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 당시 식모 전담 단역 배우였던 전원주. 그녀는 예정된 촬영 시간이 미루어져 4-5시간을 기다리면서 짧은 대사도 아닌 대사 " 예 사모님 "를 하고 20분 만에 촬영장을 나섰다 그러면서도 다음 촬영에 바쁜 감독을 기다리다 그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돌아갔다. 당시 내 가치관으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물론 그녀는 스타의 꿈보다는 직업적 경제적 어쩌면 알바 차원으로 다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겨울날밤, 비 오는 여름 장면을 찍는다고 야외에서 살수차의 퍼붓는 물을 덤벅 맞고도 입에서 나오는 옅은 입김 때문에 NG을 외치는 감독의 병적인 완벽성에도 충격을 받았다. 그 입김을 없앤다고 얼음까지 입속에 굴리면서 바들바들 떠는 연기자를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고 긴장했던 시간이었다. 연기자들과 사적인 시간을 보내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들뜬 욕망을 나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인내와 성실이 어느 정도 누적되어 '량의 질로의 변화'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굴'만을 자산 삼아 세상에서 스포터라이트를 받아보려는 것은 참 천박하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돈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과 뭐가 다른가? 지식이나 철학 기술처럼 뭔가 인내와 상처와 고통이라는 터널의 시간을 뚫고 가야 한다는 엄숙한 메시지의 나라에 살고 있었다.
메시지보단 이미지 세계의 첨병으로서의 배우에 대한 은근한 폄하는 얼굴에 분칠 하는 이들은 믿어서는 안 된다라는 우리끼리 하는 말이라고 어느 감독의 폭력적인 말에 간혹 동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굴이든 돈이든 지식이든 그 어떤 것이든 세계와 관계하면서 감성을 조직하고 표현하는 건 다 다른 무기로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걸 늦게 깨달았다. 감독의 위세가 더 높았던 시절 나는 당대의 연기자 스타들과 가까이서 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여튼 배우의 위상은 바로 이미지의 시대와 함께 왔다
하지만 배역에 따라 주연, 조연, 단역, 엑스트라로 나뉘는 것은 단순히 역할의 크고 작음을 넘어, 배우의 지위와 처우를 결정하는 신분제와 유사하다. 오랜 시간 무명으로 지내며 단역이나 엑스트라 역할을 맡아왔던 전원주 배우의 사례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그저 당사자의 민망함이 아니라 그 계급 사회의 냉혹함에 대한 나의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같이 놀던 무명배우가 몇 년 사이 스타가 되어 버려 이전 처럼 편히 전화 걸기도 멋적어 버린 경험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배우 김혜자가 지독한 골초였는데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은 같이 촬영했던 스텝뿐이었다.(최근 그녀는 그 사실을 언론을 통해 직접 알렸다)
과거에는 감독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던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도 간혹 드러나고 있다.
배우가 제작사를 운영하거나, 투자자를 직접 만나 감독으로 데뷔하는 사례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십 년간 고군분투해 온 무명 감독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연예계의 새로운 권력 구도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감독이 배우를 캐스팅했다면, 이제는 배우가 출연을 결정하며 작품의 투자와 제작 방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계급의 유동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 7 기 3'과 같은 요소가 아주 희귀하게 작용하며 계급이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김일의 프로레스링처럼 연출한다. '운'과 뛰어난 '재능'으로 단숨에 사다리를 뛰어넘는 극소수가 존재하기에, 수많은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이 치열한 세계에 뛰어드는 매력을 오히려 배가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의 경우, 명문 학교와 특정 인맥을 중심으로 한 엘리트주의 카르텔이 존재한다. 배우의 배경이 재능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인도 역시 카스트 제도의 잔재가 남아 배우의 계급이 사실상 정해져 있고, 가족 중심의 재벌 가문이 영화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멕시코는 더 나아가 마약 카르텔이 영화 산업에 직접 개입하며 예술이 폭력적인 도구로 전락하는 위험한 현실을 보여준다.정치 ,교육의 독점뿐 아니라 영화판 또한 보이지 않는 음지의 공간이 더 크다 .난 그 비밀을 아주 조금 경험 했을 뿐이다.
내 작품 '살아가는 기적' 에서 한 할머니가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 아버지와 함께 컸다
10살 때 주위에서 미국으로 입양을 권했는데 아버지가 결사코 반대했다
우연찮게 극속에서 엄마 잃은 고양이를 보고 "엄마 없이 어찌 살지?"라는 대사를 하면서 예정에 없던 눈물을 흘렸다. 나도 미처 주문하지도 않은 눈물 연기를 표현한 것인데 사실 눈물이나 과한 연기를 요구할 그런 형편은 아니었다. 또한 촬영을 한다고 과장된 연기를 불쑥 내보일 그런 분도 아니었다. 촬영을 끝나고 알게 된 사실. 갑자기 어릴 때 엄마 없이 혼자 커 온 자신과 결혼한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당신의 상처를 연기 속에서 만나 버린 탓이었다. 후에 영화가 상영되면서 사람들이 그 할머니연기를 보면서 웃었다. 그 연기를 어색한 발연기라고 보는 것인가 싶어 못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딘가에 그런 마음을 글로 적었고 그 글을 보고 듀나(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평론가이자 소설가로, 1990년대부터 인터넷 공간에서 활동해 온 필명)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지금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네 사람들을 캐스팅해 마을 영화를 찍고 있는 신지승 감독이 언젠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가 죽은 고양이 때문에 우는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연기가 서툴다고 웃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 할머니가 그 연기를 할 때 어머니 없이 자란 과거와 죽은 아들을 생각하고 실제로 울었다는 것을 알고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프로페셔널한 작가와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적으로 세련된 결과물은 오히려 그 세련됨 때문에 현실 세계를 놓치고 지나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인위적이고 유치하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진짜에 가까운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세련된 세계를 살고 있는가?"
여하튼 방송이나 영화판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압축된 계급사회의 경험들과 더불어 이 시대의 감성과 연기가 사교육시장에서 처럼 얼마나 더 가혹하게 훈련되어 도달하고 , 대중들은 아무리 현실과 가상사이를 오고가는 예술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더 인공적으로 길들여져야 하는지 궁금해져 갔다.
그러다가 한강 헬기추락사건의 장례식 때 나는 촬영현장에서 보지 못한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주로 6-70년대 한국영화판의 단역, 엑스트라배우들이 장례식장에 대거 찾아왔다. 그들은 장례식장에서 머물며 며칠 동안 집에도 가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