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이미 사라진 나의 흥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치고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며 또 누군가는 춤을 추면서 생일을 축하하는 영화를 보곤 그런 생각을 다시 했다. 나의 경우 겨우 해피버스데이 노래 부르며 손바닥 마주치는 정도다. 그게 수십년간 달라지지 않는다 .살아가는 문화라는 게 중요한 건데 분명 나의 고갈된 흥도 문제이지만 가만 희생양을 찾다 보니 경상도 문화가 나의 건조함에 어떤 영향을 준건 분명한 것 같다. 그건 나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 나의 친척들을 보면 쉽게 추측이 가능하다. 여튼 이동네는 지금도 웃음,노래소리보다 고함소리 기침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곳은 맞다 .
어느 날 여의도 한강 원효대교아래 30여 명 되는 조선족 사람들이 더운 여름 피서 왔다가 모여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본 적 있다. 그 낯선 느낌을 카메라로 찍으며 내 영화 '길 위의 빛들'에 살짝 넣었지만 그걸 특별한 풍경으로 머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지금도 30여명이 모여 저랗게도 놀 수 있구나 “어떻게 저게 가능한가? 여전히 의문이 드는데도 .그래도 수십 년 동안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전라남도야 말로 사람들이 그 모진 삶 속에서도 흥이 있더라. 창을 하며 함께 춤추고 흥을 드러내는걸 수 없이 보면서 그래도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달랐다.
전국을 다닌 나로선 분명히 이 마을 저 마을 그 삶의 결이 다르다는 걸 알아갔다.
물론 흥을 지역의 기질로 귀결시키면 , 전쟁 ,가난이라는 역사적 ,경제계급적 환경과 공동체문화와 개인의 역활을 무시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개인이나 마을이나 분명 문화적으로 단조로운 문화 속에서 하루 종일 화투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화투가 없었다면 모여서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었을까 아마 그들은 벽에 기대고 졸거나 TV보는 일밖에
없는 듯 하다 . 나도 분명 벽에 기대어 TV를 볼 재간밖에 없을 것 같다 . 에너지가 소진당한 이들의 흔적이 몸에 문신처럼 아마 나나 그들에게 박혀있을 것 같다
오랜 봉건 왕조로부터 시작된 권력적인 종교, 감정 절제, 위계질서, 체면 유지를 내세우는 유교의 탓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어느덧 경제적 계층이 고정화되고 사회적 형식성으로 역동성과 활기를 잃어가고 있기에 더욱 개개인의 사람들도 고립되고 위축된 정서로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즐기는 음악 춤 노래가 아니라 가족, 친구, 친척, 마을사람들이 즐기는 춤 노래가 없다는 건 결국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 그리고 개인적 미래 환경이 된다.
결혼식을 가봐야 몇 시간이나 우두 커 미 앉아 있다가 식사하고 오는 게 다다. 다른 이들도 강제수용소라도 끌려온듯 그 표정이 시작과 끝까지 거의 변함이 없다.
집시들의 노래와 춤으로 얽힌 이야기를 그린 에밀쿠스트리차나 감독의 영화를 보면 한편으론 부럽다.
“왜 우리는 함께 즐기지 못하는가”"왜 나는 흥을 가지지 못했는가?"
분명한 건 노래하고 춤추는 흥의 환경이 충분했는가? 그냥 노래 좋아하고 춤추는 문화야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만 ‘함께 몸을 쓰는 문화’가 약하다는 건 부정할 수 있을까? BTS가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공동체적인 감성과 감각을 분출시키는 시대이지만.집단적 감성은 유튜브속 정치적 알고리즘 안에서는 가능하다. 아마 몸에너지의 연결을 가지려는 본능을 그들이 충족시켜주고 있는지 모른다.
중국의 공원에서 아줌마들이 단체로 춤을 추는 장면, 여의도 한강 다리 아래에서 집단으로 음악 틀어놓고 군무를 맞추는 장면, 전라도에서 판이 벌어지면 즉흥적으로 창이 나오고 흥이 번지는 장면. 그건 단순한 즐거움과 기쁨의 시간이 아니라 공동체적 에너지의 방출이다. 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분명 다를 것이다.
학교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지 않고 광장에서 즉흥적으로 노래하면 ‘민폐’가 되고 결혼식에서도 축하가 아니라 의전이 중심이며 가족 모임도 정적인 식사 위주의 문화가 이제는 고역이다
사실 판소리나 농악이나 집단적인 흥이 없었다고 보기 힘들지만 위계 안에서 통제된 흥이었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에는 성공 생존 중심 사회에서 춤보다 공부, 노래보다 승진, 놀이보다 성과.
그 결과 개인이 이어폰 끼고 즐기는 문화는 강해졌지만, 공동체 흥의 문화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공동체적 에너지의 결핍’이 분명하다.
공연보다 스스로 즐기는 , 구경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이 축제가 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게 영화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난 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흥분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가치와 역할을 우리 사회에 설득하고 공감시키는데 반쯤은 실패했다. 반쯤은 성공했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언론들이 앞 다투어 그들을 다루었지만 결국 저널리즘의 호기심에 소비되었다.
시스템과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는 공장제 상업영화와는 달리 내 한 몸으로 버티며 견디며 살아오다가 오히려 내 진이 빠지고 내 흥이 고갈되어 버린 것 아닌가?
흥의 씨앗을 함 심어보려다 내가 먼저 시들어 버렸다 . 바둥거려도, 이루지 못할 신기루에 집착한 사람이 기쁘고 즐거운 시간을 떠올리며 다시 흥의 샘물이 터져 오르기를 바란다. 그런데 흥은 그런 게 아니다. 기쁨이나 즐거움과 다른,그냥 노래와 춤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 아주 깊고 오랜 시간과 공동체의 수맥이 있어야 했다. 그게 없었다. 내 탓만이 아니다. 난 단지 즐겁고 기뻤을 뿐 흥이 부족했다. 어딘가 길에서 떠돌고 있을 흥을 찾아가는 이야기 하나 만들어야 하겠다. 그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