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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Aug 23. 2016

#여름과 마바지

무더운 여름만 되면 예전에 줄기차게 입었던 마바지가 생각난다.

요즘은 중국산 마(린넨)로 만든 값싼 옷이 많이 나오기는 해도 예전에 엄마들이 여름이면 해 입던 모시나 삼베 같은 것이 흔하지 않다.

오래전에 엄마는 생일 기념으로 마옷을 한 벌 해 입으셨다. 윗옷은 어디로 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다만 그 바지를 나중에 내가 물려 입게 된다.  정확하게는 그 천이 마인 것은 분명한데  마의 시원하고 가벼운 특성에 구김이 안 가도록 만들어진 것이어서  정련된 견마와 비슷했으나 광택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젊은 내가 입어도 세련되게 잘 어울렸고 색도 엷은 갈색인데 마른 나뭇가지 빛을 띠어 은은했다. 


 그때도 무척 더운 여름이었던 터라 집에서 입으면 좋겠다 싶었으나 막상 입어보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바지라고 해서 나이 드신 분들이 즐겨 입는 마처럼 구김이 많지도 않고.  그래서 아껴두고 외출복으로 삼았다. 

많은 여름바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오르는 여름에  보송한 종잇장처럼 얇고 시원한 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만 입어도 태가 나고 특히 장거리 여행에 꼭 가지고 다녔다. 그것은 아무리 더워도 땀이 차지 않고 바람을 쓸어다 주는 부채 같은 바지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마바지를 구해보려고 했으나 옷가게서 볼 수 없었고 특히 마바지를 맞춤하는 집들은 세월 따라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면서는 마바지 천이 닳아지기 시작하였는데 옷이 닳아지는 모양도 오랜 나뭇결처럼 예뻤고 질겼다.

"그 옷 좀 버려 이젠"

옆에서 눈총을 주어도 구멍이 난 곳에는 천을 대고 짜깁기를 하고 입었다.

누군가 이 글을 보면 무척 검소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물건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편이 아니다. 아마도 다른 면바지였으면 몇 년 입고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거나 옷장 서랍에 처박혀 세월을 보내었을 것이다. 

몇 년 입지 않아 색이 바래거나 줄거나 옷의 형태가 사라지는 다른 옷들에 비해 그 옷은 언제나 빨아 다리면 형태가 살아나고 또 질겼으며 닳아지면 닳아지는 그 맛에 또 매력이 있었다. 

결국 마지막에 

제주도 여행을 갈 때는 동생이 그 닳은 바지를 입고 나타난 나에게 얼마나 싫은 티를 냈던가.

그래도 일 년을 더 입고 버린,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인생 바지였던 셈이다.


 지금도 면바지가 땀에 젖어 달라붙거나  마바지라고 해도 탁하게 몸을 감싸거나 하는 것들을 보면

그 같은 천으로 된 바지가 가끔 아쉽다.

예전에 다큐에서 어떤 한국 여인이 인도에 가서 한국의 모시를 재현하기 위해 공장을 세우고 옛날 방식으로 실을 뽑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녀가 만든 모시는 동남아 귀족들에게 명품으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우리나라 왕실에서 쓰던 모시는 현재에 와서 재현을 못한다고 하였다.

"옛날 임금님의 모시옷은 물에 적시면 컵 안에 다 들어갈 정도였다. 잠자리 날개 같았다."

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감동을 했던지 모른다. 왜 그런 좋은 정보들이 남아있지 않은 건지.


 층층이 쌓아 올린 콘크리트 벽안에서 페인트를 두껍게 칠한 문에 실크벽지로 벽을 두르고  본드로 붙인 장판을 깔고 앉아 꽉 막힌 공간에 에어컨을 틀고 있노라니

예전에 즐겨 입었던 마바지 같은 창호지 문으로 공기가 자유롭게 흘러 답답하지 않던 방안이 떠오른다.

창호지는 바깥의 뜨거운 볕을 연하게 걸러주고 밖의 공기로 숨을 쉬어 안으로 보냈다. 

종이부채를 흔들어 더위를 쫓기는 했으나 알레르기로 고생하거나 몸이 건조해서 병원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시멘트 벽돌이 몸의 습기를 빨아들이 듯이

에어컨이  실내의 습기를 빨아내며 인공의 바람을 만들어 낼 때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있노라면  한 번씩 불어주던 바람이 순식간에 땀을 날리던 그때가 그려진다.

 인간을 편하게 해준다는 과학 기술이 효율적일지는 몰라도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이때

누구에게나 불어오는 평등한 자연바람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이제 뜨거운 여름이여 안녕~ 빨리 헤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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