 축소증에 가까워졌다. 국경을 넘어 공유된 것은 음악이나 문화, 게임 그 자체라기보다, 삶의 가치가 단일한 척도로 환원되는 감각이었다.
이제 좁은 문으로서의 편협한 소수의 성공 상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다수의 삶들의 다양한 좌절 이후의 일상 드라마들을 찾도록 하는 문화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그게 대다수에게는 더 인간적이고 결국 더 자연스러운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