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볼 영화 ‘페루지노, 영원한 르네상스’를 예약했다. 이상하게도 그 영화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다가온다. 어떤 컨셉으로 페루지노를 다루었을까? 창작자로서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크다. 미켈란젤로를 다룬 '고뇌와 환희 '나 '미켈란젤로 인피니티 ' 와는 전혀 다른 시선을 건진다는 것은 의미가 클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만 떠올리던 나에게, 갑자기 페루지노는 뜻밖이었다.
그러자 수십 년 전 촬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전업 주부가 우연히 쇼핑을 하다 광고기획사 사람에게 눈에 띄어 '다리' 모델이 되면서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 뒤죽박죽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촬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야기보다 조금 더 복잡했다.
감독은 여주인공의 촬영이 끝나면 “오늘 촬영 다 했으니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나와 눈짓으로 교신했다.
여주가 촬영장을 떠나면 나는 방금 여주가 입고 있던 스커트와 구두를 확인하고 다른 배우를 데리고 촬영을 이어갔다. 이어지는 촬영은 대부분 다리 클로즈업이었다. 여주의 얼굴과 연기, 대사는 이미 촬영이 끝났지만 다리는 더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무명배우를 따로 불러 찍었다.
결국 한 장면 안에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 셈이다.
얼굴은 여주였고, 다리는 다른 무명배우였다.
그 사실을 알면 여주가 상처받을 것 같아 제작진은 이 일을 비밀로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사실이 들통났고 여주는 감독에게 섭섭한 마음을 표현했다. 다리가 예쁜 주부의 이야기였지만 실제 촬영에서는 그 다리를 다른 사람이 대신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도 묘한 혼란이 있었는데 여주나 무명배우는 또 어떤 생각이 오갔을까?
그 때를 떠올리면 요즘의 AI영상과 몽타주되는 묘한 혼란을 느낀다.
오래된 촬영장의 기억이 지금 다시 떠오른 것은 '페루지노''라는 이름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몇 사람의 천재, 명망인만 기억해 왔다. 미켈란젤로, 메디치 가문, 교황,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 그 몇 개의 이름이 르네상스의 얼굴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페루지노라는 이름을 다시 만나면서 그 얼굴 뒤에 있던 다른 세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페루지노는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작은 도시 페루자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그는 마을에 있던 어느 화가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화가의 꿈을 꾸었다. 그 화가는 특별히 유명한 사람도 아니었고 작품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무명화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가 한 소년에게 화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심어주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르네상스 한 영역의 시작이 거대한 도시의 궁정이 아니라 마을의 화가였다는 사실. 더 들여다보니 그 시대에는 지역 공방 네트워크가 존재했다. 각 지역의 공방은 기술을 축적하고 그 지역 자연과 스타일을 공유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예술가들은 교황과 교회, 지역 권력의 후원을 따라 도시를 떠돌며 작업을 이어갔다. 마치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의 학자들처럼.
그렇게 페루지노는 로마로 가게 된다. 교황의 부름을 받아 시스티나 성당 벽화를 그리게 되었고 그 공방에서 수많은 제자가 자라났다. 라파엘로 역시 그 공방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은 조금 다르다.
그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 교회의 제단 벽화를 그리며 78세를 살다간다..
그 사이에서 미술의 시대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그림을 보며 “예술을 모르는 자”라고 악딤을 했고, 페루지노는 명예훼손으로 미켈란젤로를 고소했다. 그리고 교황 권력의 변화 속에서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벽은 새롭게 장식된다. 페루지노의 벽화, 성모 승천 제단화를 완전히 지우고 그 위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 탄생한다. 아마 그가 살아 있을 때라면 엄청난 모욕과 좌절감을 느꼈겠지만
나는 지금 그 거대한 '최후의 심판'의 천장화만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 아래에 있었던 그림은 더 이상 떠올리지도 능력이 이전에는 없었다.
어떤 장면이 갑자기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앞에 긴 시간의 역사와 축적이 있다.
김홍도 이전에 윤두서의 나물 캐는 여자나 수많은 다른 풍속화가 있었다는 것도
촬영장에서 얼굴과 다리가 다른 사람으로 편집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관객은 여주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장면 속 다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당연히 물을 수 없다.
그 다리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역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편집된 것이다.
대게는 페루지노보다는 미켈란젤로의 이름만 기억한다.
그것도 몽타주라면 몽타주다.
그러나 그 얼굴이 등장하기까지 수많은 지역 화가들의 공방, 기술, 협업, 후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 역사 역시 하나의 통일된 서사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편집해 버린다.
그래서 르네상스는 미켈란젤로의 시대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페루지노와 이름 모를 수많은 화가들의 시간이 쌓여 있었을것이다.
나는 이번 주 그 영화를 보러 갈 생각이다. 그 영화가 또 다른 한 사람의 천재를 말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미끈한 다리의 주인공을 보여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단지 페루지노의 교과서적인 인물사라면 더욱 실망할 것이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분명한 건 정치권력 종교권력, 지역토호의 욕망에 따라 예술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얼굴과 다리가 이어 붙여져 , 두 여자가 한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 몽타주의 순간이 내가 배운 역사였다.
팔림프세스트(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유령)과 킨츠기 ( 상처와 틈을 금으로 메꾸는 기술)라는 예술의 본질 .
일단 보고 글을 이어갈 생각이다 (계속)
윤두서의 나물캐는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