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아이에게 영화 한 편을 보라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표까지 보내주며.. 돌아온 아이의 첫마디는 왜 그런 영화를 보라고 했냐는 것이다. 심지어 60년대 영화 같았다고, 졸다가 나왔다고 말했다.
60년대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어떻게 60년대 영화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웃었다. 아마 그 말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였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익숙한 AI 숏폼 영상보다 특수효과는 뒤처지고, 눈을 붙들어 매는 사건도 없으며, 죽음을 전면에 내세워 관객의 감정을 조이다가 결국 해피엔딩으로 풀어버리는 구조가 어딘가 낡아 보였을지 모른다.
연기자의 성의 없음도 눈에 띄었다고 했다. 암을 말하면서도 항암의 상징처럼 소비되어 온 삭발의 결단은 없이 모자 하나로 처리하는 장면, 감독이나 연기자나 저 예산 단기간 촬영이라는 출연료와 제작비에 비례하는 어쩔 수 없는 직업성. 고통의 물성을 드러내기보다 상징을 흉내 내는 방식. 감독의 고유한 스타일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에는 고함도, 폭력도, 파괴도 없었다. 난 그게 좋았다. 그러나 그건 감독의 결단이기보다는 원작의 자장이었을 것이다.
영상이 세련된 것도 아니었고 속도감이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작가주의 영화처럼 밀어붙이는 고집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 작가 우와노 소라의 소설 《당신이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앞으로 328번 남았습니다》를 원작으로 삼아, 그것을 부산의 공간과 음식으로 옮겨온 각색. 말하자면 부산판이었다.
이 영화가 혹시 저예산으로 스타와 감독을 워밍업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은 아닐까, 그런 의심도 가능할 것이다. 정치판에서 이력 없는 인물을, 결과가 보이는데도 브랜드를 위해 투자하는 과정과 닮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어떤 이름을 예비하는 자리. 영화 역시 산업 안에서 그렇게 소비되곤 한다.(소위 영화사 장학생인데 봉0호나 박찬0도 일찌기 그 과정을 밟아왔다)
그러나 내가 딸아이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한 이유는, 완성되지 않은 시도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했다.
잘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나면 “잘 만들었구나”라는 말 외에 더 할 말이 남지 않는 순간이 있다. 감동도, 영감도, 질문도 없이 매끈하게 닫히는 경험. 나에게 그 영화는 어딘가 비어 있고, 매끄럽지 못하고, 어색하게 남는 영화가 더 오래 생각을 붙드는 경험이기도 했다.
영화관람료가 너무 비싸서 그런 경험은 점점 적어진다.
나는 어릴 적 동네의 2편 동시상영관에서 영화를 보았다. 다시 그대로 쭉 앉아 있다고 해서 누가 나가라는 사람도 없었다 .대학 때까지도 학교 앞 2편 동시상영극장은 살아 있었다.
그 시대보다 몇 백배는 많은 영화가 지구적으로 생산되지만 어쩌면 문화상품이라는 영화가 그 문턱은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꼭 남들이 보는 영화만 보게 되는 , 거의 비슷한 장르만 생산 소비되는 시대가 60년대보다 문화를 흥미롭게 소비하고 있는 것인가? 분명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역의 감성과 공간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가 너무 적다. 부산에 대규모촬영소가 건립될 예정이고 수많은 영화가 부산에서 촬영되고 있다. 그러나 그건 보편적 도심이거나 보편적으로 가난한 동네. 부산이라는 그 고유함이 영화의 이야기와 연결된 영화들은 많이 없다.
이 작품이 감독의 개인적 연고에서 출발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작은 출발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부산에 살면서도 부산의 감각을 충분히 체화하지 못한 딸아이에게, 이 도시의 음식과 골목과 공기를 스크린을 통해 한 번쯤 마주하게 하고 싶었다. 그 의도를 충족시키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
물론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이의 감각은 이미 다른 속도와 다른 문법에 길들여져 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지역이라는 말은, 혹시 나의 세대적 향수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로컬리티를 말하면서도 그것을 산업의 변주나 개인적 연고의 장식으로 소비하는 건 아닌지를 나 또한 되묻는다.
나는 최근 5060 영화제작단을 만개 영화제작프로젝트와 연결하기로 했다.
지금 세계는 중앙집권적 거대자본 생산으로 지역적 상상력 자체가 억압되어 있다
영화를 통해 지역을 체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 도시의 음식을 스크린에 올리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도시의 시간과 관계, 몸의 리듬까지 옮겨 내는 어떤 영화일까?
딸에게 그 영화를 권한 건 어쩌면
지역의 생활인들이 어떻게 지역의 이야기로 협력하고 작은 수익을 내면서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영화를 통해 성찰하고 연결되어 가는가가 남은 생애 버킷리스트인 아빠의 의지와 욕망을 봐 달라는 꼰대짓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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