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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Nov 07. 2016

#감색 원피스의 여인

가을에  나무에 가득 달린 황도빛 단감을 보면


고교시절, 한 과학 선생님이 생각난다.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던 총각 선생님은 수업 시간 교실에서 여고생들에게 그랬다.


"나의 여인은  감색 원피스 자락을 흩날리며 내가 기다리는 다방 안으로 들어올 것이야."

라고.


감색 빛 원피스를 입은 여자라니. 그때 그 선생님이 '주황색 원피스'라고 했더라면 우리의 감성은 그렇게 부풀지 않았을 것인데 '감색'이라는 그 단어가 묘하게 여고생들의 호기심을 일으켰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촌스러울 것 같기도 한데.

지금쯤. 그 선생님은 아마도 손주를 보고 할아버지가 되었을 것이다. 감색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났는지는 모르겠으나 과학 선생님 답지 않게 퍽 낭만적인 분이었는데 가을날,주황색 감만 보면 그 선생님의 감색 원피스가 어울리는 여인이 생각나곤 한다.

그 선생님의 감색 원피스 입은 여자 이야기가 여고생들의 눈빛을 반짝거리게 한 이유는 또 있었다.


"우리 엄마는 나의 아내를 여기서 구하라고 하셨어."


라며 우리들을 자신의 아내 후보감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그 선생님의 감색 원피스 입은 여인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학 선생님이 새로 부임하던 날 , 그가 전교생 앞에 소개될 때

그 선생님이 총각이라는 것을 여고생들은 직감으로 알았다. 그러나


"여러분, 이 선생님은 결혼하신 분입니다."


라고 교장선생님이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하였을 때는 전교생들 속에서 아쉬움의 탄성이 새어 나왔다.

순진했던 우리는 그렇게 그 총각 선생님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인데.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자신의 모친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우리에게 전달하며 잠자던 여고생들의 감성을 깨워놓았다.


 " 네가 발령받은 여고에서 네 미래의 마누라를 찾아봐"


라는 모친의 말을 그는 어길 수가 없었던가 보다.

아이들이 점심 도시락을 깔 때면 괜스레 교실에 들어와서 우리들이 무슨 반찬을 먹는지를 살피고 가고 젓가락을 들고 와서 같이 도시락을 먹고 가기도 하였다.


"난 결혼 아직 안 했다"


며 곳곳에 자신이 순수 총각임을 드러내고 다닌 것은 그때 우리 또래들은 다 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말 많은 여고생들 사이에 그 과학 선생님의 소문이 전혀 없었던 것을 보면 그는 자신이 근무했던 여고에서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하였던 것 같다.

가끔씩 고등학교 동기들로부터


"과학 선생님이 어떤 여자의 어깨에 손을 두르고 걸어가는 것을 봤어."


라는 말은 들을 수 있었으나 감색 원피스는 입고 있지 않았다고 하였다.

다만 고등학교 졸업 2년 후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피부가 유난히 희었던 영어 선생님이 우리들의 2년 후배와 약혼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그 과학선생님과의 결혼의 가능성이 충분했던 거였어 라며 우리는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과학선생님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종일 학교 수업에 자습에 고된 공부를 해야 했던 여고 교실에서 총각 선생님들의 풋풋함이 때로는 지겨운 학교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었던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색 원피스를 입으면 촌스럽게 여겨질 것 같은데...그 선생님의 취향이 독특했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에 젖게 하는 가을햇살 속에 다양한 옐로가 가슴을 단감처럼 달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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