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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Sep 01. 2016

#고둥젖과 열무김치

열무김치 맛 좀 보자


 

"열무김치"


라고 말을 뱉는 순간 입안에 침부터 고인다.

한 여름 무더위 때 열무김치 만한 반찬이 있을까.


올해는 너무 무더웠던 탓인지 담가 둔 열무김치 뒷맛이 쌉쌀했다.

덜 익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냉장고 안쪽 깊이 넣어두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꺼내보니 이전보다 열무 색이 파랗게 살아있고 고추양념이 배지 않아 빛깔이 곱지 않다. 냉장고에 넣어둬 안 익는 것인가 여겼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열무김치 맛이 이상하지 않더냐? 농약을 많이 쳐서 써서 못 먹겠더라 아깝게 생각지 말고 버려라."


친정 엄마의 전화였다.

 비닐하우스에 자란 것을 운반 도중 무더위에 상할까 봐 농약을  쳤기 때문에 맛이 그렇게 쓰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먹어보지도 못하고 다 버려야만 했다.

 올 초여름에 어린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넣어  담근 김치는 맛이 좋았는데 말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열무로 물김치를 담고 붉은 고춧물이 자작자작하도록 담가 둔다.

열무김치는 맛있기도 하지만 꽤나 유용한 반찬이다.  열무국수. 열무냉면. 열무비빔밥. 그리고 좀 많이 익으면 열무김치 볶음밥. 그리고 계란과 밀가루를 조금 섞어 열무 전을 해서 먹는다.


우리 집 열무김치의 맛은 친정엄마의 손맛인데 당신이 처녀 적에 전라도에 갔다가 현지에서 배웠다고 한다.

오래전에

젊고 씩씩한 처녀는 고모를 따라 전라도로 갔더란다. 그때 처녀는 잠시 머물렀던 그 지방에서 그들이 열무김치를 담그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다.

전라도의 비옥한 땅에서 잘 자란 윤기가 자르르한 밥에 열무김치를 먹었던 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밭에서 갓 따온 열무를 소금에 쓱싹 절인 후 씻어 소쿠리에 건져 놓는다.

생마늘을 맷돌에 갈고 빨간 고추와 파란 고추도 맷돌에 갈고.  밥도 맷돌에 갈고 젓갈도 갈고 한 것을 한데 모아

두 손으로 마구 섞어준다. 그렇게 담근 열무김치에 밥을 넣어 비벼 먹었는데 그 맛이 완전히 꿀맛이었다고.

 처녀는 그곳에서 본 열무김치 담그는 법을 집에 돌아와서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간혹 열무김치에 감자를 갈아 넣기도 하였으나 역시 밥을 갈아 넣은 맛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대신 밥을 갈아 넣은 열무김치는 빨리 익기 때문에 조금만 담가야 한다.

이렇게 오래도록 열무김치를 담근 손맛이 몇십 년을 흘러 한 가족의 전통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빠지지 않는 여름 반찬은

 고둥젖이다.

전복의 창자와 섞어 만드는 고둥 젖은 아마도 제주도에만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해녀였던 친정엄마에게 고둥젖은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밑반찬에 불과했기에 어려서부터 늘 먹어오던 그 반찬이 지금처럼 값비싼 반찬이 될 줄 몰랐다.

제주도 공항에서 자그마한 병에 담긴 고둥젖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보았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늘  성게젖. 멍게젖. 고둥젖을 담아 냉장고에 밑반찬으로 쟁여놓곤 하였다. 물론 전복이니 해삼이니 문어니 하는 해산물 반찬은 질리도록 먹었다.

특히 고둥젖은 우리 집에서 빠지지 않는 여름 반찬인데 만드는 과정은 이러하다.

복에서 창자만을 떼어낸 후 소금에 절여 며칠 숙성을 시킨다. 그 후 싱싱한 생 소라고둥을 잘게 저며 같이 섞어 둔다.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 먹으면 전복 창자의 맛과 고둥의  단단한 맛이 섞여 짭짤하면서도 오도독오도독 씹을수록 감칠맛이 도는 고둥젖이 된다.

여름에 밥을 한 그릇 말아 고둥젖 한 종지에 열무김치를 식탁에 놓으면 금방 밥그릇이 빈다.


엄마는 그 옛날 전라도에서 보았던 맷돌을 사고 싶다 하였다.

고추나 마늘 등의 양념도 기계로 가는 것보다 맷돌에 가는 것이 훨씬 맛있다고 하니 사드릴 생각이다.

가을바람이 선선해진 이제 열무김치도 고둥젖도 좀 시들해지긴 했지만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별미.

고둥젖, 열무김치를 늘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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