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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셸 오 Jul 02. 2019

#카레에 얽힌 추억

파카레. 토마토 카레. 또...

오랜만에 카레를 만든다.

카레가루를 붓고 그것들이 엉키지 않도록 젓다 보니 카레를 맨 처음 먹었던 일이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내놓았던 노란 국물.

카레의 샛노란 첫인상도 그랬지만 그 맛과 향은 더욱더 낯설었다. 

고춧가루 듬뿍 푼 빨간 국물 또는 쌀뜨물 같은 곰국이나 미역국 같은 것에 익숙한 나의 감각은 이국적인 노란 카레에 정을 쉽게 들이지 못하였으나 엄마는 카레를 며칠간 계속 밥상에 올렸다.

그녀는 텔레비전의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는 외국의 요리. 즉 샐러드나 카레 같은 요리에 무척 관심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였다.

카레 외 우리가 자주 접했던 반찬은 샐러드였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밥반찬도 되지 못할 그것을 반찬이랍시고 엄마는 주야장천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노란 카레 안에 잔파들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언제나 창조를 즐기는 우리 엄마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해 우리 가족은 노란 카레에 조선파가 파릇파릇한 카레를 맛보기도 하였다.

카레의 강황 맛에 섞인 한국의 조선 파는 절대 강자로 카레의 맛을 압도하였고 그 첫맛은 아직도 혀 끝에 남아 있을 정도로 강렬하였다.

먹는 중에 강한 파맛에 헛구역질을 한 듯도 하다.

카레의 강황 맛에 한국의 잔파를 넣어보라.

한국과 인도의 섞이지 않는 맛을 느낄 수 있다.

 

또 한 번의 기억은,

내가 살던 곳을 떠나 타 지역에서 살 때였다. 파가 섞인 카레 이후 나는 카레를 정말 멀리하였다.

그런데 학원의 사모가 카레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학원 건물에 집이 있었던 학원장은 무척 자상하고 선한 사람이었는데 우리 강사들의 식사는 꼭 자신의 집에서

같이 들도록 했다. 식사 시간도 없이 수업 표를 짜서 일을 시키는 학원들에 비해 얼마나 좋은 분이었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원장님이다. 사모도 무척 선한 분이셨는데 유독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적성에 맞지 않아  집안 살림만 하였다.

저녁식사를 할 때면 날마다 바뀌는 사모의 반찬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토마토 카레라면서 빨간 토마토가 섞인 카레를 내 왔다.

밥반찬용 카레에 달디 단 토마토를 섞다니. 나는 순간 학생 때 엄마가 만들어준 파카레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내 앞에 이미 놓아진 밥그릇. 반찬은 카레가 메인이었다.


" 맛이 어때요? 한 번 만들어 봤는데..."


그녀의 표정과 말투에서 나는 이미 토마토 카레 맛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빨간 카레는 이미 모두의 입안에서 밥과 적절하게 섞여 드는 중이었다.

사모의 미안해하는 말투에 내 옆에 앉았던 영어 선생은 눈치가 빨랐다.


"맛있어요~"


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나보다 어린 영어 선생의 넓고 깊은 마음에 감탄하고 말았다. 목구멍에 넘기기도 불편한 카레를 맛있다고 하다니. 나 같았으면 "먹을만해요"라고 했을까. 아무튼 내게는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였다.

수학선생도 원장도 나도 아무 말이 없이 그릇에 가득한 카레밥을 다 먹었다. 속이 좀 느글거렸다.

그러나 우리 학원의 원장님은 아내를 무척 사랑하는 분이었다. 식탁에서 일어서면서


"맛있게 잘 먹었어."


사모는 기쁜 듯 입을 벌리고 웃었다. 아마도 사모는 자신의 별난 요리가 정말 괜찮다고 느낄지도 몰랐다. 네 명 중 두 명이 맛있다고 해버렸으니. 나는 사모가 다음부터는 제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일이 없기를 정말 마음속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데 사모의 다음 말은 나를 경악케 하였다.


"다음에는 바나나를 넣어볼까..?"


물론 그 바나나 카레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날의 카레와 과일의 만남은 내게 최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토마토보다 바나나 카레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글을 쓰다 보니 최근에 먹었던 카레도 생각난다.

교회서 한 집사님이 카레를 끓였는데 카레 색이 갈색인 데다 처음 맛보는 카레였다.

카레 색깔이 이상해서 물어보니 카레에 짜장을 섞은 것이란다.

흰 접시에 가득 담긴 밥과 갈색의 카레가 듬뿍 올려진 또 한 번의 처음 보는 카레밥.

그 맛은 어떨까?

확실히 카레맛은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카레와 짜장의 절묘한 융합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요리의 탄생이라 할 만하였다.

배가 고팠던 터라. 짜장 카레 안에 있는 건더기가 딱딱해도 그냥 넘기었다. 

갈색 카레에 묻어서 그 딱딱한 것이 덜 익은 야채인 줄 몰랐다. 입안에 있던 것을 뱉고 보니

생호박이다.

아마도 예배 후 서둘러 음식을 장만하느라 식사를 준비하던 집사님이 호박을 너무 늦게 넣은 것 같았다.

호박 카레. 짜장 카레를 먹게 될 줄이야. 


먼 옛날.

강황에 조선파가 섞이던 날 이후 나는 토마토 카레를 먹었고

칠일 전에는 짜장 카레와 호박 카레를 접했다.

요리를 수없이 창조하는 사람들 덕분에 내 미각의 경험이 찐하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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